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고백, 웃어야 하나 울어야 하나

해킹 관련 해명에서 자체적 감청기술 부족 시인… 안보에 대한 첩보능력도 의문

“국정원은 권력기관이 아니라 순수한 안보전문 국가정보기관으로 자리매김해야 한다.”(3월 19일 이병호 국정원장 취임사 중)

7월 17일 국가정보원은 자신의 홈페이지에 ‘해킹 프로그램 논란 관련 국정원 입장’을 올렸다. 입장 바로 이전글이 바로 이 원장의 취임사였다. 취임사에서 이 원장은 “엄중한 안보상황에서 눈을 부릅뜨고 국가 안위를 살피고 일차적 대책을 세우자”고 주문했다. 하지만 국가 안위에 앞서 국정원의 안위를 걱정해야 할 지경에 처했다. 보안이 생명인 국정원의 무능이 또다시 도마에 올랐다.

중요한 안보 정보는 놓치고 정치개입만
국정원의 불법사찰 의혹 사건은 7월 초부터 외신이 이탈리아의 해킹업체 ‘해킹팀’의 유출된 내부자료를 보도하면서 시작됐다. 며칠 뒤 한국 언론도 해킹팀의 자료에서 육군 5163부대 등 국정원과 연관된 내용을 발견하고 기사를 쓰기 시작했다. 급기야 국정원은 7월 14일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자신들이 해킹팀으로부터 RCS(원격제어 시스템)를 사들인 바 있다고 실토했다.

RCS를 구입한 이유가 국민들을 감시하려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자 국정원은 적극적으로 해명에 나섰다. 국정원은 자신들이 해킹팀에서 해킹 소프트웨어를 구입한 목적은 연구와 함께 해외에 필요한 대상에 사용하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또한 국회 정보위원들의 국정원 방문도 수용하고, 해킹 프로그램 사용기록을 정보위원들에게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7월 14일 이병호 국가정보원장이 국회 정보위원회 회의장에 들어서고 있다. | 권호욱 기자

이명박 정부 이후 국정원은 ‘동네 정보원’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정말 국가 안보에 중요한 정보는 놓치고, 정치 개입에만 열을 올리는 모습을 조롱하는 표현이다.

국정원은 거의 매년 1건 이상 정보역량 부족을 드러냈다. 2009년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후계자가 김정‘운’인지 ‘은’인지 알아내지 못했다. 북한의 발표 전까지 김정일의 사망사실도 몰랐다.

2011년은 국정원이 동네북이 된 한 해였다. 그해 2월 국정원 요원들이 방한한 인도네시아 특사단의 숙소에 무단 침입하다가 들킨 일이 있었다. 7월에는 국정원 간부 2명이 중국에서 첩보활동을 하다가 중국 당국에 체포됐다. 당시 국정원 1차장이 중국 국가안전부에 사과의 뜻을 밝혔지만 요원들은 재판에 넘겨졌다.

국내 정치공작에서도 국정원은 무능했다. 2012년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에서 드러난 사실은 국정원 요원들이 커피숍에 앉아 인터넷 커뮤니티에 댓글을 달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내용은 야당 후보들을 비방하고 여당 후보를 찬양하는 것이었다. 인터넷 방송인 ‘망치부인’과 그 딸에게 수위 높은 언어 성폭력을 한 사실도 이후에 드러났다.

야당 정보위원회 관계자 ㄱ씨는 “나는 절대 국정원이 유능하다고 보지 않는다. 정보수집 능력이 안 되니까 유우성씨 사건처럼 간첩을 만들다가 들키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사건 재판과정에서 국정원이 조선족과 중국대사관에서 근무하는 직원을 시켜 중국의 공문서를 위조한 사실이 드러났다. 중국 당국은 문서 위조를 직접 확인해 줬다.

여러 차례의 잘못에도 불구하고 국정원이 잘못을 반성하고 용서를 구한 일은 없었다. 그래도 이번에는 먼저 자신의 부족함을 고백했다. 외국 업체의 힘을 빌리지 않으면 감청을 할 능력이 되지 않음을 시인한 것이다. 7월 17일 자료에서 국정원은 “이 프로그램은 해킹팀을 경유해 작동하도록 되어 있다. 모든 사용내역이 저장돼 있고 해킹팀과 연계돼 있기 때문에 은폐가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게다가 국정원은 “구입한 20명분이란 (…) 최대 20개의 휴대폰을 해킹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런 역량을 가지고 무슨 민간인 사찰이 가능하겠는가?”라며 무능함을 고백하기까지 했다. 그러면서도 “담당하는 국정원 직원은 그 분야의 최고 기술자”라고 했다. 야당 정보위 관계자 ㄱ씨는 “국정원이 말하는 20명분이란 ‘한 번에’ 20명을 감청할 수 있다는 뜻이다. 20명만 감청할 수 있다는 건 사실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일선 정보과 경찰관 ㄴ씨는 이번 사건으로 국정원의 능력에 의문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ㄴ씨는 “감청 자체가 불법인 경우가 많을 뿐더러 기술적으로도 매우 어렵다. 그래서 경찰에서는 자체 감청장비를 만들 엄두도 내지 못하는데, 국정원은 예산도 많고 어떻게 쓰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뭔가 대단한 장비를 만드는 게 아닐까 생각했었다”며 “하지만 요새 돌아가는 걸 보면 국정원도 그런 능력이 있는지는 의문이다”라고 말했다.

“대북정보도 미국과 일본에 의존”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0년 전에도 국정원의 도·감청이 언론의 질타를 받은 일이 있었다. 바로 ‘안기부 X파일’이다. 2005년 8월 국정원은 ‘과거 불법감청 실태 보고’를 발표했다. 200자 원고지 80장에 이르는 이 자료에 따르면 국정원은 1961년 6월부터 내부에 감청기구를 설치했다. 각계 인사를 대상으로 한 광범위한 불법감청도 있었다.

19년 전에도 국정원의 거래처는 이탈리아였다. 1996년 1월 국정원은 이탈리아에서 아날로그 휴대전화 감청도구 4세트를 구입했다. 국정원에 따르면 이 장비는 대상 휴대전화 사용자의 반경 200m 이내에 접근해야 감청이 가능한 도구였다.

디지털 휴대전화 보급이 시작되면서 국정원은 1998년부터 자체적으로 감청도구를 제작하기까지 했다. 통신사의 유선 중계통신망에 연결해 감청하는 장비와 이탈리아에서 수입한 것과 마찬가지로 근처에 접근해 감청하는 장비였다. 당시에도 국정원은 자신의 무능력을 실토했다. 당시 국정원은 “당시 행한 휴대폰 감청기술이 매우 조잡한 수준이었다”며 “2002년 3월 감청장비를 전량 폐기해 휴대폰을 감청하려 해도 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지금도 국정원은 민간인을 사찰할 뜻도, 능력도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ㄱ씨는 이를 믿지 못하는 눈치다. ㄱ씨는 “그동안 대선 개입 사건이나 간첩 조작사건에 제대로 반성하지 않는 국정원을 믿기 어렵다. 의원들이 국정원을 방문해 프로그램 사용내역을 들여다보더라도 과연 국정원이 손대지 않은 로그파일을 볼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ㄱ씨는 “정보기관에서 대북 감청을 하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한국은 휴민트 이외의 대북 정보는 미국과 일본에 의존해 왔다. 유우성 사건 등을 보면 휴민트라는 것이 제대로 존재하는지도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전직 국정원 직원 ㄷ씨는 국정원의 처지를 이해하면서도 안타깝다는 반응을 보였다. 2000년대까지 국정원에서 일한 ㄷ씨는 “전 세계 어느 나라 정보기관을 봐도 도·감청은 필요악이다. 특히 한국의 안보상황에서 감청의 필요성은 많은 반면, 합법적인 감청을 수행하기는 제도적으로 매우 어렵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ㄷ씨는 “지금 언론에 나온 것을 보면 국정원이 도입했다는 장비가 과연 북한의 간첩을 잡기 위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백철 기자 pudmaker@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