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에스제이엠 노조 ‘727승리’ 2년 후… 자본을 부끄럽게 만드는 노동

2012년 7월 27일 새벽 4시 용역깡패 300여명이 공장을 덮쳤다. 창조컨설팅이 기획하고 용역업체 컨택터스가 그 기획에 따라 무차별 폭력을 휘둘렀다. 노조원들은 몸이 부서지고 피투성이가 되었다. 노조원들은 악몽 같은 이날을 ‘727’이라고 부른다. 후유증은 남았지만 노조는 승리했다. 지난 8월 법원은 에스제이엠의 직장폐쇄가 위법하다는 판결을 내렸고 회사는 불법직장폐쇄 임금으로 노조에 21억 원을 지불했다. 노조는 그 중의 50%를 좀 더 의미 있게 쓰는 방법을 모색 중이다.

지난 9월 11일 조재호씨는 공장에 복귀했다. 2년 2개월 만의 복직이었다. 그동안 세 번의 수술을 받고 병원을 오가며 치료를 받았다. 하지만 여전히 완치는 안 됐다. 목디스크에 갈비뼈와 손목이 부러졌다. 손목의 뼈는 붙었지만 아직 정상적으로 일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다. 그렇지만 마냥 손을 놓고 있기만은 불안해 서둘러 복직을 했다.

SJM 노조원들 | 이상훈 선임기자

용역에 맞아 아직도 부상 후유증
조씨가 다친 건 2012년 7월 27일이었다. 조씨는 그날을 어젯밤 일처럼 선명하게 기억한다. 새벽 4시 용역업체 컨택터스에서 고용한 300여명이 물밀듯이 안산 에스제이엠공장으로 들어왔다. 7월 26일 밤 11시 오전조라 퇴근 후 집에서 쉬고 있던 조씨는 노조로부터 용역이 들어올 것 같다는 문자를 받고 공장을 찾았다. 새벽 4시 정문에서 밖을 살피던 조씨는 관광버스를 발견했다. 조씨와 조합원들이 정문을 막고 서 있는데 버스에서 내린 용역들이 소화기 분말을 뿌리고 곤봉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설마 그렇게까지 할까 했는데 공장은 순식간에 전쟁터로 변했다.

정문에서 순식간에 공장쪽으로 밀려난 조씨는 더 버티지 못하고 공장 안 2층으로 뛰어 올라갔다. 몇몇 용역들은 계단을 올라오고 있었고 또 다른 용역들은 계단 아래서 물건을 던졌다. 조씨 옆에 있던 한 조합원이 용역이 던진 벨로즈에 맞았다. 벨로즈는 차량 부품으로 옆면이 면도날같이 얇다. 벨로즈에 얼굴을 맞은 조합원의 얼굴에서 피가 흘렀다. 용역들은 손에 잡히는 대로 벨로즈를 집어 던졌다. 날아오는 벨로즈를 피하려는 순간, 조씨는 계단에서 미끄러졌다. 미끄러지는 조씨를 용역들이 낚아챘다. 계단 밑으로 끌려내려간 조씨는 공장 안에서, 또 주차장으로 끌려나가 정신없이 두들겨 맞았다. 갈비뼈가 3대 나가고 손목이 부러졌다. 너무 많이 맞다보니 몸은 회복이 더뎠다. 1년쯤 지나 한 차례 복직을 시도했지만, 복직한 지 이틀 만에 몸은 다시 주저앉았다. 후유증이 심해서 여전히 일을 할 수 없는 몸이었다. 조씨뿐만이 아니다. 용역에게 쫓기다 2층에서 떨어진 조합원은 결국 발목에 인공관절을 넣었다. 그는 지금도 걸음을 정상적으로 걷지 못하고 있다.

‘직장폐쇄-용역 폭력’ 치밀한 노조 깨기
‘727’. 에스제이엠 조합원들은 이날을 이렇게 불렀다. 잊을 수 없는 날이다. 창조컨설팅이 기획했고 용역경비업체 컨택터스는 그 기획에 따라 무차별한 폭력을 휘둘렀다. 당시 에스제이엠뿐만이 아니었다. 만도, 상신브레이크, 발레오만도, 대림자동차, 유성기업 등의 노조 탄압을 기획 주도한 곳은 창조컨설팅이었다. 창조컨설팅이 개입한 기업에서 노조를 탄압하는 방식은 동일했다. 현안을 무시하며 노조와의 교섭에 응하지 않다가 단체협약을 일방적으로 해지하며 노조를 자극했다. 노조가 쟁의에 돌입하면 회사는 즉각 직장폐쇄를 하고 경비용역을 투입했다. 뒤로는 어용노조를 설립해 조합원들을 회유했다. 조합원들에게 당시의 기억은 여전히 충격으로 남아 있다. 김명성씨는 지금도 갑자기 회사에서 연락이 오면 가슴이 두근거린다. 지난 추석을 앞두고 임금협상이 이루어지지 않아 727이후 처음으로 노조는 파업을 했다. 노조에서 파업에 들어간다고 문자를 보내자 김씨는 반사적으로 “또 뭔 일 있는 것 아닌가. 큰일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죄지은 것도 없는데 가슴이 두근거렸다. “727은 정말 못 잊는다.” 김씨가 말했다.

후유증은 남았지만, 727은 노조의 승리였다. 폭력으로 공장이 용역에게 장악되었지만, 여론은 노조의 편이었다. 여론을 확산시킬 수 있었던 것은 스마트폰 덕분이다. 김영호 금속노조 안산 지부장은 “공단에서 산재로 죽는 사람도 많은데 회사 울타리 내에서 싸우다 누가 죽어도 신문에 한 줄도 안 실릴 수가 있다. 유성기업 때는 스마트폰이 활성화가 안 되어 있었는데 2012년에는 조합원 대다수가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어서 여기에 대한 이야기를 즉각즉각 보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공장이 용역에게 장악당하자 금속노조에서는 공장을 다시 찾아야 하는 것 아니냐며 안산을 찾아왔다. 그러나 김영호 지부장의 생각은 달랐다. 자칫 용역과 몸싸움을 벌이는 모습이 비춰지면 여론이 악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노조가 철저히 비폭력으로 나아가면서 비난의 초점이 컨택터스와 창조컨설팅에 맞춰졌다. 8월 초에는 폭력사건을 방치한 안산경찰서장이 경질됐고, 여론에 부담을 느낀 컨택터스도 열흘 만에 공장에서 철수하게 된다. 사측의 노무를 주도했던 민모 이사 또한 폭력을 사주한 혐의로 구속됐다. 사측에 불리한 사안들이 속속 밝혀지면서 9월 국회에서는 청문회가 예정됐고, 청문회를 하루 앞둔 9월 23일 결국 회사의 직장폐쇄는 철회됐다.

2년이 흐른 지난 8월 18일 법원은 당시 에스제이엠의 직장폐쇄가 위법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에스제이엠이 단행한 직장폐쇄는 위법하므로, 원고들에게 직장폐쇄 기간 동안의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1심에 이어 2심까지 패배한 회사는 상고를 포기하고 21억원을 지불했다. 김영호 지부장은 회사가 상고를 포기한 것은 “돈이나 힘으로 안 되는 일이 있구나를 깨달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회사가 상고를 포기한 것은 회사가 반성을 했다기보다는 ‘돈, 힘으로 안 되는 일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1심에 불복해 상고할 때만 해도 회사는 거대 로펌에 거액의 돈을 들여 우리가 불법파업을 했고 사측의 직장폐쇄가 정당했다고 증명하려고 했다.”

2012년 7월27일 회사 밖으로 쫓겨난 경기도 안산시 SJM 노조원들이 회사 정문에서 컨택터스 소속 용역들과 대치하고 있다 | 주간경향 자료사진

자본-노동 대리전서 상징적인 승리
2012년 에스제이엠의 싸움은 상징적이었다. 경주 발레오만도를 중심으로 상신브레이크, 만도, 유성기업 등이 창조컨설팅의 시나리오와 용역깡패의 투입으로 잇따라 무력화되고 있었다. 박점규 비정규직없는세상 집행위원은 “경주에서부터 경기지역 공단까지 노조 무력화가 굉장히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어 노동계가 벌벌 떨고 있었다. 당시 민주노총 금속노조에서 회자되던 말이 ‘다음 어디야?’였다”고 말했다. 튼튼했다고 자랑할 만한 노조들이 창조컨설팅의 시나리오대로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고 있었다. 이 기세가 멈춘 곳은 에스제이엠이었다. 김영호 민주노총 안산지부장은 “그 뒤에도 똑같은 방식으로 무력화시키고 싶어했던 것인데 무력화시키지 못하게 된 셈이다. 에스제이엠 다음 표적이 두원정공이었는데 우리가 막아서 힘이 빠지니까 직장폐쇄를 하루 만에 풀었다. 듣기로는 용역깡패를 투입하려고 했는데 모집이 안 되어서 그렇다고 하더라. 만약 우리가 깨졌으면 두원정공은 무조건 깨졌고 대원산업 등 안산지역 노동운동의 중심이 되는 공장들이 줄줄이 깨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마디로 에스제이엠 싸움은 ‘자본’과 ‘노동’의 대리전이었던 셈이고, 폭력까지 동원한 ‘자본’의 공세를 에스제이엠에서 막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돈보다 지역사회와의 긴밀한 유대
727의 승리는 노조에 자신감을 불어넣었다. 회사는 불법 직장폐쇄 임금으로 노조에 21억원을 지불했다. 조합에서는 돌려받은 21억원을 좀 더 의미 있게 쓰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50%는 조합원들에게 돌려줬고, 남은 50%로 의미 있는 사업을 해보자고 조합원들을 설득 중이다. 김영호 지부장은 “이게 일을 해서 받은 임금이 아니라 투쟁을 통해서 쟁취한 것이다. 그냥 써버리면 남는 게 없다. 조합원들이 출자해서 햇빛발전협동조합을 만들어보는 게 어떠냐는 논의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50%면 1인당 350만원씩 받을 수 있다. 적은 돈이 아니다. 물론 내부에서 이견도 있지만, ‘돈의 노예가 되지 말자’는 상징적인 의미로 조합원들을 설득 중이다. 회사가 노조를 깨는 방식도 고용불안과 같은 ‘돈의 논리’에 따라서였다. 727 싸움을 통해 느낀 것은 돈이 아닌 ‘사회적 관계’를 긴밀하게 맺어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노동운동이 공단 내에서 우리만의 투쟁, 노사간의 관계로만 되어서는 안 된다. 그렇게 되면 누구도 노동운동에 개입하지 않는다. 꽤 진보적 시민단체들도 노사문제에 개입하는 것을 꺼려한다. ‘누구 편을 들어줄 수 없다’는 논리인데, 다만 에스제이엠 건은 폭력이 개입돼 있어서 안산지역 시민단체들이 나섰다는 것이다. 물론 고맙지만 한편으로 걱정된다. 회사가 폭력 없이 교묘하게 탄압을 시도한다면 누구도 우리 우군이 될 수 없을 것이다. 노조가 지금껏 일면 자기중심적으로 투쟁해왔기 때문에 우리도 반성을 하면서 지역사회하고 긴밀한 관계를 맺어가야겠다는 생각이다.” 김영호 지부장의 말이다. 협동조합을 매개로 지역사회와 인간관계를 형성하고 환경운동연합이나 경실련 등 지역의 시민단체들과 관계를 맺어간다면 노동운동 또한 같이 발전할 수 있고 고립되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자신감은 조합원들에게도 고스란히 이어졌다. 김명성씨는 727 이전에는 노조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다. 그러나 727 이후에는 노조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다. “727이 터지고 나서 약한 사람들에게는 확실히 노조가 있어야겠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 그 이후부터는 노조 일에 철저히 동참하고 있다. 약한 사람은 뭉치면 힘이 되는 게 있다는 걸 느꼈다. 727 당시 깡패가 들어와서 그렇게 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고, 경찰이 먼발치서 가만히 서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우리 회사 사람들이 다쳐서 나가고 살려달라고 하는데 모른 척하고 못본 척하는 걸 보니 역시 있는 사람들은 다 돈으로 막을 수 있는 게 세상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정규직이 사라진 것도 투쟁의 성과다. 2012년 봄, 회사는 식당에서 일하는 조합원을 외주로 돌리고 1년 계약직을 고용했다. 1년 계약직으로 공장이 가동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은 조합원들에게 일종의 협박이었다. 고용불안을 느끼게 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727에서 승리한 이후 노조는 비정규직을 없앴다. 5명의 비정규직은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조재호씨는 “투쟁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후유증은 남는다. 가장 큰 상처는 동료들 간의 후유증이다. 형님, 아우 하며 수십년 동안 맺어왔던 인간관계가 파업으로 인해 원수가 되는 것이다. 친했던 동지가 한 사람은 끝이 안 보이는 나락으로 떨어지는 운명이 되고 또 한 사람은 배신자가 되는 것이다. 회사 측의 회유는 집요했다. “파업 한 달 정도 되니까 아침마다 조회할 때 조합원 얼굴에 쓰여 있더라. 어젯밤에 수십통의 전화를 받은 사람이라고. 그걸 보면 참 가슴이 아프다. 조회에 참여하긴 했지만 굉장히 불편하겠구나. 어떻게든 막고 있었는데 한 달쯤 지나니까 여기저기서 터져나오는데 속이 타들어갔다.” 김영호 지부장의 말이다. 여전히 그 후유증이 남아 있다. “동료가 피를 흘리고 다 입원해 있는데 그 와중에 회사에 복귀를 하는 것은 인간이 아니다. 배신하기 어려운 조건이었다.” 한 조합원은 여전히 갈등과 균열이 봉합되지 않았다면서 이와 같이 말했다.

간판 바꾼 컨설팅사 ‘공작’ 우려 남아
727 이후 컨택터스 같은 용역깡패를 동원한 ‘노조깨기’는 더 이상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우려는 남는다. 김영호 지부장은 “창조컨설팅은 그 이후로 끝났고 해산은 됐다. 하지만 다른 노무법인을 키워놨다. 그런 시나리오들이 또 각색되어 있을 것이다. 아직까지 시행은 안 되는데 조만간 터질 거 같다는 불안감이 있다. 경영진은 계속 노조를 깰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노조를 깨면 컨설팅 비용이 억대가 왔다갔다 한다. 한 노무사는 “창조컨설팅이 두드러지게 나서서 그렇지 암암리에 다 한다. 사실 그런 것은 일반 노무사들이 돈을 버는 방식이다. 노무법인이 노조를 정말로 깨겠다고 하면 또다시 그런 일이 생기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고 말했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