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내시경]뮤지컬 ‘원 캐스트’가 정답

요즘 우리나라 뮤지컬들의 특징이 있다. 바로 여러 배우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는 것이다. 두 명의 배우가 주연으로 등장하는 경우를 더블 캐스트, 세 명의 배우가 함께 나오는 경우는 트리플 캐스트라 부른다. 심지어 네 명의 배우가 주연을 맡는 쿼드러플 캐스트도 눈에 띈다. 엄격히 말하자면 정상은 아니다. 연출자와 기획자, 제작 스태프가 작품에 대한 해석을 달리하고 주인공을 여럿 세운다는 것 자체가 이미 이해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만드는 사람의 입장에서 자신의 머릿속에 존재하는 주인공의 이미지는 하나일 수밖에 없다. ‘입맛 따라 배우도 골라 보라’는 홍보 문구는 시각에 따라 ‘내 연출에는 목적이나 방향이 없다’는 낯부끄러운 고백이 될 수 있다. 이만저만한 아이러니가 아니다. 사실 뮤지컬에서 주인공은 원래 한 명이다. 이른바 원 캐스트다. 배우는 힘들겠지만, 이것이 정석이다. 그래서 오리지널 캐스트가 되는 것은 배우에겐 영광스러운 이력이다. 우리나라에선 외국어 투어 공연을 오리지널이라 부르지만, 잘못된 표현이다. 공연에서 ‘오리지널’이란 초연배우가 서는 무대를 말한다. 바로 제일 처음 그 역할을 맡았던 배우들의 무대다.

사람이 하는 일이니 완벽할 수는 없다. 아플 수도 있고, 피치 못할 사정이 생길 수도 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비상 시 대비책이다. 예를 들어, 얼터는 얼터너티브(Alternative)의 약자로 일부 공연에서 주연으로 등장하는 배우를 말한다. 일주일에 8차례 공연이 올려지면 원 캐스트의 주인공은 약 6회가량 무대를 책임지고, 주중 하루와 낮 공연이 있는 날의 무대에는 얼터가 등장한다.

뮤지컬 <파리넬리>

반면 언더스터디(understudy)란 같은 작품에서 다른 배역으로 활동하며 주인공 역할을 틈틈이 준비하는 배우를 말한다. 언젠가 자신에게 올지 모를 주인공이나 얼터의 자리를 꿈꾸며 미래를 대비하는 신인급 배우가 주를 이룬다. 커버(cover)라는 용어가 쓰이기도 하는데, 이는 언더스터디와 유사한 개념으로 주로 오페라에서 사용하던 말이다. 스윙(swing)도 있다. 모든 배역의 노래와 연기를 암기하고 있어 어느 배우에게 문제가 생겨도 대신 무대에 설 수 있는 사람을 말한다. 시쳇말로 하자면 ‘땜방’ 배우다.

대역을 준비했던 배우가 갑자기 스타가 되기도 한다. ‘미스 사이공’ 우리말 초연 때 뇌출혈로 쓰러진 김성기를 대신해 엔지니어로 화려하게 등장했던 류창우나 ‘스팸어랏’의 국내 무대에서 과로로 무대에 서지 못한 주인공 박영규를 대신해 좋은 무대를 선보였던 김대종이 그런 사례다. 최근 런던에선 무명의 한국 여배우 김수하가 각광을 받기도 했다. 언더스터디였던 그녀가 뜻하지 않게 뮤지컬 ‘미스 사이공’의 히로인이 됐기 때문이다.

문화내시경

얼마 전 한 조사에서 우리나라 소비자들의 불만이 가장 높은 분야로 뮤지컬이 거론됐다. 특정 배우를 보고 싶어 공연장을 찾았지만, 당일에 스케줄이 변경되어 불만이 생기고 환불까지 요구하는 사례가 빈번하다는 설명이다. 뮤지컬을 보는 것과 스타를 만나는 것을 동일시해서 생긴 코미디다. 무엇보다 안타까운 것은 무대의 속성에 대한 이해도 없이 단순히 표나 많이 팔고보자는 상술로 넘쳐나는 우리나라 공연가의 정경이다. 수익만 추구할 것이 아니라 작품의 브랜드 가치도 키우고, 배우도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지 않는다면 ‘빛 좋은 개살구’ 신세를 벗어나기 힘들다. 주인공은 한 명이지만, 그를 대신할 배우들은 한둘이 아니라는 탄력 있는 제작운영이 시도돼야 한다. 한류의 미래를 책임질 K뮤지컬의 등장은 그래야 비로소 가능한 꿈이다.

<원종원 순천향대 교수·뮤지컬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