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정부 해외인턴사업 ‘호구 짓’

해마다 2200명 안팎 청년인력 파견, 현지 업체 대부분 임금지급 안 해 무상으로 노동 제공하는 격

대학생 이모씨(24)는 정부가 시행 중인 ‘정부해외인턴사업’에 지원해 지난해 미국을 다녀왔다. 출발 전만 해도 마케팅 전문 인턴이라는 이름을 달고 본고장 미국에서 한 수 배워올 생각에 가슴이 들떴다. 하지만 기대는 오래 가지 않았다. 찾아간 업체는 전체 직원이 10명도 되지 않는 ‘스타트업’이었다. “직원이 없는 신생 기업이니만큼 도전할 부분이 많아 좋은 점도 있긴 했어요. 그래도 아직 집기도 덜 갖춰진 창고 같은 사무실에서 인턴을 시작하는 거니 황당했죠.”

황당한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이씨는 미국에 머물며 인턴으로 일한 석 달 동안 현지 업체로부터 월급을 한푼도 받지 못했다. 해외인턴사업의 한국 정부 지원액 700달러를 매달 받아 생활비에 보탰을 뿐이다. “미국 현지에서는 무급인턴을 없애려고 하는데 한국은 정부가 나서서 공짜로 일해주겠다고 하는 거잖아요.” 임금을 지급하는 현지 업체가 없는 건 아니지만, 그 경우도 30만원가량의 임금을 지급하는 데 머물고 있다.

10월 30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2014 코트라 글로벌 취업 상담회에 참가한 인턴 구직자들이 일본의 한 호텔 채용상담 부스에서 면접을 보고 있다. | 연합뉴스

정부 지원액을 받는다 해도 물가가 비싼 미국에서 인턴들은 생활비를 충당하기가 벅찬 실정이다. 저소득층 등 취업 취약계층을 우선 선발하는 취지가 무색해지는 대목이다.

이씨는 “인턴업무에 필요한 어학연수 등의 비용까지 합하면 개인이 부담해야 하는 비용이 적지않다”면서 “그에 비해 기대만큼의 성과를 얻기가 쉽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정부는 해외인턴사업을 통해 전체 11개 과정의 해외인턴을 수시로 모집해 해외로 보내고 있다. 해마다 2200명 안팎의 청년인력이 해외 각지에서 기술 습득 및 현지 취업 준비 등의 목적으로 파견된다. 그러나 인턴을 활용하는 해외 업체들은 대부분 인턴 임금을 지급하지 않고 있어 사실상 노동력을 무상제공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현지 취업이나 전문기술 습득과 같은 애초의 사업 취지는 목표치에 크게 못 미치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이 ‘해외 인턴 호구’ 노릇을 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평가가 나오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현지취업 10%선… 그나마 쥐꼬리 임금
내년 해외취업·인턴 지원사업에 투입될 예산은 699억원에 달할 예정이다. 올해 524억원 대비 33.3% 증액된 액수다. 하지만 산업별 인턴 프로그램을 주관하고 있는 기관들의 사업실적을 합산한 결과는 실망스럽다. 인턴 경험 후 현지에서 취업하지 못하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전체의 90.0%에 달했다. 해외취업에 성공한 경우에도 임금수준이 국내 수준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해외취업자 평균 연봉은 1988만원으로 국내 중소기업 취업자 평균 희망연봉 3210만원은 물론 실제 평균 초임 연봉 2329만원과도 큰 차이를 보였다.

해외취업 지원사업에 들어간 정부 지원금 액수가 1인당 950만원선, 해외인턴사업 지원금 액수가 1인당 700만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무급인턴 또는 저임금 일자리를 찾는 사업에 과도한 지원금이 투입되는 셈이다.

전문기술이나 어학능력을 키워온다는 사업의 장점도 퇴색되는 경우가 많다. 물류 인턴 프로그램에 참여해 중국 현지 사업체에서 인턴을 마친 정모씨(25)는 해당 업체가 국내업체의 현지 사업부인 탓에 준비해간 중국어 능력을 쓸 기회 자체가 없었다. 정씨는 “시장에 가서 물건 살 때나 현지 사람들과 중국말을 섞을 기회가 있지, 일하는 곳에서는 한국인들이 워낙 많아서 서울에서 알바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도 많았다”며 “어학능력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취업을 준비하면서 중국 인턴 경력을 내세울 만큼 현지 사정에 대해 배울 기회도 없어 불만스러웠다”고 말했다. 앞서 이씨의 사례처럼 사업체 규모가 영세한 탓에 체계적인 직무교육을 받기보다는 사무보조나 문서번역, 재고관리 등 단순 업무를 맡는 사례가 많다는 것도 참가자들의 공통된 언급이다.

미국이나 영국 등 현지에서 무급인턴을 줄여가는 사회적 분위기도 정부 해외인턴사업이 방향을 전환해야 할 이유 가운데 하나로 지적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지난해 6월 뉴욕 연방지방법원에서 무급인턴 채용에 제동을 거는 판결이 나온 이후 무급인턴 관련 소송이 급증하고 있다. 캘리포니아주의 한 영화사에서 2년여 동안 무급으로 일한 인턴 2명이 회사를 상대로 보상을 요구한 소송에 대해 법원은 “무급인턴이 없었다면 회사는 대신 유급으로 직원을 고용했을 것”이라며 보상을 명령한 바 있다.

미국선 무급 제동, 한국은 장려하는 꼴
같은 해 미국의 대학·고용주협회가 실시한 조사 결과도 미국뿐만 아니라 무급인턴 논란이 이어지고 있던 영국과 독일 등 서구 선진국들의 주목을 받았다. 협회에 따르면 무급인턴 경력은 정규직 일자리에 취업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았다. 고용주 측이 정규직 일자리를 제의하는 비율이 무급인턴 프로그램 수료자에게는 37%, 유급인턴 프로그램 수료자에게는 62%로 나타난 것이다. 무급인턴 경험자의 경우 아예 인턴 경력 자체가 없는 구직자와 비교해서도 정규직 일자리를 얻는 비율에서 차이가 없었다.

“무보수 인턴십 프로그램은 결국 악순환의 고리를 형성한다. 무보수 인턴십 계약은 대부분 단기간이고, 인턴들이 정규직으로 채용될 확률은 제로에 가깝다. 그 사실을 인턴 본인들도 잘 알고 있기에 자연히 사기는 저하되고 업무실적은 저조해진다. 그러다보면 고용주는 그들에 대한 투자는 낭비라는 편견을 더욱 굳히게 되어 그들을 단기간만 활용하고 버리는 전략을 고수하게 된다.” <청춘 착취자들>에서 무급인턴 문제를 지적한 미국의 저술가 로스 펄린은 급여가 지급되지 않는 노동이 양극화를 낳는다고 지적했다. 펄린이 지적한 양극화에는 제 돈을 들여 해외로 무급인턴을 떠나야 하는 한국 출신 인턴과 본국에 거주하는 인턴 간의 양극화도 포함된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