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원의 에브리컬처]김치 비하? 정색하는 게 더 쪽팔려

영화 <버드맨>의 ‘엿 같은 김치 냄새’ 대사는 한갓 ‘지나가는 사람 47번’ 정도의 의미 및 중요성밖에 가지지 못한다. 그건 그저 샘이라는, 말조심 같은 거 전혀 할 줄도 모르고 그런 거 할 생각도 없는 캐릭터가 내뱉은 수많은 독설 중 하나일 뿐이다.

이미 많은 이야기들이 나왔겠고, 또 지금도 계속 나오고 있을 것이어서, 이 얘기가 잡지에 실릴 때쯤엔 이미 두세 물쯤 간 지루한 얘기가 되어 있을지도 모르겠다만, 그래도 쓰는 이른바 ‘<버드맨>의 김치 비하대사’에 대한 얘기.

뉴욕 일상 속의 음식이 된 김치
이 문제가 된 대사와 장면은 영화의 맨 첫 부분에 등장하는데, 그 내용은 이렇다.

마이클 키튼이 연기하고 있음으로써 대단히 배트맨을 연상시키고 있다만, 정작 마이클 키튼 본인은 자신과는 거의 상관없는 상상력의 소산이라 주장하고 있는, 영화 속 가상의 슈퍼히어로 무비 ‘버드맨’의 주연이자 이 영화의 주인공 ‘리건 톰슨’은 꽃을 사오라고 심부름을 보낸 친딸 겸 개인비서 ‘샘’과 영상통화를 하게 되는데, 사오라고 했던 꽃이 뭐냐고 아빠에게 물으려는 딸 옆에서 계속 뭔가를 어쩌구저쩌구 하던 한국인 꽃가게 주인장(크레딧에는 ‘Korean Grocer’로 표기되어 있음)에게 딸은 “닥쳐요!”라고 버럭 사자후를 토한다. 그리고 “뭔가 좋은 향이 나는 꽃을 사오라”는 아빠에게 “(꽃들이) 전부 씨발 김치 같은 냄새가 나요”(It all smells like fucking 김치)라고 일갈하는데, 그 와중에도 이 동양인 가게 주인은 딸 옆에서 눈치코치 없이 끝없이 뭔가 중얼중얼거리고, 딸은 “아빠 비서 짓 정말 싫어”라는 한마디와 함께 전화를 끊는다.

내가 이 장면을 보자마자 떠올렸던 생각은 ① 배우(엠마 스톤)의 김치 발음이 매우 정확하다(‘킴치’도, ‘기무치’도 아닌, 정확한 ‘김치’였다) ② 그런데 대사하는 두 사람 모두 김치의 냄새를 당연하다는 듯 알고 있는 이 설정을 보니, 이제 뉴욕에서 김치는 거의 일상 속의 음식이 되었나 보네? 였다. 그리고 영화가 끝날 때까지 이 장면은 완전히 망각의 뒤안길로 사라져버렸는데, 이는 물론 내가 극히 휘발성 높은 기억력의 소유자이기 때문인 탓도 있겠다만 그보다 이 대사를 날린 ‘샘’ 캐릭터가 그 이후로 김치를 언급하거나, 특정 음식을 욕하거나, 한국인을 포함한 유색 인종을 비하하는 등등의 의도를 드러내는 장면이 없었기 때문이다.

영화 <버드맨>에서 건물 난간에 앉아 있는 마이크와 샘. | 폭스 서치라이트 픽처스 제공

오히려 이 ‘샘’ 캐릭터가 비하하고 증오하는 것은 그녀의 아빠와 그녀 자신이다. 딸의 곁에 있어주지 못한 과오를 만회하기 위해, 어렸을 적부터 끝없이 ‘너는 특별하다’라는 말을 그녀에게 주입시켰던 아빠를 둔 데다, 어쩌다 보니 마약중독 치료재활시설까지 갔다 오고, 지금은 그런 아빠의 비서 노릇까지 하고 있는 그녀다. 하여 ‘샘’은 아빠의 면전에 대고 ‘아빠 연극 보러 오는 늙은 부자 백인들은 연극 끝나고 어디로 커피 마시러 갈지밖에 생각 안 한다, 아빠 연극에 신경 쓰는 건 아빠밖에 없다, 아빤 한물 간 스타고 아빠를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등의 언어폭행을 서슴지 않는다. 그러고 나서는 자기혐오에 빠진 자살 일보 직전의 사람처럼 고층건물 난간에 아슬아슬하게 걸터앉아 있기를 일삼는 등등, 외로움과 상처를 무관심과 냉소로 중화시키려 헛되이 애쓰는 어른아이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인다.

뿐인가. 영화 그 자체 또한 다른 수많은 것들을 혐오하고 비하하느라 바쁘다. 주인공 ‘리건 톰슨’은 자기 연극을 보지도 않은 주제에 혹평을 써서 파멸시키려는 뉴욕 타임스의 유명 평론가에게 “대체 어떤 인생이 평론가 따위가 되는 거지?”라고 야유하고, 그의 후배 겸 동료배우는 평론가에게 대놓고 “예술가가 되지 못한 평론가는 군인이 되지 못한 정보원과 같다”라는 말을 들려준다. 이 두 배우에 의해 ‘조금 전에 노숙자 똥꼬를 핥은 것 같은 얼굴’이라고 묘사된 이 여성 평론가는 리건 톰슨에게 ‘진짜 예술을 만들기 위한 대가는 전혀 치르지 않은 주제에 예술판에 숟가락 불쑥 들이미는 연예인 나부랭이’를 철저히 파멸시키겠노라고 반격한다.

또한 리건 톰슨이 종종 골룸화되며 자아분열을 일으킬 때 등장하는 또 다른 자아인 ‘버드맨’은 할리우드 슈퍼히어로 영화 및 그 팬들을 ‘염세주의 흉내 좀 내주고 화려한 폭파장면 몇 장면 넣어주면 전 세계의 여드름 난 어린애들이 질질 짜면서 열광한다’라며 비하한다. 하긴 이 대사가 나오기 훨씬 전부터 ‘버드맨’은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인터뷰를 예고하는 TV 연예뉴스 장면을 보면서 ‘너(즉 주인공)보다 훨씬 못한 좆밥들이 네 몫을 다 가로채고 있다’며 속삭이고, 이에 화답하듯 주인공도 제레미 레너에게마저도 기어이 슈퍼히어로 슈트를 입히는 할리우드에 대한 혐오를 감추지 않는다. 주인공의 동료이자 건방지기 짝이 없는 자아도취형 후배 배우인 ‘마이크’는 한 술 더 떠 슈퍼히어로 영화를 ‘문화적 대량학살’(cultural genocide)이라며 대놓고 침을 뱉는다.

국영방송까지 나서는 과잉반응
나아가, 주인공을 인터뷰하러 온(아마도 연예 전문) 기자는 롤랑 바르트 얘기가 나오자 “<버드맨> 몇 편에 나온 캐릭터예요?”라고 묻고, 한 술 더 떠 바르트가 프랑스 철학자라 일러주는 말에도 전혀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으며 “그런데 팽팽해지려고 새끼돼지 정액주사를 맞은 게 사실이에요?”라며 무뇌인적 질문을 계속 이어간다.

등등등등….

<버드맨>이 공격하고 비하하고 비방하고 혐오하고 있는 대상은 대충만 정리해도 ① 부유하고 늙은 백인 연극관객 ② 뉴욕 타임스의 연극 평론가 ③ 또는 세상의 평론가들 전부 ④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⑤ 제레미 레너 ⑥ 그들이 출연한 슈퍼히어로 영화들 ⑦ 또는 슈퍼히어로 영화 전부 ⑧ 또는 그걸 만든 할리우드판 전체 ⑨ (아마도 연예 전문) 기자 ⑩ 그리고 등장인물 자신들 등등등 열 손가락을 모두 채울 만큼 많다. 그리고 보셨다시피 그 공격-비하-비방-혐오 발언들은 전혀 에둘러가는 법 없이 신랄하고도 직설적이다.

이런 화려한 비방과 비하의 향연 속에서 ‘엿 같은 김치 냄새’ 대사는 한갓 ‘지나가는 사람 47번’ 정도의 의미 및 중요성밖에 가지지 못한다. 그건 그저 샘이라는, 말조심 같은 거 전혀 할 줄도 모르고 그런 거 할 생각도 없는 캐릭터가 내뱉은 수많은 독설 중 하나일 뿐이다. 이 정도는 비방이나 비하의 축에도 끼지 못한다. 그거 말고도 이 영화가 비방-비하-공격-혐오하는 재료들은 주체할 수 없도록 차고도 넘치니까.

그런 마당에 우리나라 국영방송의 뉴스까지 나서서 ‘인터넷 소식’이라며 “네티즌들은 ‘그런 대사는 지나치네요’ 등의 반응을 보였습니다”라며 이 대사가 공분해 마땅한 민족 존엄에 대한 도발이라는 식으로 공언하는 것은 심히 쪽팔린다. 피식 웃어넘길 일에 정색하고 분노하기야말로 스스로를 비하하고 격하시키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한동원의 에브리컬처

뭐, 피식 웃음으로 부족하다면 영화 보면서 ‘김치 맛도 모르는 미개한 것’이라 직접 대놓고 비웃어주는 것도 괜찮겠다. 아닌 게 아니라 영화 자체는 꽤 쓸 만하니까.

<한동원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