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치스크린]진급 앞둔 엘리트 경찰의 비밀

제목 악의 연대기 (The Chronicles of Evil)

각본/감독 백운학

출연 손현주, 마동석, 최다니엘, 박서준

개봉 2015년 5월 14일

상영시간 102분

상영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국무총리실 민간인 사찰 파일을 검토하다가 궁금한 것이 있었다. 언론의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파일에 망라된 내용 중 많은 부분은 경찰 비위와 관련된 것이다. 경찰 최고수뇌부부터 말단 형사까지 ‘여자관계’에 대한 첩보가 기록되어 있었다. 비위는 대부분 거기로부터 출발했다. 20년 넘게 경찰서에 근무하는 친구가 의문을 풀어줬다. 보통사람이 경찰서 문을 드나들게 되었다는 것은 어찌 됐든 막장으로 내몰린 처지라는 것이다. 경찰도 인간이다. 잘잘못을 떠나 딱한 사정을 동정하는 경우가 있고, 때론 그게 ‘특별한 관계’까지 이어지기도 한다는 것이다. 물론 선을 넘은 것은 잘못이지만. 생각해보면 사회생활하면서 ‘치부’를 털어놓을 수 있는 막역한 친구를 가진 사람은 얼마나 될까.

<악의 연대기>의 주무대는 경찰서다. 경찰서 중에서도 강력반이다. 최창식 반장은 경찰대 출신의 엘리트 경관이다. 그것도 강남서다. 사회부 출입 경력이 있는 기자라면 안다. 한국 사회에서 최 반장의 ‘위상’을. 진급을 앞둔 그에게 서장은 “경력 관리에 조심하라”고 조언한다. 그리고 회식자리. 택시를 타고 목동 집으로 돌아가던 최 반장은 택시가 엉뚱한 방향으로 달리고 있음을 깨닫는다. 운전기사가 향하는 곳은 우면산 으슥한 공원이었다. 엎치락뒤치락 몸싸움을 하던 최 반장은 운전기사를 죽인다. 112에 신고해야 하나 고민하던 최 반장은 “승급을 위해 로비 중”이라는 서장의 전화를 받고 은폐를 결심한다. 수없는 현장 경험에서 은폐 포인트가 무엇일지는 스스로가 제일 잘 알 터. 그리고 다음날 아침, 그 시신이 최 반장이 일하는 강남경찰서 건너편 공사장 크레인에 매달린 채 행인에 의해 발견된다. 시신은 최 반장에게 건네는 메시지다. ‘나는 네가 지난 밤에 무슨 일을 했는지 알고 있다’는.

제작진 면면을 보면 한국 영화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기라성 같은 멤버들이다. 더해 빛나는 것은 최 반장 역할을 맡은 손현주의 연기다. 원작 시나리오의 탄탄함과 더불어 백운학 감독의 연출력도 눈에 띈다. 극장 문을 나서고 한참 뒤에야 깨달은 것인데, 이 영화에 여성의 존재감은 거의 없다. CCTV를 추적하는 장면에서 여성 경찰관이 나오기는 하지만 그건 남성으로 대체돼도 상관없다. 캐릭터의 대립 축은 지체장애인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최 반장과 그의 초등학생 아들이다. 거의 합숙생활이나 다름없는 경찰서 강력반은 사실상의 ‘가족’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중요한 서브플롯이다. 왜 악의 연대기일까. 이야기의 중심 캐릭터들의 관계가 시간 축을 따라 DNA 나선처럼 꼬여 있기 때문이다. 영화가 간파하는 것처럼 현실 세상의 선과 악은 이분법적으로 나눠지지 않는다.

터치스크린

앞으로 영화를 보게 될 관객들의 재미를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말한다면, 박서준이 맡은 신참 형사 차동재의 위상이 독특하다. 그는 이 강력반 가족의 막둥이다. 어리광을 피워도 되고, 때로는 엉뚱한 실수를 하더라도 묵인될 수 있는 위치다. 그런 그가 ‘진실의 목격자’로 설정되어 있다. 그런데 영화의 엔딩이자 회상 신에서는 그가 경찰대 29기생이라는 언급이 나온다. 경찰대 출신이 아무리 자원을 했다고 하지만 강력반 막내가 될 수 있나? 이건 ‘옥의 티’다. 빠른 전개로 편집이 되어 있다보니 이야기에 의문이 들더라도 넘어가게 되는데, 마지막 던져놓은 한 조각의 퍼즐이 돌이켜보면 모든 의문이 풀리는 열쇠였다. 시나리오도, 연출도 공들인 흔적이 역력하다. 추천할 만한 영화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