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돼지답게 사는 것을 보여주려 했다”

<잡식가족의 딜레마> 황윤 감독, “윤리적 고기 소비 판단은 개인의 몫”

먼저 밝힐 것이 있다. 기자는 남성이다. 고기, 좋아한다. 5월 7일 개봉한 영화 <잡식가족의 딜레마>를 보고 난 다음에도 채식을 해야겠다는 결심은 하지 않았다. 다만 한국 사회의 고기 대량 소비에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스티븐 핑거의 주장을 지지한다. 인간의 본성은 타불라 라사(tabula rasa), ‘빈 서판’이 아니다. 육식, 정확히 말하면 잡식은 인류가 대평원에 기거하던 수렵사냥꾼 시절부터 효율적인 단백질 섭취 수단으로 각인되어 있는 본능이다. ‘고기의 맛’은 몸이 먼저 안다고 생각한다. 비록 현대 사회에서 그 본능은 ‘오작동’되어 비만과 같은 여러 문제를 야기하고 있지만. 황윤 감독의 신작 <잡식가족의 딜레마> 중 가장 이입된 것은 감독의 남편, 김영준씨의 ‘처지’였다. 생각하는 바는 따로 있지만, ‘설득당해 준 것’ 아닐까.

<잡식가족의 딜레마>를 연출한 황윤 감독. | 강윤중 기자

스포일러에 해당하겠지만 영화의 엔딩에서 농장 주인으로부터 받은 ‘선물’을 두고 망연자실한 표정을 짓고 있는 영화의 감독이자 주인공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영화 제목에서 언급한 ‘딜레마’를 상징하는 장면일 텐데.
“공장축산의 대척점에 서 있는 대안적인 농장을 보여주고자 했다. 돼지들이 돼지답게 살아가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그려보려 했다. 물론 그 안에서도 한계가 있다. 거세도 그렇고, 엄마 돼지들은 새끼를 낳아야 하는 것이 숙명이다. 인도적인 방식이지만, 목적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다. 결국 도축되어 고기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돼지라는 존재의 운명이다. 처음부터 개처럼 돼지와 친구가 될 의도는 없었다. 처음으로 가까이서 지켜봤다. 돼지가 이토록 사랑스러운 존재인지 몰랐다. 출산의 고통이라든가, 새끼들이 거세를 당할 때 지푸라기 속에 새끼를 숨기는 모습을 보면서 같은 엄마로서 모성을 느꼈다. 돼지는 개보다 영리하다고 한다. 그리고 굉장히 깨끗한 동물이다. 돼지에 대해 내가 너무 몰랐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감독의 이전 작품도 그렇지만, 동물과 비교하는 자신의 삶, 경험이 교차 편집되어 있다. 어미 돼지 십순이의 출산 장면과 아이를 낳는 장면이 직유적으로 연결되어 있는데. 성 차이를 넘어서는 호소력이 있을 것으로 보나.
“원래는 돼지의 삶을 다루겠다는 기획이었다. 공장식 축산 쪽 돼지는 돈오, 그리고 이쪽은 돈수. 불교용어로 돈오돈수(頓悟頓修)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갑자기 깨달음을 얻는 영화, 정도로 기획했다. 여기서는 돼지 돈(豚)자를 써서…. 공장의 돼지와 농장의 돼지, 새끼 돼지의 삶을 추적하는 것으로 맞췄는데 탄생, 출생 과정을 찍다 보니 어미 돼지에게 몰입이 되었다. 인간과 돼지는 종이 다르지만 엄마 돼지의 사랑이 하나도 다를 게 없었다. 아무래도 남자 감독이 만들었다면 완전히 달랐을 것이다. 아이를 낳아 보니 얼마나 아프고 힘든지를 겪어 봤다. 낳아 놓고 보면 또 얼마나 사랑스럽나. 또다시 임신하고 새끼를 빼앗기고 하는 것이 마음이 아팠다.”

공장식 축산 돼지의 삶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데.
“현실적인 한계다. ‘돈오’의 삶을 추적하려고 했는데, 아예 불가능했다. 그마나 기적처럼 섭외가 돼서 공장식 돼지는 하루 만에 찍었다. 새끼 돼지에게 포커스를 맞추는 것이 불가능했다. 공장식 돼지는 이름을 갖는 존재가 아니다. 번호와 킬로그램 수, 집단으로 수천 수만 마리가 군집을 이뤄 살아가다 보니 제가 한 마리에 이름을 붙여 관계를 맺는다든가, 감정을 투사하는 것이 현실과는 거리가 멀었다. 현실 그대로 몰개성화된 모습이다. 그런 집단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이들이 처한 현실을 그대로 정확하게 보여주는 것이었다.”

영화 <잡식가족의 딜레마> 포스터. | 시네마달

촬영을 하면서 채식주의로 전환했다. 그런데 감독의 채식주의 결심이 가정의 ‘평화’를 가져온 것 같지는 않다. 남편을 설득하는 데는 사실상 실패한 것 아닌가.
“실패는 아니고 공감은 얻었다. 그 사람을 채식주의로 만들어야 성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태도의 변화나 생각의 전환은 분명히 있었고, 누군가 강요한 것은 아니었다. 남편은 야생동물 수의사로 구조센터에서 일을 했는데 한 마리 한 마리 애착을 가지고 야생으로 돌려보내는 일을 하는데도 질병이 돌면 한꺼번에 몰살할 수 있다. 조류독감 같은 문제가 해마다 되풀이되니 더 고민을 많이 하게 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생각의 변화를 가져온 것 같다. 본인 페이스북을 보니 우리 영화 예고편도 공유해주고 공감도 많이 하는 편이다. 자신은 반농담으로 영화에서 ‘악역’이라고 하는데 관객들은 어떻게 볼지 모르겠다.”

기자도 ‘콩고기’를 먹어본 적이 있다. 그런데 고기의 고유한 식감을 따라가려면 한참 멀었다. 고기 맛은 본능적으로 각인이 돼 있는 것이 아닌가. 아들 도영이가 한동안 고기를 찾는 것도….
“이제는 아이도 별로 고기를 안 찾는다. 엄마가 차려주는 것에 따라 아이의 평생 입맛이 결정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영양학적으로 부모들에게 고기를 꼭 먹어야 할까라는 질문을 드리고 싶다. 동물성 단백질을 강조하는 영양학은 서구에서도 미국 쪽에서 시작된 것인데 거의 수십년 전에 한물간 이론이다. 사람 몸에 굳이 동물성 단백질이 필요하지 않다. 견과류로도 충분히 커버된다. 칼슘도 우유에 많다고 하는데 성인이 되어 우유를 많이 먹을수록 뼈에 있는 칼슘이 빠져나가 골다공증 위험을 야기한다는 연구가 있다.”

‘우유가 위험하다’는 주장은 아직까지 검증되지 않은 학설이다. 반대의 경우도 있지 않느냐. 이를테면 에스키모는 주로 동물성 식사를 한다. 몽골이나 이런 데를 보면 거의 고기와 유제품만 먹는 섭생 습관이 있고….
“자연환경이 너무 다르다 보니 조건이나 토양에 따라 다른 식습관이 형성된 것이다. 잡식동물이라는 미명을 영화 제목에서 언급했는데, 100% 채식만 하자는 것이 아니다. 동물을 먹을 수도 있다. 문제는 너무 많이 먹어서 발생하는 것이다. 건강도 잃고 생태계도 파괴된다. 왜 이런 시스템이 만들어졌을까. 축산자본의 논리다. 우리나라를 보면 1970년대부터 국가에서 정책적으로 공장식 축산을 기획해서 장려해 왔다. 축산업 경쟁력 강화라는 명분으로 규모를 키우도록 했다. 2009년부터 실시된 축산시설 현대화사업에 투입된 예산만 하더라도 1조1971억원이다. 정책적으로 공장식 축산을 한 것과 육류소비는 높은 상관관계가 있다. 육류소비 그래프와 암 발생이나 심장병 발생은 똑같이 지난 40년간 급속히 증가했다.”

농장동물의 생육환경과 윤리적 고기 소비에 대한 문제제기가 한국 사회에서는 아직 이르다는 의견도 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세월호의 비극도 이 문제와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AI나 구제역을 겪으면서 바이러스 유포를 막겠다고 살처분을 한다. 생명 경시의 극한을 보여주는 일 아니냐. 이렇게 많은 숫자의 살아 있는 생명을 산 채로 파묻는 사회가 과연 평화로운 사회가 될 수 있을까. 세월호의 비극도 이윤을 위해 인간의 안전이나 생명을 소홀히 해서 일어난 일이다. 이윤과 생명존중의 역상관관계가 가장 첨예하게 드러나는 곳이 공장식 축산이다. 어떻게 보면 이 영화를 계기로 찬반 논란이 촉발되면 좋겠다. 이제는 한 번쯤 탁 터놓고 이야기할 때가 됐다. 선택지는 많다. 어디까지가 선택의 범위냐를 두고도 논란이 있을 것이다. 답은 각자가 스스로 선택해야 할 부분이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