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수의 도시 이미지 읽기]결코 안전하지 않는 ‘고위험 사회’

국가가 반드시 이행해야 할 고도의 책무인 ‘안전’이 어느덧 집권자와 여당의 번지르르한 홍보용 수식어로 전락하고 만 상태다.

오래전, 딸아이가 어린이집에 다닐 때 얘기다. 우리 부부는 딸아이를 서울 강북의 평범한 아파트단지 1층에 있는 어린이집에 보냈다. 하루는 인근의 공원에서 야외 놀이체험을 하게 되었다.

그날따라 늦게 일어난 우리 부부는 어린이집에 전화를 해서 딸을 직접 공원으로 데리고 가겠다고 했다. 부랴부랴 서둘러 그렇게 하였는데, 그러다 보니 어린이집 차량보다 몇 분 일찍 도착하게 되었다. 봄볕이 따스해서 우리도 아이와 함께 풀을 밟으면서 기다렸다. 잠시 후 어린이집 차가 도착했다. 큼직한 카니발 차량이었다. 운전을 해온 선생님이 안전하게 차를 주차한 후 반대편으로 가서 또 안전을 거듭 확인하고는 다른 선생님과 함께 아이들을 하차시켰다. 아이들이 하나둘씩, 다섯여섯씩, 일곱에 여덟에, 급기야 열하나 열둘씩 내렸다.

아이의 손을 선생님들께 넘겨주는 순간, 운전해 온 선생님이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큼직한 차량이라 해도 어른 포함하여 꼬마아이들이 무리하게 십수명씩 타고 온 것을 부모에게 들킨 셈이 되어 몸 둘 바를 몰라 했다. 나는 굳은 표정을 숨길 수는 없었지만, 일단 모른 체했다. 아이들 앞에서 뭐라고 따질 수도 없었고 선생님의 표정에서 사과와 민망함이 역력히 보였기 때문이다. “늦은 애가 있어서, 그 앨 데리러 한 대가 가는 바람에. 귀원할 때는 두 대로 움직일 거니까, 걱정마세요.” 선생님은 진심으로 미안해하며 그렇게 말했고 우리 부부는 저마다의 일에 쫓겨 그 자리를 벗어났다.

/정윤수

근시안적이고 졸속적인 사후약방문
11년 전 일인데, 그때는 요즘과 같은 보육과 복지 얘기도 드물었다. 그랬는데 사정은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최근 인천의 어느 보육교사가 저지른 아동폭력 사태에 의하여, 이와 관련한 검·경의 긴급 조치와 언론의 후속보도가 연일 이어지고 있다. 대체로 “경찰은 도내 전체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대상으로 피해 실태조사에 착수했다. 일선 경찰서의 ‘아동학대 전담팀’은 지자체 관계자들과 함께…”로 요약되는 사후 긴급 방략들이다. 이와 동시에 어린이집을 포함하여 웬만한 보육 및 교육시설에 CCTV를 보완하고 나아가 일상생활의 곳곳에 CCTV와 같은 기계적 안전시설을 확충하는 쪽으로 정부 정책과 여론 향방이 일궤를 이루며 치닫는다.

이것이 근시안적이며 여론추수적인 졸속 방략이라는 것은 두 말할 것도 없다. 어린이 보육을 포함한 전 연령 세대와 빈곤계층과 낙후지역에 대한 총체적인 ‘돌봄정책’은 국가가 전면적이고 필수적으로 추진했어야 할 ‘복지정책’의 골간이거니와 우리의 국가는 이에 대하여 장기적인 대책 없이 각종 선거의 ‘이슈 선점 대상’으로만 여기고, 사건이 발생할 경우 ‘발본색원’하거나 ‘CCTV 추가 설치’ 같은 빈곤한 철학으로 대응해 왔다.

모든 문제를 단지 현실의 ‘박근혜 정부’만이 아닌 국가 일반의 문제로 환원하는 것은 무리수이지만, 이번 사태에 있어 다시 한 번 국가(여기서는 확실히 ‘박근혜 정부’를 강하게 포함한다) 그 자체를 문제 삼지 않을 수가 없다.

지난 1일, 타계한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대표작 <위험사회>에서 산업화와 근대화를 통한 과학기술 발전이 물질적 풍요와 함께 미증유의 위험사태를 동시에 몰고왔다고 진단했다. 예측과 방어가 가능한 과거의 ‘자연적 위험요소’에 비해 경악할 만한 과학기술과 관료주의가 결합된 현대의 위험요소는 예측과 대비가 사실상 불가능한 기술주의의 위험, 즉 ‘인위적 불확실성의 위험’이라고 그는 강조했다.

/정윤수

부패 때문에 제대로 작동 못하는 사회
이 책을 국내에 번역 소개하고, 동시에 그것을 국내의 상황에 비판적으로 적용해온 홍성태 교수(상지대)는 “벡의 일반이론에 더하여 우리 사회는 국가가 총체적 비리의 핵심이 되는 ‘후진적 위험사회’”라고 진단했다. “제도와 기술이 제대로 작동해도 문제인 판에 그마저도 부패 때문에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는” 사회가 곧 한국 사회다. 우리는 그 비극적인 양상의 처참한 극단을 ‘세월호 참사’를 통해 확인하였고, 또한 그 위험사회의 일상적 양상을 이번 어린이집 아동학대를 통해 다시 한 번 확인하였던 것이다.

이럴 때, 정상적인 국가라면 ‘위험’의 본질을 통찰해야 하는 것이다. ‘발본색원’과 ‘엄단’은 국가가 이 모든 사태의 책임을 지엽말단의 개인에게 덮어씌우는 것일 뿐이다. 수차례에 걸쳐 이 정부의 냉정한 ‘쌩얼’을 확인한 무기력한 개인으로서는 ‘CCTV 확충’ 이상의 요구를 하지 못하게 되었다. 살벌한 ‘민낯’을 한 국가는 ‘복지’를 ‘선거용 선심’ 정도로 여길 뿐이다.

나는 국가의 민낯을 도처에 나부끼는 집권여당의 현수막에서 생생하게 보았다. 국가가 반드시 이행해야 할 고도의 책무인 ‘안전’이 어느덧 집권자와 여당의 번지르르한 홍보용 수식어로 전락하고 만 상태다.

이미 17세기 초에 토머스 홉스는 <리바이어던>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주권자는 법을 제정하고 폐지하는 권한을 보유하기 때문에, 자신을 난처하게 하는 법이 있다면 이를 폐지하고 새 법을 만들 수 있다. 즉 원하지 않는 법으로부터 언제든지 벗어날 수 있기 때문에 처음부터 그 법의 적용대상이 아닌 것이다.”

정윤수의 도시 이미지 읽기

21세기의 대한민국에서 ‘주권자’는 헌법에 명시된 국민이 아니라 저 17세기 절대주의 왕정 시기의 주권자에 머물러 있다. 지금 국가는 안전과 복지와 행복을 오직 선거용으로만 맘껏 활용하고 있다. 결코 안전하지 않은 ‘고위험 사회’의 거리마다 허울뿐인 안전 현수막과 CCTV만이 창궐하고 있다.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