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철의 눈]우리의 정통부는 어디로 갔나

IT의 급변에 대응하는 범국가적인 전략과 기업의 벼락 같은 혁신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순간이다.

바야흐로 정보통신(IT)의 진검승부가 벌어지고 있다. 그동안 IT산업이 망을 기반으로 그 망이 고속도로가 되어 정보와 지식의 이동을 촉진하고, 관련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산업을 촉진하는 단계를 거치는 범용 팽창과정이었다면, 이제부터는 그동안의 인프라를 바탕으로 IT산업 내에서 진정한 승자를 가리며 최후 생존자를 뽑는 본선이 시작되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모바일과 클라우딩 환경이다. 그동안의 IT산업이 기업의 생산성을 높이고, 기존 산업의 효율을 가속화하는 것이었다면, 이제는 IT가 가진 ‘자기파괴적 속성’, 즉 ‘구축효과’가 나타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었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IT는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내는 기회요인 못지않게 기존의 잉여를 구축하는 ‘구축재’로서의 역할이 크다.

IT 망이나 기기에 대한 투자는 새로운 산업투자였지만, 그 결과는 기업의 비효율을 제거하고 국경 없는 부품 조달과 생산통제, 국경 없는 자본이동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기업의 생산성 혁신을 유발했고, 그것은 2차 산업에서의 일자리 감소와 산업 전반의 잉여를 제거하는 효율성을 발휘해 왔기 때문이다.

이것이 2차 산업에서 IT의 구축효과였다면, 이제 IT 그 자체에서 구축이 시작되는 2단계가 시작되었다. 대표적인 것이 그리딩과 클라우딩 환경이다. 전 세계의 수많은 컴퓨터에 탑재된 저장장치는 빈 공간으로 놀고 있는 양을 합한 만큼 엄청난 잉여공간이다. 하지만 이 잉여는 그것을 제조하고 관리하는 과정에서의 일자리와 산업적 기회를 제공해 왔다. 하지만 그리딩 환경에서는 이것이 효율적으로 제거된다.

거대기업들이 구축한 데이터 센터에서 온라인으로 실시간 저장되는 저장공간이 확대되고 이용도가 높아질수록 개인의 책상 위에 놓인 저장공간은 점점 사라져갈 것이고, 무료로 제공되는 소프트웨어의 클라우딩 서비스는 각자의 PC에 탑재된 소프트웨어의 기능을 무력화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각종 미디어와 사회가 만들고 생산하는 모든 정보들은 데이터 센터에 저장되고, 이 정보들은 실시간 스트리밍을 통해 언제라도 불러올 수 있는 환경으로 전환된다. 동영상을 저장하고 플레이할 수 있는 컴퓨터의 고사양은 불필요해지고, 메모리 반도체의 수요는 급감하며, 하드웨어 환경에서의 혁신적 변화가 유발되는 것이다.

만약 애플의 데이터 센터가 완공되어 실시간으로 제공되는 양질의 교육, 연예, 오락, 정보가 제공된다면 이것에 중독된 소비자들은 자연스럽게 애플의 아이맥, 아이패드, 아이폰, 아이 TV를 구입할 것이고, 전세계 가전, 컴퓨터, 핸드셋 제조업체들은 일거에 애플의 소프트파워에 무너지게 되는 끔찍한 시나리오가 현실이 되는 것이다.

이런 환경은 SNS의 발달과 더불어 더욱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SNS는 그것이 가진 속성상 오픈환경에서 더욱 활발하게 작동하고, 오픈환경은 사용자의 요구를 신속하게 적응하며 소비자의 손과 발이 되기 때문이다. 과거 수직적 구조 하에서 소비자들을 통제하고 관리하던 모든 IT 환경들이 SNS의 오픈환경에 패배하게 되는 것이다.

박경철의 눈

결국 IT의 혁명은 확고한 소프트파워를 바탕으로 하드웨어 시장을 장악하려는 애플의 폐쇄형, 연결과 개방성을 내세워 서비스 부가가치를 장악하려는 구글의 개방형의 양 갈래로 움직이며, 두 체제는 서로 길항하지 않고, 전 세계의 IT 시장을 미국의 거대기업들이 장악하는 거대한 시나리오를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IT의 급변에 대응하는 범국가적인 전략과 기업의 벼락 같은 혁신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순간이다. 그런데 우리의 정통부는 어디로 갔는가?

<안동 신세계연합병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