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경제]인터스텔라-4, 5차원 세상의 ‘화폐 시간적 가치’는

시간이 일정하게 흐르지 않는다면? 빨리 흐르거나 느리게 흐른다면? 혹은 아예 뒤로 흐른다면?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시간을 가지고 이런 짓궂은 장난을 많이 친다. <메멘토>에서는 시간(기억)을 계속 거슬러 올라갔다. <인셉션>에서는 시간(생각) 속에 시간을 넣었다. 그리고 <인터스텔라>다. 인터스텔라에서는 상대적으로 시간이 느리거나 빨리 흐른다.

놀란 감독의 ‘시간’에 대한 고민은 우주여행으로 확장됐다. 미래 어느 시대 식량 부족이 시작됐다. 지구는 갈수록 메말라 간다. 이때 지금은 해체된 NASA 요원들이 과거 진행했던 프로젝트를 되살리고 있다. 토성 근처에서 웜홀이 열리는 것을 보고 비행탐험대를 보낸 것이다. 웜홀을 통과하면 100억 광년 떨어진 새로운 은하계로 이동할 수 있다. 후발대로 전 조종사인 쿠퍼와 이 프로젝트를 시작한 교수의 딸인 아멜리아 등이 떠난다. 선발대가 신호를 보내오는 행성에 들러 그 행성이 인류가 옮겨 살 수 있을 만한 곳인지를 확인하는 것이 임무다. 문제는 시간이다. 행성에 따라서는 지구와 시간이 다르다. 쿠퍼가 임무를 완수하고 돌아왔을 때 아들과 딸은 할아버지 할머니가 될 수 있다.

우리는 시간이 일정하게 흐른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건 3차원의 얘기다. 4차원, 5차원으로 가면 시간도 운동량과 같은 물리량이 된다. 빨리 흐르거나 느리게 흐를 수 있다는 의미다. 밀러 박사가 도착했던 밀러의 행성은 1시간이 지구의 7년과 맞먹는다. 4시간을 보내면 28년이 지난다. 아인슈타인에 따르면 시간은 절대적이지 않다. 빛의 속도로 달리게 되면 시간은 느리게 흐른다. 또 중력이 센 곳에서도 시간은 느리게 흐른다. 아인슈타인은 “예쁜 여자와 함께 있으면 시간이 빨리 흐른다”며 절대시간의 믿음을 깨뜨렸다. 우주여행을 다녀왔더니 쌍둥이 동생이 형보다 늙어버린 것을 ‘쌍둥이의 역설’이라고 부른다.

시간이 일정하기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 금융이다. 시간이 빠르거나 느리게 흐른다면 이 시스템은 붕괴된다. ‘화폐의 시간적 가치’가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다. 화폐의 시간적 가치란 화폐가 시간에 따라 다른 가치를 갖게 되는 것을 말한다. 할부거래, 이자, 영업권, 감가상각, 기업가치평가 등이다. 이자란 미래의 시간 가치를 숫자로 나타낸 것이다. 오늘 써야 할 1만원을 쓰지 않고 1년 뒤 쓰게 될 때 오늘 쓰지 못한 기회비용에 대한 보상이 이자다. 돈을 돌려받지 못할 리스크가 커지면 높은 이자를 받는다. 화폐가 시간 가치를 갖는 것은 사람들이 오늘 소비하기를 더 좋아하기 때문이다. 이른바 시간 선호다. 미래에는 내가 어떻게 될지, 사회가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그러니 뒤에 쓰기보다는 지금 당장 돈을 쓰는 게 합리적이다. 또 인플레이션 위험도 있다. 통상 물가는 오르게 마련이어서 오늘 쓰는 게 내일 쓰는 것보다 유리하다. 시간은 유형자산의 가치를 떨어뜨린다. 세상 모든 것은 낡게 마련이고, 낡아진 만큼 값어치가 떨어진다. 이른바 감가상각이다.

일정하게 흐르는 시간은 ‘시간적 비일관성’도 만들어냈다. 시간에 따라서 사람들의 행동은 일관적이지 않을 수 있다. 귀찮은 일을 해야 한다. 지금 일하면 1시간, 내일 일하면 10분 더 일한다. 이 경우 “내일 하겠다”를 택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이 일을 1년 뒤에 한다고 생각해보자. 1년 되는 날 1시간, 1년 1일째는 1시간 10분이다. 그러면 대부분 1년 되는 날 일하겠다고 답한다. ‘내일’ 하느냐 ‘1년 뒤’에 하느냐에 따라 사람들의 선택이 바뀌었다. 이 아이디어를 이용하는 것이 신용카드와 할부판매다.

영화 속 경제

우주여행이 가능하게 된 때에도 현 금융시스템이 그대로라면 누구나 쉽게 돈을 벌 수 있다. 1000만원을 예치한 뒤 웜홀을 통해 몇 시간 우주여행을 다녀와 보자. 그새 100년이 흘렀고 연평균 금리 3% 복리라면 1억 9220만원이 된다. 우주여행비는 이미 뽑은 것 같다.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mypar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