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항의 동병상련 부모공부]그것은 교육이 아니다, 잔혹한 전투다

교육이란 어른 인간이 아이 인간을 한 어른 인간으로 키우는 모든 일이며, 제 몸도 못 가눈 채 울음으로만 자기 의사를 표현하던 어린아이가 한 독립된 성인으로 성장하는 모든 일이다.

“아이가 첫걸음을 떼었을 때, 아이가 첫말을 했을 때 어떤 기분이셨어요?” 부모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하게 되면 묻곤 한다. 부모들, 물론 그 중에서도 엄마들 표정이 금세 밝아진다. “기적 같았어요!” “감동적이었어요!” “환희 그 자체였어요!” 등 온갖 말들이 쏟아진다. “기뻤어요!” 정도는 오히려 무덤덤하게 느껴질 지경이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까지 기쁨과 환희에 찰 일일까. 아이가 태어나서 얼마간의 시간과 교육을 통해 걸음을 떼고 말이 트이는 건 대부분의 아이들이 하는, 그리 특별할 게 없는 일인데 말이다. 그런데 부모에겐 그 특별할 게 없는 순간이 너무나 특별하게 느껴진다.

한 초등학교 가을 운동회에서 학부모들이 이어달리기 시합을 하고 있다. | 권호욱 선임기자

첫걸음의 기쁨, 왜 지속되지 못하나
여느 아이들도 다 하는 것이라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 여느 아이보다 늦게 걸음을 뗐다고 해서 ‘걷기 과외’를 시켜야겠다고 생각하는 부모는 없다. 여느 아이보다 말이 좀 늦는다고 해서 ‘말하기 학원’을 찾아보는 부모도 없다. 그저 이런 말들이 전승되고 나누어질 뿐이다. “늦게 걷는 아이가 나중에 더 튼튼하더라.” “말 문 늦게 트인 아이가 나중에는 더 야무지게 말해.” 그게 실증된 이야기인가, 과학적인 근거가 있는가는 누구도 따지지 않는다. 걸음이 빠르든 늦든 걷기 시작했다는 사실만이 중요하고, 말이 빠르든 늦든 아이의 말문이 트였다는 사실만이 중요하다. 그 사실만으로 부모는 완전한 기쁨과 환희를 느낀다.

그렇다. 바로 그게 ‘교육의 기쁨과 환희’다. 교육이란 무엇인가. 국수사과와 영어 공부가 교육인가. 물론 그것들은 교육의 중요한 일부다. 그러나 교육은 그것들을 포함한 훨씬 더 넓고 큰 것이다. 교육이란 어른 인간이 아이 인간을 한 어른 인간으로 키우는 모든 일이며, 제 몸도 못 가눈 채 울음으로만 자기 의사를 표현하던 어린아이가 한 독립된 성인으로 성장하는 모든 일이다. 교육은 당연히 기쁨과 환희로 점철된 과정이다. 그런데 왜 걷기와 말하기 다음 어디쯤인가부터 갑자기 기쁨도 환희도 사라져버리는 걸까. 아이가 말문이 트였을 때 그리 기뻤다면 아이가 글자를 깨치면 기쁨이 배가되어야 할 텐데 왜 불안과 근심의 그림자만 드리우는 걸까. 교육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교육이라 불리지만, 실은 아이가 또래의 수십만 아이들과 벌이는 잔혹한 전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제 기쁨은 아이가 글자를 배우는 일에서가 아니라 다른 아이들보다 글자를 얼마나 빨리 배우는가에서만 오며, 아이가 산수를 배우는 일에서가 아니라 산수시험 성적이 다른 아이들보다 얼마나 높은가에서만 온다. 기쁨이 아닌 기쁨은 지속될 방법이 없다. 아이가 뒤처지면 뒤처져서 불안하며, 앞서면 언제 뒤처질까 불안하다. 물론 이건 한국 사회만의 것은 아니다. 인간이 살아가는 세계에 완벽한 곳이 있겠는가. 걸음을 떼고 말이 트일 때의 기쁨과 환희가 이후 교육과정에서도 고스란히 지속되는 사회는 존재하지 않는다. 더욱이 오늘 세계는 대부분 시장과 경쟁을 기반으로 하는 자본주의체제에 속해 있지 않은가?

그러나 완벽하진 않더라도 교육의 기쁨이 어지간히 유지되는 사회가 있는가 하면, 교육의 기쁨은 찾아볼 수 없는 사회도 있다. 흔히 전자의 사례로 북유럽이나 독일 등 서유럽 사회를 꼽곤 한다. 후자의 사례는 굳이 두루 들 이유가 없다. 오늘 한국 사회가 후자의 비교할 수 없는 극단적 사례임을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세계 최저의 출산율에 10대 사망원인 1위가 자살이라니 더 말해 뭐하겠는가. 한국은 ‘교육 지옥’이라 불린다. 교육 지옥 속에서 아이를 키워야 하는 부모는 고통스러움을 넘어 무력하기만 하다. 정치나 여타 사회문제에 꽤나 비판적이고 주관이 뚜렷한 사람도 교육문제 앞에서는 하나같이 시들해진다.

의문은 끝이 없고 답은 막막한 ‘교육 지옥’
아이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어떻게든 하는 데까지 해보겠다는 마음만 있을 뿐, 정작 어떻게 해야 할지는 갈수록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이놈의 교육 지옥이 어디에서부터 왔고 어떤 얼개를 가지는지, 어렵게 말하는 사람들은 ‘신자유주의 교육’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들 하는데, 그렇다면 그놈의 신자유주의라는 걸 변화시킬 수는 있는 건지, 진보적이라는 사람들도 제 아이 교육문제에선 그리 다를 게 없어 보이는데 변화의 실마리는 대체 어디에 있는 건지, 설사 시간이 걸려 교육 지옥이 조금은 변화한다 하더라도 내 아이는 그 와중에도 커 가는데 부모로서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 의문은 끝이 없고 답은 막막하기만 하다. 그래서 그저 다른 부모들이 하는 대로 좋다는 대로 따라할 뿐인데 그럴수록 막막함은 더해간다. 이 연재는 그 막막함을 차근차근 살펴보려는 것이다.

진작에 다 꿰고 있는 사람의 태도로 누군가를 가르치려는 건 아니다. 물론 나는 꽤 오랫동안 어린이교양지 발행인 노릇을 해왔고, 교육문제에 대해 글을 쓰고 활동해왔으니 좋든 싫든 교육문제의 전문가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이런 연재도 하는 것일 테고, 여기저기 교육 강연에도 불려 다니는 것일 게다. 그러나 강연에서 부모들을 만날 때도 나는 언제나 가르치려는 게 아니라는 것을, 나에게서 배우려 말고 함께 고민할 것을 애써 강조하곤 한다. 겸손한 체하려는 게 아니라 자격이 없기 때문이다. 교육 지옥에서 누가 누구를 가르친단 말인가. 자격은 누구에게도 없다. 누구든 할 수 있는 최선은 역시 한 부모로서 막막함과 고민을 다른 부모들과 함께 나누는 일이다. 교육 지옥의 얼개와 실체를 찬찬히 살펴보며, 부모가 할 일과 할 수 있는 일을 궁리해보는 것, 그리고 교육 지옥을 조금씩이라도 변화시킬 방법을 찾아보는 것이다. 나는 그걸 ‘부모공부’라 부르기로 했다.

낯 뜨거운 ‘성공수기’를 늘어놓으려는 건 더더욱 아니다. 나에겐 새해 스물둘이 된 딸과 열아홉이 된 아들이 있다. 어릴 때는 교육문제와 관련한 내 글에 종종 등장하기도 했다. 그들이 사춘기에 접어들 무렵 그들의 프라이버시를 생각해 그러지 않게 되었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그들은 대체로 잘 성장했고 여전히 성장하고 있다. 그들을 아는 주변 사람들 역시 그렇게 생각하는 듯하다. 그러나 나는 어떤 차원에서든 ‘교육에 성공했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교육이 얼마나 넓고 큰 것인가를 생각한다면 교육에 성공했다는 말처럼 경박한 말은 없다. 교육은 성공하는 것도 실패하는 것도 아닌 아이와 함께 이 세상을 살아내는 것, 그리고 살아내도록 돕는 것이다. 교육에 성공이라는 게 있다면 그 살아냄 속에서 실패와 함께 무수히 연속되는 삶의 조각이다. 이제 동병상련의 부모공부를 시작해보려 한다.

김규항의 동병상련 부모공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