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국민안전처’ 제대로 작동하나

세월호 이후 사고에도 정부대응 여전히 미흡… 안전관리보다 현장 대처가 더 중요

3월 13일 전남 신안군 가거도에서 추락한 해경 헬기에는 블랙박스가 설치돼 있지 않았다. 블랙박스가 있었다면 내장된 위치 발신기를 통해 헬기를 빠른 시간 안에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수색 6일 만에야 헬기의 동체가 발견됐다. 블랙박스가 있었다면 사고의 원인 역시 정확하게 밝혀질 수 있었지만 그렇지 못했다.

3월 17일 열린 국회 국민안전혁신특별위원회에서는 국민안전처에 대해 질타가 이어졌다. 국민안전처 홍익태 해양경비안전본부장은 “블랙박스를 다 갖춰야 되는데 수색구조 위주로 장비, 예산 범위 내에서 하다 보니까 갖추지 못한 면이 있다”고 해명했다. 홍 본부장은 18대의 해경 헬기 중 7대의 헬기에 블랙박스가 갖춰져 있지 않다고 답변했다.

지난해 11월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 새롭게 신설된 국민안전처 사무실 앞에서 직원들이 총리를 기다리고 있다. / 김창길 기자

재난 컨트롤 기능 미약 정보공유 안 돼
지난해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국민안전처가 발족하고 재난 대응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여전히 안전사고에 대한 대처가 미약하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해경 헬기가 가거도에 추락한 사건도 세월호 참사 이후 안전사고 대응이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음을 말해준다. 3월 17일 국회 안전혁신특위에서 새누리당 황인자 의원은 “전남 소방본부에서 최초로 (응급환자) 접수를 받았는데 해경 헬기가 떴다”면서 “신고자가 119에 신고했는데 안 된다고 그러니까 다시 해양본부에 전화한 것이 아니냐”고 물었다. 소방과 해경이 서로 정보 공유가 안 되는 이중 시스템을 지적한 것이다. 이성호 국민안전처 차관은 “신고자는 소방헬기를 요청했는데 소방헬기가 기상이라든가 이런 여건상 뜰 수가 없었다”며 “가거도 출장 해경 요원이 다시 해경 쪽으로 연락을 했다”고 해명했다.

세월호 이후에도 참사는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해 5월 전남 장성 요양병원에서 화재가 발생해 21명이 죽었다. 지난해 11월에는 전남 담양의 펜션 바비큐장에서 불이 나 4명이 숨졌다. 지난해 12월에는 러시아 서베링해에서 오룡호가 침몰해 53명의 인명이 손실됐다. 비록 외국에서 일어난 사고였지만 세월호 참사처럼 사전에 안전 감독을 철저히 했더라면 미연에 방지할 수도 있는 사고였다. 지난 3월 22일에는 인천 강화군 동막해수욕장 인근 캠핑장에서 화재가 나 5명이 사망했다. 하지만 사고 후 어디에서도 정부의 대응이 개선됐다는 평가는 나오지 않았다.

국민안전처는 세월호 1주기를 앞두고 3월 30일 관계부처 합동으로 ‘안전혁신 마스터플랜’을 발표했다. 안전처는 5대 전략으로 ‘재난안전 컨트롤 기능 강화’ ‘현장의 재난대응 역량 강화’ ‘생활 속 안전문화 확산’ ‘재난 안전 인프라 확충’ ‘분야별 창조적 안전관리’ 등을 내세웠다. 이 같은 마스터플랜에 대해 참여연대 박근용 협동사무처장은 지난 4월 9일 세월호 참사 1주기 토론회에서 “현장 대응조직의 역량 강화가 시급한데, 정부가 밝힌 ‘안전혁신 마스터플랜’의 추진 로드랩에 따르면 소방대응 인프라 강화, 소방 현장 대응능력 강화, 특수사고 현장 대응능력 강화 등 3개 과제는 2017년 이후 추진되며 해경 현장 대응능력 및 인프라 확충도 2017년 이후 추진된다고 한다”고 비판했다. 박 사무처장은 “물론 예산문제가 있겠지만 이런 중요한 과제가 시급성에 비해 후순위로 밀려나 있다”고 지적했다.

시민사회단체에서는 세월호 참사가 재난에 대한 새로운 대응 패러다임을 요구했고, 그 계기로 국민안전처가 출범한 만큼 세월호 참사에 대한 정확한 진상규명부터 선행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참여연대 이태호 사무처장은 “세월호 참사에서 컨트롤 기능이 왜 작동되지 않았나를 조사해야 하는데 국정조사도 제대로 되지 않았고, 검찰 수사도, 감사원 조사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면서 “무엇이 잘못됐는지를 모르는데 어떻게 마스터플랜으로 재난 대응 컨트롤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지난해 11월 세월호 참사 구조 실패의 책임을 지고 창설 61년 만에 해체된 해경의 간판이 철거되고 있다. 해경은 국민안전처 해양경비안전본부로 편입됐다. / 연합뉴스

“국민안전처가 아니라 재난관리처를”
박두용 한성대 기계시스템공학과 교수는 “세월호 참사 이후 재난 대응 시스템을 제대로 갖추려고 했다면 국민안전처가 아니라 재난관리처를 만들었어야 한다”면서 “재난 대응은 병원으로 치자면 응급실이고 예방 안전은 예방의학교실인데, 지금의 국민안전처는 응급실과 예방의학교실이 합쳐져 있는 조직”이라고 비유했다. 예방 안전은 책임 행정기관에 맡겨 두고 재난관리 부처는 재난관리만 전문적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 박 교수의 주장이다.

국민안전처가 관료적인 옥상옥 기구가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국회 안전행정위의 한 야당 관계자는 “소방관 국가직 전환 같은 안전 관련에 대한 중요한 요구는 국민안전처가 출범한 후 오히려 쑥 들어갔다”며 “여전히 현장보다 관리가 더 중시되는 것이 아닌가 한다”고 말했다.

국민안전처는 ‘안전혁신 마스터플랜’에서 ‘지자체의 안전자치 실현’이라는 구호를 내세웠다. 재난 대응의 일차적 책임기관이며 재난 현장에 근접한 지자체의 재난 대응 역량을 강화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 지방자치단체에서 느끼는 현장의 분위기는 올해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지자체에서 재난 담당을 한 바 있는 공무원노조의 한 관계자는 “중앙부처에서 문서는 많이 내려오지만 재난안전을 관리하는 인원이 ‘계’나 ‘팀’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면서 “최소한 재난안전관리과 정도의 인원이 있어야 재난에 대비하는 기능을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홍미영 인천시 부평구청장은 “세월호 이후 지자체에서는 현장에 직접 나가 안전을 체크하고 있다”면서 “위험지역에 축대를 쌓고 시멘트로 보강하고 하지만, 중앙에서 지원하는 예산은 없고 지자체에서 알아서 인력을 배치하고 예산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안전혁신 마스터플랜 30조원은 어디서?

4월 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는 세월호 참사 1주기를 앞두고 정의당에서 주최한 토론회가 열렸다. 많은 세월호 유가족이 이 토론회에 참석했다. 이 세미나에는 국민안전처에서 이병철 안전기획과 과장이 참석해 ‘국가 재난안전 관리체계 및 중점 개혁방향’에 대해 발표했다. 이 과장이 설명한 내용은 지난 3월 30일 국민안전처에서 발표한 ‘안전혁신 마스터플랜’이었다. 이 과장은 “향후 5년간(2015~2019년) 약 30조원을 투자한다”는 마스터플랜의 내용까지 설명했다.

이태호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30조원 투자’에 대해 “구체적 수치를 보여주기 전에는 허황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마스터플랜이 발표된 다음날인 3월 31일 국회 국민안전혁신특별위원회의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의 김민기 의원은 “돈은, 예산은 어디서 구합니까. 이 30조원 안에는 기존의 장비, 장비 유지비, 인건비 이런 것 다 들어가 있는 거지요”라고 질의했다. 국민안전처 박인용 장관은 “그렇다”고 시인했다. 김 의원이 재차 “30조원이라는 건 어마어마한 돈인데 이 어마어마한 돈을 들여서 ‘안전혁신 마스터플랜을 완성하겠다’고 말하지만 이 중에 25조원은 이미 투입되고 있는 것 아닙니까”라고 반문했다. 박 장관은 “그렇다”고 사실을 인정했다. 김 의원은 기존 예산 외에 국민안전처에서 안전혁신을 위해 순수하게 증액되는 돈은 2조원에 불과한 것으로 추산했다. 이는 담뱃세 인상에 포함된 소방안전교부세 등 구체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예산규모다.

<윤호우 선임기자 hou@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