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피기도 전에 꺾이는 ‘민감한 풍자’

갈수록 위축되는 방송가 분위기… ‘검열’에 지친 블로거는 해외 서비스로 이동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가 논란이 됐을 때도 대통령께서는….”(강성범) “아시아 순방 중!”(김일희) “이렇게 민감할 때마다 해외에 계시는 박근혜 대통령은 과연….”(강성범) “(강성범을 말리며) 아, 민감해요!”(김일희)

다시 보고 싶지만 정작 방송사 홈페이지에선 찾을 수 없다. SBS의 코미디 프로그램 <웃음을 찾는 사람들> 속 ‘LTE뉴스’의 10월 3일 방영분은 스스로도 ‘민감하다’고 말한 대통령의 인사문제와 해외순방 논란을 다룬 뒤로 공식 통로로는 다시 볼 수 없게 됐다. 유튜브 등 동영상 제공 사이트의 SBS 공식 계정에서도 사라진 것이다. 방송이 나간 지 열흘 만인 13일에 일어난 일이다.

방송 직후부터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에서도 높은 조회수를 보이며 출연진과 제작진의 ‘안위’를 걱정케 했던 영상이었다. 시청자의 걱정에 답하기라도 하듯, 제작진은 다시보기 서비스 중단에 대한 외압 의혹을 부인하는 해명글을 올렸다. “OECD 국가들과 비교할 때 ‘등록금 1위’는 GDP 대비 1위인데 절대금액 기준인 ‘사교육비 1위’와 구분 없이 말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부정확한 정보를 드렸습니다.” 방송 중에 지적된 통계자료를 언급하는 과정에서 사실과 다른 표현이 있어서 다시보기를 중지했다는 요지다. ‘외압’에 따라 방송을 내린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방송사 내부에서도 다시보기 중단을 미심쩍게 바라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전국언론노동조합 SBS본부는 “내용에 문제가 있었으면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 심의를 받아 조치하면 되는 문제인데도 제작진이 자진해서 영상을 삭제했다는 점이 외압 때문이라는 목소리가 나올 여지를 만들었다”고 밝혔다. SBS노조 최수현 위원장은 “문제 있는 부분만 들어내고 영상을 내보내도 된다. 박근혜 대통령에 관해 언급한 부분은 문제가 없는데, 영상 전체를 다 들어냈으니 시청자에겐 납득할 만한 설명이 되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과 현 정부를 풍자한 SBS의 코미디 프로그램 <웃찾사>의 ‘LTE뉴스’ 코너 10월 3일 방영분이 삭제되면서 해당 프로그램에 대한 외압 논란이 벌어졌다. | SBS 방송화면

공식 통로로는 다시 볼 수 없는 동영상
정치·사회 풍자 코미디가 확실하게 뿌리를 내리지 못한 상태에서 ‘LTE뉴스’는 또 한 번 ‘뜨면 사라지고 마는’ 희생양이 될 위기에 처했다. 논란이 된 3일 방송의 바로 다음주인 10일 방송분부터 앵커 역할을 맡고 있는 강성범씨의 마무리 멘트가 사라지고 4분여간 방송되던 전체 방송분량 중 1분가량이 줄어드는 등 변화의 조짐이 나타난 것이다. 담배가격 인상 논란을 다룬 9월 26일 방송 중 “국회에서 ‘담뱃값 인상은 흡연에 대한 자기통제의 실패를 국가가 교정해주는 수단이다’라는 얘기가 나왔습니다. … 세금은 올리더라도 약은 올리지 마시죠”라는 식으로 선보였던 날카로운 풍자가 한층 무뎌진 셈이다.

풍자와 비판에 강경한 기조로 대응하는 방송가의 분위기는 10월 24일 MBC가 교양제작국을 해체하는 내용이 담긴 조직개편안을 노조에 전달하면서 한층 심각해지고 있다. 언론노조 MBC본부에 따르면 노조가 전달받은 조직개편안에는 교양제작국을 폐지하고 해당 부서의 기능을 예능국과 콘텐츠제작국으로 나눠 이관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회사는 개편안에서 ‘수익 및 경쟁력을 저하시키는 조직을 축소’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공영방송이라는 정체성을 포기하는 거죠. 비판적인 내용이 나올 수밖에 없는 프로그램을 없애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비판적 시각을 가진 사내 구성원들의 손발을 아예 묶어버리겠다는 심보잖아요.” 입사 5년차인 프로듀서의 말이다. MBC 교양제작국은 김재철 전 사장이 재직하던 당시 시사교양국이 분리되면서 떨어져 나온 부서다. 2년 전 당시의 조직개편 시행 이후에도 둘로 갈라진 각각의 부서가 힘을 잃고 공적 기능을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방송과 같은 공적 영역에서 한발 물러선 풍자와 비판의 목소리는 익명성이 높은 온라인 공간으로 옮겨가는 양상이다. MBC의 교양국 해체를 언급하는 게시글에는 세월호 참사 이후 해양경찰청을 해체하겠다고 발표한 박 대통령의 발언 화면이 함께 올라오며 그동안의 ‘해체 리스트’를 나열하는 식이다. 하지만 이전까지의 ‘사이버 망명’과 다른 점도 발견된다. 한국 정부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중립적인 온라인 공간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는 것이다. 텔레그램이 카카오톡의 망명지로 선택되는 데 이어 블로그를 운영하는 블로거들 역시 탈국적 움직임이 늘어나는 추세다.

업체 일방적인 블라인드·삭제 처리 가능
블로거 지인경씨(33)는 국내 업체에서 서비스를 제공하는 블로그를 정리해 해외에 서버를 둔 워드프레스로 옮기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국내 한 포털업체의 블로그를 7년 동안 이용해 왔다. 정치적 내용을 본격적으로 다룬 포스트(게시글)도 아닌데 자꾸 블라인드 처리되는 게 짜증나서 귀찮음을 무릅쓰고 블로그를 옮기고 있다.” 경제학을 전공한 지씨는 틈날 때마다 각종 사회지표나 통계를 인용해 나름의 경제상황 분석글을 올리곤 했다. “최근엔 단통법을 들며 시장에 정부가 개입하는 일을 깠다. 과거 중국에서 마오쩌둥이 ‘참새는 해로운 새’라고 교시를 내린 뒤 참새 씨가 말라서 해충이 들끓은 내용을 들며 마오 풍자 그림과 박 대통령 부녀 풍자 그림을 나란히 올린 것뿐인데….”

지씨는 정부의 인위적 개입에 비판적인 ‘시장주의적’ 내용마저 누군가의 신고에 따라 ‘블라인드’ 처리되는 것을 본 뒤 ‘망명’을 결심했다. “문제가 된 그림만 지우고 포스팅을 새로 할 수도 있지만, 정부뿐만 아니라 일반기업이나 사용자 모두가 블로그 글 하나에 ‘자기검열’까지 하는 한국 사회에 진절머리가 났다.” 국내에서 블로그 서비스를 제공하는 네이버와 티스토리 등에서는 업체가 일방적으로 게시물을 공개되지 않게 블라인드 처리하거나 삭제조치가 가능하다는 점이 해외 블로그 서비스를 선택하는 주된 이유가 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대통령 모독’ 발언 후, 그는 ‘대통령’이 아니라 ‘최고존엄’이 된 것 같다. 비판과 풍자가 불허되는 신성불가침의 존재 말이다.” 조국 서울대 교수는 트위터를 통해 풍자마저 위축되는 사회현상에 대해 언급했다. “대선 전 ‘백설공주 박근혜’ 풍자 포스터는 무죄 판결을 받았는데, 이번에는? 검·경은 대통령에 대한 모욕죄 추가수사를 벌일 것인가?”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