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성찰 못하는 한국사회 사는 일 너무 비감”

김종익씨 심경 토로, “시간 지나면 언젠가는 진상 밝혀질 것”

6월 21일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 신건 민주당 의원이 그의 이름을 꺼내자 장내가 술렁였다. TV 모니터로 그 광경을 바라보던 그의 눈에서 굵은 눈물 한 방울이 흘러내렸다. 딴지일보식 표현을 빌리면 ‘결정적 순간’이다. 정계와 시민사회에서 흉흉한 소문으로만 돌던 민간인 불법사찰이 사실로 드러난 순간이다. 질의가 나오기 직전, 사찰의 당사자인 이인규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은 배탈이 났다며 회의장을 떠났다.

민간인 사찰 피해자 김종익씨가 ‘Weekly경향’과 인터뷰 도중 생각에 잠겨 있다. |김석구 기자

2008년 9월, 김종익씨(57)는 모든 것을 잃었다. 자신이 대표이사로 있던 기업에서 대표이사직을 사임했고, 주식도 처분해야 했다. ‘쥐코’라고 알려진 동영상을 자신의 블로그에 올렸다는 혐의다. 쥐코라는 이름은 마이클 무어 감독의 영화 ‘시코’를 패러디한 제목이다. 김씨는 이 영상을 나중에 볼 요량으로 자신의 블로그에 스크랩했다. 하루에 20~30명도 안 되는 지인들만 들어오는 블로그였다. 국무총리실 직원을 면담한 전 직장의 후배는 김씨가 내사당하고 있다는 것을 귀띔했다. 동영상을 삭제하고 블로그를 폐쇄했지만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김씨는 이틀 뒤 망명하는 심정으로 일본으로 출국했다. 김씨가 일본에 있는 동안 국무총리실 직원들은 김씨의 사무실에 들이닥쳐 관련 서류를 뒤졌다. 나중에 재판에서 밝혀진 바에 따르면 국무총리실 직원은 회사의 백모 부장을 서울 세종로 세종문화회관 인근의 커피숍으로 불러내 야단을 치기도 했다. 국무총리실은 김씨의 일본 내 연락처도 확보했다. 법적 절차를 밟지 않고 이메일도 뒤진 것이다.

1년반 지나 드러난 불법사찰 실태
한국으로 돌아온 김씨는 경찰 수사를 받았다. 김씨가 무혐의 처분을 받자 국무총리실은 경찰에 재수사 압력을 가했다. 결국 재수사 끝에 김씨는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그러니까 대통령을 비방할 목적으로 동영상을 올린 행위는 유죄지만, 처벌을 미룬다는 처분이다.

올해 6월 말 언론 보도로 김씨에게 벌어진 일이 알려지기 전까지, 그 후 2년 김씨의 삶은 악몽의 연속이었다. 김씨의 말이다. “처음 일을 당했을 때 너무 경황이 없고 힘이 들었어요. 뭔가를 먹으면 계속 토했습니다. 거의 아무 것도 먹을 수 없었습니다. 시퍼런 권력의 위세에 눌린 당시의 상황에서 달리 취할 방법은 없었습니다. 뭔가 굉장히 무시무시한 것이 나를 향해 오는 것 같았고….”

사건이 알려진 직후 그는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누가 어떤 중요하고 급박한 사안이 있어서 한 개인의 삶을 그리도 집요하게 송두리째 파괴했는지 밝혀야 한다. 나로서도 정말 궁금한 부분이다”라고 말했다.

12월 16일, 영등포에 소재한 ‘노동자 역사 한내’에서 김씨를 만났다. ‘노동자 역사 한내’는 노동운동과 관련된 자료를 보관·정리·재분류하는 일종의 노동운동사 아카이브다. 김씨의 막내동생 종배씨는 지난 1999년 8월 교통사고로 숨진 노동운동가다. ‘노동자 역사 한내’의 한편에는 노동운동가 김종배를 추모하는 현판이 걸려 있었다. 그후 6개월. 김씨는 어떻게 살아왔을까.

“책도 읽고 자료정리 작업도 돕고 있습니다. ‘수유+너머’ 연구모임에서 진행하고 있는 ‘일본 잡지 읽기 세미나’에 참석해 강독을 하기도 하고, 역사문제연구소에 나가 지인들과 소통하면서 지내고 있습니다.”

노동운동가 동생을 비롯, 그의 ‘전력’이 도마에 올랐다. “33년간 은행 관련 업무에 종사해온 평범한 샐러리맨”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그와의 인터뷰를 방영한 PD수첩 화면 중 ‘모자이크’ 장면이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인터뷰 장면은 그의 집 서재에서 찍었다. 그런데 서가에 꽂인 책 제목이 사후에 지워진 것이 수상하다는 식의 의혹이다. MBC 측에서는 “프로그램을 사전 시사한 간부들이 쟁점 분산을 우려, 민간인 사찰 문제에 집중하도록 배경화면을 모자이크 처리하라는 지시를 내렸었다”고 해명했다. 보수성향의 인터넷매체들이 의혹을 부채질했다. 서울 남대문로에 위치한 국민은행 본점 앞에서는 “김종익, 그는 평범한 시민인가? 정체와 역할을 밝혀라”라는 펼침막을 든 사람들의 1인시위가 이어졌다. 한나라당이 바통을 받았다. “김종익은 보통의 민간인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보도자료를 냈다. 국회 국감에 증인으로 출석한 김종익씨에게 현경병 한나라당 의원은 “당신(김종익) 말대로 하루 아침에 직장을 빼앗겼지만, 증인은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서민이 아니다”라고 말하며 ‘조선노동당 연구’, ‘아리랑’ 등의 책을 거론하기도 했다.

민간인 불법사찰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들이 지난 11월 9일 서울 창성동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에서 압수수색한 자료들을 검찰로 이송하고 있다. |김기남 기자

다음은 ‘색깔소동’에 대한 김씨의 생각이다. “글쎄요. 그분들이 말하는 ‘서민’이 어떻게 정의되는지 알 수 없지만 거꾸로 ‘그렇다면 서민이 아니라면 민간인 사찰을 해도 되는 거냐’고 되묻고 싶습니다. <조선노동당 연구>는 북한사회가 왜 세습이 가능한 전제국가인가를 실증하는 책이고, 님 웨일즈의 <아리랑>은 식민지 조선의 독립에 헌신했지만 끝내 일제가 심어놓은 조선인 스파이에 의해 죽은 독립운동가 김산의 전기로, 이 책들은 오히려 읽기를 권장해야 할 책들인데, 이 책들을 공산주의 서적으로 몰아가는 국회의원의 맹목이 놀라웠습니다.” 조전혁 한나라당 의원은 한 걸음 더 나아가 김종익씨가 노사모 핵심 회원으로 참여정부의 비자금 통로였다는 제보가 있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김씨는 전혀 터무니없는 문제제기라며 ‘공인인 국회의원이 자신의 발언에 책임을 지는 선례를 남기기 위해’ 최강욱 변호사와 명예훼손 소송을 준비 중이다.

“김씨는 평범한 시민 아니다” 이념공세
최강욱 변호사는 그에게 특별한 존재다. “가까운 민주노총 소속 변호사가 있었습니다. 제가 경찰 조사를 받으면서 봤던 국무총리실 문건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그분 말씀이 ‘그게 가능하겠어요. 용산사건을 보세요. 검찰은 자신에게 불리한 증거는 내놓지 않습니다’라는 거였어요. 정말 힘들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최강욱 변호사를 만났고, 최 변호사는 헌법소원을 통해 검찰의 수사자료를 공개시킬 방법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나중에 헌법재판소로부터 검찰 수사자료를 넘겨받은 날, 최 변호사는 밤새워 자료를 읽으면서 ‘너무 분하고 살이 떨려 잠을 잘 수 없었다’고 이튿날 저를 만나 이야기했습니다. 그 말을 들으면서 저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고 말았습니다. 그동안 제가 사람들에게 그런 이야기를 하면 ‘당신이 말하는 것이 사실이라는 것을 어떻게 밝히느냐’는 식의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이 대다수였거든요.”

김씨가 절망감을 느낀 것은 변호사들만이 아니었다. 민주적 가치와 인권을 이야기하던 ‘진보적 지식인’들에게 도움을 요청했을 때 그들이 보인 태도에서도 김씨는 벽을 느꼈다. “알고 지내던 저명한 분이 있습니다. 제가 만나 이 일을 상의드리려고 했습니다. 물론 농담이었을 겁니다. 돌아온 말은 ‘기소유예를 받은 사람과 내가 만나도 되나’였습니다. 그 말이 굉장히 아팠습니다. 지금까지도, 2년이 지났는데 그분으로부터는 한 번도 연락이 없습니다. 그게 농담이 아니었나, 정말 그분이 그렇게 생각하는지….”

다시 사건이 알려진 올해 6월 말~7월 초로 돌아가자. 민간인 사찰 파문이 일파만파로 커지자, 국무총리실은 자체조사를 거친 뒤 검찰에 공직윤리지원관실 관련 수사를 의뢰했다. 7월 6일, 김씨는 참고인 조사를 받았다. 그 뒤 검찰은 서울 창성동에 마련된 공직윤리지원관실을 압수수색했다. 사상 초유의 국무총리실 압수수색이다. 그런데 역시 나중에 밝혀진 바에 따르면 순순히 압수수색을 받지 않았다. 7월 2일, 국무총리실은 대책문건을 만든다. 김씨 주변 지인들을 조사해서 약점을 파악해 그 결과를 한나라당 의원에게 전달해 역여론전을 편다는 계획이었다. 전달 대상자로 지목된 한나라당 의원은 “해당 문건을 받지 않았다”고 말했다. 더 가공할 것은 국무총리실 하드디스크의 무단반출과 폐기다. 하드디스크 삭제장비 ‘디가우저’를 사용해 기록들을 영구 폐기한 것이다. 7월 6일에서 7일 사이, 공직윤리지원관실 장모 주무관은 청와대로부터 대포폰(정부 측 해명으로는 이동통신사 가게 사장의 부인명의를 빌린 차명폰)을 지급받아 들고 수원의 업체를 찾아간다. 검찰 압수수색팀은 자료가 폐기된 지 이틀 후에 들이닥쳤다. 삭제된 하드디스크에 어떤 내용이 있었는지는 영원히 규명할 수 없게 되었다.

지난 11월 22일 민간인 사찰 증거인멸과 관련해 법원으로부터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권모 경정이 재판 후 기자들의 질문 공세를 피하고 있다. |서성일 기자

사건 초기부터 이 사건은 국무총리실만의 단독 ‘범죄’가 아니라 윗선이 존재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검찰은 이영호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을 소환조사했지만 결국 윗선을 밝혀내지 못했다. 검찰총장도 “실패한 수사”라고 말했다. 총리실 쪽에서 주장한 바에 따르면 2008년 9월 10일 익명의 제보자로부터 김씨 블로그에 올라온 동영상과 주식 취득과정에서 편법 등에 대한 제보가 들어오면서 사찰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김씨는 이 역시 사실이 아니라고 보고 있다. “처음 사찰 사실을 알려준 국민은행 직원의 말에 따르면 이광재 때문에 저를 조사한다고 했습니다. 확인된 것은 아니지만 청와대 어딘가에서 이광재를 잡기 위해 자료를 만들었는데 강원도 출신 사람들 중에서 이광재에게 정치자금을 줄 만한 이들의 리스트가 작성되었고, 그게 국무총리실로 내려가서 조사가 시작된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러지 않고서야 어떻게 10년 전에 제가 주고받은 이메일의 내용까지 다 확보할 수 있었겠습니까. 단순히 제보에 의한 것은 아닌 것으로 봅니다.” 검찰 수사과정에서 김씨에 대한 내사가 최소 7월 24일 이전에 시작되었다는 사실은 밝혀졌다. 검찰은 윗선을 밝혀내지 못한 채로 수사를 종결했다. 그러나 청와대에 보고되었다는 정황은 계속 쏟아져나왔다. 압수된 지원관실 직원의 수첩에서 ‘BH(청와대) 하명’이라는 메모가 나왔으며, 복원된 직원 정모씨의 USB기록에서는 ‘민정수석 보고용’이라는 폴더 아래 그에 대한 내사자료, ‘다음 (동자꽃).hwp’ 파일이 존재했다는 흔적이 나왔다. 하지만 검찰은 ‘증거’가 나왔음에도 수사를 종결했다. 김씨 이외에 민간인과 정치권에 대한 사찰 흔적도 여럿 나왔다. 야권에서는 국정조사 내지는 특별검사제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 진전될 기미는 없다.

사건 전모는 드러날까
결국 사건의 전모는 묻히고 마는 것일까. “시간이 걸리겠지만 언젠가는 다 진상이 밝혀질 것으로 봅니다. 자료 파괴나 이런 것들은 다른 시각에서 보면 한국 사회가 갖고 있는 깊이가 그 정도밖에 안된다는 것입니다. 국무총리실에서 근무하는 공무원이라면 공무원 사회에서 엘리트 중의 엘리트라고 할 수 있는데, 공무원으로서 정체성도 제대로 없다는 것이 확인된 것이지요. 공무원의 소명은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것입니다. 그런 공무원이 국민으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아 선출된 통치자의 권력을 위해 마치 멸사봉공의 기세로 불법사찰에 몰두하는 일이 어떻게 가능할까요. 통치자의 제한된 임기가 끝나면 공무원인 자신이 행한 불법사찰이 어떤 의미를 지닐지, 성찰조차 못하는 고급공무원을 가진 한국 사회의 시민으로 사는 일이 너무 비감스럽기만 합니다. 저는 민간인 불법사찰도 역사를 교훈으로 삼지 못하는 한국 사회가 지닌 몰역사성으로부터 기인한다고 생각합니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불법사찰의 주인공이 된 것에 대해 그는 요즘 ‘화 속에 복이 있지 않나’라고 생각한다. “돌이켜보면 권력의 불법으로 많이 힘들었고 지금도 힘들지만, 덕분에 삶을 돌아보고 의미를 곱씹어보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사건을 겪으면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고민도 많이 했습니다. 사건을 계기로 서예를 공부하는 집사람과 대화를 할 시간도 늘어났고요.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서 금강경을 일본에 갔을 때부터 읽어왔어요. 그걸 통해 깨달은 것은 이 사실에 매달려 집착하면 할수록 힘들어진다는 것입니다. 불자는 아니지만 집착을 넘어서라는 불교의 가르침에서 많은 도움을 얻었습니다.”

대표이사를 맡기 전, 그의 꿈은 강원도 오대산에 사둔 땅으로 가서 퇴직금을 보태 ‘좀 가난하더라도 책도 읽고 공부하는, 좀 더 자연에 가까운 삶’이었다. 그 나이 또래 누구나 갖는 귀농의 꿈이다. 하지만 이미 그의 삶은 달라졌다. 아직 사건의 결론도 나지 않았다. 그의 이름은 ‘자연인 김종익’을 넘어서 이미 역사의 한 장에 기록될 예정이다. 아직 페이지는 채워지지 않았다. 추가적인 자료들이 계속 나오고 있고, 사실들이 새로 밝혀지고 있다. 아직 결론은 나지 않았지만, 이명박 정부 집권 3년의 한국 사회에서 민주주의 후퇴를 증거하는 동시에, 앞으로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는 의미에서 그의 이름은 기억되어야 한다. 이것이 「Weekly경향」이 그를 2010년 ‘올해의 인물’로 선정한 이유이기도 하다.

아직도 가슴 속에 담아둔 이야기

김석구 기자

2시간 40분 동안의 인터뷰에서 그는 흐트러짐 없이 차분하게 자기 생각을 이야기했다. 인터뷰 말미, 그는 “하나 꼭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다”며 고등학교 은사 이야기를 꺼냈다. “고등학교 다닐 때 3년 가까이 같이 생활하던 선생님이 있었습니다. 저에겐 그 선생님이 사상의 은사와 같은 분입니다. 그런데 저 때문에 돌아가셨습니다.”

고등학교 영어선생님이었던 이 선생님은 교장으로 정년 퇴임한 후 강릉시 문화원에서 학원에 가지 못하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영어를 가르치는 한편, 오대산 월정사에서 박물관 해설을 하며 지냈었다. “그러다가 일본으로 떠난다고 하니 당신께서 의심을 한 거예요. ‘회사 대표를 하는 사람이 3개월씩이나 외국으로 나가다니?’ 하는 의문을 갖고 주변에 문의한 뒤 저에게 생긴 일을 아시게 된 겁니다.”

출국하던 날 그는 출국금지를 당할까봐 일찍 심사대를 통과했다. 그런데 그 선생님이 인천공항에 오신다는 연락을 한 것이다. “오시면서 메모를 해오셨어요 그 내용이 이렇습니다. ‘강물이 작은 샘에서 발원해 바다에 이르기까지는 수많은 여정이 있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이번에 겪는 일은 너를 단단하게 세우는 계기가 될 것이다. 불행으로 인해 건강을 해치는 어려움에 빠지지 말라.…(중략)…너는 지혜롭게 이겨내리라고 믿는다. 무슨 일이 있어도 건강하게 다시 만나자. 나는 살아있을테니 걱정하지 말라.’”

일본에서 어느 날 김씨의 꿈에 그 은사가 홀연 나타났다. “꿈 속에서 당신께선 ‘절대 걱정하지 마라, 시간이 걸리겠지만 다 해결된다’고 말씀했어요. 제가 ‘그게 어떻게 해결이 됩니까’라고 되물으면서 깼습니다. 시간을 보니 새벽 4시 반이었습니다. 잠을 못자고 뒤척인 지 한 시간이 지났을까, 선생님 동생으로부터 한국에서 전화가 온 겁니다. 돌아가셨다고요. 나중에 돌아가신 시간을 물어보니 꿈에 나타난 시간이었어요.”

김씨의 말에서 감정의 기복이 드러난다. “원래 돌아가시기 전엔 화장을 해달라고 했는데, 병원에 입원해 돌이킬 수 없게 되니 사모님께 ‘화장을 하지 말고 묘를 써달라’고 하셨대요. 가족이 깜짝 놀라서 물어보니 ‘내가 묘라도 있어야지 그녀석이 나중에 와서 울기라도 할 것 아니냐’….”김씨는 한동안 울먹이며 말을 잇지 못했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