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항의 동병상련 부모공부]민주화세대 부모들 왜 애들은 못 놀게 하나

박정희 시절의 아이들도 오후 내내 지치도록 놀았는데, 박근혜가 대통령 후보이던 시절부터 ‘박정희의 딸이 대통령이 되는 걸 막기 위해’ 안간힘을 썼던 사람들의 아이들은 놀기는커녕 왜 학원을 돌며 시들어 가는가.

나는 박정희식 교육의 오롯한 자식이다. 그가 군사쿠데타를 일으킨 게 내가 태어나기 전 해이고 대통령이 된 게 태어난 다음해였다. 국민교육헌장이라는 게 선포된 게 초등학교 입학 직전이었다. 이젠 국민교육헌장을 외우는 사람들보다 주기도문을 외우는 사람이 훨씬 더 많지만(최악의 독재국가였던 한국은 민주화 후에는 최악의 기독교 국가가 되었다) 당시엔 간첩으로 몰리려 작정한 게 아니라면 그 끔찍한 문장을 달달 외워야 했다. ‘대체 무슨 짓을 했던 건가’ 웃음이 나오지만, 1학년짜리가 국민교육헌장을 전교에서 제일 빨리 외웠다고 조회시간에 낭송을 했던 기억이 난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시월유신이 선포되었고, 고등학교 2학년이 되어서야 박정희가 부하의 손에 죽었다. 3학년 때는 그의 또 다른 부하들이 광주에서 사람들을 도륙했다.

서울 동작구 사당동 새싹어린이공원에서 아이들이 금을 그어놓고 바둑돌을 가까이 던지는 놀이를 하고 있다. | 홍도은 기자

학교에선 억압받아도 방과후에는 놀아
박정희 시절의 학교는 학교라기보다는 차라리 병영에 가까웠다. 중학교·고등학교는 말할 것도 없고 초등학교(국민학교)라 해서 나은 건 없었다. 남자교사는 대체로 폭력교사였다고 할 수 있는데, 여자교사라고 해서 꼭 달랐다는 뜻은 아니다. 교사가 아이에게 의견을 묻거나 의논하는 풍경 따윈 없었다. 그저 명령하고 지시했으며 아이가 제대로 따르지 않으면 때리고 벌주었다. ‘제대로’에 유의해야 한다.

이를테면 불이 많이 나는 계절이 오면 교사는 아이들에게 ‘불조심’ 명찰을 달고 올 것을 명령했는데, 안 달고 온 건 말할 것도 없고, 가로 세로 크기와 색깔이 조금만 달라도 때리거나 벌줄 수 있었다.

교사의 폭력성은 그들의 인성과는 무관했다. 물론 그 중 일부는 도무지 그렇게 생겨먹은 사람도 있었겠지만, 사회의 모든 가지와 뿌리의 말단까지 작동하는 권위주의 국가의 폭력적 작동방식의 일부였을 뿐이다. 가정이나 군대는 물론, 사회의 모든 조직이나 단체에서도 다름없이 작동되는 폭력이었다.

폭력적 훈육은 표준적 교사상일 뿐이었고 제아무리 온순한 사람도 교사가 되면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폭력교사가 되는 식이었다. 그 시절의 폭력적 훈육이 특히 나쁜 건 일관성, 즉 엄격한 기준이 없다는 것이었다. 같은 잘못을 해도 교사의 기분에 따라 오늘은 심하게 두들겨 맞는가 하면 며칠 후엔 넘어가는 식이었다. 아이들에게 학교생활이란 한 대라도 덜 맞기 위해 늘 교사의 눈치를 살피며 불안해하는 시간이었다. 학교는 아이들의 인간성을 뒤틀고 파괴하는 곳이었다.

그런 학교였지만 방과 후 아이들의 삶은 전혀 달랐다. 질문해 보자. 박정희 시절 초등학교 아이들은 방과 후에 뭘 했는가? ‘군사독재’ 국가였으니 오후 내내 목총을 들고 군사훈련이라도 받았는가? ‘개발독재’ 국가였으니 오후 내내 동원되어 삽질을 했는가? 아니다. 내내 놀았다. 몇 달 전 전라북도 농촌마을 부모 강연에서 이 이야기를 했더니 한 아빠가 장난스러운 얼굴로 “오후에 농사졌는데요!”라고 소리쳤다. 청중과 함께 크게 웃으며 이렇게 대꾸했다. “공식적으로는 노는 시간이었죠. 하지만 식구들이 다 바쁘게 일하는데 혼자 놀면 나쁜 놈이죠. 당연히 도와야죠.”

아이들은 들로 산으로, 혹은 이 골목 저 골목으로 뛰어놀았다. 엄마는 아이가 어느 지역에 있다는 건 알았지만 지금 정확하게 어디에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아이가 지금 뭘 하고 있는지는 분명히 알았다. 아이는 어디선가 동무들과 놀고 있는 것이다. 오후 3시쯤 소재 파악이 확실하게 되는 아이는 둘 중 하나에 속했다. 아파 누워 있는 아이, 혹은 벌 받고 있는 아이. 그 외의 아이들은 해가 질 때까지 지치도록 놀았다. 건강한 남자아이의 엄마는 저녁을 차려놓곤 아이를 찾으러 다니는 게 아니라 잡으러 다녀야 했다. “이놈의 자식, 또 어디서 놀고 있는 거야.”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었다. 아이들은 그렇게 지치도록 놀며 그들을 뒤틀고 파괴하는 독재국가의 억압과 오염으로부터 제 신체와 정신을 지키고 씻어내며 인간의 기본 꼴을 만들어갈 수 있었다.

놀지 못하고 학원 돌아야 하는 아이들
그런데 2015년 오늘 초등학생 아이가 오후 3시쯤 30분 정도 소재 파악이 안 된다면 어떤 상황일까. 2시 45분에 A학원에서 아이가 오지 않았다는 연락이 왔는데 3시 15분에 B학원에서도 아이가 오지 않았다고 연락이 오면 말이다. 준사고 상황이라 할 수 있다. 엄마는 격렬한 양가감정에 휩쓸리게 된다. 혹시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까 하는 불안감과 이 녀석 들어오기만 해봐라 하는 짜증. 세상이 너무나 험해져서 어쩔 수 없지 않으냐 말할 수도 있을 게다. 그러나 상황의 핵심은 아이들의 하루가 그만큼 빡빡하다는 데 있다. 잘나가는 기업의 경영자도 아닌 고작 10살 남짓의 보통 아이의 하루 일정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30분의 여백도 없이 빼곡히 짜여 있다는 뜻이다.

이상한 일 아닌가. 민주화가 된 지 30년이 다 된 사회에서, 대통령을 ‘쥐’나 ‘닭’이라고 욕해도 간첩으로 몰리지 않는 사회에서 아이들은 왜 이렇게 살아가는가. 게다가 아이의 부모들은 대개 40대 이하로 박근혜 정권에 대해 반대하는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아닌가. 박정희 시절의 아이들도 오후 내내 지치도록 놀았는데, 박근혜가 대통령 후보이던 시절부터 ‘박정희의 딸이 대통령이 되는 걸 막기 위해’ 안간힘을 썼던 사람들의 아이들은 놀기는커녕 왜 학원을 돌며 시들어 가는가.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대한민국에 이주노동을 하러 오는 사람들의 고향에선 아이들이 내내 뛰어노는데, 전쟁으로 아이들이 죽고 다치는 참혹한 땅에서도 며칠만 평화가 찾아오면 아이들은 여지없이 뛰어노는데, 왜 세계 10위권의 경제국이자 상당 수준의 민주주의를 이루었다는 대한민국의 아이들은 이렇게 살아가는가.

김규항의 동병상련 부모공부

아이들이 하교할 무렵이면 전국의 초등학교 교문 앞에 박근혜의 경찰과 군대 병력이 대기했다가 아이들을 학원으로 실어나르기라도 하는가. 그래서 부모들은 ‘민주교육’과 ‘아동인권’을 외치며 실랑이를 벌이고 매일 밤 촛불시위를 벌이기라도 하는가. 바로 그들 손으로 아이들을 놀지 못하게 하고, 그들 손으로 아이들을 학원으로 떼밀고 있지 않은가. 그러면서 다들 석연찮은 얼굴로 “현실이 어쩔 수 없다”고 말할 뿐이니 대체 어떻게 된 노릇인가. 그들이 입버릇처럼 말하는 ‘현실’은 대체 무엇인가. 박근혜를 반대하는가 지지하는가와도 무관하고 보수와 진보의 대립과도 무관하며 정권교체와도 무관해 보이는 그 ‘현실’이라는 이름의 유령은 대체 무엇이며 어디에서부터 오는가.(계속)

<김규항 <고래가 그랬어>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