[인터뷰]“나는 닫힌 방에 갇힌 몸. 사면 없인 못 나가”

10년간 선거권 ·피선거권 묶인 이광재 전 강원지사, 원로 42명 인터뷰집 펴내

이광재 전 강원지사는 박근혜 대통령의 인사 난맥상과 관련, “정부는 국가의 인재풀을 관리하는 독립적인 기구인 중앙인사위원회를 설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전 지사는 최근 <주간경향>과의 인터뷰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아는 사람을 쓰는 방식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며 “중앙인사위가 있으면 개각 6개월 전부터 관련 인사들을 선택하는 작업을 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참여정부의 인사검증 시스템과 관련해 “청와대 민정수석은 검찰과 국세청에서, 정무수석은 경찰과 시민단체에서, 홍보수석은 언론기관으로부터 각각 정보를 받았고, 대통령 비서실장은 국정원의 보고를 받았다”며 “각 수석실은 이 정보를 공유하지 않고 우선 조사한 후에 수석회의 때 조사 결과를 동시에 공개하고 추가로 의문점이 있는 것을 체크해 문제 인사들을 골라냈다”고 밝혔다.

이 전 지사는 ‘박연차 게이트 사건’으로 대법원으로부터 유죄판결을 받아 2011년부터 10년 동안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행사할 수 없는 처지다.

하지만 누구보다 바쁘게 생활하고 있다. 그는 최근 각계 저명인사 42명과 한 인터뷰를 모은 <대한민국 어디로 가야 하는가>를 펴냈다. 또 남경필 경기지사, 우윤근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등과 함께 ‘한·러 미래포럼(가칭)’ 창립을 준비하고 있다. ‘노무현의 오른팔’로 불린 이 전 지사는 청와대 국정상황실장, 국회의원, 강원지사를 지냈다.

지난 2011년 국회의원직을 잃은 후 어떻게 지냈나.
“곧바로 중국으로 가서 2년 6개월 동안 칭화대 공공관리대학원에서 공부했다. 그 후 한국으로 돌아와 연세대 동서문제연구원에서 객원교수로 있었다. 올 가을 학기부터는 성균관대 대학원에서 문명(국가)흥망사를 강의할 예정이다. 청와대에 있을 당시 10년 후에 중국의 차세대 리더그룹이 누가 될 것인가라는 국정원의 보고서가 나왔었다. 중국에 있는 동안 보고서에 언급된 차세대 리더들을 사귀었다. 주로 공청단원(젊은 공산당원)이었다. 결국 그들이 지금 중국 공산당의 리더로 부상하고 있다.”

원로인사 42명과의 인터뷰 내용을 담은 <대한민국 어디로 가야 하는가>라는 책을 출간한 이유는.
“과거 청와대와 국회에서 경험해보니까 국가는 굉장히 규모가 큰 조직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국가를 이끌어온 원로들에게 지혜를 묻고 답한 과정을 책으로 썼다. 나는 원로들의 생각을 모아야 한반도 통일로 가는 길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대에 너무 오래 머물러 있다. 현재 고용 없는 성장 상태에 있는 것이다. 50대만 돼도 직장에서 퇴직하고 놀고 있다. 통일만이 침체된 우리 경제를 살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저명인사들을 인터뷰하는 과정에서 어려움도 많았을 것 같다.
“실제로는 책에 나온 사람들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인터뷰했다. 지난해 1월부터 국가 운영과 관련해 경험이 있는 전문가와 훌륭한 기업가들을 많이 물색했다. 전문가를 인터뷰하기 전에 언론인들에게 자문도 구하고 사전에 인터뷰하는 인사들에 대한 정보도 수집했다. 섭외도 내가 직접하고 원고도 혼자 다 썼다. 내가 인터뷰를 제안했을 때 일부는 나에 대한 편견을 갖고 있었다. 386(30대·80년대 학번·60년대생), 친노(노무현), 학생운동권, 좌파 등…. 하지만 대부분은 인터뷰를 하고 나서 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젊은 나를 선택했는지 이해가 간다고 얘기하곤 했다.”

인터뷰한 사람들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인물은 누구인가.
“채명신 장군이다. 그는 한국전쟁 때 강원도 인제에서 김일성의 오른팔이라고 할 수 있는 길원팔(인민군 중장)을 생포했다. 그가 길원팔에게 ‘너희들이 말하는 인민을 위해 남쪽에 가서 같이 일하자’고 설득했더니, 길원팔은 김일성이 준 총으로 자결하게 해달라고 해서 총을 주고 방 밖으로 나왔다고 한다. 대신 길원팔은 채 장군에게 아이 둘을 남한에 데리고 가서 잘 키워달라고 부탁했다. 채 장관은 아이 둘을 데려왔으나 한 아이는 죽고 한 아이는 서울대까지 보냈다고 한다.”

저명한 관료 출신들이 말하는 우리나라의 국가정책 실패 이유는 무엇인가.
“역사는 항상 그 시대에 맞는 시대적 과제가 있다. 영국 처칠 총리의 경우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었지만 전쟁 직후 선거에서 노동당에 패했다. 당시 노동당은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복지 슬로건으로 고아·미망인 등 전쟁 이후 상처받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시대의 요구를 꿰뚫은 노동당의 정책은 성공했지만 시대정신에 뒤떨어졌던 보수당은 실패했다.”

이 전 지사 앞에는 ‘노무현의 오른팔’이라는 수식어가 항상 따라다닌다.
“노 전 대통령을 스물세 살 때 만났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은 마흔둘이었다. 국회의원에 당선했던 노 전 대통령은 수행비서 한 명과 차를 구입하는 것을 제외하고 국회의원실의 조직 구성 일체를 나에게 맡겼다. 당시 5공 청문회를 하면서 노 전 대통령이 굉장히 역량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지난 1992년 김대중 후보가 패했을 때 호남 사람들은 영남보다 인구가 적기 때문에 패했다고 생각했다. 당시 나는 영남과 야당 출신의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풀뿌리조직인 지방자치실무연구소를 만들었다. 1993년부터 지방자치실무연구소를 설립·운영한 것이 2002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승리의 밑거름이 됐다.”

참여정부가 실패한 정부라는 평가에 대해서는.
“참여정부 역시 공도 있고 과도 있다. 다만 부족한 점이 있었다면 노무현 대통령이 정부 출범 초기에 검찰 등 권력기관을 너무 빨리 풀어준 것이 결과적으로 잘못된 것 같다. 노 대통령이 권력기관 앞에서 권위를 가졌어야 했고, 권력기관을 서서히 효과적으로 개혁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또 언론과의 불화도 참여정부의 원활한 국정 수행에 장애물이 됐다. 참여정부는 언론으로부터 어마어마한 공격을 받았다.”

이 전 지사를 얘기할 때면 안희정 충남지사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안 지사는 재선에 성공함으로써 대권후보로 부상하고 있는데.
“안 지사와는 같은 학번(83학번)으로 절친이다. 최근에도 자주 통화한다. 그에 대한 정치적 라이벌 의식은 전혀 없다. 안희정 지사가 재선된 것은 아주 잘됐다. 안 지사는 박원순 시장, 남경필 지사, 원희룡 지사 등과 함께 한국 정치를 이끌어갈 것이다. 이들이 앞으로 선의의 경쟁을 통해 대통령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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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저서 출판을 계기로 정치활동을 재개하는 것 아닌가 하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나는 현재 닫힌 방 안에 있다. 박근혜 정부에서 사면해주기 전에는 방에서 나갈 수 없다. 박근혜 정부가 지난해 서청원 새누리당 최고위원,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은 사면해줬지만 나와 정봉주 전 의원은 사면해주지 않았다.”

<글·권순철 기자 ikee@kyunghyang.com>
<사진·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