돛 올린 세월호 진상규명 ‘균형추’ 맞출까

특별조사위원 10명 확정, 새누리당 추천 인사들 자질 놓고 벌써부터 ‘논란’

“그동안 검찰에서 수사하고 언론에서 밝혀낸 게 많아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세월호 참사 관련) 별로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없는 것 같다. 지금으로서는 제 생각에 미심쩍은 부분은 없다.”(고영주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 새누리당 추천)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이하 조사위)의 밑그림이 나왔다. 세월호 유가족과 대한변협, 새누리당에서 추천한 인사들이 공개돼 17명의 조사위원 중 10명이 확정됐다. 새정치연합 몫 5명, 대법원 몫 2명은 12월 중순께 발표될 예정이다.

조사위원 명단을 발표한 세월호 유가족, 대한변협, 새누리당은 공식 논평을 통해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의지를 밝혔다. 하지만 어딘가 불안하다. 벌써부터 새누리당 추천 조사위원들을 둘러싼 잡음이 나오고 있다.

12월 6일 경기도 안산 중소기업연수원에서 이석태 변호사(왼쪽부터), 전명선 세월호 가족대책위 위원장, 장완익 변호사가 대화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국가정상화추진위원회 등 보수단체에서 활동해왔던 고영주 변호사는 진상규명 과제를 묻는 질문에 검찰과 언론에서 진상을 거의 밝혔다는 취지로 답했다. 보수논객 차기환 변호사의 경우 세월호 유가족의 대리기사 폭행사건에서 피해자 측 변호인을 맡았고, 수사권·기소권 주장에 반대하는 등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부정적인 태도를 보여 왔다. 새누리당이 생각하는 진상규명 과제도 불분명하다. 윤영석 새누리당 원내대변인은 “(조사위원회가) 국민을 대신해 세월호 참사의 발생 및 수습과정에 문제점들이 있었는지 조사해야 할 것”이라며 나름 의지를 피력했지만 구체적인 진상규명 과제는 밝히지 않았다.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의문사위) 등에서 활동했던 고상만 전 조사관은 “조사위의 선장과 선원들이 얼마나 의지를 갖고 있느냐에 따라 진상규명의 결과도 달라진다. 새로운 사실관계를 찾아내는 것만큼이나 이미 나온 자료들을 꼼꼼히 살펴보고 재해석하는 작업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유가족들 규명과제 9가지 발표
고 전 조사관은 최종길 서울대 교수 사건을 예로 들었다. 의문사위는 최 교수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새로운 자료와 증언들을 확보했다. 하지만 가해자로 지목된 당사자의 진술은 끝내 받지 못했다. 이에 대해 의문사위 내에서도 ‘진상규명 불능’으로 봐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하지만 2002년 7월 의문사위는 여러 가지 정황을 종합해 최 교수 사망에 국가폭력이 개입했다고 인정했다. 훗날 법원에서도 의문사위의 결정을 받아들였다.

세월호 유가족들의 경우 사건 초기부터 검찰 수사가 미진하다며 여러 가지 진상규명 과제를 발표해 왔다. 세월호 가족대책위가 12월 9일 공동주최한 워크숍에서 발표된 진상규명 과제가 최신판이다. 이 자리에서 이태호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9가지의 진상규명 과제를 발표했다. 세월호가 변침이 아닌 다른 이유로 침몰한 것은 아닌지, 참사 초기 구조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지, 국정원 문건의 실체는 무엇인지,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과 정·관계의 유착은 없었는지 등이다.

지난 6일 세월호 유가족들이 안산 중소기업연수원에서 선출한 특별조사위원 3명은 위와 같은 과제들에 천착할 것으로 보인다. 특별조사위원장이자 상임위원으로는 이석태 변호사가, 비상임위원으로는 장완익 변호사와 이호중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뽑혔다. 세월호 참사 이후 직·간접적으로 유가족들을 도와온 인물들이다.

이 변호사는 11월 28일 세월호 유가족들로부터 조사위원장직을 맡아달라는 부탁을 받고 참여연대 공동대표직에서 물러났다. 참여연대 공동대표 시절에는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한 사회적 여론 조성에 힘써 왔다. 장 변호사는 대한변협 세월호 참사특위 소속으로 세월호 특별법 유가족안을 만들었다. 대한변협에서 추천한 박종운, 신현호 변호사도 장 변호사와 함께 법안을 만드는 데 힘을 보탰다. 이 교수는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위 공동운영위원장으로 활동했다. 가족대책위 측은 “이 교수는 기업살인처벌법 등 이윤을 앞세워 사람의 생명을 가벼이 여기는 것에 대한 제도적 대안을 오랫동안 연구해 왔다”며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많은 공헌을 해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한편 세월호 유가족들은 새누리당 추천 조사위원들에 대한 불만사항을 이미 새누리당에 전달했다. 가족대책위 관계자에 따르면, 대책위는 11일 국회에서 김재원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를 만났다. 여기에서 유가족들은 새누리당 몫 조사위원들에 대한 아쉬운 마음을 전달했다고 한다. 하지만 김 수석부대표는 가족대책위에 “조사위원 선정은 새누리당 당내의 문제”라며 조사위원 추천을 바꿀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세월호 가족대책위 임원 A씨는 “새누리당은 세월호 특검 추천위원을 추천할 때 유가족들의 사전 동의를 얻기로 했다. 조사위원도 특검 추천위원의 연장선상에서 유가족들과 소통과정을 거친 후에 선정하길 기대했다. 그런데 한마디로 딱 자르더라”고 전했다.
물론 보수적인 인사 추천 자체를 문제시할 수는 없다는 주장도 있다. A씨도 “보수정당이 보수적인 인사를 추천하는 것 자체를 비난할 순 없다. 새누리당에서도 유가족과 야당이 추천한 조사위원에 대해 정치적 중립성이 없다고 볼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A씨는 “문제는 새누리당에서 추천한 인사들의 자질이 너무 심각하다는 데 있다”고 꼬집었다.

유가족들 새누리당에 불만 전달
새누리당이 조사위원으로 추천한 고영주 변호사는 보수성향 논란에 대해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게 중요하지 보수냐 진보냐는 상관이 없다. 이념적인 것을 문제 삼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하지만 고 변호사는 “이제 조사위원으로 선정이 됐고, 본격적으로 조사위가 출범할 때까지 공부를 많이 할 생각이다. 아직 세월호 유가족들을 만나진 못했지만 조사위원회가 열리면 유가족들이 궁금해 하는 부분도 들어보고 같이 검토를 할 생각”이라고 말해 세월호 참사에 대한 이해도를 드러냈다.

차기환 변호사는 지난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박원순 서울시장을 비난하는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의 글을 자신의 SNS에 올려 비난을 산 바 있다. 지난 11월 10일에는 보수 시민단체 바른사회시민회의 ‘바른사회 지킴이’로 선정됐다. 차 변호사와 함께 선정된 이는 전교조 ‘척결’을 외쳐온 이계성 반국가교육척결국민운동 대표와 우편향 교과서 논란을 빚은 교학사였다.

세월호 가족대책위 임원 A씨는 “평소 일베에 올라온 글을 퍼나르는 등 우려스러운 수준의 인사들이 조사위에 들어갔다. 분명히 유가족이 잘못한 일이긴 하지만 대리기사 폭행건을 가지고 유가족 전체를 매도하는 분위기에 일조한 사람이 조사위원으로 들어온다는 것 자체가 부적절한 것 아닌가. 이후 조사위 활동이 정상적으로 진행될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여야는 2015년 1월 1일부로 세월호 특별조사위를 본격 가동시킬 예정이다. 조사관 채용 등 사무처 구성을 완료하는 데 보통 2~3개월의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과거 세월호 국정조사특위를 보면 이보다 더 지체될 수도 있다. 국조특위는 증인 출석을 둘러싼 여야 이견을 좁히지 못한 끝에 청문회도 열지 못하고 용두사미로 끝났다. 고상만 전 조사관은 “과거 경험에 비춰봤을 때, 진상규명 의지가 없는 사람들이 열심히 활동할수록 진상규명이 어려워졌다. 실체적 진실에 대한 의지가 강한 사람들로 조사위원회가 구성돼야 한다”고 말했다.

<백철 기자 pudmaker@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