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친노 패권주의’가 야당을 망친다?

야권 비주류, 선거 패배 이유로 지적… 종편과 보수언론도 연일 ‘친노 프레임’ 부각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친노 패권주의’ 프레임에서 옴짝달싹 못하고 있다. 4·29 재·보궐선거 패배 이후 새정치연합 비주류 세력은 일제히 ‘친노 패권주의’를 부르짖었다. 종편과 보수언론에서는 연일 ‘친노 패권주의’의 실체를 분석하는 기사가 나오고 있다. ‘친노 패권주의’의 실체가 있는지는 명확지 않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친노 패권주의’라는 프레임이 굉장한 위력을 떨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일단 하나의 세력으로서 ‘친노’가 존재하는 것은 틀림없다. 문재인 대표가 대표적인 친노다. 문 대표를 중심으로 정치적 입장을 같이하고 정서적 일체감을 공유하는 정치인들을 통칭해서 ‘친노’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지난 3월 26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새정치민주연합 1주년 기념식에서 박영선 전 비대위원장, 안철수 김한길 전 공동대표, 문재인 현 대표, 문희상 전 비대위원장, 이석현 국회부의장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강윤중 기자

문 대표 측근 그룹인 ‘3철’과 ‘9인방’
문 대표의 측근 그룹으로는 ‘3철’, ‘9인방’ 등의 이름이 오르내린다. ‘3철’은 참여정부 당시 문 대표와 함께 청와대 근무를 했던 양정철, 이호철, 전해철 3인을 말한다. 친노 논란이 나올 때마다 가장 먼저 이름이 거론되는 사람들이다. 9인방은 2012년 대선 당시 당내 친노 논란의 책임을 지고 사퇴한 이들이다. 대선 캠프에 참여하지 않았던 이호철 전 청와대 민정수석도 ‘친노’로 찍혀 9인방에 포함됐다. 대선 이후 노영민 의원을 중심으로 ‘문재인 지키는 사람들’이란 뜻의 문지기 모임에 7명의 의원이 포함돼 있다.

보수 쪽에서 보는 친노는 이보다 광범위하다. 뒤에 하나씩 토를 달 때가 있다. 지난해 10월 세월호 유가족들의 대리기사 폭행사건 당시 한 보수 언론인은 김현 의원을 ‘친노·486’이라고 불렀다. 친노로 분류되지만 486 운동권이라는 정체성도 같이 갖고 있다는 것이다. 유인태, 정청래 의원은 ‘친노 강경파’라는 이름으로 자주 소개된다. 우익단체에서는 ‘친노 종북’이라는 표현도 많이 쓴다. 친노라는 말 자체는 친이, 친박처럼 중립적일 수 있다. 하지만 그 뒤에 부정적 뉘앙스의 말을 붙임과 동시에, 운동권 출신이나 강경한 발언을 하는 인사를 친노와 동일시하게 만드는 전략이다.

이런 전략이 맞아떨어지면서 어느새 ‘친노’는 부정적인 존재로 낙인이 찍혀버린 것이 엄연한 현실이 됐다.

보수가 친노 프레임을 부각시키는 이유에 대해 김경진 변호사는 “어찌됐건 현재 문재인 대표가 야권 대선후보 1위다.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박원순 시장 지지율이 올라가자 종편에서 친노 대신 박 시장의 개 사료비 등을 가지고 시비를 걸었다”며 “유력 야권 대선주자의 힘을 빼서 대선이 시작되기도 전에 유명무실한 사람으로 만들겠다는 전략”이라고 분석했다.

또한 김 변호사는 “보수매체에서 연일 친노를 악마의 집단처럼 매도하는 내용이 나온다. 하지만 계파정치는 여든 야든 다 존재하는 게 현실인데 마치 친노만 없어지면 정치가 좋아질 것처럼 비평하는 것은 문제”라고 말했다.

웃지 못할 코미디는 새정치연합 내부에서도 연일 ‘친노 패권주의’ 프레임을 갖고 집안싸움을 벌인다는 사실이다. 친노 입장에서는 황당할 만도 하다. 2012년 총선·대선 이후에는 당권을 쥐지 않았고, 친노가 당권을 잡은 건 이제 겨우 석 달밖에 안 된다. 그런데 ‘패권세력’으로 지칭되며 물러나라는 말을 듣고 있다.

5월 17일 광주 금남로 거리에서 열린 5.18 광주민주화운동 전야제에 참석한 문재인 새정치연합 대표가 한 시민의 항의를 받고 있다. / 연합뉴스

당권 쥔 지 3달 만에 “물러나라” 요구
실제로 김한길 대표 시절 유출된 국회의원 성향 분류표 등을 참고하면 새정치연합 의원 중 친노세력은 ‘패권’ 운운할 만큼 막강하지 않다. 문재인, 이해찬 등 명백히 ‘친노’인 인물은 15명가량에 불과하고 혁신과통합이나 시민단체와 관련된 인물을 합치더라도 30~40명 선이다.

이 외에 손학규, 김한길, 정세균, 민평련 계파에도 각각 10~20명이 소속된 것으로 보인다. 새정치연합의 각 계파는 친노에 비해 소수인 것 같지만, ‘비노세력’으로 뭉뚱그렸을 때는 친노보다 훨씬 다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노 측은 “친노가 당권파가 아니었을 때도 실질적으로 당을 좌지우지했다”고 주장한다. 한 비노 인사는 “자기들 무리만 옳고 나머지는 틀렸다는 것이 바로 패권적인 생각”이라고 지적했다.

여기에 ‘친노 패권주의’라는 말이 끊이지 않고 나오는 본질적인 이유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일종의 감정싸움일까?

대표적 비노 인사로 꼽히는 조경태 의원에게 ‘친노 패권주의’를 물어봤다. 조 의원은 “나는 2004년 총선 이전부터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은 원조 친노”라면서도 “친노 패권세력은 김한길, 안철수 대표 시절에도 사실상 주류세력이었다”고 주장했다.

조 의원은 몇 가지 사례를 들었다.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기초선거 무공천 방침이 폐지된 것이나, 친노로 분류되는 김현 의원이 대리기사에게 폭행을 저질렀는데도 아무런 징계를 받지 않은 점 등이 거론됐다. 이 중 기초선거 무공천 폐지는 김한길 지도부의 일원이었던 양승조, 우원식 당시 최고의원 등이 제기한 것이다.

조 의원은 “이분들(친노)은 저한테 새누리당에 가라고 한다. 반대로 우리가 새누리당 사람을 데려올 생각을 해야 하는데 김한길도 나가라, 주승용도 나가라, 같은 당인데도 포용이 안 된다”고 말했다. 조 의원은 패권보다 더 잘못은 무능이라며 “주류(친노)에 있는 분들이 어떻게 해서든 선거에서 이겼다면 당연히 그 능력을 인정해야 한다. 그런데 패권세력이 나서서 선거에서 한 번도 이긴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문 대표 사퇴를 거듭 촉구하며 “남탓 하지 않고 기득권을 버리는 것이 노무현 정신이다. 문 대표가 대표 출마 때 총선에 불출마하겠다고 했는데 장수가 싸우지 않는데 어떻게 아래에서 움직이나. 문 대표가 우리 당 입장에서 어려운 지역인 부산에 출마해 재선을 하고 이기는 정당의 모습을 보여주면 또 문 대표를 원하는 국민들의 목소리가 올라오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한때 광주에서 정치활동을 했던 김경진 변호사는 “호남 민심을 일률적으로 친노냐 비노냐라고 할 수가 없다. 호남은 노무현과 문재인에게도 전폭적인 지지를 보낸 곳이자 동교동계를 지지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는 곳이다. 당대표 선거 당시 호남을 상징하는 박지원 의원과 문재인 대표가 강하게 부각된 이후에 호남 지역민 정서에 반문재인 정서가 남았을 수는 있다. 그러나 호남인들이 오랫동안 정치적 선택권을 갖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지역정치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친노, 비노 진영에서 호남 민심 중에 자기들에게 유리한 부분만 가져다가 집중 부각하는 게 아닌가”라고 말했다.

정치평론가 유창선 박사는 ‘친노’로 불리는 정치세력뿐만 아니라 그 지지층까지 봐야 한다고 말했다. 유 박사는 “친노 패권주의란 말이 나오는 것 중 하나는 그 지지층이 인터넷 공간에서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겁박하다시피 하는 문화가 있다. 야당 적극 지지층 중에 친노 지지세력이 많기 때문에 이런 지지자들의 문화도 ‘패권주의’로 묶여서 이야기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유 박사는 “비노 중에서도 문 대표가 정말 사퇴해야 한다고 보는 사람은 많지 않다. 친노세력도 선거에서 패했으면 책임을 무겁게 느끼고 선거의 원인을 객관적으로 분석해야 한다. 보수에서 덧씌우고 있는 친노 프레임을 돌파할 구체적 방안을 지지자 앞에 내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백철 기자 pudmaker@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