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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외국 조사단 역할은 ‘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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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경향> ‘4개국과의 합의각서’ 입수… 기간 연장시한 나라별로 제각각

오는 3월 26일은 천안함 침몰사건 1주년이다. 정부는 지난해 5월 20일 천안함이 북한이 발사한 어뢰의 수중폭발로 인한 버블제트 현상으로 절단돼 침몰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상당수 과학자 등이 이에 의구심을 표명했고, 정부가 이를 해소하는 답변을 내놓지 못하거나 미흡해 발생 원인을 둘러싼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천안함 침몰사건 조사를 맡은 곳은 민·군 합동조사단(이하 합조단).

2010년 5월 20일 천안함 침몰 합동조사단에 참여한 미국 측 관계자들이 기자회견에서 질문에 대답하고 있다. |경향신문

2010년 5월 20일 천안함 침몰 합동조사단에 참여한 미국 측 관계자들이 기자회견에서 질문에 대답하고 있다. |경향신문

합조단에는 미국·영국·스웨덴·호주에서 파견된 전문조사 위원 24명이 포함됐다. 정부는 국제적이고 객관적인 조사를 하겠다며 이들 4개국과 합의각서를 체결했다. 최근 <주간경향>은 이 합의각서를 단독 입수, 몇몇 전문가들에게 분석을 의뢰했다. 그 결과는 흥미롭다. 해외조사단이 들러리를 선 것 아니냐는 의문이 첫번째다.

지난해 5월 15일 어뢰추진체가 인양됐다. 앞서 4월 15일 천안함 함미가 인양됐지만 침몰 원인 규명에는 큰 도움을 주지 못해 혼란이 일고 있던 시점이다. 어뢰추진체는 북한제였다. 합조단은 어뢰추진체가 인양된 지 5일 만에 ‘북한의 소행’이라는 결과를 발표했다.

스웨덴, 조사단서 가장 먼저 빠져
이 과정에서 해외조사팀은 어떤 역할을 했을까. 합의각서에 나와 있는 조사 기간이 단서가 된다. 당초 합조단과 미국·호주·스웨덴은 합의각서를 체결하면서 조사 기간을 5월 15일까지로 결정했다. 미국과의 합의각서는 ‘2010. 5. 15.까지 조사에 참여한다. 다만 2010. 5. 15. 이전에 조사가 끝나는 경우에는 끝나는 날까지 참여하는 것으로 한다. 2010. 5. 15. 이후에도 합의하여 이 합의각서의 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고 돼 있다. 어뢰추진체가 발견된 5월 15일 합조단은 미국과 조사 기간을 6월 15일까지 연장키로 합의했다. 그래 놓고 불과 5일 뒤 합조단은 북한제 어뢰추진체가 버블제트를 일으켜 천안함이 침몰했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어뢰추진체가 발견된 지 5일 만에 사고 원인을 발표할 생각이면서 왜 6월 15일까지 조사 기간을 연장했는지 의문이 든다.

스웨덴의 경우에 비춰보면 이 의문이 합리적임을 알 수 있다. 스웨덴 조사팀은 합조단의 발표 하루 뒤인 5월 21일까지만 조사 기간을 연장한다고 합의했다. 스웨덴 조사단은 합조단 조사 결과 발표 이후 조사 연장이 의미가 없었던 것으로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 영국 조사단의 조사 기간은 처음부터 6월 15일까지였다. 영국 조사단 2명은 4월 24일 입국했다. 합의각서는 5월 24일 합조단 부단장과 주한 영국대사관 국방무관이 체결했다. 사고 원인 발표 후 사고 원인 조사를 위한 합의각서를 체결하는 일이 상식적인가 하는 의문이 제기되는 이유다.

5월 20일 합조단의 조사 결과 발표 이후 해외조사단의 활동 여부도 불투명하다. 노종면 천안함 조사결과 언론보도 검증위원장은 “영국 조사단 민간인 2명은 4월 24일에 입국했다. 뒤늦게 합의각서를 만들어 근거를 남겼던 것으로 생각한다. 늦게 서류를 만드는 데 (조사 기간을) 미국에 맞춰 6월 15일까지 했던 것일 수 있다”면서 “5월 20일 조사 결과 발표 이후 해외조사단의 활동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별로 없다. 천안함 침몰 행위자 규명을 위한 ‘다국적 연합정보 티에프’라는 조직은 활동을 계속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5월 20일 이후 해외조사단의 활동이 이어졌는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호주는 합조단과 조사 기간 연장을 위한 합의각서를 체결하지 않았다. 국방부 조사본부 관계자는 “각국의 조사팀에는 분야별 전문가가 있었다. 폭발물 전문가, 수거 전문가 등 여러 분야로 나뉘어 있었다”면서 “각국 조사팀은 각 나라에서 통제를 하는데, 호주 조사팀의 경우 본국의 상황 때문에 조사 기간을 연장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호주 조사팀이 없다고 해도 어뢰추진체 조사는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합조단과 해외 조사단이 체결한 합의각서.

합조단과 해외 조사단이 체결한 합의각서.

[포커스]천안함, 외국 조사단 역할은 ‘들러리’?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의 이덕우 변호사는 “다른 나라는 조사 기간 연장에 합의를 한 문서가 있는데, 호주만 없다면 호주는 어뢰추진체 조사에 참여하지 않았다고 봐야 한다”면서 “호주가 만일 어뢰추진체 조사에 참여하지 않았다면 5월 20일 합조단 조사 결과의 신뢰성에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어뢰추진체라는 중요한 증거물이 나왔는데도 왜 호주 조사단이 조사 기간을 연장하지 않았는지 의혹이 생긴다.

지난해 9월 국방부가 발간한 ‘천안함 최종보고서’를 통해서도 해외조사단과 합조단 사이의 균열을 발견할 수 있다. 미국·영국·호주 조사팀장은 보고서 머리말에서 “이 보고서의 발견과 결론에 동의한다(I concur with the findings and conclusions of this report)”고 밝혔다. 스웨덴 조사팀장은 “스웨덴이 참여한 부분에 대해서(relevant to the Swedish team‘s participation)”란 단서를 달았다.

호주는 조사기간 연장 체결 안해
국방부 조사본부 관계자는 “해외조사팀과 합조단은 서로 토의하고 조사를 하면서 정보를 공유했다. 해외조사팀이 열심히 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합조단에 민간위원으로 참여했던 신상철 서프라이즈 대표는 “해외조사팀에는 천안함 사건 관련 정보가 많이 없었던 것 같다”고 지적했다. 신 대표는 “해외조사팀은 들러리였다. 합조단 시나리오에 해외 전문가가 참여했다는 것을 남기고 싶었던 것”이라며 “지난해 4월 말 중간보고가 있었는데, 한국·미국·영국 팀만 발표를 했다. 왜 호주·스웨덴 조사팀은 발표를 안 하는지 궁금해서 물어봤다. 그들이 ‘우리들은 의미있는 결론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대답하더라. 알고 보니 천안함 항로, 엔진 관련 정보, 천안함 속력 등 기본적인 정보가 전혀 공유되어 있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스웨덴이 최종보고서에 조건을 단 이유가 이 때문이라는 것. 이에 대해 당시 합조단 단장을 맡았던 윤덕용 카이스트 명예교수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합조단에는 북한 잠수함이 공격했다는 것을 분석한 정보분석팀이 있었다”면서 “이 정보분석팀에 스웨덴 팀이 참여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해 서명을 하지 않은 것”이라고 해명했다.

<최영진 기자 c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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