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노무현의 몰락, 등 돌린 민주당

친노세력 사실상 와해… 재·보선 앞두고 ‘거리’ 유지

지난해 전당대회로 새롭게 정비한 민주당 정세균 체제의 지도부가 지난해 7월 인사차 김해 봉하마을을 방문했을 때 일이다. 이 자리에서 노 전 대통령은 격한 어조로 민주당을 비난했다. 전당대회에 자신(노 전 대통령)을 초청하지 않은 점, 대선 과정 초기에 고건 후보를 옹립하려 한 점, 정동영·김근태 전 대표 등이 자신을 배신했다는 점 등을 거론한 것이다. 정세균 대표와 안희정 최고위원을 비롯한 지도부 인사는 묵묵히 10분 이상씩 계속되는 노 전 대통령의 발언을 들었다.

친노 상황 “감방에 갔거나, 숨었거나”
반발하고 나선 인사는 지도부와 함께 자리한 조경태 의원이다. 조 의원은 “아무리 전직 대통령이라고 하지만 지도부가 그냥 묵묵히 듣고 있기에는 분위기가 맞지 않았다”며 “그 자리에서 참여정부 초기에 고건 전 총리를 총리에 임명한 점을 따졌다”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과 조 의원의 대화는 언쟁 수준으로 발전했다. 조 의원은 “민주당 현직 지도부를 앞에 두고 훈계하는 식의 발언은 너무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은 봉하마을에서 서민적인 모습을 보이면서 누리꾼의 인기를 독차지했다. 민주당에서도 친노직계 의원들이 지도부에 자리 잡으면서 노 전 대통령의 입김이 강한 편이었다.

하지만 박연차 게이트로 친노 세력은 거의 몰락할 지경에 이르렀다. 참여정부 내내 친노로 분류됐던 한 인사는 지금 친노의 상황을 “감방에 갔거나, 숨었거나”로 표현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가까웠던 인사들 중 구속되었거나 아니면 최근 사태와 관련해 노 전 대통령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는 식으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상황을 비판한 것이다. 참여정부의 출범과 함께 권력의 중심부로 들어갔던 친노 인사들은 최근 정치 자금 수수 혐의로 구속되거나 검찰 소환조사를 받았다. 노 전 대통령의 친형인 노건평씨와 후원자였던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과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은 구속됐다. 노 대통령의 측근이었던 이강철 전 특보, 이광재 의원, 박정규 전 청와대 민정수석 비서관 역시 검찰에 구속됐다. 서갑원 의원은 검찰 소환조사를 받았고 강금원 회장과 관련해 안희정 최고위원도 검찰 수사를 받을 처지에 놓였다. 한때 ‘좌희정 우광재’로 불릴 정도로 친노세력의 핵심이었던 두 축 중 한 인사는 이미 구속됐고, 다른 인사는 검찰 소환을 앞둔 것이다. 이들 외에도 ‘박연차 리스트’와 관련해 구설에 오른 친노 의원이 많다.

지금 노 전 대통령의 주변에는 문재인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해명에 나서고 있을 뿐 다른 친노 인사의 얼굴을 보기 어렵다. 참여정부 내내 노 전 대통령과 인연을 강조하며 ‘친노’라는 배지를 자랑했던 인사들이 이제는 그 배지를 떼고 자취를 감춘 것이다. 친노로 분류됐다가 당에 남은 인사들만 기자들의 취재 대상이 됐다. 한 인사는 기자의 취재에 “상처난 곳에 소금을 뿌리냐”며 화를 냈다.

참여정부 내내 친노로 분류됐지만 “아무런 혜택을 받지 못했다”는 한 인사는 혜택의 당사자로 부산 지역 인사들을 꼽았다. 이들의 대부분이 “정치 자금 수수 혐의를 받거나 지금은 조용하게 은거하고 있다”는 것이 이 인사의 말이다. 민주당의 한 중진의원 역시 “노 전 대통령과 가까웠던 PK세력이 지금의 이 상황을 가져오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부산지역의 인사들은 박연차 회장·강금원 회장과 친하게 지냈다. 노 전 대통령의 주변을 감시해야 할 청와대 민정라인도 참여정부 내내 이들 부산지역 인사들이 독차지하다시피 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박연차 리스트와 강금원 리스트에 오른 인사들이 줄줄이 구속될 처지에 놓인 것이다.

부산지역에서 민주당 의원으로는 유일하게 재선한 조경태 의원 역시 참여정부 시절에는 친노로 분류됐지만 “노 전 대통령이 재임 시절 왜 일요회를 피했는지 아직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일요회란 노 전 대통령이 지구당위원장 시절 부산을 포함해 영남지역 원외위원장들의 모임이다. 이 모임은 참여정부 출범 이후 친노 중 친노 모임으로 주목받았지만 이강철 전 특보만 돋보였다. 다른 인사는 대부분 공기업 감사직으로 권력의 주변부에만 머물렀다. 일요회 멤버였던 조 의원 역시 참여정부 내내 노 전 대통령의 관심에서 멀어져 있었다. 친노 부산 386 인사들이 청와대 주변에 배치됐지만 이들 역시 조 의원과 거리를 두었다. 조 의원은 “그때는 무척 섭섭했지만 지금에 와서는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조 의원 역시 권력을 누렸던 부산지역 386 측근에 대해 이번 사태와 관련해 불만을 드러냈다.

현재 민주당 내에서는 친노세력이 거의 전멸한 상태다. 그나마 남아있던 안희정 최고위원은 검찰 소환을 앞두고 있으며, 서갑원 원내수석 부대표는 검찰 소환조사를 받았다. 이광재 의원은 구속됐다. 상처가 없는 친노 의원이라고 할 수 있는 인사는 백원우 의원 정도다. 친노 인사인 이해찬 전 총리와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이미 오래 전에 당을 떠났다.

비주류 “현 지도부 친노에 기반”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있는 민주당은 노 전 대통령과 거리를 두는 모습을 취하고 있다. 민주당은 박연차 사건과 관련해 ‘성수대교가 무너진 느낌’이라는 말을 하면서 충격적인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연일 노 전 대통령 의혹이 계속 보도되는 와중에도 정세균 대표는 4월 10일 최고위원회에서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았다. 다만 박주선 최고위원이 검찰의 혐의 사실 사전 공표에 대해 비판했을 뿐이다.

정동영 전 장관에 대한 공천 배제로 지도부와 맞서고 있는 비주류 측은 ‘지도부가 친노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이종걸 의원은 “정세균 대표 체제의 한 축이 친노”라면서 “친노들은 빨리 2선으로 물러나거나 정계은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의원이 지목한 지도부 내 친노 인사로는 안희정 최고위원, 윤덕홍 지명직 최고위원, 서갑원 원내수석 부대표, 김진표 최고위원 등이다. 참여정부에서 ‘잘 나갔던’ 인사들을 지목한 것이다. 이 의원은 “노무현 폭탄으로 민주당에는 재앙이 닥쳤다”면서 “친노세력이 물러남으로써 민주당이 친노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새로운 모습으로 국민에게 다가가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전 장관의 탈당과 무소속 출마와 관련해 최근 노 전 대통령의 의혹이 무조건 나쁘게만 작용하지는 않는다는 주장도 있다. 지도부 측 한 인사는 “박연차 사건이 민주당에 위기감을 각인시켜 정동영 전 장관으로 분열된 지금 국면을 오히려 통합시키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김부겸 의원은 “경기도 교육감 선거 승리에서 나타난 것처럼 이번 재·보궐선거의 주 격전지인 인천 부평 을과 시흥시장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는 희망이 있다”고 말했다.

<윤호우 기자 hou@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