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헌재는 통진당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죽였다

헌재의 이번 결정은 헌법재판제도의 위험성을 그대로 드러냈다. 9인의 재판관은 한국 사회의 앞날을 자신의 정치적 지향성에 따라 국가의 정체성인 것처럼 선언함으로써 가장 강력한 정치인이 되었다. 국민에 대해 책임도 지지 않는 기관에 더 이상 민주주의의 앞날을 맡겨둘 수 없다.

설마 했다. 벌써 오래 전부터 헌법재판소 주변으로부터 재판관들이 해산 결정 쪽으로 갈 것 같다는 소문에도 설마 그럴까 했다. 세계헌법재판회의를 성공적으로 치렀다고 재판소 현관에 온갖 홍보자료와 각국 대표로부터 받은 선물을 전시하고, 한국의 성공적 수출상품이라는 자부심을 내세워 온 헌법재판소가 이런 결정을 할 리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12월 19일 선고된 결정문은 숨이 막히고 기가 차는 내용으로 가득하다. 재판관 가운데 검사 출신이 둘이라고는 하지만 어느 공안검사의 공소장보다도 공안논리가 충만하다. 헌법재판소라고 하여 헌법만 중시하고 법률을 도외시하는 것인지, 범죄사실을 인정하기 위하여 필요한 증명마저 없이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헌법과 법률이 정한 절차에 따른 재판이 아니라 종교재판이 아닌가 의심스럽다.

12월 1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통합진보당 강제해산 반대와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2차 원탁회의’ 참석자들이 ‘정당해산은 민주주의가 아닙니다’라는 피켓을 들어 보이고 있다. | 권호욱 선임기자

헌법재판소 결정에 나타난 문제의 하나는 구체적 사실관계를 충분한 증거 없이 인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미 이석기 의원 등의 내란음모 사건에 관하여 무죄판결이 내려졌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고려하지 않은 채 이들이 북한 주체사상을 추종하고 전쟁 발발 시 폭력수단을 실행하고자 회합을 개최한 것으로 인정하고, 이러한 회합을 통합진보당의 활동으로 보고 있다. 필자는 심판의 참고인으로서 헌법재판소는 법원의 판결이 기본권을 침해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이를 고려하여 심판을 하여야 한다는 취지의 진술을 한 바 있다. 이는 헌법재판이 법원이 행여 범할 수 있는 기본권 침해나 헌법 위반의 문제를 시정하기 위하여 그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엄격한 증명이 필요한 법원의 판결과 상반되는 내용을 인정함으로써 오히려 매우 완화된 증명만으로 개인의 형사범죄보다도 더 기본권 침해의 정도가 큰 정당해산심판의 기초사실관계를 인정하고 있다. 결국 인정하고 싶은 사실을 증거 없이도 인정하게 된 것이다.

진보적 민주주의가 북한의 대남 혁명전략과 같거나 유사하며 통합진보당의 주도세력이 북한을 추종하고 있다는 것도 제대로 증명이 이뤄졌다고 보기 어렵다. 형법상 범죄에 관련되는 사실관계를 인정하면서도 형사소송법상 요청되는 증명의 수준에 이르지 못해도 그러한 사실관계를 인정할 수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통합진보당의 민중민주주의 변혁론이 혁명을 추구하고 있다고 하기에 증거도 충분하지 않다. 애국가를 부르지 않거나 태극기를 게양하지 않은 것이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한다고 하는 것도 논리의 비약이다. 통합진보당의 목적과 활동이 1차적으로 진보적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최종적으로 북한식 사회주의를 실현하는 것으로 보는 것도 이를 인정할 충분한 근거는 없다. 증명도 없이 이를 숨은 목적으로 보는 것이야말로 마치 자기가 신의 대리인인 양 보고 싶은 대로 보는 종교재판의 모습일 뿐이다.

법률에 의한 재판 아닌 종교재판 닮아
헌법재판소는 정당해산심판의 사유가 되는 정당의 민주적 기본질서 위반에 관하여 “단순한 위반이나 저촉이 아니라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대한 실질적 해악을 끼칠 수 있는 구체적 위험성을 초래하는 경우”로서 비례의 원칙을 준수하여야 한다고 하면서도 ‘실질적 해악’이나 ‘구체적 위험성’에 대해 제대로 판단하지 않고 있다. 우선 충분한 근거 없이 통합진보당이 북한식 사회주의를 추구하고 있다고 보고 통진당의 여러 활동을 민주적 기본질서에 대해 실질적 해악을 끼칠 구체적 위험성이 발현된 것으로 보고 있다. 실질적 해악이나 구체적 위험성이라는 것은 말로만 실질적 해악이 있다거나 구체적 위험이 있다고 해서 인정되는 것이 아니라 피해를 입힐 수 있는 여러 가지 조건과 의도가 있어야 하는 것이며, 구체적 위험이라는 것도 단지 심정적 또는 주관적 불안이나 위험성을 넘어서는 보다 객관적이고 위험이 접근된 경우 등에 한정하여 인정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실질적 해악이나 구체적 위험성을 인정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형식적 또는 추상적인 언어가 아니라 구체적인 조건 또는 현실의 증거가 뒷받침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결정문에는 이러한 논증이 보이지 않는다. 영화관에서 공포영화를 봤다고 하여 그것이 구체적인 위험이 아니듯이, 국가의 민주적 기본질서에 대한 실질적 해악과 구체적 위험성이 인정되기 위해서는 적은 규모의 인원이 모여서 떠드는 정도로는 부족하고 목적 수행을 위한 구체적이고 위험한 활동이 뒤따라야 하는 것이고, 내란 관련 사건에서 피청구인 구성원들이 북한에 동조하여 대한민국의 존립에 위해를 가할 수 있는 방안을 구체적으로 논의한 것 정도로 구체적 위험성이 있다고는 할 수 없는 것이다.

헌법재판소가 비례의 원칙에 의하여 해산 여부를 결정하였다는 것도 허무한 말이다. 헌재 결정문에서 정당의 자유의 중요성에 비추어 정당이 해산되어야 하는 필요성을 비례의 원칙에 따라 검토하였다고 보기 어렵다. 말만 비례의 원칙이지 북한과의 관련성, 국가안보 등의 문제에 이르면 이미 내려진 결론에 맞춰 판단한 모든 것이 비례적이라고 할 뿐이다. 어쩌면 법원이나 헌법재판소에서 북한과 관련된 문제는 뭐든지 건드리면 터지는 인계철선과 같은 것이다. 여기에 걸리면 사안의 경중에 비례하여 책임이 인정되는 게 아니라 적건 크건 상관없이 가장 큰 충격파가 번지게 되는 것이다. 어쩌면 비례 여부를 재는 잣대가 이 부분에서는 다른 것인지도 모른다. 비례원칙이라는 것도 말에 불과하다.

칼날 휘두르는 헌재 근본적인 수술을
이제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의하여 통합진보당은 해산되게 되었다. 이는 단지 하나의 정당의 해산을 넘어서서 통합진보당 소속 당원의 정당 조직과 활동, 같은 뿌리를 둔 다른 정당에 대한 공격을 초래할지 모른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정치적 시민권이 박탈된 이념적 지형을 추구하는 어떠한 행위도 헌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게 되었다. 다양성과 관용에 바탕을 둔 민주주의의 장래도 어둡게 되었다. 우리 사회는 북한과 적대적 관계에 있다는 이유로 우리가 하는 말이나 행동이 북한과 같거나 유사하면 이를 의도적으로 기피하거나 부정하는 것처럼 하게 되었다. 자연스러운 표현도 자칫 북한과 같거나 유사할 경우 당할지 모르는 화를 피하기 위해서이다. 은연중 우리는 북한을 빌미로 우리의 자유로운 사상과 행동의 자유를 금지하고 억압하면서 우리도 모르는 새 어느덧 북한과 닮아가고 있다.

헌법재판소의 이번 결정은 헌법재판제도의 위험성을 그대로 드러내 주었다. 정치적으로 중요한 문제를 판단하는 기능까지 수행하여 가장 중요한 정치적 권한을 갖게 되었다. 9인의 재판관은 한국 사회의 앞날을 자신이 가진 정치적 지향성에 따라 국가의 정체성인 것처럼 선언함으로써 가장 강력한 정치인들이 되었다. 이제 우리는 헌법재판소가 할 수 있는 가능성과 해악을 구체적으로 경험한 셈이다. 이제 헌법재판소를 근본적으로 혁신하지 않으면 안 된다. 9인의 폐쇄적 세계관을 가진 재판관에 의해서가 아니라 국민의 참여가 뒷받침되는 재판소로 만들든지 아니면 헌법재판소를 폐지하여야 한다. 국민을 위한 정치의 중심은 아무래도 의회가 되어야 한다. 헌법재판관들이 국가를 위한다는 허튼 책임감으로 무서운 칼날을 휘두르는 일을 더 이상 지켜볼 수 없다. 국민에 대해 책임도 지지 않는 이 기관에 이 땅의 민주주의의 앞날을 맡겨둘 수 있겠는가.

<송기춘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