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백화점 “2030을 잡아라”

젊은 고객 비중 해마다 줄어… 아이돌 가수 콘서트 등 마케팅 강화

두 아이를 키우는 주부 전모씨(35)는 결혼 이후 한 번도 백화점에 가본 적이 없다. 비싸고 번거롭다는 게 가장 큰 이유다. 육아용품을 주로 해외직구(직접구매)로 해결하는 전씨는 본인의 옷이나 화장품 등은 온라인 쇼핑을 이용한다. 가격 비교가 쉽고 배송도 편리하기 때문이다. 그는 “쇼핑만을 위해서라면 백화점에 가야 할 이유를 모르겠다”고 설명했다.

전씨 같은 사람들이 늘면서 백화점들은 요즘 비상사태에 빠졌다. 20~30대는 구매단가가 높은 편은 아니지만 엄연한 미래의 잠재고객이다. 시간이 지나면 이들은 구매력이 가장 높은 40~60대 고객이 된다. 이들이 지금처럼 백화점과 멀어지는 것을 방치할 경우 나중에 상황을 반전시키기는 더 어려워진다. 장기적인 실적관리 측면에서도 젊은 고객을 끌어모으고 백화점에 친숙해지게 할 필요가 있는 셈이다.

롯데백화점이 7월 23일 개최하는 ‘러블리 영 콘서트’ 포스터. / 롯데백화점

롯데 잠실점 젊은 고객 특화 매장 열어
실제로 시중 백화점들의 젊은 고객 비중은 해마다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 롯데백화점 매출자료를 보면 올해 상반기 30대 이하 젊은 고객의 비중은 50.9%로 집계됐다. 지난해 평균 52.2%보다 1.3%포인트 줄었다. 5년 전인 2010년 평균 56.1%와 비교하면 5.2%포인트 감소했다. 감소폭 자체가 크지는 않지만 매년 줄고 있는 추세가 더 심각하다고 백화점 측은 분석하고 있다. 연도별 30대 이하 고객 비중은 2011년 54.9%, 2012년 54.1%, 2013년 53.3%, 2014년 52.2% 등으로 해마다 내리막을 걷고 있다.

정도는 다르지만 다른 백화점들의 상황도 비슷하다. 현대백화점은 30대 이하 고객의 매출비중이 2010년 34.6%에서 2015년 상반기 33.8%로, 약 1%포인트 떨어졌다. 신세계백화점도 올해 상반기 30대 이하 고객 매출비중이 지난해보다 소폭 줄었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백화점들은 큰 돈을 들여 아이돌 가수가 총출동하는 콘서트를 열고, 최신 유행 맛집을 백화점에 입점시키는 등 젊은 소비자들의 발길을 붙잡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정현석 롯데백화점 영업전략팀장은 “최근 오픈마켓, 온라인몰, 해외직구 등으로 쇼핑 채널이 다양해지면서 30대 이하 젊은 고객의 백화점 방문이 계속 줄고 있다”며 “젊은 고객들을 유치하기 위해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마련하고 타깃 마케팅을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백화점 신촌점 지하에 들어선 카카오톡 캐릭터숍 ‘카카오 프렌즈’에 고객들이 몰려 성황을 이루고 있다. / 현대백화점

롯데백화점이 7월 23일 잠실종합운동장 올림픽 주경기장에서 개최하는 ‘러블리 영 콘서트’는 대표적인 ‘영(Young) 마케팅’ 사례다. 10억원이 넘는 예산이 투입되는 해당 공연에는 엑소, 인피니트, 레드벨벳, 틴탑, 헤일로, 베리굿 등 인기 아이돌 그룹 여섯 팀이 출연할 예정이다. 롯데 측은 콘서트 티켓을 사은행사와 프로모션으로 젊은 고객에게 뿌릴 예정이다.

원래 한류 아이돌 스타가 출연하는 대규모 공연은 일본과 중국 등 해외관광객 수요를 잡기 위해 롯데면세점이 매년 개최해온 행사다. 아이돌 파워의 검증된 효과를 백화점도 차용하겠다는 의도다. 젊은 층이 좋아하는 아이돌 공연을 대규모로 치르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백화점 홍보와 마케팅을 강화한다는 게 롯데 측의 전략이다.

롯데는 최근 잠실점 8층을 젊은 고객 특화 매장인 ‘영 유니크관’으로 꾸며 새로 열었다. 매장에는 젊은 층이 선호하는 엠폴햄, FRJ 등 기존 입점 브랜드 11개에 4SUS, RAG 등 신규 브랜드 29개가 들어섰다. 해외 브랜드 ‘DC’, ‘프리템포’ 등 4개 매장은 백화점 최초로 입점한다. 이번 개편으로 잠실점의 ‘영 패션’ 매장은 총 1만6200㎡(약 4900평)로 국내 백화점 가운데 최대 규모로 커졌다. 20~30대 고객의 입맛과 취향에 맞춰 청담동의 유명한 컵케이크 브랜드 ‘지유가오카 핫초메’와 ‘2030세대’ 전용 리빙(생활용품) 편집숍인 ‘썸띵엘스’도 이 특화 매장에 문을 열었다.

롯데백화점이 젊은 고객 특화 매장으로 단장한 잠실점 8층의 ‘영 유니크관’. / 롯데백화점

현대, 모바일 유통 플랫폼과 제휴 추진
서울 소공동 본점 영플라자에 샤이니, 엑소 등 SM엔터테인먼트 소속 가수들의 상품을 판매하는 ‘SM타운’ 매장을 운영하고, ‘롯데 케이웨이브(K-Wave) 프로젝트’를 통해 아이돌 가수 사인회를 수시로 여는 것도 모두 ‘영 마케팅’의 일환이다. 2012년부터는 젊은 고객을 대상으로 카페 할인과 추가 적립 등 혜택이 있는 ‘영 카드’를 따로 발급하며 ‘젊은 VIP’ 우대전략도 쓰고 있다.

현대백화점도 구매력이 큰 젊은 VIP 고객을 육성하는 데 신경쓰고 있다. 지난 5월부터 ‘U-VIP 프로그램’을 도입해 18~35세의 ‘U멤버십’ 가입 고객 중 연간 300만원 이상 구매 고객에게 상시 3시간 무료주차 서비스와 주차대행 서비스 이용권, VIP 전용 브랜드 할인·우대 쿠폰 등을 제공한다. 젊은 고객들에게 VIP 서비스를 미리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다 보면 미래의 우수 고객으로 남을 가능성도 그만큼 커질 것이라고 회사 측은 전망하고 있다.

현대백화점은 젊은 층이 익숙한 온라인·모바일 유통 플랫폼과의 제휴나 협업도 동시에 추진하고 있다. 1985년 개점 이래 한 번도 온라인에 상품을 내놓지 않았던 현대백화점 압구정 본점이 지난 5월 포털사이트 네이버의 모바일 쇼핑 플랫폼 ‘샵윈도’에 입점한 것은 그런 점에서 상징적인 사건으로 받아들여진다. 현재 샵윈도 내 현대백화점 매장에서는 쿠플스, 솔리드옴므, 죠셉, 파라점퍼스 등 국내외 23개 고급 브랜드 상품이 팔리고 있다. 젊은 소비자들의 눈높이에 맞춰 채팅 형태로 매장 매니저와 바로 대화할 수 있는 ‘1대 1 쇼핑톡’, ‘쇼팅톡 결제’ 등의 서비스도 제공된다.

지난달부터는 SK플래닛의 ‘시럽’ 모바일 앱 서비스와 제휴를 맺고 업계 최초로 현대백화점 모든 점포에서 ‘U멤버십 쿠폰 존’도 운영하고 있다. 18~35세 현대백화점 고객이 U멤버십 회원으로 가입하면 쿠폰 존을 지날 때마다 자동으로 회원 스마트폰으로 할인쿠폰 등이 전송된다.

신촌점 지하에 들어선 카카오톡 캐릭터숍 ‘카카오 프렌즈’는 10~20대 고객이 7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반응이 좋은 편이다. 월 평균 매출도 3억~4억원에 이른다.

한 백화점 관계자는 “젊은 층의 취향에 맞춘 브랜드 선정은 물론 판매 채널과 마케팅 등 모든 면에서 특화된 서비스가 있어야 ‘2030 소비자’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며 “쇼핑 트렌드가 계속 바뀌는 상황에서 젊은 고객들을 유혹하기 위한 백화점들의 경쟁도 점점 치열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형규 경향신문 산업부 기자 fidelio@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