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내시경]누가 진짜 괴물인가

성서에는 신이 인간을 ‘자신과 닮은 모습으로’ 창조했다고 나와 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신들은 자신들이 창조한 인간의 외모를 닮았을 뿐 아니라 인간의 단점과 약점까지도 그대로 보여주곤 한다. 또 대부분의 문학작품에서 작가의 창조물인 페르소나에는 작가 스스로의 모습이 어느 정도 반영되는 경향이 있다. 이렇듯 창조자와 피조물은 단순히 일방적인 관계라기보다는 서로를 반영하고 비추는 복잡미묘한 관계를 이루고 있다. 메리 셸리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닉 디어의 대본을 조광화가 각색, 연출한 연극 <프랑켄슈타인>은 바로 이러한 창조자와 피조물 사이의 문제를 진지한 감성으로 파고드는 작품이다.

1818년에 출간된 메리 셸리의 원작 소설 <프랑켄슈타인>은 지난 200여년간 영화, 드라마, 뮤지컬 등 다양한 장르 속에서 수없이 많이 반복되고 재창조되어온 작품이다. 작품의 제목 ‘프랑켄슈타인’은 극중 피조물을 만들어낸 빅터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성이지만, 한편으로는 그 자체로 서양의 공포, SF 문학의 원형적 모티브인 ‘창조된 괴물’의 대명사처럼 쓰이고 있다. 창조자와 피조물이 하나의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같은 이름으로 불려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괴물을 만든 빅터 프랑켄슈타인과 그의 피조물은 서로 닮아 있다.

갓 태어난 아기처럼 순수한 마음을 지녔지만 흉측한 외모로 인해 창조자 빅터를 비롯한 모든 인간들로부터 버림받은 피조물은 어느날 숲속에 숨어 사는 눈 먼 노교수를 만나 언어와 문학을 배우고 이를 통해 인간적인 사고와 감정에 눈뜨게 된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자신을 받아주지 않는 세상과 지독한 고독에 지친 피조물은 빅터에게 자신과 닮은 동반자를 만들어달라고 간절히 부탁한다. 하지만 실험의 완성단계에서 마음을 바꾼 빅터가 그를 속이고 사라지자 진짜 ‘괴물’이 되어 끔찍한 복수를 펼친다.

연극 <프랑켄슈타인> | (주)연극열전 제공

결국 <프랑켄슈타인>은 빅터를 중심으로 한 인간들과 인간이 만들어낸 피조물을 통해 누가 진짜 괴물이며 무엇이 이 사회의 괴물을 만들어내는지 묻는 작품이다. 특히 처음 만난 인간들에게 호기심과 애정을 느끼며 접근하는 피조물에게 사람들이 행하는 악의와 폭력은 과연 ‘누가 더 인간적인지’ 한 번쯤 생각해보게 만든다. 이런 맥락에서 극중 피조물과 창조자 빅터가 펼치는 논쟁은 특히 흥미로운 장면인데, 자신을 인간으로 만들었으니 똑같이 인간답게 살게 해달라는 피조물의 요구는 지적인 논리와 인간적인 호소로 가득 차 있어 이를 거부하는 빅터의 비인간성이 더욱 도드라진다.

이러한 창조자와 피조물의 문제, 그리고 창조된 괴물의 형상인 ‘프랑켄슈타인’ 모티브는 작가 조광화가 오랫동안 매력을 느끼며 마음에 담아온 주제라 할 수 있다. 원작 대본을 살짝 바꾼 이번 공연의 엔딩은 창조자와 피조물의 관계에 대한 조광화 자신의 또 다른 문제의식과 새로운 사고의 지평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지점이다.

문화내시경

온몸의 근육 하나하나로 다 연기하는 듯한 피조물 역의 박해수와 차갑고 저돌적인 에너지를 보여주는 빅터 역의 이율, 두 주연 배우가 펼치는 팽팽한 긴장감과 반투명의 비닐이 만들어내는 독특한 무대미학, 그리고 두 시간 동안 빈틈 없이 무대를 꽉꽉 채우는 조광화 연출 특유의 밀도감이 압도적인 느낌마저 들게 하는 공연이다. 10월 10일~11월 9일,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김주연 연극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