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력자본 자기계발이 누구를 위한 것인가

연애 역량 키우라는 여성의 성담론… ‘해방’ 측면보다 ‘성상품화’ 강화 우려

자본에는 세 가지 형태가 있다. 경제 자본, 문화 자본, 사회 자본이다. 경제학자 캐서린 하킴은 거기에 한 가지 자본을 추가한다. 매력 자본이다. 그는 그의 책 <매력 자본>에서 ‘매력 자본’(erotic capital)을 “아름다운 용모와 성적 매력, 자기표현 기술과 사회적 기술이 합쳐진, 애매하지만 정말 중요한 자본”이라고 정의했다. 성애화되고 개인화된 현대사회에서 이것은 더없이 중요한 자본임을 강조했다. “매력 자본은 사회적·경제적 과정과 사회적 상호작용·신분 상승을 이해하는 데 있어 인적 자본이나 사회 자본만큼 중요하다. 그리고 섹슈얼리티와 성적관계를 이해하는 데도 아주 중요하다.” 그는 현대의 ‘셀프 서비스식 짝짓기 시장’에서 매력 자본이 만들어내는 ‘에로틱 파워’가 더없이 중요한 힘이라고 덧붙였다. 연애나 결혼시장에서 성적 매력은 압도적인 가치이며, 이는 결혼 이전뿐만 아니라 이후에도 여전한 힘을 갖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끊임없이 이를 위해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매력 자본>에 담긴 내용은 ‘성’ 혹은 ‘성적 매력’이 자기계발의 대상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자기계발은 자기를 문제화하고 끊임없이 이를 고치고 개선하는 것을 뜻한다. 자신을 경영하고 관리해야 할 하나의 사업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자기계발 시대가 강요하는 여성의 성은 어떤 모습일까. 익명을 요구한 여성학자 ㄱ씨는 ‘성의 자원화’라고 말했다. “자기계발 시대는 개인에게 기업가로서의 주체성을 요구하고, 그러다보면 성은 하나의 ‘능력’으로 간주된다. 자신을 끊임없이 계발해야 한다는 신자유주의 시대에 성장한 20~30대를 보자. 이들은 자기계발의 문화가 다른 세대보다 익숙하다. 지금 20~30대 여성들 사이에서는 이성의 시선을 받는 것, 섹시한 것을 힘으로 여기는 문화가 있다. 성적인 힘을 자신의 자존감으로 간주하고 이것이 자의식을 강화하는 기제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자신의 성을 ‘자원화’하는 것이고, 자신을 야하게 개발한다는 뜻이다.” 논란이 됐던 일부 대학 축제에서 학생들이 하녀 복장이나 속이 드러나 보이는 야한 복장을 하고 축제에 온 손님을 끌어오려고 했던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마녀사냥> 섹스칼럼니스트 곽정은씨 | JTBC 제공

성적 매력 역설하는 섹스칼럼니스트
<매력 자본>의 내용은 한국 사회의 섹스칼럼니스트들의 글에서 비슷한 맥락으로 변주된다. 성적인 매력을 지닌 자아를 ‘완성된 자아’로 보는 것이다. 곽정은씨는 자신의 블로그 글에서 “‘침대 위가 궁금해지게 만드는 수컷’이 된다는 건, ‘한 번 자보고 싶은 암컷’이 된다는 건, 다만 그 표현이 다를 뿐, 너나 할 것 없이 되고 싶어하는 ‘섹시함’을 가리키는 다른 표현이다”라고 말한다. 그는 한 대학 강연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연애가 어려운 까닭은, 단지 올해 연애 운이 거지 같아서도 아니고, 내 주변의 사람들이 없어서도 아니고, 이유는 바로 너 자신에게 있다는 거야. 화장을 지우고, 편한 복장으로 갈아 입고 한 번 거울을 뚫어지게 봐. 나는 어떤 여자인가, 어떤 여자가 되고 싶고, 나에게 어울리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한 번 곰곰이 생각해보길 바라. 이런 과정을 통해서 연애에 성공한다면 좋은 거고, 그렇지 못해도 나를 변화시켜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으니 밑져야 본전 아니겠어.” 섹스칼럼니스트 현정씨는 한 대학신문의 칼럼에서 연애를 위한 개발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연애는 개인 역량의 문제다. 그렇게 생각하면 역량을 키우면 된다.

물론 타고난 키나 얼굴을 바꾸기는 힘들 것이다. 그러나 연애란 외형적 매력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기에 연애가 간절하다면 자신만의 매력을 개발하려고 노력하면 된다.” 이들이 자신의 성적인 매력에 투자하고 가꾸라는 메시지는 <매력 자본>의 내용과 정확히 겹친다. 책은 남편보다 상대적으로 우월한 외모를 지닌 한 부부의 사례를 예로 든다. “실제로 그녀의 외모는 평균을 약간 웃도는 정도이지만 그녀는 자신이 가진 것을 극대화하기 위해 시간과 노력을 투자한다.… 따라서 그녀는 당연히 남편을 매료시키고 성적으로 계속 만족시킬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20~30대 여성들의 섹스 칼럼은 오랜 시간 여성에게 금기시됐던 성에 대해 젊은 여성들이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성해방’ ‘금기 깨기’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매력 자본>처럼 ‘자기계발 담론’의 회로를 타고 있는 섹스칼럼니스트들의 성담론은 성 또한 ‘능력주의’ 프레임 안에 가둬버리는 부정적 효과를 낳는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이택광 경희대 영미문화학과 교수는 “최근 나타나는 연애상담이나 섹스칼럼은 연애나 성을 능력주의 프레임 안에 가둬버린다. 섹시하지 못하면, 누군가를 유혹하지 못하면 능력 없는 사람으로 만들어 놓는다. 섹스칼럼니스트라는 것은 사실 농담에 가깝다. 섹스란 사실 그 어떤 교습도 제시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책 매력자본

미디어 성담론은 현실과 큰 괴리
이미 성에 대한 여성들의 목소리는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끊이지 않고 나왔다. 과거의 섹스칼럼이 ‘자기고백적’이었다면 지금의 칼럼은 ‘지식전달’이라는 측면에서 차이가 있다. 과거 섹스칼럼 중에 화제를 모았던 것은 2000년대 초반 <한겨레21>에 연재됐던 ‘오마이섹스’가 대표적이다.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러한 칼럼들이 모성적 존재로만 여겨졌던 여성에 대한 기존의 통념을 뒤집는 정치적 효과를 낳았다고 분석했다. “어느날 뜨거운 녹차를 마시다가 문득 하고 싶어졌다.… 녹차를 마저 마시고 싶었기에 마시면서 했다. 놀라운 발견을 했다. 상대가 거의 자지러졌다.… 한데 몸속보다 뜨거운 녹차 기운이 담긴 입으로 ‘해주면’ 이루 말할 수 없는 경지를 맛본다는 얘기였다.(김소희)” 하지만 지금의 섹스칼럼은 지식을 전달하며 일종의 ‘성공스토리 모델’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자기계발적이다. “두 번째 필요한 건 서로의 취향에 대한 질문이다. ‘여기 이렇게 입으로 해주면 좋아?’ ‘어떻게 만져줄 때 제일 짜릿해?’ 구체적일수록 좋다. 등을 긁어 달라고 부탁할 때 ‘응 거기, 아니 아니 조금 더 아래, 응 거기 좀 더 세게!’라며 원하는 바를 정확히 설명하지 않나. 그런데 등 긁는 것보다 중요한 잠자리 문제만큼은 원하는 것을 묻지도 스스로 설명하지도 않고 침묵의 섹스를 한다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하지 않은가.(곽정은)”

그런 맥락에서 오늘날 섹스칼럼니스트들의 칼럼은 ‘해방’적인 측면보다는 기존의 ‘성상품화’를 강화하는 측면이 강하다. 곽정은씨는 가수 장기하씨에 대해 ‘침대 위가 궁금한 남자’라는 발언으로 한 차례 설화를 빚었다. 이택광 교수는 곽정은씨의 발언은 언론의 ‘노이즈 마케팅’이면서 ‘남성 중심의 성상품화’의 회로를 정확히 타고 있는 발언이라고 말했다. 그는 현재 한국 사회에서 성에 대해 개방적으로 이야기하는 주체가 ‘섹시한 여자’ ‘아름다운 여자’라는 데 주목해야 한다고 했다. 성은 보편적이면서도 다양하다. 노인의 성, 동성애, 소위 말해 ‘잉여들의 성’, 나아가 성과 우정의 경계에 대한 이야기까지 다양한 많은 이야기들이 이루어질 수 있다. 그러나 유독 특정 여성들이 이야기하는 ‘성’이 스포트라이트를 받느냐는 질문이다. 이 교수는 “상품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상품을 구매하는 것은 남성 고객이다. 곽정은씨 등이 하는 이야기들은 이미 과거에 한 차례 이야기됐던 것들이 새로운 이야기처럼 포장되어 상품화되고 있다. 이것이 과연 바람직한 일인가는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경제학자들은 섹스를 상급재라고 부른다. 섹스, 아름다움, 매력 자본은 소득이 많아질수록 더 많이 원한다는 것이다. 칼럼니스트 박권일씨는 20~30대 섹스칼럼니스트들을 중심으로 미디어에서 퍼지는 ‘성담론’과 실제 20~30대가 느끼는 현실은 큰 괴리가 있다고 말했다. 계층에 따라 격차가 크다는 것이다. “많은 젊은 층들이 사회에서 잉여가 되고 모태솔로라는 말도 흔하게 이야기될 정도로 연애가 사치가 됐다. 그것과 별개로 일부에서는 연애상담 프로그램 성담론이 굉장히 많이 유통되고 있다. 괴리가 크다. 불안과 공포 속에서 겨우겨우 연애를 해나가려고 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미디어에서 유포되는 자유로운 성담론들이 아연해지는 느낌이 있을 것이다. 한쪽으로는 성적으로 억압되고 사람들이 제대로 사랑도 못하는 상황인데 담론적으로만 무성한 비대칭적 상황이다.” 물론 일부 섹스칼럼니스트도 동일한 문제의식은 있다. 현정씨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불안정한 상황에 살아남는 것만이 목표가 되어, 먹고 자고 싸는 것과도 동등한 인간의 본능적 욕구를 절제하게 되는 것이 과연 행복한 사회일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런 문제의식이다. 이런 문제는 누구 하나의 노력으로 바뀔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나 역시 해결책을 뾰족하게 제시해줄 수도 없다. 그러나 이 시기를 보내고 있는 당사자인 20대가 자신의 욕망을 절제하고 체념하는 것으로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섹스는 삶이다. 그리고 보다 나은 삶을 만드는 것은 사회에 대한 관심이다. 그것이야말로 작은 변화의 단초가 될 것이다.”

섹스칼럼니스트라는 직업으로 인기를 얻은 미국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 | 경향신문 자료사진

성에 대한 여성발언권 여전히 제한적
한국 사회에서 성에 대한 여성의 발언권은 여전히 제한돼 있다. 그러나 이러한 억압은 일부 섹스칼럼니스트들의 논리대로 여성의 자기계발이나 자신의 자원화를 통해서 해결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이택광 교수는 “이런 식으로는 정치화가 안 된다. 정치화라는 것은 남성들이 틀 지워놓은 틀을 벗어나야 한다. 다른 성적 실천을 한다든가, 다른 선택을 한다든가. 그게 정치화인데 매력적 존재가 된다는 것은 반대로 이 사회에 순응을 한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나영 교수는 “여성이 자신을 성적 주체로 드러내는 것은 근본적인 사회·경제질서를 바꾸는 게 아니라 재생산하는 것이다. 그것으로 개인적인 권한이 생길 수 있지만 구조적인 차원에서 변화를 못 준다. 나아가 어떻게 보면 기존 가부장제나 자본주의와 공모하는 것이 된다”고 말했다.

여성학자 ㄱ씨는 다른 대항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외모 차별과 성희롱이 빈번하게 이루어지는 한국 사회에서 20~30대 여성들의 고민들이 많다. 그 세계를 제대로 보여주고 극복하는 눈을 틔워주는 게 필요하다. 20~30대 여성들에게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어떤 비전을 보여줄 수 있을까. 그게 아니라 매력 자본을 키우라고 하고, 성모델의 이상적인 규범을 잡아놓고 그 기준에 맞춰서 자신을 바꾸라고만 한다면 그게 자기계발해서 대기업 가라는 이야기와 뭐가 다른가.”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