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더미 수공 ‘사후약방문 내규’

재무건전성 강화 관리준칙 제정… 신규 국책사업 정부의 외압 막기 위해

이명박 정부 때 4대강 사업을 떠맡아 8조원에 이르는 막대한 손실을 입은 한국수자원공사가 정부가 강요하는 비수익 사업을 아예 맡을 수 없도록 내부규정을 마련한 것으로 드러났다. 수자원공사가 국회 국토교통위 정성호 의원(새정치민주연합)에게 제출한 수자원공사 내규에 따르면 수자원공사는 지난해 1월 1일 ‘재무건전성 강화를 위한 재무관리준칙’이라는 내부규정을 처음으로 제정했다.

이 준칙은 제1조 목적에서 ‘한국수자원공사의 경영계획 등의 수립과 투자의사 결정 시 준수해야 할 재무관리 원칙과 방향을 규정함으로써 공사의 재무건전성을 강화하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한다’고 다소 포괄적이고 추상적인 내용을 담았다. 하지만 제5조의 ‘신규 투자사업’ 규정을 보면 수자원공사가 지난해 초 재무관리 준칙을 마련한 이유를 분명히 알 수 있다. 제5조는 ‘투자심사 대상인 자체 신규투자사업은 사업 총기간 내 총수익 대비 총비용의 비율(이하 ‘BC’라고 한다)이 1.0 이상인 사업에 대하여만 투자할 수 있다. 다만 BC가 1.0 이하임에도 공익 목적 등의 이유로 투자가 불가피할 경우 이사회 운영규정에 따라 이사회에 부의하여야 한다’고 명시했다.

재무관리준칙은 또 ‘지출총량’ 규정에서 ‘다음 연도의 지출 총량은 전략경영계획상의 해당 연도 지출총량 및 부채비율을 초과할 수 없으며, 연도별 투자사업을 위한 차입금(차환 제외)은 자체 자금의 2배를 초과할 수 없다’고 명시해 놓았다. 4대강 사업처럼 수자원공사의 기존 사업 규모를 넘어서는 거대 사업을 하지 않도록 미리 방지조항을 만들어놓은 것이다. 이 조항은 BC 관련 조항보다 더 엄격한 제어장치가 될 수 있다. 수자원공사의 정기적인 예산규모를 넘어서는 대규모 사업에 대해서는 제동을 걸 수 있게 된 것으로 보인다. 새롭게 제정된 재무관리준칙은 수자원공사 인터넷 홈페이지의 내규란에도 공개돼 있다.

‘생명의 강을 위한 댐 반대 국민행동’을 구성한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지난 7월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지리한댐·영양댐 등 정부의 14개 댐 건설계획은 4대강 사업의 부작용만 확대할 뿐”이라며 밑빠진 독에 물을 붓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4대강 사업 같은 거대사업 방지
수자원공사가 재무관리준칙까지 마련하게 된 배경을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수자원공사는 4대강 사업을 시작하기 전인 2008년 빚이 1조9623억원에 불과했으나 2013년에는 13조9985억원으로 크게 늘어났다. 수자원공사는 인터넷 홈페이지의 ‘열린 경영’란에 부채의 원인으로 ‘2009년부터 시행한 4대강 살리기 사업, 경인 아라뱃길 사업 등 국책사업 투자재원 마련으로 인한 부채증가액이 9.2조원으로 전체 부채증가액의 77%를 차지’한다고 밝혀 놓았다. 정부의 강요로 빚더미를 껴안게 된 수자원공사가 ‘제2의 4대강 사업’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고자 재무관리준칙이라는 내규를 새롭게 만든 것으로 해석된다.

수자원공사의 한 관계자는 “국내 공공기관의 내규를 검토한 결과 이런 재무관리준칙은 없었다”며 “선진국의 준칙을 분석해 새롭게 만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재무관리준칙이란 재무관리계획 중 상위 개념으로 재정운용지침보다 더 강력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강조했다.

비록 4대강 사업 이후 사후약방문 격으로 내규를 만든 것이지만 상당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 대다수 전문가들의 평가다. 오건호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수자원공사가 오죽하면 이런 내규를 만들었겠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강병구 인하대 경제학과 교수(참여연대 조세재정개혁센터 소장)는 “4대강 사업 같은 대규모 사업을 걸러내는 데 어느 정도 도움이 될 것”이라며 “수자원공사 입장에서는 이 내규가 (정부의) 외압을 차단하는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설사 정부가 4대강 사업처럼 대규모 목적사업을 강행하더라도 이사회에서 이 내규가 있을 때와 없을 때가 다를 수밖에 없다. 내규에 위반되는 사업 추진에 대해 이사회는 결과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큰 부담을 안고 결정을 내려야 하기 때문이다.

4대강 사업은 당시 이명박 정부의 강요로 진행된 데다가 예비타당성 조사조차 거치지 않은 채 부랴부랴 진행됐다. 때문에 비용·편익 대비(BC) 분석은 실시조차 하지 않았다. 수자원공사로서는 정부에서 요구한 사업일지라도 4대강처럼 자체 신규투자사업으로 진행할 경우 BC가 1.0 이상인 사업에 대해서만 사업을 하겠다는 의지를 내규를 통해 밝힌 것이다. BC는 통상 1.0 이상이면 사업성이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정부의 목적사업이라면 정부의 재정지원이 공식적으로 뒷받침이 돼야 하고, 그것이 아니라 수자원공사의 자체 사업으로 진행돼야 한다면 내규 검토와 이사회 결정이라는 여러 단계의 검토와 결정 과정을 반드시 거치겠다는 의지를 읽을 수 있다. 다만 공공기관의 성격상 정부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다는 것이 BC 1.0이하라 하더라도 공익 목적일 때는 이사회에 부의한다는 단서조항에서 드러나고 있다. 박창근 관동대 토목학과 교수는 “수자원공사의 사업이 거의 모두 공익사업인데 BC 1.0 이하라 하더라도 할 수 있다는 조항을 보면 내규가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이라며 “설사 BC 1.0 이상 규정이 있더라도 정부관련기관에서 엉터리로 BC를 분석하면 그만”이라고 비판했다.

BC가 정부에 따라 바뀐 대표적인 사례는 경인아라뱃길 사업이다. 이 사업은 2002년과 2003년만 해도 BC 1.0 이하로 나와 수익성이 없다고 분석됐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 한국개발연구원(KDI)의 BC 분석에서 1.07의 평가를 받아 사업이 결국 시작됐다. 이 사업 역시 수자원공사에 또 하나의 빚더미를 안겼다. 강병구 교수는 “BC 분석은 하나의 항목에 불과하다”면서 “비용항목이나 편익항목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에 따라 고무줄처럼 늘어나기 때문에 대규모 공공사업을 추진할 때에는 다른 요소들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BC가 1.0 이상인 사업만 참여
오건호 연구위원은 “수자원공사가 재무관리준칙이란 내규로 재정건전성을 확보할 수는 있지만 BC 1.0을 그 기준으로 한다는 것은 공공기관의 공익성을 훼손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공공성 훼손 우려에 대해 수자원공사의 한 관계자는 “BC 규정은 자체 신규투자사업에만 적용하기 때문에 공익적인 목적사업에는 해당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BC 분석은 경제적, 타당성 분석이 아니라 재무적 타당성 분석이라고 보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여러 경제적 요인을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재무적으로 수익을 올릴 수 있는지 분석을 한다는 것이다.

재무관리준칙은 BC 조항과 지출총량 조항 외에도 제6조 매출총이익에서 ‘다음 연도 예산을 수립할 때 매출 총이익은 매출액의 10% 이상으로 설정하여야 한다’고 명시해놓았다. 재정건전성을 위한 또 하나의 장치를 마련한 것이다. 여기에다 제7조에는 재무관리준칙에 따른 결과를 예산을 확정하는 이사회에 보고해야 하는 조항도 마련해 놓았다. 수자원공사 관계자는 “지난해 이 준칙에 의거해 예산을 짰다는 내용을 이사회에 보고했으며 올해 연말 이사회에서도 마찬가지로 이 준칙에 의거해 예산을 짰다고 보고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윤호우 선임기자 hou@kyun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