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내시경]예측불허 웃음의 릴레이

‘희극의 왕’이라 불리는 일본 작가 미타니 코키는 우리나라에도 꽤 널리 알려진 희극 전문 작가다. 이미 <웃음의 대학> <너와 함께라면> 등의 연극 작품들이 꾸준히 상연되면서 관객의 호응을 받았고, <웰컴 미스터 맥도널드> <매직 아워> <멋진 악몽> 등 영화를 통해 만들어진 팬층도 나름 두꺼운 편이다. 연극, 영화, TV 드라마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왕성한 활동을 펼쳐오면서도 그가 변함없이 지키고 있는 원칙이 하나 있으니, 오직 코미디만을 고집한다는 점이다. 작가라면 무게감 있는 비극도 하나쯤 욕심낼 법한데, 그는 여전히 희극만을 파고들며 웃음을 만들어내는 데 집중하고 있다.

웃음을 만들어내는 여러 방식 중에서도 미타니 코키는 언어유희나 몸개그보다는 극중 인물들이 만들어내는 우스꽝스러운 소동과 상황극을 선호하는 편이다. 일단 사소한 오해나 실수로 빚어진 어떤 상황을 벌여놓고 나면, 그때부터는 인물들이 그 상황 속에서 알아서 움직이면서 웃음을 만들어내는 식이다. 이번에 한국무대에 처음 소개된 <술과 눈물과 지킬 앤 하이드> 역시 사소한 실수에서 비롯된 예측불허 상황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웃음을 자아내는 재치 넘치는 작품이다.

술과 눈물과 지킬 앤 하이드 | 적도

막이 오르면 복잡한 약병들이 가득 차 있는 실험실을 배경으로 어둡고 비장한 음악이 흐른다.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의 익숙한 미장센과 멜로디가 원작을 떠올리게 만들 즈음, 갑자기 환해진 무대는 예상을 뒤엎고 엉뚱한 이야기를 꺼내놓기 시작한다.

사실 <술과 눈물과 지킬 앤 하이드>는 원작에서 ‘인간의 이중성’이라는 소재와 주인공 지킬/하이드의 캐릭터를 가져와 사용하면서도, 원작을 통째로 비틀거나 본격적으로 뒤집는 패러디극은 아니다. 미타니 코키는 패러디보다는 상황극을 선호하는 작가로, 이번에도 원작의 설정만 살짝 빌려와 우스꽝스런 상황을 만들어내는 데 집중하고 있다.

작품 속에서 미타니 코키가 만들어낸 상황은 매우 간단하다. 인간의 이중성을 분리시키는 지킬의 약이 성공하지 못했다는 가정 하에, 학회 발표를 앞두고 다급해진 지킬은 자기 대신 하이드 역할을 맡아 연기해줄 배우를 섭외한다. 그런데 하필 바로 그 순간에 지킬의 약혼녀 이브가 등장해 하이드와 마주치면서 상황이 애매하게 되고, 여기서부터 좌충우돌 소동극이 시작되는 것이다. 지킬과 하이드의 ‘거짓’ 이중인격 연기에 속은 이브가 자신의 진짜 이중성을 드러내면서 상황은 더욱 복잡해지고, 이들 네 남녀(인격을 포함)가 서로를 쫓아가는 욕망의 이어달리기가 반복되면서 웃음은 꼬리에 꼬리를 물며 이어진다.

설정만 보면 매우 단순하고 어느 정도 패턴화된 느낌도 없지 않지만, 사실 이렇듯 단순해 보이는 상황을 이용해 웃음을 만들어내기란 상당히 까다롭고 어려운 작업이다.

문화내시경

늘 그렇지만 사람을 울리는 것보다 웃기는 것이 훨씬 어려우며, 특히 어느 정도의 웃음을 예상하고 극장을 찾는 관객들에게 기대 이상의 웃음을 선사하기 위해서는 꽤 많은 고민과 정교한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이렇게 단순한 상황만으로 끊임없이 사람들을 들었다 놓았다 할 수 있는 힘, 그것이 희극의 왕 미타니 코키의 진짜 저력이라고도 할 수 있을 듯하다. 7월 5일까지, 동숭아트센터 동숭홀.

<김주연 연극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