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노동시장, 소비시장 넘어서는 제3의 공간 필요”

책 <모멸감> 쓴 김찬호 성공회대 교수, ‘여백 없는 한국사회’ 지적

취업부터 퇴직까지 한국 사회는 노동자에게 모멸감을 견딜 것을 강요하고 있다. 대학생들의 취업 스터디 중에 ‘모욕 스터디’가 있다. 면접과정에서 드러날지도 모르는 취약한 부분에 대해 모욕을 주고, 이를 어떻게 대처할지 미리 훈련하는 스터디다. 예컨대 “외모 때문에 고생 좀 하겠어요” “그 나이 되도록 뭐했어요?”라는 인신공격적 질문에 대한 대응력을 키우는 것이다. 취업부터 모욕을 견딘 노동자들은 퇴직과정에서도 모욕을 견뎌야 한다. ‘성과 향상’이라는 미명하에 자신의 업무와 관계없이 봉사활동을 강제하거나 쓰레기를 줍게 하거나 낯선 곳에 가서 명함을 돌리게 한다. 결국 모욕감을 견디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스스로 퇴직을 선택하게 만드는 것이다. 김찬호 성공회대 교양학부 초빙교수는 그의 책 <모멸감>에서 감정은 “시대를 지배하는 정서적 문법”이라고 말했다. 노동의 시작부터 끝까지 ‘모욕’ ‘모멸’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들이 우리 사회를 극단적으로 지배하게 된 데 대한 김찬호 교수의 분석을 들어봤다.

김찬호 성공회대 교수. / 김문석 기자

노동자들에게 모멸감을 줘 결국 퇴직으로 이어지게 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실제로 저성과자들 중에 모멸감을 느껴 자살하는 경우도 있다. 경영자들이 모멸감을 주는 방식으로 퇴직을 유도하는 것은 직원들을 솎아내는 방식으로 그것이 가장 효율적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사람에게 모멸감을 주는 것은 법적으로는 크게 문제가 안 되면서 사람을 굴복시키는 효과를 낼 수 있다. 예를 들어 해고하고 싶을 때 책상을 치워버린다. 자존감이 떨어지면서 직장에서 짐이 되는 존재로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인간이 가장 비참해질 때가 자신이 쓸모 없는 존재가 됐다고 생각할 때다. 내가 왜 여기 있어야 하나 그런 생각을 갖게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이 점점 노골화되고 있다.
“신자유주의가 본격화되면서 한국 사회의 여백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지하철에서 내려야 하는데 문이 닫히려고 한다면 순간적으로 옆에 있는 사람이 사람으로 안 보인다. 자기가 급하기 때문에 밀치고 가는 것이다. 한국 사회의 고도 압축성장 과정이 끊임없는 비교우위를 통해서만 살아 있는 것을 느끼게 하는 식의 게임을 했다. 재벌 총수도, 기업주도, 그들의 명령에 따라 해고통지를 날리는 사람들도 다 그 게임에 몰려 있는 것이다. 살아남아야겠다는 생존투쟁이 절박하다 보니까 전철에서 빨리 내려야 한다는 급박한 심리밖에 남지 않은 것이다.”

노동자의 ‘쓸모’가 단기적인 성과 위주로 점점 협소하게 평가되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노인의 삶만 봐도 그렇다. 예전에는 ‘나이가 많다’는 것만으로도 존중받을 수 있었는데 지금은 아니다. 노동도 마찬가지로 제한된 일정한 기능으로 성과를 낼 때만 쓸모가 있어지는 사회가 됐다. IMF사태 이후 단순한 기능으로 환산할 수 없는 다양한 가치들이 다 해체됐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나.
“‘사회를 어떻게 다시 만들까’를 고민해야 한다. 사회라는 말은 쉬운 말 같지만 한국에는 사회가 없다. 노동시장, 소비시장 두 가지로만 이루어진 게 한국 사회다. 이걸 넘어서는 제3의 공간이 있어야 한다. 배움과 성장, 자존감과 유대감, 신뢰가 가능한 공간이 있어야 한다. 노동시장에서 인정받지 못했어도 이러한 제3의 공간에서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한다. 제3의 공간의 힘이 세지면 역으로 기업들이 노동자들에게 모멸감을 주거나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 노동시장에서 죽도록 일하고 소비시장에서 술 마시며 푸는 2개의 공간을 넘어선 제3의 공간이 필요하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