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공공의료 왜 중요한지 이젠 알겠죠

공공의료 비중 적어 전염병 발생 시 보건정책 신속하게 실행할 수단 부족

지난 6월 3일 경남 사천시에서는 메르스 의심 환자가 발생했다. 이 환자는 경남 서부권에서 진료를 받을 만한 병원이 없었다. 국립경상대 병원에 음압시설이 있었지만 공사 중이었다. 음압시설이 갖춰진 삼성창원병원은 민간의료시설이었다. 이 환자는 사천과 거리가 먼 양산의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다.

그동안 메르스 청정 지역이던 경남에는 지난 11일 메르스의 큰 불똥이 떨어졌다. 115번 환자가 창원에서 메르스 양성 환자로 판정받았다. 115번 환자는 5월 27일 삼성서울병원 정형외과에서 외래 진료를 받은 후 이날 오후 창원으로 귀가했다. 이후 115번 환자는 창원SK병원 등 지역 병원을 거친 것으로 확인됐다. 이 환자는 의료진과 병원 환자 등 549명과 접촉한 것으로 확인돼 이 중 455명이 격리됐다. 115번 환자가 창원 지역에서 슈퍼 감염자가 될 우려가 커졌기 때문이다.

강원도 내에서 유일하게 국가지정 격리 병상을 보유한 강릉의료원이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확진 환자 치료에 안간힘을 쏟고 있다. / 연합뉴스

폐업한 진주의료원에 대한 아쉬움
메르스 불똥이 경남으로 옮겨 퍼지면서 부산·경남 지역에서는 혼선이 야기됐다. 정부가 10일 발표한 전국 16개 메르스 확진자 치료병원에 부산대 병원·경상대 병원이 포함됐지만 부산대 병원은 음압시설을 설치하는 중이고, 경상대 병원은 음압시설 보수공사를 하는 중이었다. 때문에 확진자 치료 병원은 동아대 병원으로 뒤늦게 바뀌었다.

경남에서는 지난 2013년 폐업한 진주의료원에 대한 아쉬움의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경남도는 경영 적자를 이유로 진주의료원 폐업을 강행했다. 보건의료노조 울산·경남지역본부 박윤석 조직부장은 “진주의료원은 2009년 신종플루 유행 당시 지역 거점 공공병원으로 5개월 동안 1만2000명의 환자를 진료했다”며 “진주의료원은 부지가 넓어 임시치료소를 설치할 공간이 많았고, 주택가와 떨어져 있어 전염병 진단과 치료에 적합한 장소였다”고 말했다. 박 부장은 “신종플루 유행 당시 진주의료원이 의심 환자나 경미한 환자들을 진료했고, 심한 증상의 환자들은 경상대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며 “진주의료원이 지금 있다면 사천의 의심 환자가 굳이 먼 곳으로 가서 치료를 받을 필요가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남도에서는 최근 이곳을 서부청사로 활용하기 위한 리모델링 공사를 추진하다 연기했다. 지난해에는 서부청사로 이용해도 된다는 보건복지부의 용도 변경 승인을 받았다. 지역 시민단체에서는 진주의료원의 재개원을 요구하는 주민투표 서명운동에 나섰다. 박 부장은 “주민투표 서명을 하는 시민들이 공공병원의 중요성을 새삼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면서 “진주의료원의 재개원을 원하는 목소리도 메르스 확산 때문에 지역사회에서 요즘 부쩍 커진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해 국정감사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공공의료 비중은 계속 하락해 병상수 기준으로 볼 때 2013년 말 처음으로 9%대로 떨어졌다. 진주의료원이 400병상 규모임을 감안할 때 공공의료 비중이 10%대에서 9%대로 떨어지는 데 진주의료원 폐업이 중요한 원인이 됐다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의 공공의료 비중은 2008년 기관수 기준 6.3%, 병상수 기준 11.1%에서 해마다 감소해 2013년 말 기관수 기준 5.7%, 병상수 기준 9.5%로 하락했다. 이 같은 공공의료 비중은 병상수 기준(병원급 이상)으로 영국 100%, 캐나다 99.1%, 호주 69.2%, 프랑스 62.3%, 독일 40.4%, 일본 26.3%, 미국 24.5%(2014년 국정감사 자료) 등 OECD 주요국에 비해 절반 수준도 안 되는 수치다. 국회 보건복지위 남인순 의원(새정치민주연합)은 “민간의료기관에 90% 이상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보건의료체제에서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서 수립한 보건의료정책을 실행할 직접적인 수단이 부족한 실정”이라며 “신종 인플루엔자를 비롯한 신·변종 전염병의 출현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공공보건의료 비중을 최소한 병상수 기준 30% 이상으로 확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국의료산업노동조합연맹은 지난 6월 11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현재 정부의 의료산업정책은 공공의료 기능 및 정부 지원을 축소하고 민간에 그 역할을 떠넘기고 있어 국가적 대응이 필요한 사스, 신종플루, 에볼라, 메르스와 같은 고위험성 전염병 발생 시 신속한 대응이 어렵고 상대적으로 격리시설과 장비를 보유하고 있는 민간의료기관이 협조하지 않는다면 질병 극복에 어려움을 겪을 만큼 공공의료 환경이 열악하다”고 지적했다. 권오현 연대사업2국장은 “심지어 공공의료기관에서도 ‘환자가 오면 받지 마라’고 하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치료 사실이 알려지면 환자수가 50% 급감하는 상태에서 어느 민간병원이 선뜻 치료를 하겠다고 나서겠느냐”고 반문했다. 이런 때일수록 공공의료기관의 중요성을 절실하게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전국적으로 메르스 확산이 우려되는 가운데 경남 진주의료원 주민투표 운동본부가 6월 4일 경남도청 프레스센터에서 2013년 강제 폐업된 경남 진주의료원을 재개원해 공공의료체계를 강화해야 한다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연합뉴스

공공의료기관 노후화, 인력 부족도 문제
공공의료기관의 부족은 공공보건 의료기관의 노후화와 의료인력의 부실화로 이어진다. 권오현 연대사업2국장은 “병상수도 물론 중요하지만 공공의료기관의 의료수준도 중요하다. 임상 경력이 많은 전문가들은 대부분 민간병원에 가 있고 공공의료기관의 시설은 대부분 노후화돼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6월 8일 국회 긴급현안 질의에서 의사 출신인 신의진 의원(새누리당)은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아직까지 무방비로 느껴지는 것은 질병의 최일선에서 싸우는 인원이 터무니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신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의하면 국내 역학조사관은 34명에 불과하다. 질병관리본부에 14명, 인천검역소에 2명, 17개 시·도에 18명이 있다. 신 의원은 “더 심각한 것은 34명 중 두 명을 제외한 32명이 모두 공중보건의(군복무 대신 근무하는 의사)라는 점”이라면서 “우리나라는 그나마 (사스·신종플루 같은) 대응상황을 겪었던 관료들도 타 보직으로 이동해 노하우에 대한 연계가 전혀 되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국회 보건복지위의 한 야당 관계자는 “역학조사관이 모자라기 때문에 지금 감염학회 같은 곳에서 역학조사관에 자원해 현장에 투입되고 있다고 하는데, 인원이 여전히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다”고 말했다.

공공의료시설의 부족은 전염병의 대형 확산 시 결국 민간병원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게 된다. 지난 6월 11일 열린 국회 메르스 특위에서는 제2차 대형 발병 진원지가 된 삼성서울병원에 대한 질타가 이어졌다. 정부가 삼성서울병원에 너무 의존해 이 같은 사태를 키웠다는 지적이었다. “삼성병원이 치외법권이냐”는 지적도 나왔다. 김상희 의원(새정치민주연합)은 “정부가 다하지 않고, 삼성병원은 삼성병원대로 하고 정부는 정부대로 대처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질병관리본부 양병국 본부장은 “대학병원인 경우 자체 감염관리실이 마련돼 있고 해서 삼성병원뿐 아니라 다른 대학병원에도 그렇게 하고 있다”고 답했다. 양 본부장은 이날 세 번씩이나 ‘대학병원이어서’라는 말을 되풀이했다.

국가가 전적으로 책임져야 할 방역의 임무를 일부 민간병원에 떠넘긴 후과는 너무나 컸다. 이날 삼성서울병원 정두련 감염내과 과장은 “우리 병원이 아니라 국가가 뚫린 것”이라고 답변했다. 정진후 정의당 의원은 “삼성서울병원에서 ‘국가가 뚫렸다’고 하는데 정부는 그대로 두나. 정말 창피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윤호우 선임기자 hou@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