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자초한 좌초, 기로에 선 안철수

“돌아갈 다리를 불살랐다”며 시작한 정치, 재보선 패배로 정치생명 위기에… 그는 과연 회생할 수 있을까

“아주 끝난 것은 아니지만 리더십에 치명적인 상처를 받은 것은 분명하다.”

7·30 재·보선 결과를 두고 안철수 새정치연합 의원의 과거 측근인 ㄱ씨가 한 말이다. ㄱ씨는 “안철수 현상까지 만든 주인공이고 한국 사회의 좋은 인재인데…”라며 “국민의 열망을 반영한 새정치와 안철수 현상이 꺼져가는 것이 애석하다”고 말했다.

선거 패배로 짧으면 짧고, 길면 길다고 할 수 있는 안철수 의원의 정치생명이 기로에 놓였다. 이번에는 단순히 ‘철수’한 것이 아니라 ‘실패’한 것이기 때문이다.

7월 31일 당대표직을 사퇴한 안철수 새정치연합 의원이 비공개 최고위원회를 마치고 국회를 떠나고 있다. |정지윤 기자

이미 안 의원은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2012년 대통령 선거에서 연이어 후보직을 양보한 바 있다. 안 의원은 2013년 4월 국회의원 보궐선거 서울 노원병 지역구에서 당선되면서 다시 여론의 중심에 섰다. 대선 패배 책임론에서 한 발 떨어져 있었기에 유력한 차기 대선주자로서의 위상은 여전했다.

무공천 논란ㆍ공천참사 등 겪으며 치명상
떨어질 줄 모르던 안 의원의 지지세가 꺾인 것은 그가 제3지대에서 ‘철수’한 이후부터다. 올해 3월, 안 의원은 자신이 이끌던 새정치추진위원회와 김한길 대표가 이끌던 민주당의 통합을 전격 결정했다. 그는 제1야당의 공동대표로 위상이 높아졌지만 ‘새정치의 아이콘’이라는 이미지는 퇴색될 수밖에 없었다.

새정치 이미지를 버린 대가는 컸다. 그는 제1야당의 대표임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박원순 등 다른 야권의 차기 대권주자보다 못한 지지율을 기록하기도 했다.

그래도 그에 대한 최소한의 기대는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는 여전히 제1야당의 대표였다. 정치적인 감각이 있었다면, 그는 흐름을 반전시킬 수 있는 기회가 얼마든지 있었다.

안철수 대표는 그러지 않았다. 사사건건 거꾸로 갔다. 지방선거 기초선거 무공천을 고집했다가 뒤늦게 철회했고, 지방선거와 재·보궐선거에서는 전략공천으로 몸살을 앓았다.

새누리당은 7·30 재·보선을 앞두고 ‘참 철수했어요’ 스탬프까지 만들며 그를 조롱했다. “서울시장 철수, 대선후보 철수, 신당 창당 철수, 기초 무공천 철수, 서울 동작을 철수”라는 내용이다. 다음번 스탬프에는 ‘정계은퇴’라고 써 있었다.

이미 안철수라는 정치인은 ‘신선함’을 잃었다. 선거 이후 한동안 안 의원의 정치적 위상이 회복되기는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쏟아지고 있다.

6·4 지방선거 공천과정에서부터 안 대표를 강하게 비판해온 정청래 새정치연합 의원은 안 의원의 대표직 사퇴 직후 다음 아고라에 “4개월 만에 안철수의 모험과 도전은 실패로 끝났다”는 취지의 글을 올렸다. 이 글은 “7·30 이전과 결별해야 한다”, “최고위원회에 깜도 안 되는 낯선 사람들이 똬리를 틀고 앉아 있다”는 등 안 의원 개인뿐만 아니라 안철수 세력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친노·486 등 구주류 세력을 중심으로 안철수·김한길 식 중도노선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터져나오고 있다. 486그룹의 대표격인 이인영 의원은 8월 1일 평화방송 라디오에 출연해 “정부와 여당의 일방통행식 국정운영을 효과적으로 견제하지 못했다”며 7·30 재·보선 패배에 대해 “하나라도 끝까지 물고 늘어지고 해결하려는 치열함, 불꽃같은 투혼 이런 것들이 사라져버렸다고 (국민들이) 경고하신 것”이라고 말했다.

7월 21일 김한길·안철수 새정치연합 공동대표가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에 차려진 천막당사에서 업무를 보고 있다. | 정지윤 기자

구주류의 움직임대로 안철수계 세력이 당 핵심에서 배제되고 중도강화론마저 폐기된다면, 선거 이후 휴식에 들어간 안 의원이 돌아올 자리는 없어지는 셈이다.

안철수계 과거 안 의원과 인연이 있던 인사들은 그래도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 새정치비전위원회의 간사를 지낸 최태욱 한림대 교수는 향후 안 의원이 정치적으로 재기하려면 새정치의 내용을 실천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 교수는 “새정치의 콘텐츠는 이미 새정치비전위원회 최종보고서로 어느 정도 정리됐다”며 “비전위 보고서의 내용이 제대로 실현되지 못하고 있었는데, 안 의원이 새정치의 내용을 행동으로 보여주기 시작한다면 재기가 불가능하지 않다”고 봤다.

대선까지 2년… 측근들 “기회는 있다”
새정치비전위는 지난 안철수·김한길 두 사람이 통합신당을 발표한 이후인 지난 3월 13일에 출범했다. 비전위는 새로 출범할 통합신당의 강령과 정강정책의 작성을 위한 제언을 하기 위한 기구였다. 비전위는 한 달여 뒤인 4월 16일 최종보고서를 발표하고 새정치를 실현할 13가지 제언을 발표했다. 마침 이날 세월호 참사가 벌어져 보고서의 내용이 많이 알려지진 않았다. 제언 중에는 부패 전력자에 대한 원스트라이크 아웃제 도입, 소속 의원이나 단체장의 문제로 치러지는 재선거 무공천 원칙 수립, 대통령 결선투표제 도입 등 정치혁신 과제들이 들어 있다.

문제는 새정치민주연합이 출범한 이후 이런 제언이 제대로 수용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비전위는 선거 공천에 있어 중앙당의 권한을 줄이고 실질적인 것은 공천배심원단에 맡기는 안을 제시했지만 결국 6·4 지방선거와 7·30 재·보선은 무리한 전략공천으로 얼룩졌다. 전남 순천·곡성 지역구에서 이정현 의원에게 패한 서갑원 전 의원의 경우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에게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의원직을 상실한 전력이 있지만 공천됐다.

새정치연합에서 안철수계로 분류되는 조배숙 전 의원은 다음 대통령 선거까지 2년 이상 시간이 남은 만큼, 안철수 의원이 다시 유력 대선주자로 부상할 가능성이 여전히 남아 있다고 봤다.

조 전 의원은 “한국 정치는 변화가 무쌍하고 속도감이 있다. 안 의원 본인도 이번 재·보선 패배로 느낀 점이 많을 것이고, 이 일을 거울 삼아 준비를 하다 보면 다시 기회가 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안 의원의 과거 측근인 ㄱ씨 역시 “아직까지는 국민들이 안 의원을 ‘새로 정치권에 온 사람’으로 보고 지금 과정을 시행착오로 생각할 것”이라며 재기 가능성을 언급했다. 그는 “안 의원이 제대로 새정치를 할 생각이라면 처음부터 다시 한다는 마음으로 국가의 틀을 바꿀 수 있는 알맹이를 채워나가야 한다. 본인이 왜 정치를 하려고 했는지 성찰을 하고 결의를 다진다면 다시 국민이 돌아보지 않겠나”라고 덧붙였다.

ㄱ씨는 “안 의원이 앞으로 진정성과 함께 알맹이 있는 활동을 한다면 그 분을 도와줄 사람은 많을 것”이라면서도 “나는 돌아갈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안 의원도 그랬다. 안 의원은 정치를 시작하면서 “돌아갈 다리를 불살랐다”고 말했다. 정치로 승부를 보겠다는 의지의 표명이었다. 그는 돌아갈 다리만 없어진 게 아니라 앞에 있는 다리까지 불에 타고 무너져내린 형국이다. 혹시 저 진퇴양난에서 살아 나온다면 국민들이 한 번 더 기회를 줄까?

<백철 기자 pudmaker@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