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내시경]누를수록 튀어나오는 ‘풍자화’

‘풍자’는 직접 비판하기 어려울 때 택할 수 있는 보편적 정서의 대리언어다. 동시에 한 시대, 한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모순과 불합리성을 조롱하고 멸시하며 꼬집는 합리적 분노다. 또한 지식인들의 역할이 실종된 사회에 의문과 성찰을 제기하는 ‘생각의 기술’이기도 하다.

풍자를 바탕으로 한 ‘풍자화’는 단순한 시대의 재현이 아닌, 거시적 위기에 대한 예술의 반응이자 공동체의 공통적이고 상식적인 감정을 표상화한 시각언어다. 구체적으로 그것은 권력의 촉수가 개개의 삶에 파고들수록 저항하는 자유의지의 이미지다. 굴복을 종용하고 탄압을 가하는 주체를 전복시키기 위한 개혁의 도상이라 해도 그르지 않다.

이홍원 작가의 2014년 풍자화 연작 <문신시리즈>

풍자를 주된 표현법으로 삼는 작가들은 전제주의나 권위주의가 팽배할수록 더욱 촘촘한 조형체계를 생성한다. 정치적 억압과 검열, 핍박이 삶을 지배할수록 그들이 지닌 지성의 날카로움과 건전한 비판정신은 더욱 빛을 발하며 은밀하게 혹은 위대하게 인간성을 고양한다.

유럽 회화 역사상 최초로 농민의 생애를 풍속화와 풍자화로 기록한 16세기 네덜란드의 피터 브뤼겔을 비롯해 주세페 아르침볼도, 윌리엄 호가스, 오노레 도미에 등은 미술사에 있어 비판과 고발을 전제로 사회적 양식을 고무시킨 전형적인 작가로 꼽힌다. 촌철살인의 시사만화가인 게오르그 그로츠, 귀스타브 앙리 조소 등도 유명한 풍자작가로서 역사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오늘날에도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지 못하는 대상과 부당한 권력을 공격하되, 그 공격 속에 여유와 해학을 담아내고 있는 작가들은 많다. 국가가 자행해온 정치적 폭력 외에도 반전·반핵·기아·환경문제와 같은 인류 공통의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해온 그라피티 아티스트 뱅크시가 대표적이다. 아랍 지역의 종교 갈등과 여성인권 침해, 사회 불평등을 풍자하는 이란 출신의 마나 네예스타니, 폴란드의 세자리 보자노브스키와 파웰쿠친스키, 일본의 뱅크시라 불리는 ‘281_Anti nuke’ 등도 이에 해당한다.

이홍원 작가의 2014년 풍자화 연작 <문신시리즈>

우리나라에서는 광주비엔날레 20주년 기념 특별전 출품작 <세월오월>을 통해 풍자미학이 통하지 않는 관변 행사의 후진성과 남루한 톨레랑스를 증명한 홍성담, 정치적 격변기였던 80년대 이후 폭력적인 사회 현실을 직시한 발언으로 미술의 기능을 회복하고자 했던 작가 이홍원 등이 대표적이다. 최근 ‘불통’에 대한 저항과 비판을 담은 박근혜 대통령 풍자 그림을 서울 광화문 거리에 뿌려 논란이 된 작가 이하도 같은 선상에 놓인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풍자작가들은 서민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세태를 예리하게 비판하고 냉소적 진술을 통해 시대를 통찰하고 항변한다. 보편적 국민 감정을 대신하는 이미지로 참다운 인권과 자유·평등·평화를 가리킨다. 하지만 어느 시대든 살아 있는 권력은 이를 해로운 선동으로 보기 일쑤이며, 다양한 방법으로 탄압하고 속박하며 표현을 금기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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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들이 놓치고 있는 부분은 권력이나 무력 따위로 눌러 꼼짝 못하게 할수록 풍자는 더욱 질긴 생명력을 내보인다는 점이다. 권위적이고 폐쇄적인 질서를 숭상하는 곳일수록 풍자예술은 보다 깊게 뿌리내려 무한 증식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이후의 얼굴은 꽤 매섭다. 이는 국민의 기대를 저버린 프랑스 국왕 루이 필립을 왕좌에서 내려앉히는 데 일조한 도미에의 풍자화 <가르강튀아>가 낳은 파장만 봐도 명약관화하다.

<홍경한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