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야권 세대교체, 486이 한다?

재·보선 패배, 손학규 정계은퇴 계기로 세대교체론 급부상…

혁신 위해 절실하지만 ‘486정치인으로의 교체’ 움직임에 당 안팎서 갸웃

사람이 바뀌어야 정당이 바뀐다. 야권에서는 7·30 재·보선 패배와 손학규 상임고문의 정계은퇴를 계기로 세대교체론이 급부상하고 있다. 야권은 2010년 지방선거에서 승리한 이후 지난 4년간 전국단위 선거에서 별 재미를 보지 못했다. 그동안 제1야당을 이끌어왔던 대표들은 10년 이상 묵은 소위 ‘올드 보이’들이었다.

2012년 대선 패배 이후 민주통합당의 비상대책위원장, 당대표를 맡은 문희상, 김한길 의원은 열린우리당 시절 각각 당의장과 원내대표를 지낸 바 있다. 2012년 당대표였던 한명숙 전 대표는 민주정부 10년간 장관과 국무총리를 거쳤다. 한 의원의 뒤를 이은 이해찬 전 대표 역시 같은 기간에 당 최고위원과 국무총리를 지냈다.

8월 8일 국회에서 열린 새정치연합 원내대책회의에서 박영선 국민공감혁신위원장이 자료를 보고 있다. | 정지윤 기자

16,17대 때 대거 입문해 기대 한 몸에
최근에는 486세대의 일원인 우상호 새정치연합 의원(52)이 ‘올드보이’란 말을 꺼냈다. 지방선거 직후인 6월 11일 새정치연합 초·재선 의원 모임 ‘더 좋은 미래’의 토론회에서 우 의원은 “7·30 선거가 올드보이 귀환전으로 가면 100% 실패”라며 “본인들에게 죄송하지만 올드보이로 찍힌 분은 나오지 말라”고 발언했다. 손학규·천정배 등 거물급 인사들의 재·보선 출마가 논의되던 시점이었다.

실제 재·보선 결과가 새정치연합의 패배로 나오면서 우 의원을 비롯한 486 정치인들이 세대교체 흐름을 타고 전면에 나서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486 정치인들은 16·17대 총선(2000, 2004년)을 계기로 대거 정계에 입문했다. 임종석 서울시 정무부시장, 송영길 전 인천시장은 16대 국회에 진출했다. 전대협 1기 의장을 지낸 이인영 의원과 연세대 총학생회장 출신인 우상호 의원은 16대 총선에서 간발의 차로 낙선했지만, 17대 총선을 통해 국회 진입에 성공했다.

1960년대생인 486 정치인들이 처음 국회에 들어왔을 때만 해도 호의적인 여론이 높았다. 김민석 전 의원 등 16대 국회에 진출한 30대 젊은 의원들은 김대중 정부의 거수기 역할을 거부했고, 탈권위주의적인 성향을 보였다. 17대 국회에서 486 정치인들은 ‘4대 개혁입법’(국가보안법, 사립학교법, 언론관계법, 과거사진상규명법)을 주도해 당내 개혁세력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로 정권교체가 이뤄진 뒤 상당수 486 정치인들은 낙선의 쓴잔을 마셨다. 그러나 2010년 지방선거에서 안희정 충남지사, 이광재 전 강원지사, 송영길 전 인천시장이 당선되고, 486 출신 기초단체장이 여럿 당선되는 등 부활에 성공했다. 당 사무총장, 최고위원 등 지도부에 입성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젠 내년에 있을 차기 전당대회에서 486 정치인이 당대표 후보로 나서야 한다는 말까지 나온다. 구체적으로 과거 당대표 경선에 나선 바 있는 이인영·우상호 의원이 후보로 거론된다. 이인영 의원 측은 “현재는 (선거 패배에 대해) 반성하며 당 혁신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할지 모색하는 단계”라며 “당권주자로 거론되는건 알고 있지만 구체적 입장을 내긴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진짜 올드보이는 천·정 아닌 486들”
여전히 486 정치인들은 새정치연합 내에서는 젊은 편이다. 이들보다 젊은 정치인으로는 40대 초반인 이언주·정호준 의원, 청년 비례대표로 입성한 장하나·김광진 의원이 꼽힐 뿐이다. 김기식·진선미·은수미 등 시민사회에서 수혈된 정치인들도 연령대는 486세대다.

하지만 당 안팎에서는 486세대로의 세대교체는 진정한 혁신이 아니라는 목소리가 높다.

지난 5일 국회 제1소회의실에서 열린 ‘야당, 어디로 가야 하는가’ 토론회에 발표자로 나선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55)는 “당의 세대교체가 절실하다”면서도 “그들은 거의 30년째 학생회장을 하고 있을 뿐,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며 486세대로의 세대교체에 반대의사를 표했다.

한 교수는 “젊은 세대가 새정치연합에 매력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안철수 현상도 있었던 것”이라며 “486세대가 이런 불만을 채워줄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 교수는 그 이유도 설명했다. “이미 지난 10여년간 검증이 됐다. 486들이 발언은 강하게 했지만 비정규직, 청년실업 등 실제 야당이 싸워야 할 문제에 대해선 절실하게 하지 않았다.”

한 교수는 486뿐만 아니라 모든 야권 정치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과거에 대한 ‘자기 반성’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당 밖에 있는 사람이 보기에는 486보다는 오히려 정동영 상임고문이 앞장서는 게 더 나아 보인다”며 “새정치연합 내 진짜 올드보이는 정동영, 천정배가 아니라 486들”이라고 말했다. 정 상임고문이 2007년 대선 패배 이후 제주 강정마을,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을 찾으며 참여정부 시절의 오류에 대해 반성해온 점을 높게 산 것이다. 다만 한 교수는 “정 상임고문이 오랫동안 보인 자기 반성의 진정성을 해치지 않으려면 앞으로도 대권에 도전하지 않는다는 확실한 선언이 필요하다”는 단서를 달았다.

7월 31일 오후 국회에서 손학규 새정치연합 상임고문이 정계은퇴 선언을 한 뒤 인사를 하고 있다. | 정지윤 기자

전병헌 전 새정치연합 원내대표(56)도 7일 자신의 블로그에 세대교체론에 대한 비판적인 의견을 밝혔다. 전 의원은 블로그 글에서 세대교체론에 대해 “선거에 패배만 하면 나오는 단골 레퍼토리”라며 “생각의 교체가 없는 세대교체는 단순히 권한의 교체 그 이상의 의미는 없다”고 말했다.

전 의원은 “세대교체를 하지 말자는 게 아니다.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도덕적 우월감에 입각한 도그마적 태도과 문화가 문제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새정치연합 130명 국회의원 중 55명이 초선이다. 17대 국회 때는 그 비율이 더 높았다. 하지만 제1야당을 바라보는 국민의 싸늘한 시선은 예나 지금이나 바뀌지 않았다.

전 의원은 “우리 사회에 진보적인 가치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관철시킬지를 고민해야 하는데, 우리 말은 무조건 옳고 반대하는 사람은 경멸·증오하는 비타협적·교조적인 자세를 바꿔야 한다”며 운동권 출신 의원들을 에둘러 비판했다.

반면 새정치연합 ‘더 좋은 미래’의 간사인 김기식 의원(48)은 중진 의원들이 직접 나서기보다는 새로운 정치신인을 발굴하고 후원하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고 봤다.

김 의원은 “영국 노동당이나 미국 민주당이 10년 이상 집권을 못했을 때 토니 블레어, 빌 클린턴과 같은 당시로선 새로운 인물을 전면에 배치시켰다. 당대표급, 대선주자급 인물들이 이들의 든든한 후견인 역할을 해줬다”며 “구체적으로 누굴 지목하긴 적절치 않지만 10년째 돌아가면서 당의 간판을 맡는다면 국민이 변화를 느낄 수 있겠나”라고 말했다.

하지만 새정치연합 내 인물 중 486세대 이외에 세대교체할 인물이 딱히 떠오르지 않는 게 현실이다. 그동안 당에서 486 이후 세대(포스트 486) 정치인을 길러내는 데 너무 소홀히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새정치연합 청년위원회 간부 ㄱ씨는 “당 안팎으로 세대교체를 해야 한다는 의견이 높지만 결국 486세대로 바꾸자는 거다. 청년당원의 입장에선 486세대가 과연 새로운 인물인지 불신이 높다”며 “지난 몇 년간을 되돌아보면 청년 정치인에 대한 배려가 참 없었다”고 말했다.

‘포스트 486’도 없어 인적 쇄신 딜레마
2012년 총선 당시 새정치연합의 전신인 민주통합당은 청년 비례대표 경선을 통해 4명의 비례대표 후보를 선출했다. 이 중 2명(김광진·장하나)이 당선권에 배정됐다.

ㄱ씨는 “새누리당에서는 이준석, 손수조 등에게 여러 가지 역할을 맡기고 꾸준히 홍보를 해오고 있는데 새정치연합에서는 그나마 있는 사람들에게도 너무 관심이 없다”며 “이러다가 청년 비례대표마저 없어지는 것 아니냐는 내부 우려도 있다”고 전했다.

당내에서 활동해보겠다는 예비 청년정치인도 제대로 붙잡지 못하는 게 야당의 현실이다. 서울시 관악구에 거주하는 이동근씨(32·가명)는 2012년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 캠프에서 자원봉사를 했다. 이씨에 따르면 당시 문재인 캠프에는 당원이 아니면서도 자발적으로 모여든 청년들이 서울에서만 50명 이상이었다고 한다.

그는 “민주당보다는 문재인이란 이름 하나만 보고 찾아갔는데, 선거운동을 하면서 야당에서 활동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선거가 끝난 뒤 누구도 연락을 주지 않았고, 어디에 연락해야 야당에서 활동할 수 있는지 알 길도 없었다”며 “지금은 선거 때 알게 된 사람들 대부분과 교류가 끊겼다”며 아쉬워했다.

인적 쇄신이 필요하지만 여의치 않은 것은 새정치연합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때 ‘새정치’의 상징과도 같았던 진보정당도 새정치연합과 마찬가지로 ‘늙은 정당’이 되어버렸다. 진보정당의 스타급 거물 인사는 10년째 심상정·노회찬이다. 노회찬 전 의원은 서울 동작을 재·보선에 출마하며 “다시 불판을 갈자”는 말을 들고 나왔지만, 이 구호는 10년 전 민주노동당이 내걸었던 구호의 재탕에 불과했다.

한 정의당 관계자는 “아직도 당의 전면에 1950년대 후반~60년대 초반에 태어난 인사들이 있다. 언제까지 노회찬, 유시민, 심상정만 내세울 수 있겠나”라며 “젊은 당직자라고 해도 주로 486세대다. 1970년 이후 태생은 찾아보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당을 막론하고 486세대 이하에게는 정치적 기회가 잘 주어지지 않는 것이다.

새정치연합과 정의당의 청년위원회 간부들은 청년세대에 대한 정당 차원의 투자 자체가 없다 보니 세대교체도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새정치연합 청년위원회 홈페이지는 지난 3월 이후 아무런 글도 올라오지 않고 있다. 정의당의 경우 청년세대를 담당하는 당직자가 반 상근자 한 명뿐이다.

한홍구 교수는 포스트-486 세대를 길러내지 못한 책임은 우선적으로 486세대가 지고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교수는 “486세대가 그동안 후배들을 키우지 못한 것은 일종의 ‘사다리 걷어차기’였다”며 “그들이 정치권에 들어온 지 10년이 넘었고, 물리적인 나이도 50대로 접어들고 있는데 이들이 무슨 새로운 것을 더 보여줄 수 있는지는 이미 답이 나온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백철 기자 pudmaker@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