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난, 제도 정치권서 벽을 허물죠”

2030인물탐구(3)직업적 정치참여형
관악구의회 서윤기 의원

지역활동을 거쳐 제도정치에 입문한 서윤기 관악구의원. 그는 조례와 예산책정, 감시기능을 통해 지역공동체문화를 만들어가기 위해 정치를 선택했다.

지난 11월 14일, 서울 관악구는 수영장 이용을 신청해놓고도 생리 중에는 이용할 수 없는 여성들을 위해 수영장 사용료의 10%를 할인해주기로 했다고 밝혔다. 관악구의회가 지난달 13∼55세 여성의 수영장 이용료 10%를 깎아주도록 ‘체육시설 설치 및 관리·운영 위탁에 관한 조례’를 개정한 덕분이다. 이 같은 내용이 지자체에서 조례로 명문화된 것은 처음이다.
개정안을 발의한 주인공은 관악구의회의 서윤기 의원(38·대통합민주신당)이다. 서 의원은 “내 딸이나 아내 그리고 어머니들의 권리를 찾기 위한 조치였다”며 “이후에도 부당한 조치에 대해선 시정을 요구할 것이며 정당한 권리 찾기에 힘쓸 것”이라고 밝혔다.

지역 생활 밀착형 정치 목표

서윤기 의원은 관악구의회 22명 중 민주노동당 소속의 이동영 의원과 함께 가장 젊은 축에 속한다. 서울지역의 기초의원 중에서도 젊은 층이다. 두 의원의 눈부신 활약은 관악구의회뿐만 아니라 관악구 전체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는 게 지역의 평가다. 여전히 지역 토호들이 의원 자리를 꿰차고 앉아 거리청소나 등반대회 등을 통해 임기 내내 선거운동을 하는 데 반해, 젊은 의원들은 매일 아침 의회로 출근해 그간의 속기록을 비롯해 각종 조례안을 검토하며 관악구 정책 대안 마련에 고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중 하나가 이번 수영장 할인에 관한 조례이며, 최근엔 학교급식제도를 완전히 뜯어고치는 데 주력하고 있다.

“대학 당시 저는 ‘일반’ 학우였어요. 조직에 가입해 체계적으로 세미나를 한 핵심적 운동권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도서관에 틀어박혀 취업을 준비하는 모범생도 아니었죠. 한국유네스코학생회(KUSA)에서 활동하면서 사회가 어떻게 구성되는지, 그 흐름은 어떤지 선배들과의 대화를 통해 미약하나마 진보적 의식을 갖게 됐죠.”

대학과 대학원에서 교육학을 전공한 서 의원은 자신이 30년 이상 살아온 관악구에 다시 터전을 잡았다. 인근 강남지역과 같은 높은 교육열을 보이고 있지만 그런 교육열을 책임지지 못하는 교육행정, 옛 달동네 원주민과 재개발로 유입된 신흥 중산층이 화합하지 못하는 위험한 지역공동체, 서민과 소외된 계층에 대한 부실한 복지정책을 바꾸어보고 싶었던 것이다.

지역 청년단체에 제 발로 들어간 서 의원은 이후 10년 동안 공무원 친절도 조사, 구의원 의정활동 모니터, 관악구 예산결산 분석 등 풀뿌리 주민자치 운동을 전개했다. 그리고 관악자치포럼 대표, 조이런(인터넷교육회사) 대표, 인헌고등학교 학교운영위원, 한국청년연합회 서울지부 대표 등을 거쳐 지난해 6월 지방선거에서 관악구의원으로 당선됐다. ‘광풍’이라 불릴 만큼 한나라당 바람이 강했던 지난 선거였지만 지역 주민들은 젊은 정치인에게 예상보다 많은 표를 몰아주었다.

서 의원은 “제도정치에 뛰어든 것은 지역활동을 하면서 만났던 수많은 벽을 넘기 위한 것이었다”며 “운동의 영역에서는 감당할 수 없는 것을 제도와 예산을 통해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제도정치에 입문한 지 이제 1년 반 정도. 그가 맛본 기성정치는 무엇일까. 그는 “정치도 철학”이라는 말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개인은 누구나 자신의 안정된 삶을 위해 살지만, 정치인에겐 공익과 역사, 명분에 대한 가치가 우선”이라는 서 의원은 “정치인이 자신을 중심에 두고 생각하면 정치꾼이 되고, 변절과 비리의 유혹이 크게 다가온다. 기성정치에서 ‘협잡’이라는 것을 많이 보았고, 그것에 물들지 않고 가치를 지키려고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기초의원들의 활동 중심은 이른바 ‘지역 생활 밀착형 정치’다. 일상생활과 밀접한 사항들을 조례로 만들어 규정하고, 이와 함께 예산 감시, 행정사무 감사 등 집행부 견제 역할도 한다. 또 중요한 역할 중 하나가 정당한 목소리를 가졌으면서도 해결하지 못하는 지역 민원을 풀어나가는 것이다.

“지역정치는 지역이라는 공간적 개념이라기보다 작은 단위에서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제도와 장을 확대해 나가는 참여의 개념이 중요하다”는 서 의원은 “지역의 주부, 청년, 어르신들을 만나 함께 호흡하고 행동하는 것, 그럼으로써 간접민주주의의 단점을 보완하는 것이 바로 구의원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2030세대도 지역에 관심 가져야”

젊은 의원 하나가 구의회는 물론 행정부의 분위기를 바꾸어 놓았다. "기성정치와 야합하지 않는 '초심'을 지켜갈 것"이라는 게 그의 약속이다.

그러나 서 의원은 여전히 지역에서는 외롭다고 한다. 지역으로 내려올수록 젊은 층의 정치 참여는 줄고, 그나마 지역에 뿌리를 둔 경우도 거의 없다는 것이 문제다.
“30대의 경우 가정을 이루고 있어서 이 지역에 살고 있다는 ‘정주의식’이 있어요. 때문에 어린이공원이나 보육시설 확충 등에 대한 관심과 요구가 많죠. 그러나 결혼을 하지 않은 20대의 경우 자신의 이해와 요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표현하지 못하고 있어요. 학교와 직장에 오가느라 지역에 대한 관심도 떨어지고 그래서 또 그들의 목소리는 묻혀버리는 악순환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서 의원은 2030세대들이 초·중·고 동창회나 지역 시민단체 등을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선 문화활동이나 봉사활동을 통해 자연스럽게 지역에 관심을 갖고, 이것이 조직화되면 유권자 차원에서 요구할 수 있는 사항이 많아진다는 것이다. 모교에 대한 지원, 자기 동네에 대한 합당하고 합리적인 요구가 그것들이다.

대선을 앞둔 시기 그는 2030유권자들에게 적극적으로 투표할 것을 당부했다. “찍어도 달라질 것이 있느냐는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중요한 것은 찍으면 달라진다”는 서 의원은 “어떻게 찍느냐가 중요한데, 우리는 최악·차악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자신이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을 뽑자. 최선이 아니면 차선을 선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투표하지 않는 것도 정치적 행위이자 표현’이라는 주장에 대해 그는 “일종의 도피”라고 반박했다. 투표로 본때를 보여주는 것이 가장 적극적이고 효력 있는 경고이며 유권자의 권리라는 것. 모든 후보가 ‘도매금’으로 넘어갈 만큼 다 똑같지 않으니 유권자의 현명한 판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제가 가진 가치는 공평하고 공정한 사회,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안정망과 배려가 있는, 그러면서도 민주적 질서를 존중하는 사회를 만드는 것입니다. 이런 초심이 흔들리지 않게, 공직자로서 저의 역할에 충실할 것입니다. 어느 선배 정치인이 ‘공직자는 진실하고 성실하고 절실해야 한다’고 말했어요. 제가 믿는 가치를 위해, 그리고 제가 하지 않으면 주민에게 손해가 간다는 생각으로 절실하게 활동할 것입니다.”
관악구의회 307호실, 그는 자신의 책상에 신영복 선생의 ‘처음처럼’ 문구를 깔았다. 젊은 정치인이 자기 자신에게 가하는 호된 회초리인 셈이다.

<조득진 기자 chodj21@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