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그라운드. 넷]성인물을 접하고 난 후 느낌?

‘현자타임’이라는 말이 있다. 인터넷 용어다. 조금 므흣한 뜻이다. 끓어오르는 욕망을 ‘분출’한 뒤 제정신이 (잠시) 돌아오는 시간이라는 뜻이다. 여자들에게도 있는지는 모르겠다. 주로 남자들이 자위행위 뒤에 겪는 정신적 변화를 언급하는 단어다.

10월 22일, 한 이미지 캡처가 누리꾼의 화제를 모았다. ‘성인물을 접하고 난 후 느낌’이라는 제목의 그래프 사진이다. 설문 결과는 두 반응이다. ‘성인물을 따라하고 싶었다’가 14.5%, 그리고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었다’가 83.5%다. 압도적이다. 결과만 보면 의외의 결론처럼 보이는데, 누리꾼 주장에 따르면 저 설문이 애초에 놓치고 있는 ‘진실’이 바로 ‘현자타임’을 보여주는 답변이라는 것이다.

누리꾼의 화제를 모은 ‘성인물을 접하고 난 후 느낌?’ 그래프. 합성된 것이다. | 클리앙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여론조사 문항 설계에서 제일 강조하는 것은 포괄성과 배타성이다. 다시 말해 성인물을 접하고 난 후 느낌에 대한 선택지가 저 두 개밖에 없었다면 처음부터 잘못 만들어진 설문지다. 캡처된 사진을 보면 ‘행정안전부, 한국정보화진흥원 2012’라는 출처가 나와 있다. 수소문 끝에 행안부 등의 조사 결과를 입수했다. ‘청소년 성인물 이용실태 조사’라는 제목으로 수행한 연구다. 유사한 항목을 찾았다. ‘성인물을 접하고 난 후 느낌에 대한 공감도(그렇다 비율)’이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순서는 다음과 같다. ‘충격받음’(32.2%), ‘불쾌감이나 혐오감’(31.7%), ‘성적 흥분’(27.4%), ‘성적인 수치심 느낌’(24.1%), ‘성인물을 따라하고 싶었다’(14.2%), ‘성지식 얻는 데 도움’(13.3%). 애초의 SBS 방영 그래프에서 ‘~따라하고 싶었다’의 수치는 미세하게 다르지만 얼추 맞다. 그런데 ‘이게 뭐하는 짓인가~’는 없었다.

어떻게 된 일일까. 방영프로그램을 찾아봤다. 10월 19일 방영된 ‘SBS 스페셜-10대 음란물 그리고 인터넷’이라는 제목의 프로였다. 그런데 홈페이지 상에서 다시보기가 불가능했다. “해당 회차는 제작진 요청으로 VOD 서비스 불가합니다”라고 되어 있었다. 무슨 이유일까. 설마 저 그래프 논란 때문에? 물어물어 연출한 조욱희 PD와 통화했다. “일베 때문이에요. 이런 일도 있네요.” 조 PD의 일성이다. 조 PD에 따르면 방영 직후 출연자들, 10대와 학부모들을 캡처해 비아냥거리고 공격하는 게시물이 일베 사이트에 여럿 올라왔다. “건강한 의식을 갖고 있는 아이들이 별 이유 없이 인터넷에서 공격을 당해 상처를 받으니 어쩔 수 없는 조치였습니다.” 해당 사이트 운영자에게 항의해 게시물은 일부 삭제했지만, 자신의 얼굴과 발언 자막이 함께 캡처되어 돌아다니는 것을 본 출연자들이 충격을 받았다는 것이다.

언더그라운드. 넷

그렇다면 애초의 그래프는 뭐였을까. 역시 어렵게 방영되었던 원본 영상을 찾아볼 수 있었다. 26분38초 정도에 나오는 표다. 원래의 표는 ‘실제 포르노를 보고 따라하고 싶은 충동’ 부분을 보여주기 위해 나머지 데이터를 생략한 형태였다. 거기에 누군가 합성해 덧씌운 것이었다. 짓궂지만, 차라리 이쪽이 더 ‘착한 합성’이라 할 수 있을 듯 싶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