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청 갈등, TK의원 ‘등 터지네!’

대통령의 국회법 개정안 거부권 행사로 ‘누구 편에 서느냐’ 선택 난처

박근혜 대통령이 6월 25일 국회법 개정안의 재의를 요구하는 거부권을 행사하자,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내 새누리당 TK(대구·경북) 의원들의 방에는 묘한 기류가 흘렀다. 박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찬성한다면 유승민 원내대표의 사퇴를 주장하는 모습이 될 것이고, 국회법 통과를 주도한 유 원내대표의 입장에 찬성한다면 박 대통령과 반대 입장에 서는 것이 되는 선택이었다.

TK 출신인 ㄱ의원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국회법 거부권이 행사될 것이라는 사실을 사전에 미리 알고 있었다. 친박인 ㄴ의원이 ㄱ의원에게 의원총회에서 발언을 요청했기 때문이다. ㄴ의원이 ㄱ의원에게 요청한 것은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새누리당이 의원총회를 열 것이고, 이 의총에서 대통령의 입장에 서는 발언을 해달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ㄱ의원뿐만 아니라 다른 새누리당의 TK의원들은 대부분 박 대통령의 입장이 아니라, 유승민 원내대표의 입장 편에 서 있다. TK의 ㄷ의원 측은 “대통령이 왜 이렇게 강경하게 나가는지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하며 고개를 흔들었다.

박근혜 대통령과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 | 강윤중 기자

유승민 원내대표 사퇴 주장은 소수
지난 2월 초 유 원내대표가 친박의 응원을 업은 이주영 의원을 물리치고 원내대표에 당선될 때 TK의원들은 대부분 유 원내대표의 편에 섰다. 김희국·권은희 의원 등은 원내대표 선거캠프에 적극 참여했다. TK의 ㄹ의원 측은 “이번 기회에 유 원내대표가 차기 대권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TK는 2012년 총선에서 최경환 경제부총리(새누리당 의원)를 중심으로 해 총선에 나섰다. 박 대통령(당시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의 최측근이 최 부총리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 원내대표가 지난 2월 원내대표에 당선되면서 TK지역 의원들은 유 원내대표를 중심으로 모이고 있다. 현재의 대통령보다 미래의 리더를 더 원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박 대통령의 국회법 개정안 거부권 행사는 TK지역 의원들에게 난처한 선택을 하게 만들고 있다. ㅁ의원 측은 “지금처럼 정무수석도 없는 상황에서 청와대와 당이 소통이 될 수 없다”며 “왜 이렇게 소통을 하지 않는지 모르겠다”고 현 상황을 비판했다.

박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유 원내대표에게 직격탄을 행사한 것도 TK지역 의원들의 마음을 혼란하게 만들었다. 박 대통령은 “여당 원내사령탑도 정부·여당의 경제살리기에 어떤 국회의 협조를 구했는지 의문이 간다”며 유 원내대표를 바로 겨냥했다.

6월 25일 의총에서는 친박계가 유 원내대표의 사퇴를 압박하고 나섰다. 이날 의총에서 이정현 의원을 비롯해 김태흠·이장우·김진태 의원 등이 유 원내대표의 사퇴를 주장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의견은 소수에 불과했다. 대부분의 의원들이 국회법 자동폐기로 대통령의 체면을 세워주는 대신 유 원내대표의 원내대표직 유지에 손을 들어줬다. TK의 한 의원 측은 “유 원내대표가 원내대표가 된 지 다섯 달도 되지 않았는데 경제활성화법이 통과되지 못한 것이 어떻게 유 원내대표의 책임이냐”고 반문했다. 다른 한 의원 측은 “의총에서 발언한 친박의 면면을 보면 이정현 의원을 제외하고 다른 의원은 속칭 ‘꾸박’(꾸어온 친박)”이라면서 “이들 중에 TK지역 의원들이 어디 있느냐”고 말했다. 이날 의총에서 발언한 TK지역 의원들은 다수의 의견이 된 국회법 자동폐기와 유 원내대표 유임 쪽을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의총에 앞서 새누리당 안에서는 분주한 움직임이 오갔다. 친박계 의원들이 유 원내대표의 사퇴를 주장하는 기자회견을 열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여기에 맞서 재선의원들이 모여 거부권 행사 사태를 논의했다. 이 모임에는 TK지역 의원 중 정수성·이한성·이철우·강석호 의원이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모임의 명분은 당 화합이었다.

“의총의 결정은 미래 권력의 승리”
TK지역 의원들이 유 원내대표에 대한 측면지원에 나서고 있는 것과는 달리 지역 민심은 녹록지 않다. 유 원내대표의 지역구 사무실 앞에는 최근 강경보수단체 회원들이 몇 차례 시위를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여론조사에서도 심상치 않은 결과가 나오고 있다. 6월 25일 박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직후 JTBC 의뢰로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TK지역 여론은 찬성 58.4% vs 반대 31.5%로 과반이 박 대통령의 손을 들어줬다. 전국 단위에서는 ‘찬성한다’는 응답이 46.8%(매우 찬성 26.7%, 찬성하는 편 20.1%)로, ‘반대한다’는 응답 41.1%(매우 반대 25.2%, 반대하는 편 15.9%)보다 오차범위 내인 5.7%포인트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700명을 대상으로 한 이 여론조사는 표본오차가 95% 신뢰수준에서 ±3.7%포인트였다. TK지역 의원들이 유 의원 주변에 선 것과는 달리 지역 민심은 박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찬성 여론이 절반을 넘어설 정도로, 괴리감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박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여당 의총에서 국회법 자동폐기로 결정났고, 정의화 국회의장이 국회 과반 의석을 확보하고 있는 여당의 결정을 감안하겠다고 하면서 겉으로는 박 대통령의 승리처럼 보인다. 유 원내대표도 고개를 숙였다. 유 원내대표는 의원총회 직후 기자들과 만나 “일부 의원들이 그런 (사퇴) 요구가 있었지만, 더 잘하라는 채찍으로 받아들이고 더 열심히 하겠다는 말씀을 드렸다”고 말했다.

하지만 당내에서는 이번 여권 내 갈등이 결국 미래 권력의 승리로 드러났다고 보고 있다. 한 새누리당 관계자는 “진보는 분열을 할지 몰라도 보수는 예전 이회창 대표 때 뼈아프게 경험했기 때문에 절대로 분열하지 않는다”며 “이번 의총의 결정은 사실상 현재 권력 대 미래 권력의 싸움에서 미래 권력이 이긴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 관계자는 “실제로는 박 대통령과 유 원내대표의 갈등으로 비쳐졌지만, 의총에서 의원들은 유 원내대표가 아니라 김무성 대표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결국 김 대표가 유 원내대표 체제를 순망치한(脣亡齒寒·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으로 여기고 있기 때문에 김 대표가 팔짱을 끼고 있는 한 의원들이 유 원내대표의 사퇴를 정면으로 요구할 수는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 원내대표가 박 대통령과 맞서는 입술이고, 김 대표를 입술 안에 있는 이로 비유한 여당의 상황은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둘러싼 문제가 복잡한 고차방정식이라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TK 의원들은 박 대통령과 유 원내대표의 격돌에서 곤란한 상황에 직면했으나 실제로는 탈박인 김 대표·유 원내대표와 청와대·친박 사이의 격돌이 벌어졌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 친이는 탈박의 편에 섰다.

<윤호우 선임기자 hou@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