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100, 101, 102… 200일 이제, 눈물보다 강해져야 한다

세월호 참사 100일이 지났다. 정부ㆍ여당은 참사를 수많은 사건들 가운데 하나로 폄훼하려고 한다. 일부 의원들의 막말은 우발적 실수가 아니라 계산된 발언이다. 그들이 노리는 것은 유가족과 이를 지지하는 시민들의 분리다. 그러나 유가족은 의연했고 시민들은 그들을 잊지 않았다. 이제 진상규명을 위한 또 다른 ‘100일’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

7월 24일.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100일 되던 날이다. 이날 오전 9시. 안산분향소에서 시청광장까지 1박2일 100리 행진으로, 광명실내체육관에서 하루를 묵은 유가족들은 묵직한 몸을 간신히 일으켜 행진 이틀째를 준비하고 있었다. 같은 시각 국회에서는 새누리당 최고위원회가 열렸다. 최고위에서 나온 일성은 참사 희생자에 대한 추모도 대책도 아니었다. “세월호는 기본적으로 교통사고.” 주호영 정책위 의장의 말이었다. 즉각 ‘막말’이라는 여론의 비판이 빗발쳤다. 비판이 거세지자 새누리당 지도부는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뿐인데 본말이 전도됐다며 항변했다.

세월호 진상규명과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안산을 출발해 1박2일 도보행진을 벌이고 있는 희생자 유가족들과 시민들이 국회에 도착하고 있다. | 정지윤 기자

거듭되는 새누리당의 막말은 일부 의원들의 우발적 실수일까.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실수가 아닌 ‘전략적 행위’로 분석했다. “새누리당은 이 사건을 조기 종결시키고 싶어한다. 세월호 사건을 조류독감, 교통사고에 빗대는 것은 일부 몰지각한 새누리당 의원들의 발언이라기보다는 사태 수위를 자꾸 낮춰 우리 사회에 있는 수많은 사건들 중 하나로 세월호 사건을 폄하시키려는 전략적 행위다. ‘당신들만 특별취급 받으려 하나’라는 프레임을 만들려는 것이다.”

새누리당이 막말로 노리는 효과는 유가족들과 이를 지지하는 시민들의 분리다. 7월 23일 광명에 거주하는 김지선씨(가명·46)는 유가족들의 행진이 광명을 지나간다는 것을 알고 시간을 맞춰 노란 리본을 달고 나왔다. 김씨는 “여기 오면서 왜 내가 여기 나와야 하는지, 왜 유가족들이 100리를 걸어야 하는지 생각했다. 당연히 국가에서 해야 할 일인데 뭔가 전도된 느낌이 들었다. 내일이 100일인데 100일 이후에도 이 분들이 움직이는 동선에 따라 나도 움직여 주고 뭐든지 지지할 것이다. 다른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사태를 축소하려는 막말 퍼레이드
시민들이 유가족의 동선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야말로 정부·여당이 가장 우려하는 것이다. 유가족들이 요구하는 특별법이 이치에 맞지 않는 특혜라는 내용을 담고 있는 심재철 의원의 카카오톡 메시지나 특별법에 단원고 학생 대학 특례입학과 군면제가 들어간다는 소문은 이를 끊어낼 좋은 고리였다. 천정환 성균관대 국문학과 교수는 “특별법에 특례입학이 있다는 소문이 여당이나 정부에는 정말 좋은 고리였던 게 당장 유가족과 시민들을 분리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유가족과 시민들의 연대가 끊어지면 이 싸움이 무의미해지거나 끝날 것이다”라고 말했다. 소문만 듣고 돌아서는 여론에 유가족들은 억울했다. 특별법에는 특례입학도, 군면제도 없었다. 철저한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재발 방지가 유가족들이 몇 차례나 강조한 특별법의 핵심 내용이었다. 언론에 몇 차례 억울함을 토로했지만 여전히 유가족들은 그것부터 설명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다. 안산분향소에서 서울광장까지 100리 행진을 하는 동안에도 행진을 선도하는 방송차량에서는 끊임없이 ‘세월호 특별법에는 특례입학 같은 특혜는 들어 있지 않다’는 내용의 방송이 흘러나왔다.

세월호 참사 100일을 맞은 풍경은 유가족과 시민의 연대 고리를 끊어내려는 새누리당의 전략이 유효하지 않았음을 보여줬다. ‘미안함’과 ‘고마움’은 여전히 유가족과 시민을 잇는 고리였다. 광명시 초입에서 유가족을 기다리고 있던 이장춘씨(52)는 유가족들과 함께 한 시간 남짓을 걸어 광명실내체육관에 도착했다. 대학교 1학년 아들을 두고 있는 이씨는 “지난주에 광장에도 나갔었는데 내일 100일 행사도 친구와 같이 가기로 약속했다. 마음은 늘 함께하고 싶은데 일이 있다보니까 자주 못나갔다. 미안한 마음, 너무 미안하다. 같은 국민으로서 국가와 정부가 해주지 않는다는 게 너무 속상하다”며 눈물을 흘렸다.

고 오영석 학생의 아버지 오병환씨(43)는 광명실내체육관에서 지친 몸을 추스르는 가운데서도 지지해준 시민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오씨는 “여기 오는 데 광명시민들이 따뜻하게 대해주셔서 너무 고마웠다. 특별법 서명 받으러 우리 7반은 김해·부산·창원에 갔었는데 그때도 시민들이 많이들 도와주셔서 굉장히 고마웠다. 이 힘을 받아서 특별법을 꼭 통과시켰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안산에서 200여명 남짓으로 출발한 유가족의 행렬은 시청광장으로 진입할 무렵 5000명으로 늘어나 있었다. 차선 하나에 2명씩 짝을 지어 걷던 것이 인원이 늘면서 어느덧 3명이 짝을 지어 걷게 됐고, 시청광장에 진입할 무렵에는 차선을 3개를 걸어도 이어지는 행렬은 끝이 없었다.

세월호 참사가 광범위한 시민들의 공감대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사태 이후 유가족들이 중심을 잡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천정환 교수는 세월호 참사 이후 유가족이 참석했던 한 토론회를 떠올렸다. 유가족이 세월호 참사에서 겉으로 드러난 과적 문제나 변침만을 문제삼지 않고 현상 뒤에 있는 사회적 모순까지 밝혀내야 한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천 교수는 “유가족이 다른 누구보다 이 사건의 본질과 모순을 통찰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렇기 때문에 사건의 본질을 꿰뚫는 대안들을 말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정부, 시민과 유가족의 ‘동행’ 두려워 해
세월호 참사 100일 동안 세월호 참사를 끌어온 건 유가족이다. 가족을 잃고 슬픔과 충격에 빠진 유가족이 거리 집회를 하고 특별법 서명을 받기 위해 버스를 타고 전국을 돌아다녔다. 단식과 도보행진 등의 극한방법을 동원해 정부와 여당을 압박한 것도 유가족이었다. 2학년 7반 고 정동수 학생의 아버지 정성욱씨(46)는 ‘평생 망치질하고 사느라 정치는 하나도 몰랐다’. 그러나 지난 100일 동안은 안 다닌 데가 없다. 진도에서 아들의 시신을 기다리며 심신을 모두 소진했지만, 안산에 올라오자마자 국회와 전국으로 서명하러 다녔다. 특별법을 만들 때, 사례를 찾아보기 위해 과거 사건의 피해자들도 만나러 다녔다.

세월호 참사 100일을 맞은 지난 7월 24일 서울 시청광장에서 추모 공연이 시작되자 희생자 유가족이 오열하고 있다. | 이선명 인턴기자

유가족들은 100일을 거치면서 체계적 의사결정구조를 잡아가고 있었다. 7월 23일 밤 11시가 가까울 무렵, 이날 모든 행사를 마친 가족들은 광명실내체육관에서 반별로 동그랗게 모여 앉았다. 반별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유가족들에게 이제는 일상적인 일이다. 대책위 관계자에 따르면 대책위의 의사구조는 수평적으로 이루어진다. 세월호 유가족 대책위에는 위원장, 부위원장 및 대변인과 각 반 대표가 임원진이다. 임원진들이 전체 안건을 공유해서 토의한 결과물을 가지고 전체 총회에서 설명을 하고 학부모들이 반대하면 추인이 안 되고 찬성하면 추인이 되는 형식이다. 충돌도 있었다. 정성욱씨는 “처음 만나는 사람들끼리 처음에 왜 충돌이 없었겠나. 충돌을 이겨내고 여기까지 하나하나 온 것이다”라고 말했다.

잘 싸우기 위해 몇 가지 원칙도 정해놨다. 유언비어의 공격에 감정적으로 반응하지 않는다는 것도 유가족들이 내린 원칙이다. “감정적으로 대응하다 보면 힘들어질 것이라고 생각해서 그러지 말자고 했다. 서명 받으러 다니다 보면 ‘이렇게까지 해야 하냐. 설치지 말라’는 이야기도 한다. 그럼 다시 설명해준다. 특례입학, 의사자 지정이 아니라 진상규명이 목적이라고.” 정성욱씨의 말이다.

광화문광장에서 어버이연합이 서명판을 걷어차고 기물을 파손해 경찰이 적발했을 때도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며 그냥 돌려보냈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수 있다”는 게 유가족이 그들을 반대하는 사람을 대하는 기본 입장이다. 언론에 대한 불신이 뼛속까지 스며 있지만, 싫어도 언론을 향해 얘기할 수밖에 없는 현실도 받아들이고 있다. 오보를 내고 보도국장이 망언을 하고 해임된 KBS는 밉지만, 그래도 널리 알리기 위해서는 KBS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목소리도 있다. 2학년 7반 국승현 학생의 아버지 국경호씨(47)는 “방송 3사에서 안 나오니까 JTBC가 아무리 보도를 해도 시골에서는 모른다. KBS가 파급효과가 크니까 우리 목소리가 조금이라도 나가야 하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유가족들 중심 잡고 여기까지 이끌어
100일을 맨앞에서 싸우면서 유가족들은 이제는 어색했던 구호에도 익숙해졌다. 100일 추모제에서 “국회는 깨어나라, 청와대는 깨어나라, 국민들이여 깨어나라”는 구호를 외치는 김병권 유가족대책위 위원장의 목소리도 이제는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하지만 유가족에게 여전히 익숙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아이들이 떠났다는 사실이다. 추모 행사에서 아이들의 영상이 흘러나올 때마다 유가족들은 아이들의 사진을 어루만지며 통곡했다.

지난 100일 유가족이 중심이 돼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분노와 한이었다. 정성욱씨는 “분노로 속에서 열불이 났지만 정말 아이들 생각 하나로 여기까지 왔다”고 말했다. 광화문에서 단식농성장을 지키고 있는 방우성 안산시민대책위 상황실장은 가족들을 버티게 하는 힘은 ‘치떨리는 분노’라고 말했다. “큰 충격을 받아 몸이 완전히 피폐한 상황인데 10일이 넘어가도록 단식을 하는 것은 한과 분노다. 얼마 전 휴대폰 영상에서 아들의 살아생전 목소리를 들은 아버님 한 분이 부들부들 떨면서 울고 계시더라. 아이의 모습이 떠오르고 저 아이가 살아서 나오지 못했다고 생각하니까 화가 나고 분노가 치밀어서다.” 피폐해진 몸으로 100릿길을 걸으며 특별법 제정을 호소했던 것도 아이 때문이었다.

2학년 4반 고 강승묵 학생의 아버지 강병길씨는 도보행진 중 발목에 붕대를 감으며 “너무 힘들다”고 말했다. 강씨는 “해보니까 너무 힘들다. 그런데 아이 생각만 하며 걸었다. 걸어 보니까 지난번 생존한 아이들이 너무 고맙더라. 이 힘든 일을 살아나왔다는 이유로 했구나. 우리는 자식들 때문에 걸었고 걔들은 친구들 때문에 걸었으니 참 고맙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100일 이후에도 유가족들이 잘 버텨나갈 수 있을까. 서복경 교수는 유가족이 지금 문제 해결의 중심에 서 있는 것 자체가 정치가 작동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시점 이후에 유가족에게 남은 선택지가 별로 없다는 게 가장 우려스럽다. 서 교수는 “지난 100일 동안 전국을 돌아다니고 목숨을 걸고 밥도 굶고 했는데 결과가 안 나온다면, 지금 유가족에게 남은 선택지가 뭐가 있겠나. 이런 위태로운 상황에서 유가족들이 좀 더 극한 상태로 내몰리지 않도록 정치주체들이 선제적인 대응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초기 대응에 미온적이었던 야당이 이제라도 발벗고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최소한 야당에서 유가족 정도의 강도를 가지고 먼저 쳐줘야 유가족이 몸을 추스르고 지켜볼 여지가 생기지 않나. 사태를 먼저 한 발 앞서나가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제1야당이라면 이미 벼랑 끝에 내몰린 유가족들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의 기획은 있어야 한다.” 유가족의 고민도 깊다. 국경호씨는 “아무리 단식을 하고 도보행진을 해도 안 될 것 같아 걱정이다. 언제까지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정말 힘들다”고 말했다. 그저 악으로 버틸 뿐이다. 강병길씨는 “최악으로 죽기밖에 더하겠나. 이대로 물러서지 않고 끝까지 갈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야당 발벗고 나서 극한 상황 막아야
7월 24일 추모문화제가 끝나고 광화문 행진이 시작되려던 밤 10시 30분. 시청앞을 지키던 경찰들의 움직임이 빨라지고 경찰 차량이 하나둘 이동하기 시작했다. 시청에서 광화문광장으로 나아가는 차도는 금세 차벽으로 가로막혔다. 폭우가 쏟아지는데 문화제에 참가한 시민들은 물론 다수의 유가족들도 광화문광장에서 열리는 기념식에 참가하지 못했다. 광화문광장에는 추모문화제를 마치고 먼저 광장으로 달려온 한 시민이 있었다. 그는 “아무래도 경찰들이 광장을 막아서는 걸 보니 유가족들만 보내고 일반 시민들은 행진을 막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100일 기념일인데 혹시나 유가족들만 썰렁하게 100일 기념식을 하게 되면 외롭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추모제를 보다 말고 미리 와 있었다”고 말했다. 100일 이후 정부·여당은 또다시 유가족을 고립시키려 할 것이다. 유가족들이 외롭지 않도록 앞서 나간 시민의 모습은 세월호 참사 이후 한국 사회에 남겨진 숙제인 셈이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