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누가 풍자를 두려워하나

이하 작가 전단 살포 퍼포먼스 동행 취재… 경찰조사 후 사법당국 판단 주목

10월 20일 정오 서울 광화문사거리. 동화면세점 건물 옥상에서 4500장의 전단이 뿌려지기 시작했다. 마침 정오를 맞아 바로 옆 성공회 서울대성당에서는 은은한 종소리가 울려퍼졌다. 종소리와 함께 전단은 거리로 흩날렸다. 전단에는 머리에 꽃을 꽂은 박근혜 대통령이 그려져 있었다. 그림 속 박 대통령은 눈을 감은 채 귀를 막고 있다. 비에 젖은 거리로 떨어진 전단은 점심시간을 맞아 분주한 걸음을 옮기는 행인들의 손으로 전달됐다.

신속한 경찰 출동, 계단에서 연행당해
손수 그림을 그려 전단을 만들고 뿌린 주인공은 이하 작가(46)다. 이 작가는 전단 살포 ‘퍼포먼스’를 준비했다가 중지한 횟수만 스무 번을 넘는다고 말했다. 한밤중에 작업실이 있는 근처 3층 건물에서 전단을 뿌려보는 모의실험도 거쳤다. 하지만 막상 올라오니 생각보다 옥상 가장자리를 둘러싸고 있는 벽이 높았다. 옥상 한편에 공사용으로 쓰이던 작업대를 가져와 디디고 올라서서야 겨우 허공으로 손을 내밀 만한 높이를 맞출 수 있었다. “어젯밤에 잠을 한숨도 못 잤어요. 숱하게 퍼포먼스를 해왔지만 이렇게 긴장되는 건 처음인데….” 아침 이른 시각에 경기도 수원에서 출발해 정오가 되기까지 마음을 졸여왔던 이 작가가 4500여장의 전단을 다 뿌리는 데는 1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높은 벽 때문에 전단이 제대로 떨어지고 있는지, 시민들이 반응을 보이고 있는지는 내려다보고 확인하기 힘들었다. 가져온 전단을 다 뿌린 이 작가는 작업대를 원래 자리에 옮겨뒀다. 옥상으로 올라왔던 경로를 따라 다시 내려가던 길이었다. 건물 관리인 2명과 마주쳤다. 관리인들은 “지금 아래에선 난리가 났다”고 소리를 높였다. 이 작가는 “불편을 끼쳤다면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이 작가가 관리인들과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 경찰도 올라왔다. 경찰관들은 신분도 밝히지 않고 이 작가에게 전단을 뿌린 당사자인지를 묻기 시작했다.

기자가 신분을 묻자 그제야 소속과 이름을 밝힌 서울지방경찰청 3기동단 소속 경찰관은 이 작가와 기자를 현행범으로 체포하겠다고 말했다. 혐의는 건조물침입이었다. 관리인의 허락 없이 옥상에 올라갔다는 것이 이유였다. ‘피의자’의 양 옆에서 팔짱을 낀 채로 경찰은 두 명의 피의자를 가까운 세종로파출소로 연행했다. 정치를 풍자하는 예술활동이 목적이었다는 이 작가의 말도, 보도를 위한 취재 목적으로 동행했다는 기자의 말도 경찰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10월 20일 이하 작가가 서울 종로구의 한 건물 옥상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현 정부를 풍자하는 그림을 인쇄한 전단을 뿌리고 있다. | 김태훈 기자

같은 시간 서울 곳곳에서 전단 뿌려져
경찰은 신속했다. ‘피의자’들을 체포하는 것만이 아니라 거리에 떨어진 전단을 주워 모으는 것도 빨랐다. 최초로 연행된 세종로파출소에는 경찰이 수거한 전단이 이미 대형 비닐봉투를 가득 채울 정도였다. 연두색 우의를 걸친 경찰들은 전단을 손에 들고 파출소로 몰려왔다. 이날 오전 경찰은 한 시민단체 회원들이 광화문 세월호 농성장에서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전단 풍선을 날리려는 것도 막은 바 있었다. 청와대 주변은 비행금지구역이라는 것이 이유였다. 이 작가는 전단뭉치를 들고 건물 옥상으로 이동할 때 광화문광장 주변을 에워싼 이들 경찰 대열을 보며 자신도 전단을 뿌린 뒤 연행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염려는 그대로 적중했다. 이 작가는 파출소를 떠나 형사들을 따라서 종로서 형사계로 인계됐다.

같은 시간 서울 마포·서대문·은평구 등지를 중심으로 서울시내 곳곳에서도 이 작가와 뜻을 같이하는 예술가들이 전단을 배포하고 있었다. “잡히더라도 뿌려보는 거죠. 예술활동하겠다는데, 표현의 자유를 막는 게 반대로 불법 아닌가? (정부가) 어떻게 나오나 궁금하긴 하네요.” 이 작가의 퍼포먼스에 동참한 ㄱ씨는 서울 곳곳에 전단을 뿌리러 광화문을 출발하면서 결연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 작가가 “잡히면 내가 시켰다고 그래요. 그만 뿌리라는 연락 가면 그만두고 자리 피하시고”라고 말했지만 ㄱ씨를 비롯해 전단 배포에 동참한 인원들은 이 작가의 연행 소식이 전해진 뒤에도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서울 신촌의 한 건물 옥상에서도 이 작가가 한 것처럼 박 대통령의 그림이 담긴 전단이 공중에 흩날렸다. 지하철 역사 곳곳에 배포된 전단까지 포함하면 이날 뿌린 전단만 약 2만장에 달했다.

각 경찰서마다 비상이 걸렸다. 신촌의 전달 살포 건물을 관할로 두고 있는 마포서 소속 형사들도 이 작가를 찾아 종로서까지 왔다. 마포서 형사들이 내민 사진에는 이 작가와는 달리 경찰의 ‘체포망’을 피한 예술가들의 얼굴이 폐쇄회로TV 화면에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그러나 ‘체포’할 만한 법적 근거는 없었다. 이들 ‘신촌 전단팀’은 누구나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는 건물 옥상에서 전단을 뿌렸기 때문이다. 경찰은 피의자조서를 꾸미면서 이 작가의 혐의인 건조물침입에 대해서보다 불법행위라는 근거도 없는 전단 배포에 대해 집중적으로 캐물었다. 다른 지역에서 전단을 뿌린 인물들이 누구인지도 여러 차례 물었다. 그러나 이 작가는 함께 전단 배포에 나선 예술가들이 누구인지에 대해선 밝힐 수 없다고 맞섰다.

이하 작가가 팝아트 형식으로 만든 대통령 풍자 전단. | 이하 작가 제공

외국서도 “동참하겠다” 메시지 수백통
전단을 뿌린 건물 옥상에서 낮 12시10분쯤 체포된 이 작가는 오후 8시가 다 돼서야 종로서 형사계 문을 나설 수 있었다. 기자에 대한 취조를 마친 오후 3시부터 시작한 조사가 5시간 가까이 걸렸다. 이 작가와 기자를 입건해 조사한 경찰은 사건을 서울중앙지검으로 송치할 것이라고 밝혔다. 혐의는 단 하나, ‘건조물침입’이다. 지상 20층인 해당 건물의 옥상은 20층까지 엘리베이터로 이동한 뒤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누구나 쉽게 출입할 수 있는 구조였다. 아무런 잠금장치도 없어 제지 없이 올라간 작가와 기자는 ‘무단침입’이 아니라 ‘전단 살포’만을 발견하고 올라온 경찰에 체포됐던 것이다.

이 작가가 전단을 뿌린 뒤 경찰에 연행된 사실이 언론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알려지면서 전단 배포 퍼포먼스는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옮겨가는 양상이다. “조사 마치고 나서 SNS에 들어가 보니 그 몇 시간 사이에 메시지가 수백통이 와 있어서 놀랐어요. 대부분이 ‘나도 뿌릴 테니까 전단 좀 달라’는 내용이더라고요. 미국, 호주, 캐나다 같은 외국에서도 보내달라던데 배송비가 조금 걱정되긴 합니다.” 이 작가에게는 아직 1만5000장가량의 전단이 남아 있다. 수배 전단 형식을 빌려 윗부분에 ‘WANTED’(수배), 아랫부분에 ‘MAD GOVERNMENT’(미친 정부)라고 써놓은 전단이다. 이미 웹상에는 그가 전단에 올린 그림이 곳곳에 퍼져 있다.

“법적으로 ‘건조물침입’ 혐의가 적용된다는 건 부인할 순 없지만, 전단을 뿌렸다는 사실을 먼저 인지한 상태에서 연행을 서두른 것은 보수단체의 전단 살포에 대한 대응과 비교할 때 형평성 측면에서 문제가 있어 보인다. 게다가 취재를 위해 동행한 기자까지도 체포한 것은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위협하는 처사로 간주할 만하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관계자는 검찰과 법원을 거쳐 어떤 결과가 나올지 주목된다며 향후 사법당국의 움직임을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벌금형이 나오면 노역으로 때울 생각입니다.” 이 작가는 최종 결과가 나왔을 때까지의 대응계획을 세워둔 상태다. “예술의 다양성에 일방성으로 맞서는 정부가 이길 것이라곤 생각지 않아요. 다음 전단에 쓸 그림도 구상해 뒀고, 계속 가보는 거죠.”

팝아티스트가 체제전복세력?

‘팝아트’란 이 작가의 전단 속 그림처럼 통속적인 이미지를 활용한 미술을 가리킨다. 광고나 영화 포스터처럼 대중에게 친숙한 그림을 예술작품의 표현양식으로 도입한 것으로, 장르 자체가 정치적인 성향을 띤 것은 아니다. 과거 삼성그룹 비자금 의혹사건에서 알려진 <행복한 눈물>의 로이 리히텐슈타인이나 앤디 워홀, 키스 해링 등이 팝아트로 이름을 남긴 예술가들이다.

하지만 해외 예술계의 동향과는 달리 한국에서는 팝아트가 가진 풍자적인 속성이 금기시되는 것이 현실이다. 지난 8월 광주비엔날레 20주년 특별전에 전시될 예정이었던 홍성담 작가의 <세월오월>이란 대형 걸개그림 작품을 둘러싼 논란에서도 팝아트 작품을 두고 양측의 의견이 팽팽하게 대립한 바 있다. 대통령 등 정치지도자에 대한 풍자적인 표현을 수정할 것인지의 문제를 두고 작가 측과 특별전 사무국 측의 의견이 엇갈리면서 작가들이 전시를 철회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홍 작가는 “정치권력이 일방적으로 유배시킨 작품이 의미를 잃어버린 마당에 전시를 강행할 이유가 없어졌다”며 “세월호 참사 200일을 맞는 팽목항에 이 그림이 걸리는 것이 본래의 작품 취지에 맞을 것”이라고 밝혔다.

홍 작가의 경우처럼 제도권 전시공간에서 풍자적인 의미가 담긴 작품을 전시하기 어렵게 된 팝아트 작가들은 대중과의 접점을 찾기 위해 거리로 나서지만 현실적으로 기대만큼의 반향을 얻기는 힘든 실정이다. ‘여우비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팝아트 및 거리 퍼포먼스 등 사회참여적인 예술활동을 벌이는 예술가 집단도 팝아트에 대한 부정적 인식 때문에 유일한 지원인 후원자들의 후원금이 줄어들면서 활동에 적잖은 타격을 입고 있다. 이 프로젝트에 참가한 한 작가는 “보수정권이 들어선 이후로 정치상황에 따라 후원이 들쭉날쭉해지는 형편이라 지속적인 활동을 유지하는 방법을 찾기 위해 멤버들이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으로 경찰에 연행된 이하 작가는 전두환 전 대통령에 대한 풍자그림과 박 대통령이 대선후보일 당시 거리에 부착한 포스터 등으로 광고물법 위반, 공직선거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된 바 있다. 정치 풍자를 관용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부족하다는 것이 이 작가의 생각이다. 이 작가는 “거리에 포스터를 붙였다는 이유 때문에 예술가를 재판정에 세울 뿐만 아니라, 경찰을 동원해 작업실 주변에 잠복하게 하는 나라에 대해 국민들이 생각해봤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