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치스크린]강남 1970-한국 근대화의 폭력성

제목 강남 1970

감독/각본 유하

출연 이민호 김래원 정진영 김설현 이연두

장르 액션 드라마

상영시간 135분

개봉 2015년 1월 21일

상전벽해. 이보다 더 ‘강남’의 변신을 잘 드러내는 말이 있을까. 기자는 1970년대 중반, 아버지를 따라 택시를 타고 지나쳤던 강남의 거리 풍경을 기억하고 있다. 영동 일대와 고속버스터미널을 제외하곤 허허벌판이었다.

영화 <강남 1970>은 제목이 말해주듯 1970년대 강남이 배경이다. 정확히 말하면 1960년대 후반, 강남 개발이 막 시작될 무렵이 배경이다. 김종대(이민호 분)와 백용기(김래원 분)는 고아원 출신이다. 넝마주이로 하루하루 살아간다. 그들이 살던 판잣집이 철거로 헐린다. 철거용역 깡패 사무실에 찾아간 그들의 ‘근성’이 중간보스 강길수(정진영 분)의 눈에 띈다. 야당 전당대회장을 습격하는 정치깡패일에 그들은 투입된다. 이후 김종대와 백용기는 헤어져 각각의 인생유전을 겪는다. 강길수는 김종대를 자신의 호적에 입양하여 아들로 삼은 뒤 깡패생활을 접고 세탁소를 한다. 백용기는 명동파 보스 양기택(정호빈 분)의 수하로 들어간다.

영화를 보며 제일 먼저 떠올랐던 것은 1980년대 전성기를 누린 홍콩 느와르물이다. 장국영과 주윤발이 주인공을 맡았던 <영웅본색>(1986), 역시 주윤발과 이수현이 주인공이었던 <첩혈쌍웅> (1989) 같은 영화들이다. 생각해보니 두 영화 다 오우삼 감독 작품이다. 이민호와 김래원의 연기에 자연스럽게 주윤발과 장국영 콤비가 오버랩된다. 홍콩 느와르물이 종종 받았던 초현실적 설정이라는 비판-‘떨어지지 않고 계속 발사되는 총알’ 따위-은 이 영화에도 비슷하게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 비록 총보다는 칼이 주로 사용된다는 면에서는 ‘현실적’이지만.

1970년대까지 건달의 세계에서 암묵적인 대결 룰은 주먹으로 싸우는 것이었다. 칼잽이는 곧 겁쟁이, 비열한 놈과 같은 뜻이었다. 칼을 쓰더라도 ‘죽음에 이를 수 있는 치명적인 급소’는 피하는 것이 불문율이었다. 그래야 경찰 수사를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강남 1970>의 격투 신은 이런 ‘암흑가의 원칙 또는 싸움의 도(道)’는 깡그리 무시한다.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강길수 무덤 앞 진흙탕에서 3개의 깡패조직이 벌이는 난투장면이다. 그 장면을 보면서 ‘나중에 뒷수습을 어떻게 하려고’ 하는 의구심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영화는 ‘남서울계획’으로 상징되는 한국 근대화의 일방적 폭력성, 수직적 불평등을 거칠게 드러내 묘사하고 있다. 영화에 언급되는 최고 권력자는 ‘김부장’으로 상징되는 중앙정보부장이다. 어쩌다보니 개인적으로는 유하 감독의 강남 3부작-<말죽거리잔혹사>(2004), <비열한 거리>(2006), <강남 1970>-을 모두 리뷰한 셈이 되었는데, 미래의 부재에서 오는 불안, 폭력을 통한 갈등 해소, 욕망의 왜곡된 실현, 최종적으로 주인공의 패배 내지는 서사에서 배재로 귀결된다는 공통점이 눈에 띈다.

터치스크린

<강남 1970>의 보도자료를 보면 일본과 중국, 홍콩, 대만, 싱가포르, 캐나다, 미국 등에서 동시 개봉한다. 꽤 화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두 배우는 왕년의 주윤발과 장국영처럼 여기저기서 ‘코리안 느와르’의 아이콘으로 호명될 것 같다. 게다가 가수 싸이 덕분에 ‘갱남’(gangnam)에 대한 관심의 여진도 아직 남아 있을 테니. 굳이 비유를 하자면 21세기의 강남은 과거를 세탁한 성형미인이라 할 수 있다. 얼핏 암시되었던 싸이의 뮤직비디오를 넘어, 이제는 거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는 강남의 맨얼굴을 영화는 조금은 거칠지만 직설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