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② 왜 이 시점에 발표했나

북측서‘8월 하순’제안… 대선 일정도 고려한 듯

정상회담이 열리는 시점은 제17대 대통령 선거를 불과 4개월 앞둔 민감한 때다. 시급한 이슈가 없는 상황에서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되다 보니 정치적 의혹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특히 한나라당은 경선 효과가 극대화되는 시점에 남북정상회담이 열리는 것을 마뜩찮아 하고 있다.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는 “회담 일자 등을 보면 진보진영의 장기집권 음모가 시작된 느낌”이라고 혹평했다. 나경원 대변인도 논평을 통해 “현 시점에서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하는 것이 타당한지 의문”이라고 전제하고 “대선을 4개월 정도밖에 남겨놓지 않은 터에 선거판을 흔들어 정권교체를 막아보겠다는 술책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런 주장은 “남북정상회담의 수혜자는 범여권”이라는 한나라당의 ‘피해의식’을 반영하는 것이다.

한나라당 강재섭 대표가 8월 9일 최고위원회에서 박재완 비서실장으로부터 보고를 받고 있다. <박민규 기자>

그렇다면 남북정상회담의 택일은 누가 한 것일까. 정부는 어떤 논의를 거쳐 정상회담 일정을 결정했는지 분명히 밝히지 않고 있다. 남북정상회담의 산파역인 김만복 국정원장은 “8월 하순 평양에서 수뇌 상봉을 하자는 제의가 있었다”고 언급했을 뿐이다.

남북한의 이해에 일치한 택일이 아니겠느냐는 게 일반적 분석이다. 북한은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조선반도는 핵전쟁 불구름이 피어날 것”이라며 한나라당 집권에 대한 노골적인 거부감을 드러냈다. 물론 보수 색채가 짙은 한나라당이 집권한다면 남한의 대북지원이 현저히 줄 수도 있다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김용현 동국대 교수(북한학)는 “북한 입장에선 차기 대선에서 만약 한나라당이 집권한다면 남북간 대화에 엄청난 정력을 소비할 수밖에 없다”면서 “6자회담 등 주요 일정 등이 몰려 있는 지금이 적당한 때라고 판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 한나라당의 경선 효과를 극소화시킬 수 있는 날짜를 고려했다는 얘기다.

우리 측도 마찬가지다. 회담 장소가 평양이라는 점이나 의제가 결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회담이 열리는 점 등은 우리 정부가 정상회담에 매달린 것이 아니냐는 인상을 주고 있다. 노무현 정부가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대선에서 평화세력 대단결을 유도함으로써 범여권 진영에 유리한 국면을 만들 수 있다는 계산을 했을 수도 있다. 또 그런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시점을 택했을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그 시기가 바로 한나라당 경선 열흘 뒤가 된다. 여론조사기관 P&R 이경태 대표는 “보통 경선 이후 한 달 정도가 경선 당선자의 지지도가 급상승하는 시점인데 아마도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게 가장 큰 이유일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남북정상회담이 8월 28일 열린다면 언론은 10일 전에 결정된 한나라당 경선 후보보다 정상회담에 더 많은 시간과 지면을 할애할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런 점을 감안해, 한나라당 집권 저지라는 남북의 정치적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는 분석이 일각에서 설득력을 얻는다. 하지만 대선의 국외자인 북한 당국보다는 한국 정부가 더 부담스러운 것은 사실이다.

홍관희 안보전략연구소장은 “외교도 남북문제도 국내 정치의 연장이다”라고 말했다. 통일연구위원의 박영호 선임연구원은 “북한의 핵 프로그램과 군사적 안전문제에 관해 명확한 의제를 끌어낼 수 있다면 정상회담의 시기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서도 “그렇지 못할 경우 정치적 동기가 개입된 것으로 보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남한 정부보다 북한의 입장이 더 반영된 면이 있다는 게 일반적 분석이다.

그러나 이런 시각은 남북관계를 지나치게 국내 시각에서 접근하는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박순성 동국대 교수(북한학)는 “대선에 절대적 영향을 미칠 수 있을 정도로 임박하다고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양무진 경남대 북한대학원 교수는 “8월이 넘어갔다면 정상회담의 순수성이 훼손됐을 것이다”고 말했다.

또 정상회담 기간 중에 한·미 간 연례지휘소연습(을지포커스렌즈·8월 27~31일) 일정과 일치하는 것도 우연의 일치로 보기에는 석연찮은 구석이 있다. 북한을 가상의 적으로 하는 실전훈련 기간에 정상회담을 개최하는 것은 훈련의 의미를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도 “북한이 회담 준비 과정에서 ‘정상회담을 하는 중에 전쟁연습을 할 수 있느냐’고 주장할 수 있다”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실제로 이재정 통일부 장관은 8월 9일 “제1차 기획단회의에서 이 문제도 논의하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을지훈련 연기도 가능하다는 시사인 셈이다.

<김경은 기자 jjj@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