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치스크린]추억의 마니-지브리 애니메이션의 새 이정표

제목 추억의 마니

원작 조앤 G 로빈슨, When Marnie Was There (1967)

각본/감독 요네바야시 히로마사

러닝타임 103분

관람등급 전체관람가

개봉 2015년 3월 19일

지브리 스튜디오의 애니메이션들은 어두운 스토리를 감추고 있다. 마냥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듯한 <이웃의 토토로>(1988)의 ‘토토로’는 요괴 혹은 괴물이다. 토토로라는 이름은 주인공 사츠키의 여동생 메이가 “너 이름이 뭐니”라고 묻는 말에 괴물이 내는 괴성(!)을 듣고 붙인 이름이다. 토토로의 존재와 무관하게 영화의 절정부는 메이의 실종 스토리를 다루는데, 언젠가 언급한 것처럼 토토로의 도움으로 찾을 수 있었다…는 영화의 행복한 결말과 다른 비극적인 엔딩 암시가 곳곳에 남겨져 있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지브리를 대표하는 작가쯤으로 되어 있지만, 또 한 명의 사람이 있다. 바로 다카하타 이사오다. 1988년 나온 지브리의 대표작은 <이웃의 토토로>만 있는 것이 아니다. 또 하나의 작품은 지금까지도 동북아시아에서는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다카하타 이사오의 <반딧불의 묘>다. 영화는 “소화XX년, 나는 그곳에서 죽었다”는 유령 오빠의 독백으로부터 시작한다. <이웃의 토토로>가 <반딧불의 묘>로부터 수년 내지는 10여년쯤 후 시골로 이사한 자매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면, <반딧불의 묘>는 패전 후 굶어죽은 남매를 주인공 삼아 전쟁의 참혹함을 고발하는 작품이다.

지난해 일본 개봉 후 드디어 한국에서 개봉한 <추억의 마니>는 여러모로 지브리로서는 이정표에 해당하는 작품이다. 어떤 형식으로든 개입해 왔던 두 거장-미야자키 하야오와 다카하타 이사오가 완전히 빠진, 말하자면 지브리 2세대의 작품이다. 영화사 측으로서는 그래도 ‘미야자키 하야오’ 마케팅을 뺄 수는 없었는지 미야자키 하야오가 영화의 원작소설(영국 아동작가 조안 로빈슨의 소설 )를 읽고 강추를 날렸다고 보도자료에 적고 있지만, 미야자키가 연출한 <바람이 분다>(2013)와 다카하타가 연출한 <가구야 공주 이야기>(2013) 이후 그들은 크레딧에서 완전히 빠졌다. 감독은 <마루 밑 아리에티>를 연출했던 요네바야시 히로마사.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수적이고 무난한 선택이라는 느낌이다. 작화풍은 전통적인 지브리의 형식을 그대로 따랐다. <이웃의 토토로>로 성공하기 전, 지브리는 애니메이션 세계명작극장과 <미래소년 코난> (1980)과 같은 TV시리즈의 연출로 유명했다. 원작소설의 무대를 삿포로와 홋카이도라는 일본으로 옮겨왔지만, 과거 세계명작극장의 주인공들처럼 주인공들은 국적불명의 이국성을 보여주고 있다.

터치스크린

중학생 주인공 ‘안나’의 눈이 푸른색인 것도 눈에 띈다. 영화 속 설정에는 습지 저택의 전 주인들이 외국인이었다는 동네 풍설을 전하는데, 그들이 파티를 하는 모습을 보면 ‘전형적인 서구를 동경하는 일본인들’의 행동거지를 담고 있는 것도 재미있다. 무엇보다도 인상적인 것은 주인공 소녀 안나와 마니의 비밀을 풀어가는 데 동참하는 소녀 사야카의 외모가 과거 지브리의 이름을 세상에 알렸던 <이웃집 토토로>의 사츠키와 메이를 떠올리게 한다는 것이다. 토토로의 사츠키는 초등학교 4학년이었고, 메이는 취학 전 아동이었으니 사츠키가 중학생이 되고 메이가 초등학교 저학년으로 성장한 느낌? 사춘기 소녀의 성장통을 다룬다는 측면에서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2001)이나 <귀를 기울이면>(1995)과 비슷한 면이 있지만, 또래의 남자애가 아닌 비밀을 공유하는 소녀들의 이야기를 다룬다는 측면에서는 최근 자매애를 강조하고 있는 추세(디즈니의 <겨울왕국>(2013)을 보라)를 반영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그럭저럭 지브리가 만들었다면 기대되는 딱 그만큼을 뽑아낸 영화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