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야당 정치인들 뭘 하는지 도통 알 수가 없어”

시민들이 본 야당과 7ㆍ30재보선… “무색무취 벗고 존재감 있는 정치하라”

경기도 광명시에 거주하는 박진성씨(가명·34)는 평소 인터넷 댓글란을 빼놓지 않고 본다. 7·30 재·보선 결과에 대한 소감을 묻는 질문에 박씨는 “희망을 갖고 살고 싶은데, 사는 게 너무 어렵다”며 운을 뗐다.

“선거에 참여하면 뭔가 달라지지 않겠느냐며 선거 참여를 독려하는 댓글이 이번에도 많이 올라왔어요. 그런데 야권이 어떤 희망을 제시했는지는 안타깝게 기억나는 게 없네요.”

박씨가 기억하는 야권의 최대 선거 이슈는 ‘세월호 특별법’이었다. 그도 지난 4월 16일 세월호 참사 이후 눈물을 많이 흘렸다. 세월호 희생자들이 안타까웠다. 게다가 첫돌도 지나지 않은 딸이 앞으로 어떤 인생을 살아야 할지 걱정이 됐다.

하지만 박씨는 세월호 특별법만으로는 희망을 주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7월 30일, 선거 결과의 윤곽이 보이자 국회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실에 있던 당 지도부가 굳은 표정으로 자리를 떠나고 있다. | 연합뉴스

“조금 냉정한 말이지만 세월호 특별법이 내 삶을 어떻게 바꿔줄지는 잘 모르겠어요. 말도 안 되는 참사에 윤리적인 차원에서 같이 슬픔을 느꼈지만, 그보다는 경제를 살리겠다는 여당의 말에 솔깃해지는 게 사람의 마음 아닐까요.”

서울 서초구에서 자영업을 하는 김우민씨(가명·38)는 자신을 “노무현 대통령 당선 이후 쭉 민주당 쪽만 찍어온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밑바닥에서부터 자수성가해온 김씨에게 있어 노 전 대통령은 자신과 가장 비슷한 인생 궤적을 걸어온 정치인이었다. 그래서 그는 노무현을 지지했고, 노무현과 가장 비슷하다고 여겨지는 정당을 찍어 왔다.

하지만 김씨는 “야당 정치인들이 대체 뭘 하고 사는지 도통 알 수가 없다”며 현실정치에 대한 관심을 점차 줄여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야당 정치인들이 보다 낮은 자세를 가져주기를 주문했다. 또한 모든 사람이 좋아할 만한 무색무취 정치보다는 존재감을 보여주는 정치가 야당에 필요하다고 했다.

“언론에 몇 번 나왔다고 해서 자신이 몇 점짜리인지도 모르고 목소리만 큰 야당 인사들을 보면 솔직히 ‘새누리당과 별반 다를 게 없네’란 마음이 들어요. 그리고 모든 이들에게 듣기 좋은 말만 하려다 보니 지금 야권에 색깔 없는 정치인들이 많잖아요. 색깔은 없더라도 소주나 고량주처럼 화끈한 맛은 보여줘야 지지자 입장에서 응원하는 재미가 나지 않을까요.”

“언제부턴가 야당이 호남 대놓고 무시”
복지 관련 업종에 종사 중인 직장인 장희정씨(29)는 야당이 자신들의 강점이었던 복지제도 연구에 좀 더 힘써주길 바라고 있다. 장씨 또래의 경우 내집 마련이나 결혼, 출산, 육아에 대한 고민이 크다. 40대가 넘으면 자녀교육 문제, 정년퇴직을 앞둔 직장인들은 연금제도에 많은 관심을 갖게 된다.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일평생 동안 복지가 떨어질 수 없겠다는 생각을 해요. 복지를 통해 서민들의 표를 모아야 하는데, 요새 야당에서는 복지정책 연구가 조금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새정치민주연합 등 야권이 전통적 지지기반인 젊은층과 호남에 대해 너무 무관심하다는 지적도 있다. 지지자들의 마음도 잡지 못하는 정당에는 미래가 없다는 의미다.

40대 초반의 서울시민 한미정씨의 부모님은 광주광역시 출신이다. 지난 7월 초, 한씨는 가족들과 함께 순천만 정원으로 여행을 떠났다. 그는 “정원을 참 잘 꾸며놨는데 보러 오는 사람이 너무 없어서 황량한 느낌이 들었다”며 “고향이 점점 쇠락해져 간다는 게 실감났다”고 말했다.

7월 20일 경기도 수원시 수원역 앞에서 시민들이 7·30재보선 출마자들의 유세를 지켜보고 있다. | 정지윤 기자

고향에 사는 한씨의 부모는 아직도 김대중 전 대통령 시절을 이야기하며 “새정치연합과 호남 출신 정치인이 잘 돼야 고향이 발전한다”고 자녀들에게 말한다. 하지만 한씨는 호남을 대하는 새정치연합의 태도를 보며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이다.

“언제부턴가 야당이 호남 사람들을 대놓고 무시하는 거예요. 이번 선거에서도 호남 출신 정치인들은 배제됐고, 호남 지역구 후보로 부동산 임대업자의 가족, 불법 정치자금을 받았던 사람을 내놓았죠. 수도권이라면 이런 후보들을 함부로 낼 수 있었겠어요.”

어쩌면 새누리당 이정현 후보를 지지한 전남 순천시·곡성군민 중에도 한씨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이들이 있을 것이다.

김우민씨는 야권이 새정치를 하려면 ‘새로운 인물’을 발굴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안철수 의원을 빼면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은 사람들 얼굴만 보이는데 솔직히 맥이 빠진다”며 이준석 새누리당 혁신위원장처럼 젊은 세대가 감동할 수 있는 인물을 발굴해야 한다고 말했다.

“처음 이준석이란 인물이 나왔을 땐 1회성 보여주기로 끝날 줄 알았죠. 그런데 가만히 말을 들어보니 새누리당에도 할 말은 하는 사람이더군요. 공천이 잘못되면 취소해야 한다고 앞장서서 얘기하고, 박근혜 대통령에게도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는 사람인데, 오히려 새정치연합에 필요한 사람 아닌가요? 요새는 오히려 새누리당에서 젊은이들에게 관심이 많고, 야당은 별 관심이 없는 느낌이에요.”

7·30 재·보궐선거가 가까워질수록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은 점점 하락했다. 7월 25일 한국갤럽 조사에서 박 대통령의 국정수행에 대한 지지율은 40%였다. 특히 2040세대의 경우 박 대통령에 대한 부정 평가율이 60%를 넘기는 결과도 속속 나왔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은 얼굴뿐”
7월 30일 서울 동작을 보궐선거에 출마한 정의당의 노회찬 전 의원은 낙선 소감으로 “선거운동 기간 중 가장 많이 들었던 얘기는 저를 지지한다는 말이 아니었다. 꼭 이겨달라는 이야기였다”고 말했다. 현 정권에 대한 민심 이반을 읽었다는 말이다. 하지만 노 전 의원의 말에서 야권을 대안세력으로 여기지 않는 민심도 읽힌다. 그리고 민심은 선거 결과로 드러났다.

직장인 장희정씨는 새정치연합 등 야권도 정치권 바깥의 시민들에게는 대안세력이기보다는 ‘기득권 집단’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한 명의 소시민이 보기에는 야당도 수많은 국회의원을 거느린 기득권 집단이죠. 수도권에서 한쪽이 일방적으로 이긴 것은 의외라고 생각하지만 결국 선거는 두 거대 이익집단의 싸움에 가깝다고 봐요. 안 그래도 요새 ‘불신사회’란 말도 있는데 여당에 대한 불신을 부추기기보다 야당 스스로에 대한 신뢰를 쌓는 편이 좀 더 낫지 않을까요.”

끝으로 장씨는 야권이 여러 당으로 나눠진 채 선거 때만 되면 ‘야권연대’를 하는 상황도 잘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학생 때는 여러 정당이 경쟁하는 것이 민주적인 정치라고 배웠지만 현실에서는 왜 여러 정당이 나눠졌는지 잘 모르겠어요. 소시민도 이해할 수 있는 보다 친절한 정치를 기대해야죠.”

<백철 기자 pudmaker@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