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식의 사회]금리인하, ‘프로’들은 전혀 놀라지 않았다

디플레이션은 ‘막연한 가능성’이 아니라 지금 바로 우리 옆에 와 있는 것이다. 그런데 통화정책이 가만히 있겠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그래서 기술자와 프로들은 전혀 놀라지 않았던 것이다.

3월 12일 한국은행은 전격적으로 금리를 2%에서 1.75%로 0.25%포인트 인하했다. 필자는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 한국은행의 통화정책을 오랫동안 지켜본 소위 ‘기술자’들도 거의 놀라지 않았을 것이다. 놀란 것은 언론과 정치권이다. 어떤 이들은 가계부채 폭증을 우려하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금리인하 때문에 집 없는 서민이 더 어려워질(?) 것을 염려했다. 어떤 이들은 정부가 금리인하를 노골적으로 요구했다면서 한국은행의 독립성이 훼손된 것을 개탄했다. 또 어떤 이들은 조만간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 정책 때문에 해외 금리가 상승할 가능성이 있는데, 지금 금리를 내리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어떤 주장들은 맞지만 어떤 주장들은 번지수를 잘못 짚은 것들이다. 하나씩 보기로 하자.

한국은행이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를 열어 기준금리를 종전 연 2.00%에서 1.75%로 내린 3월 12일, 서울 남대문로 한국은행에서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금리인하 배경 등에 대해 설명한 후 간담회장을 빠져나가고 있다. / 김정근 기자

물가상승률 사실상 음수에 도달
우선 왜 ‘기술자’와 ‘프로’들은 이번 금리인하를 보고 놀라지 않았을까? 물가상승률이 사실상 음수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아직 공식적으로 발표되지는 않았지만 작년 우리나라 GDP 디플레이터는 하락했다. 문자 그대로 물가수준 그 자체가 하락한 것이다. 소비자물가 상승률도 담뱃값 인상분을 제외할 경우 전년 동기 대비 기준으로 음수를 기록했다. 디플레이션은 ‘막연한 가능성’이 아니라 지금 바로 우리 옆에 와 있는 것이다. 그런데 통화정책이 가만히 있겠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그래서 기술자와 프로들은 전혀 놀라지 않았던 것이다.

자, 이제부터 여러 사람들의 주장을 꺼내서 하나씩 먼지를 털어 보자.

우선 한국은행 주장부터 보자. 한국은행은 올해 연초에 물가보고서를 발표하면서 권말에 디플레이션에 대한 소고를 수록했다. 결론은 “예측 가능한 시계에서 디플레이션은 없다”는 것이다. 금리인하를 발표할 때도 이주열 총재는 현 상황이 디플레이션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물가상승 기대가 아직도 2%대라는 것이 그 논거다. 참으로 희한한 논리가 아닐 수 없다. 실제 물가수준은 하락하고 있는데 그것을 보지 않고, 사람들의 기대가 아직 2%이니 디플레이션이 아니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 물가가 마구 오를 때도 사람들의 기대가 이를 미처 따라잡지 못하면 인플레이션이 아니란 말인가.

이걸 테스트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내년도 물가상승률 목표를 잘 정하는 것이다. 한국은행 말처럼 현재의 저물가가 공급측면에서 기인한 일시적 현상에 불과하고 진정한 디플레이션이 아니라면, 향후 3년 동안의 중기 물가안정 목표를 지금처럼 2.5~3.5%로 정하면 된다. 다만 이번에는 확실하게 못 박기 위해서 만일 한국은행이 이 목표를 못 지키면 한국은행 총재와 금통위원 전부가 그동안에 받은 봉급의 3배를 반납하게 만들면 된다. 디플레이션이 아니라는 주장에 자신이 있다면 봉급을 걸어 보라는 것이다. 아마도 한국은행은 못할 것이다.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물가안정 목표를 낮추려고 할 것이다. 왜냐고? 우리도 알고 한국은행도 알 듯이 디플레이션은 바로 우리 옆에 이미 왔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가계부채 폭증 우려를 살펴보자. 이 우려는 타당한 지적이다. 따라서 금리인하와 함께 반드시 가계부채의 총량과 건전성을 살피는 별도의 정책적 노력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경제는 폭탄을 키우는 폭탄공장이 될 것이다. 이런 노력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특히 기획재정부는 부동산경기 활성화라는 헛꿈을 버리고 빨리 가계부채 총량을 통제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가계부채는 ‘관리 가능한 수준’을 빠르게 벗어나고 있다. 그것도 부동산 담보대출이라는 가장 경제시스템에 안 좋은 형태로 증가하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신제윤 전 위원장의 식언을 깨끗이 시인하고 지금부터 건전성 관리모드로 선회해야 한다. 대통령이 바로 1년 전에 처분가능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을 2017년까지 5%포인트 낮추겠다고 했는데, 도대체 장관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대통령이 국민을 상대로 거짓 발표를 했을 리 없으니 지금 상황은 장관들의 집단 항명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가계부채 폭증 우려’는 타당한 지적
그 다음 주장부터는 번지수를 잘못 짚은 것들이다. 금리를 내려서 집 없는 서민들이 어렵다는 주장을 보자. 이 주장의 맥락은 다음과 같다. 금리를 내리면 집주인이 전세를 받아서는 이자소득이 안 나오니 월세로 전환해서 높은 월세를 세입자에게 물리기 때문에 금리인하가 서민을 울린다는 것이다. 이것은 이자율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월세전환율이 이자율과 괴리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따라서 월세전환율을 실제 이자율에 근접시키는 정책적 노력이 필요한 것이지, 이 때문에 금리를 그냥 내버려 두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진정 서민의 주거복지를 걱정한다면 이런 주장을 할 것이 아니라, 주택가격 띄우기에 여념이 없는 정부에 그런 헛꿈에서 깨어나서 지금보다 임대주택을 더 많이 짓도록 요구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은행의 독립성 훼손을 걱정하는 것은 겉으로는 멋있어 보이지만 정말로 방향을 잘못 잡은 대응이다. 이런 반응은 특히 야당 정치권에서 많이 나오고 있는데, 상황의 심각성을 모르는 한가한 소리에 불과하다. 지금 문제의 핵심은 한국은행이 한은법의 의무를 돌보지 않고 거짓말을 해 왔다는 것이다. 물가가 떨어지고 있는데 디플레는 아니라고 우기면서, 심지어는 은근슬쩍 경제전망치까지 ‘마사지’하고 있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그런데 잘못한 한국은행을 나무라는 것이 독립성을 훼손하는 것인가. 지금 야당이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은 한은법을 어기고 물가안정 의무를 노골적으로 방기하고 있는 한국은행에 대해 엄정하게 책임을 추궁하는 것이다. 한국은행의 독립성은 한국은행이 본연의 임무를 잘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지 일탈을 정당화하기 위한 도피처가 되어서는 안 된다.

비상식의 사회

마지막으로 해외 금리인상과 그에 따른 자본유출 우려 때문에 금리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시각도 동의하기 어렵다. 금리인상으로 자본유출을 방어하겠다는 것은 변동환율제의 기본을 버리겠다는 것이다. 우리가 변동환율제를 하는 가장 기본적인 이유는 통화정책을 국내 경제상황에 활용하기 위해서다. 자본유출이 있다면 그것은 기본적으로 원화 절하로 대응할 문제다. 외환시장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미국, 일본의 중앙은행과 통화스와프 협정을 다시 추진하는 것도 필요하다. 통화정책은 기본적으로 국내 경기를 돌보는 데 사용하는 것이 맞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