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내시경]<마리 앙투아네트>의 재구성

오스트리아 뮤지컬이 인기다. <황태자 루돌프>, <엘리자벳>, <모차르트> 등 오스트리아의 역사를 소재로 하는가 하면, <레베카>처럼 잘 알려진 영화를 무대화한 경우도 있다. 오랜 세월 독일어 오페라를 통해 인기를 누리던 음악극의 역사가 현대 뮤지컬로 환생하며 과거의 영광을 재연하고 있는 느낌이다.

세밑 우리나라 공연가에 새롭게 막을 올린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 역시 이 연장선상에서 이해할 만한 작품이다.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의 황녀로 태어나 어린 나이에 프랑스 부르봉 왕가로 시집을 간 화려한 경력과 소용돌이치는 유럽의 시민혁명 틈에서 단두대의 이슬로 생을 마감하게 되는 비극적인 종말이 독특한 볼거리이자 이 작품의 매력을 만들어낸다.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 | EMK뮤지컬컴퍼니 제공

무대에는 마리 앙투아네트와 루이 16세에 얽힌 다양한 소문과 뒷이야기들이 등장한다. 굶주리는 프랑스 민중들에게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된다”는 망언을 뱉었다는 사실 여부를 알 수 없는 뒷이야기에서부터 그녀에게 사랑하는 연인이 있었다는 핑크빛 사연, 단두대에서 처형을 당했던 루이 16세는 사실 왕실 주치의였던 기요틴 박사가 이 살인기계를 구상할 당시 비스듬한 칼날을 사용하면 더 효과적일 것이라 조언했던 사람과 동일 인물이었다는 일화까지 고스란히 재연된다. 오스트리아 국민의 입장이 반영돼 다분히 연민 어린 시선으로 마리 앙투아네트를 바라보는 시각이 다소 거슬리기도 하지만, 해마다 다른 ‘장희빈’과 ‘한명회’를 만나 새로운 해석을 더하는 것이 관심을 끄는 것처럼 서양 사극의 재미를 느낄 수 있어서 흥미롭다는 주장도 있다.

제작진은 오스트리아 예술가들이지만 사실 연출을 맡았던 것은 일본 예술가인 타미야 쿠리야마다. 초연 무대가 꾸며진 것도 도쿄의 제국극장이었고, 제작사는 일본 그룹인 토호였다. <베르사이유의 장미>가 일본 대중들로 하여금 뮤지컬 속 이야기를 익숙하게 받아들이게 할 것이라는 전망이 마케팅적으로 적극 반영된 탓이다. 우리나라 공연장을 찾아가도 극장 로비나 계단이 온통 장미로 뒤덮여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아마도 일본 원작의 영향이 반영된 것은 아닐까 추측된다.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 | EMK뮤지컬컴퍼니 제공

하지만 만화적 상상력은 작품의 주제 면에서는 마이너스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뮤지컬에선 마그리드라는 가상의 인물이 마리 앙투아네트와 대립각을 세우는 안타고니스트로 등장한다. 시종일관 그녀를 괴롭히던 마그리드는 그러나 결말에서는 오히려 그녀를 이해하고 갈등을 해소시키는 단초를 제공한다. 종반부에서는 마그리드가 마리 앙투아네트의 이복 자매였다는 설정을 덧붙여 ‘막장 드라마’식 극 전개까지 시도된다.

문화내시경

상상을 더한 역사의 재구성은 요즘 흔히 볼 수 있는 문화예술의 실험이다. 이 작품 역시 소위 ‘팩션’의 무대적 적용이라 볼 수 있다. 문제는 그렇게 비틀어보는 역사의 재구성을 통해 어떤 주제를 담아내려 했는가라는 점이다. 화려한 무도회와 멋진 드레스가 등장하는 무대는 최근 보았던 어떤 서양 역사소재의 뮤지컬 중에서도 단연 최고로 꼽을 만큼 호화롭다. 앞뒤가 일치하지 않는 모호한 주제가 아쉬움으로 남지만, 흥행에는 큰 지장이 없을 듯싶다. 다만 작품이 오랜 생명력을 갖길 바란다면 조금 더 정교하고 치밀한 배려와 보완은 뒤따라야 할 것 같다. 연말 뮤지컬 공연가의 성적표에 어떤 기록을 남길지 지켜볼 일이다.

<원종원 순천향대 신방과 교수·뮤지컬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