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사 25년차 차장 사원이 행낭함에서 각 부서별 우편물을 분류한다” 이것이 ‘전략적 성과관리 프로그램’일까? 아니면 ‘개인의 자존심을 짓밟아 퇴직 강요하기’일까? 기업들이 노골적인 정리해고 대신 모욕감과 수취심을 자극해 자진 퇴출을 유도하는 치졸한 꼼수를 쓰고 있다.
‘C-player’. 기업의 성과 향상 프로그램이 타깃으로 삼는 직원들이다. 기업은 보통 직원을 세 단계로 분류한다. A-player, B-player, C-player. A-player는 성과와 역량 기준으로 상위 10%에 해당하는 집단. 소위 핵심 인재다. B-player는 약 80% 정도로 일반적인 직원의 그룹을 의미한다. C-player는 성과와 역량 기준으로 하위 10%에 속하는 직원 집단이다. 흔히 저성과자로 표현되며 퇴출도 고려되는 직원이다. 최근 들어 기업에서 이들 C-player들을 대상으로 하는 성과 향상 프로그램(PIP·Performance Improvemenet Program)이 논란이 되고 있다.
기업들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는 성과 향상 프로그램이 용어 그대로 저성과자 직원의 성과 향상을 목표로 하기보다는 퇴직을 강요하고 구조조정을 우회하는 수단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여의도 증권가. / 연합뉴스
저성과자 관리제도, 해고 명분으로 활용
IMF사태 이후 한국 사회에서는 구조조정, 정리해고 등 집단을 중심으로 한 고용 유연화가 빈번히 이루어졌다. 그러나 집단을 대상으로 할 경우 대형 노사분쟁이 발생하는 등 기업들도 부담이 컸다. 그 결과 기업에서는 집단이 아닌 개인을 대상으로 한 고용 유연화 전략을 강화하게 됐다. 그 중심에 있는 게 C-Player를 대상으로 한 성과 향상 프로그램이다.
지난 3월 23일 국회에서는 <베이비붐 세대 절망 없는 희망퇴직 사례 발표회>가 열렸다. 이 발표회에서는 대신증권에서 희망퇴직을 강요한 사례가 발표됐다. <대신증권의 전략적 성과관리 체계 및 ODS를 활용한 희망퇴직 강요사례> 보고서는 대신증권에서 시행한 전략적 성과관리가 ‘개인의 인격적 자존심을 짓밟아 잔류 의지를 상실시키는’ 식으로 이루어졌다고 비판했다. 성과관리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노동자들의 고립, 공포, 굴욕, 수치감을 자극해 노동자들이 결국 퇴직을 선택하게끔 유도했다는 것이다. 대신증권에서 전략적 성과관리 프로그램의 대상자인 임천수 차장은 2013년 11월부터 2014년 5월까지의 7개월을 어떻게 버텨냈는지 모르는 시간이었다고 전한다. 대신증권의 성과관리 프로그램 3차 과정이 진행된 시기였다. “그때 사람들이 자살을 왜 하는지 알겠더라. 성격이 낙천적인 편이어서 사실 자살하는 사람들을 떠올리면 살지 왜 자살하나 그런 생각을 했다. 더군다나 자식 있는 사람들은. 그런데 너무 힘드니까 나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못 견디겠더라. ‘죽어야 하나’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임 차장은 ‘전략적 성과관리 프로그램’을 ‘단계적 괴롭히기’로 표현했다. 1차, 2차, 3차에 걸쳐 단계적으로 괴롭히면서 스스로 회사를 그만두게끔 유도한다는 것이다. “1차는 경제적으로 압박을 한다. 급여가 3분의 1 정도 줄어든다. 자존심이 강한 사람은 이 단계에서 그만두기도 한다. 2차에 들어가면 급여가 절반으로 준다. 도달해야 할 성과를 제시하는데 사실 실현가능한 수치가 아니다. 한마디로 3차까지 가라는 이야기다. 3차는 대기발령 상태다. 이때는 대기발령 상태에서 영업을 못하면서 이런저런 일들을 시키는데, 수치스러운 일들이 많았다.”
3차가 진행되면서 회사는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임 차장에게 명함을 받아오라고 시켰다. 하루에 3명의 사람을 만나고 이를 증명하기 위해 만난 장소에 있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명함을 10개 얻어 오라고 했다. 그는 회사에 항의했다. “내 나이가 50인데 거짓말로 가겠나. 도대체 이게 왜 필요한가.” 회사는 말을 바꿔 훈련 차원에서 주변 중소기업을 방문해 고객을 섭외해 오라고 했다. 임씨는 “실효성이 없는 방법이라는 게 뻔하지만, 어차피 마지막 단계에 와 있는 상태였다.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어 회사가 원하는 대로 해보자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근처 건물에 들어가 층마다 문을 두드렸다. 벨을 누르면 상대는 어디냐고 물었고, 임 차장은 대신증권에서 왔다고 말했다. 무슨 일이냐고 물으면 상품을 소개하러 왔다고 말했다. 대개가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하루 몇 시간 동안 30㎞ 가까이를 걸으며 80개가 넘는 온갖 업체를 돌아다녔다. 그러나 그 많은 업체의 문을 두드렸지만 대화를 나눈 것은 3명밖에 안 됐고, 이 중 상품에 관심을 보인 사람은 1명 정도였다. 그것도 “이율이 어느 정도냐”는 간단한 질문만 하고 “나중에 돈이 생기면 하겠다”는 답변만 받아냈을 뿐이다. 아무 실효성이 없었던 것이다.
명함을 받아내기도 힘들었다. 임 차장이 명함을 내밀어도 자신의 명함을 주는 사람은 극소수였다. “내가 나중에 상품 사라고 귀찮게 전화할까봐 명함을 안 주더라. 80군데를 돌아다녔지만 명함은 8장밖에 못 받았고, 나머지 2장은 음식점 가서 받아왔던 기억이 있다.” 이 기간에 임 차장은 우편물 분류도 했다. 25년차 차장이 시간제 아르바이트 학생과 함께 행낭함에서 우편물을 수거해 각 부서마다 분류했다. 회사 도서관 사서로 근무하기도 했다. 도서관은 식당 옆에 있었다. 밥을 먹으러 내려온 직원들이 도서관에서 사서일을 하는 임씨에게 왜 그 일을 하고 있는지 물어보기도 했다. “설명을 해주는 게 되게 힘들더라. 수치스러웠다.” 이 기간 중 임씨는 점심을 먹지 않았다. 구내식당에서 줄을 서 있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현대중공업 성과향상 프로그램(PIP) 교육. / 금속노조 현대중공업 일반직지회 제공
밖에 나가 사람 만나고 명함 얻어오라
대신증권은 이 프로그램이 역량 강화와 아무 관계없이 모욕감과 수치심을 자극해 퇴출을 종용한다는 논란이 일자 일부 프로그램을 완화해 진행하고 있다. 임 차장은 “어떻게 보면 회사도 이익집단이기 때문에 당연하다는 생각도 들지만, 하는 행위가 너무 치졸하다. 청춘을 바친 회사인데 과거의 업적을 무시하고 현재 상태만 가지고 평가를 하니 배신감이 든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2년째 성과관리 프로그램을 받고 있다. 임 차장은 “성과관리 프로그램을 받게 되면 주식을 계속 보면서 분석을 할 시간이 없다. 그러다 보면 더 감이 떨어지고 시장을 읽을 수가 없는 것이다. 다른 직원들에게 고객을 뺏기고 실력은 더 나빠지게 된다”고 말했다. 결국 성과관리 프로그램이 역량을 강화하는 데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회사 측은 성과관리 프로그램과 희망퇴직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말했다. 대신증권 관계자는 “명함받기 등의 프로그램은 괴롭히려는 게 아니라 영업의 기반을 넓히라는 측면에서 선의로 한 것이고, 영업 스킬을 강화하는 교육을 통해 성과관리 프로그램을 진행한 것이다. 전략적 성과관리가 희망퇴직을 강요했다는 노조의 주장은 근거가 없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성과 향상 프로그램이 퇴출을 유도하는 대표적인 또 다른 경우가 직무전환이다.
희망퇴직 대상자가 자신의 책상에서 컴퓨터, 전화기 등이 없어진 것을 확인하고 촬영한 사진. / 금속노조 현대중공업 일반직지회 제공
기존 업무와 상관없는 부서로 재배치
논란이 되고 있는 기업들의 성과 향상 프로그램 상당수가 객관적인 수치로 드러나는 성과 목표를 제시하거나 기존에 해왔던 업무와 상관없는 부서 재배치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이들이 ‘퇴출’을 목적으로 짜여졌을 가능성이 높음을 보여준다. 2008년부터 논란이 된 KT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KT는 당시 저성과자 직원이나 노조 활동을 하는 직원들을 퇴출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1~2명만 근무하는 섬으로 발령을 내서 논란이 됐다. 해당 직원들에게 업무를 주지 않고 사무실에 책상만 놔두고 시간마다 일기를 쓰고 반성문을 쓰게 해 결국 못 버티고 나가도록 하는 퇴출 프로그램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최근 금융업계를 중심으로 도입되고 있는 ODS 부서로의 직무전환도 마찬가지다. 저성과자 직원의 성과관리 프로그램의 하나로 도입된 ODS(Out Door Sales·외부영업활동) 부서 발령도 실질적으로는 희망퇴직 강요 프로그램이라고 비판받는다. ODS는 태블릿 PC 등에 기반한 현장밀착형 전자영업시스템을 운영하는 것으로서, 삼성증권을 비롯한 다수의 증권회사가 도입을 했거나 추진하고 있다. 일종의 방문판매업을 하는 부서다. 노명래 사무금융노조 HMC투자증권지부 지부장은 지난해 9월 ODS 부서로 발령을 받았다. 직무전환은 실현 불가능한 성과목표와 연동돼 있다. 노명래 지부장의 말이다. “ODS 부서에서는 각 직원들이 월 30포인트를 채워야 한다. 포인트는 신규계좌를 트는 것으로 쌓이는데, 30포인트를 채우려면 한 달에 6개의 계좌를 새로 만들어야 한다. 일주일 평균 1~2개의 계좌를 터야 한다는 것이다. 이게 굉장히 어렵다. 이 포인트를 못 채우면 등급이 떨어지고 대기발령 대상자에 들어가게 된다. 신규계좌를 만드는 데만 신경을 쓰다 보면 기존 고객들을 관리할 시간이 없다. 그러면 기존 고객이 이탈하고 실적은 또 나빠진다. 이것도 6개월마다 평가를 해서 등급이 낮으면 대기발령 대상자가 될 수 있다.” 결국 ODS 부서에서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성과목표를 제시해 직원들이 퇴출되도록 하려는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 성과 향상 프로그램은 합법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일까. 노동계에서는 성과관리 프로그램이 노동자들의 반강제적인 동의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회사의 성과 향상 프로그램은 근로조건을 변경시키는 행위다. 그렇다면 노동조합의 동의를 받는 등의 절차가 필요하다. 그러나 대부분의 기업에서는 반강제적으로 노동자들의 동의를 얻어내거나 무작정 인사발령을 내는 경우가 많다. 현대중공업에서도 성과 향상 프로그램의 첫 단계라고 할 수 있는 성과연봉제 도입을 둘러싸고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현대중공업노동조합에 따르면 2014년 11월 10일 현대중공업은 과장급 이상 사무직노동자를 대상으로 성과연봉제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현대중공업 노조는 “이 발표와 동시에 부서별, 팀별 서명작업에 들어갔으나 서명한 노동자들은 ‘상급자가 서명용지를 내밀며 서명하라고 종용하니 서명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노명래 HMC지부장은 “HMC가 지난 1월 취업규칙을 변경하는데 고과를 D 받은 직원한테는 학자금, 면접기성비, 의료비 등을 줄인다는 것이었다. 회사가 동의서를 네 번이나 돌렸다고 하더라. 반대하는 사람 나오면 동의하게 하려고 그런 건데 한마디로 직원들을 압박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정부의 묵인이 있었기에 가능하다는 지적이다. 김경수 사무금융노조 대외협력국장은 “고용노동부 역시 이러한 부서 신설이나 새로운 저성과자 관리 프로그램의 경우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에 준하는 절차를 거쳐야 함에도 제대로 관리·감독을 하지 않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외려 정부는 묵인을 넘어 한 발 더 나갈 기세다. 최근 정부의 정리해고 요건 완화(취업규칙 변경) 입법화 움직임이 그렇다. 저성과 근로자들을 대상으로 구조조정 요건을 완화한다는 내용으로, 성과 향상 프로그램을 통한 고용 유연화 흐름이 강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현실적으로 실현 불가능한 목표 제시
기업은 정교하게 움직이고 정부는 은근슬쩍 힘을 보태고 있는 상황이지만, 노동계는 이렇다 할 대응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고립, 공포, 굴욕, 수치감에 내몰린 노동자들은 결국 희망퇴직을 선택하게 된다.
권동희 노무법인 새날 노무사는 “성과관리 프로그램에 대해 노동계에서는 직무평가가 객관성·공정성을 잃었다는 추상적인 내용 외에 다른 대응논리가 빈약해 점점 이길 수 없는 싸움이 되어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성과관리 프로그램은 인사관리, 경영학 문제, 직무평가제도에 대해 굉장히 연구를 많이 해야 한다. 기업은 사람을 교육시키고 현업으로 보냈는데도 또 성과가 나지 않았다는 식으로, 겉으로 보기에는 저성과자의 성과 향상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근거를 쌓아가고 있다. 개선이 되지 않았으므로 구조조정 대상자라는 논리다. 단순히 법률적인 사안이 아니다. 인사적인 측면, 기업문화적인 측면, 노동법적인 측면이 같이 연구돼야 한다. 그런데 이게 (노동계에서) 연구가 전혀 안 이루어지다보니 번번이 깨진다. 개별적 사안으로는 도저히 이길 수 없다.”
이는 철학적 문제이기도 하다. 성과 향상 프로그램 자체에 내재돼 있는 성과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과 논쟁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휴먼 이퀘이션>의 저자 제프리 페퍼 교수는 신자유주의가 무분별하게 확산시킨 성과주의 자체의 근본적 한계를 지적한다. 직원을 A-player, B-player, C-player로 구분하며 C-Player를 가차없이 제거한 기업들이 결국 봉착했던 한계를 지적하며 조직 성공의 원천을 ‘비용 절감’이 아닌 ‘사람 중심’에서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경영자에게 묻는다. “직원이란 존재가 회사에 지속적 성공을 가져다줄 원천이며, 다른 경쟁기업들과의 차별화를 이룰 유일한 원천이라고 보는가. 아니면 다른 많은 기업들과 마찬가지로 그들을 단지 절감 혹은 가급적 제거해 나가야 할 원가요인으로만 인식하고 있는가.”
<박송이 기자·백철 기자 psy@kyunghyang.com>
![[오늘을 생각한다]](http://img.khan.co.kr/spko/ranking/weekly/140098/20240424110300_14009801.jpg)
그럼, 국민이 바뀌란 소리냐?
대통령 말씀에 또 답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