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인물]‘부러지지 않는 화살’ 문성근 민주통합당 최고위원

“아버지 계셨다면 ‘열심히 해라’ 하셨을 것 같다”

문성근 최고위원이 정치권에 뛰어든 직접적인 계기는 야권통합을 통해 정권교체를 주장했던 ‘백만송이 국민의 명령’이었다. 결과적으로 전면적인 야권통합은 이뤄내지 못했다. 하지만 국민의 명령이라는 ‘꿈 같은’ 시도가 있었기에 정치권은 움직일 수 있었다.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영화 <부러진 화살>에서 눈에 띄는 조연(?)이 있다. 주연급 배우가 조연을 맡은 것도 의외지만, 짧은 시간에 보여준 그의 연기력은 관객들 사이에 화제가 됐다. 주제가 무거운 영화였지만, 영화 전반에 흐르는 위트와 반전으로 관객들의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그의 등장과 함께 영화관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짜증스러운 판사 연기를 할 때, 영화관에도 짜증스런 분위기가 흐르기 시작했다. 짧은 등장만으로도 배우 문성근의 존재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제 배우 문성근의 연기는 당분간 보기 힘들게 됐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면서 정치 한복판에 뛰어들었고, 짧은 시간에 무게감을 인정받는 정치인이 됐기 때문이다. 남들은 ‘꿈’이라며 비웃었던 ‘백만송이 국민의 명령’을 기반으로 야권통합의 기초를 닦았다. 그 바람을 등에 업고, 1월 15일 민주통합당 전당대회에서 유력한 정치인들을 제치고 2위로 등극했다. 정치 신인이 단번에 제1 야당의 최고위원 자리를 꿰찰 수 있었던 것은 정치권에서 보기 드문 신선한 충격이었다. 사람들은 이제 문성근이 시도할 정치변혁이 우리 앞에 어떤 모습으로 펼쳐질지 기대한다.

민주통합당 전당대회에서 문성근 바람이 거셌지만, 한명숙 대표와 표 차이가 많이 났다.
“처음 당대표 후보로 나설 때는 흥행의 불쏘시개가 되겠다는 마음이었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나에게 이런 것까지 하게 만드느냐고 야속한 마음도 들었다. 후보로 나설 때 역할의 한계를 설정(당대표를 목표로 하지 않았다는 의미)하기도 했다. 그런데 한계를 지어놓고 후보로 나서니까 전당대회의 흥행이 안 된다고 느꼈고, 대표를 해야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참모들은 서운할 수 있지만, 나는 아쉽지 않다.”

당의 쇄신에 문 최고위원의 역할을 기대하는 사람이 많다.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회는 박근혜 위원장이 간택한 사람들로 구성됐다. 1인 독재체제가 만들어진 것이다. 현역의원 중 얼마는 공천 물갈이를 한다고 했다. 비민주적인 방식이다. 이에 비해 우리는 시민이 직접 지도부를 선출했다. 제도의 민주화를 이뤄냈다. 민주통합당 운영에 시민이 더욱 적극적으로 참여하면 공천혁명이 일어날 수 있다. 하지만 이 과정이 무척 힘들고 괴롭다. 미래도 불투명하다. 우리는 원칙을 정하고, 원칙이 잘 작동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그게 내 역할이다.”

공천 쇄신에 대한 복안은 있나.
“공천 물갈이는 2차로 나눠서 해야 한다. 1차로 민주통합당 강령을 준수하고 지지하느냐 여부와 도덕성을 가지고 먼저 걸러야 한다. 그리고 공천과정에 100% 시민참여가 있어야 한다. 완전개방형 경선의 문제점은 두 가지다. 역선택이 가능하다는 점과 동원 경선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동원 경선은 돈봉투와 연결된다. 이 문제점들을 해결하려면 시민들이 등록하고 투표하는 것을 단순화하면 된다. 모바일로 등록하고 모바일로 투표할 수 있게 하면 해결할 수 있다. 유일한 해법이다.”

벌써부터 민주통합당의 행보에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석패율제(지역구 선거에서 아쉽게 떨어진 후보자를 구제하는 제도) 도입과 정당법 개정안(전당대회 참석 당원에게 여비를 제공하는 것을 합법화하자는 개정안)에 대해 한나라당과 합의했다는 이야기가 나왔기 때문이다.
“나도 석패율제가 비례대표를 줄이는 것으로 알았는데, 설명을 듣고 보니 아니었다. 선거관리위원회 제안은 광역별로 한 정당이 3분의 2를 싹쓸이를 했을 때 그 지역에 출마했던 다른 당 후보를 비례후보에 넣는 것이다. 하지만 석패율제에 대한 비판이 많기 때문에, 그 대안으로 지역구 국회의원과 비례대표를 동시에 선출하는 ‘독일식 정당명부제’를 도입해야 한다. 정당법 개정안은 여야의 요구가 많았다. 전당대회를 수도권에서 할 때, 영남이나 호남권의 대의원들이 참석하려면 하루가 깨진다. 여비도 많이 든다. 이 때문에 전당대회 참석 여비를 공영제로 하자는 취지인 것 같다. 이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하려면 모바일투표를 하면 된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미국에서 귀국 후 발언(저 같은 사람까지 정치를 할 필요가 있나)을 두고 여러 가지 해석이 나온다. 문 최고위원은 안 원장이 대선에 출마하려면 총선 때부터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안 원장은 존중해야 할 분이고, 그분의 판단을 기다리며 지켜봐야 한다. 한나라당 세력이 확산되는 것을 막는다고 이야기했으니까 기여를 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당연하다. 바르게 살아온 분이기 때문에 존중받아 마땅하다. 다만, 대선에서 뛸 의향이 있다면 국민에 대한 예의 차원에서 총선 과정에 참여하는 것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한 것이다.”

문재인 이사장의 지지율도 상승 중인데, 대선에 참여할 것으로 예상하나.
“아직까지 나는 대선후보에 대해 관심이 전혀 없다. 일단 총선을 대비해서 2013년 이후 우리 사회에 대한 입장을 놓고 정책적인 논쟁을 벌일 것이다. 500만명 이상이 참여하는 국민참여 경선을 통해 민주진보진영이 다수당이 되면, 대선후보에 대한 충분한 토론이 벌어질 것이다. 그렇게 뽑힌 후보라면 나는 어느 누구라도 지지할 것이다.”

요즘 이명박 정부를 상대로 강경 발언을 하고 있다. 대통령 탄핵 이야기까지 꺼냈다.
“10·26 재·보궐선거 당시 발생한 선거관리위원회 테러는 부정선거 사건이다. 민주주의를 근본적으로 부정한 것이다. 10·26 부정선거는 그렇게 넘어가면 안 된다. 이명박 대통령이 책임이 있다는 조건을 내건 후 한 말이다. 이 대통령의 임기가 단 하루가 남았더라도 책임이 있다면 책임을 져야 한다.”

1월 15일 전당대회에서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이 당한 온갖 수모를 깨끗하게 돌려드리겠다”는 발언을 했다. 정치적인 보복을 주장하는 것처럼 들린다.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이었던 넬슨 만델라는 ‘고백을 하면 용서하겠다’고 했다. 정치보복을 하자는 게 아니다. 민주적인 원칙을 지키자는 것이다. 법적인 문제를 확인하고, 확인한 후에는 법 절차대로 하자는 것이다. 곽노현 교육감을 괴롭히듯이 하겠다는 것이 아니다.”

이명박 대통령을 어떻게 평가하나.
“내가 <비언소>라는 연극을 하면서 이명박 대통령 역할을 맡은 적이 있다. 캐릭터 분석을 열심히 하면서 그분에 대해 좀 느꼈다. 젊은이들은 유신시대를 이해하지 못하는데, 나는 그 시대를 살았다. 권위주의적인 정권이 국민을 세뇌하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던 때다. 이명박 대통령은 그 생각을 그대로 갖고 계신 분이다.”

이번 총선에서 부산 북·강서을에 출마한다. 이 지역과 인연이 있나.
“개인적인 인연은 없다. 깊은 인연이라면 노무현 의원이 마지막으로 도전했던 곳이다. 유권자들이 어떻게 받아들일까 생각이 많다. 이 사회의 모순구조, 이것을 해결하려면 지역구도가 완화된 방식으로 민주정부를 세워야 한다. 핵심 고리는 지역구도 완화다. 그 부분에서 할 수 있는 일은 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전면적인 야권통합은 물 건너갔을까. 문성근 최고위원이 정치권에 뛰어든 직접적인 계기는 야권통합을 통해 정권교체를 주장했던 ‘백만송이 국민의 명령’이었다. 결과적으로 전면적인 야권통합은 이뤄내지 못했다. 하지만 국민의 명령이라는 ‘꿈 같은’ 시도가 있었기에 정치권은 움직일 수 있었다. 문 최고위원의 도전은 현재까지는 미완의 성공이다.

많은 사람들이 ‘백만송이 국민의 명령’이 정치권에 바람을 불러올지는 예상하지 못했다.
“남들은 불가능하다고 했지만, 처음부터 이뤄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2010년 6·2 지방선거 개표 방송을 보면서 국민들 사이에 정권교체 요구가 화산처럼 쏟아졌다고 느꼈다. 하지만 정당권이 받아들이지 못했다. 정당권은 국민의 힘에 밀려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의 눈물’ 광고가 화제였다. 문 최고위원은 연설을 잘하는 사람으로 꼽히는데, 노하우가 무엇인가.
“아이고, 내가 연설을 잘하나.(웃음) 연설을 할 때 청중들에게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인지에 집중한다. 연설을 할 때 이성적으로 분석한 내용만 전달하는 게 아니다. 이 사회의 모순이라든지, 앞날에 대한 꿈을 같이 꾸자는 내용을 담는다. 내가 연설을 시작한 계기는 2001년 3월 노무현 대통령 후보를 돕겠다는 결정을 한 후다. 당시 부산에서 노 후보 후원회가 열렸는데, 사회를 봤던 명계남씨가 예정에 없던 나에게 발언 기회를 줬다. 행사장 바깥에 있다가 갑자기 뛰어가 연설을 했는데, 괜찮았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이후에 연설해달라는 주문을 많이 받았다. 그러나 여전히 어색하기 짝이 없다.(웃음)”

문 최고위원은 여전히 통합진보당과의 통합을 주장한다. 하지만 상대편은 연대를 이야기한다.
“통합 이야기만 나오면 한숨만 나온다. 야권통합이 어렵다고 해서 마지막으로 선거법 개정을 통해 공동공약으로 정당연합을 하자고 제안했지만, 끝까지 거부했다. 시간이 다 갔다. 그동안 총선에서 어떻게 연대를 하느냐, 가능하지 않다고 말해왔다. 그렇다고 총선에서 1대 1 구도를 포기한 것은 아니다. 아직도 정당연합이나 박원순식 단일화를 하면 문제는 완화된다. 단일화 방법 중에서 정당연합이 가장 좋다. 영남권에서 민주진영이 약진하려면 정당연합이 필요하다.”

1월 18일은 문 최고위원의 아버지인 고 문익환 목사 18주기였다. 만일 아버지가 현재의 아들 모습을 봤다면 어떤 이야기를 했을까.
“내가 하는 일에 반대를 하지 않으셨을 것이다. ‘너 열심히 해라’고 말씀하셨을 것 같다.”
영화 <부러진 화살>은 배우 문성근의 역량을 집약적으로 보여줬다. 문 최고위원은 <부러진 화살>에 나온 장면을 3일 동안 촬영했다. ‘국민의 명령’ 활동으로 바쁜 탓이었다. 어쩌면 이 영화는 문성근 최고위원이 없었으면 나오질 못했을 것이다. 정지영 감독에게 영화의 원작이기도 한 <부러진 화살>이라는 책을 소개한 이가 문 최고위원이기 때문이다.

영화 <부러진 화살>에 짧게 등장했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맡았던 판사 배역의 캐릭터 분석은 어떻게 했나.
“꼴통 교수가 하나 있다. 그 교수는 건방지고 잘난 척을 한다. 내가 연기해야 할 판사는 그 교수를 그냥 눌러야 된다는 마음가짐을 가졌을 것이라고 봤다. 대단히 권위적이면서 안하무인인 캐릭터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 자체만으로는 캐릭터가 재미가 없어서 제도 속에서 보호되고 있어서 권위가 스스로 과장되어 있는 사람으로 설정했다. 남이 나를 공격할 가능성에 대해서는 상당히 약한 모습을 보여주는 이중적인 느낌을 주려고 노력했다.”

이 작품에 어떻게 출연하게 됐나.
“이 사건을 인터넷에서 우연히 발견했다. 이 사건에 대한 책 소개를 봤는데, 재미있겠다 싶어서 인터넷으로 주문해서 읽었다. 김 교수의 캐릭터가 굉장히 재밌었다. 딱 보니까 영화 소재였다. 일산에 같이 사는 정지영 감독에게 잘 맞을 것 같아서 책을 읽어보라고 줬다. 이후에 바쁜 일 때문에 2개월 정도 연락을 못했는데, 그 사이에 정 감독이 판권도 사놓고 계약을 해놨더라. 김명호 교수도 면회를 가서 만났고, 박훈 변호사도 만났더라. 시나리오 작업을 할 때 의견도 교환했다. 무겁고 심각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부산영화제에서 이 영화를 본 관객들이 너무 재미있어 하고 통쾌하게 느끼더라. 그때 깜짝 놀랐다. ‘나는 꼼수다’ 현상과 비슷한 것 같다. 김 교수는 ‘쫄지마 시바’의 원조다.”

<부러진 화살>이 흥행하면서 실제냐, 아니냐 등을 두고 논쟁이 치열하다. 법원의 입장은 영화가 많은 부분을 생략하면서 문제가 생겼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출연한 배우로서 이런 논쟁을 보고 어떤 생각을 하나.
“<부러진 화살>은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영화다. 박훈 변호사의 표현을 빌리자면 영화의 구성이나 내용들은 공판기록이나 공판 진행내용을 그대로 살렸다는 것이다. 그 이후에는 감독이 방향을 잡아서 영화에 맞게 구성을 한 것이다. 창작활동이다. 그게 다다. 영화를 두고 벌어지는 논란 중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에 관한 토론이라면 바람직하다. 하지만 창작행위 자체인 영화를 두고 왜 다큐멘터리가 아니냐고 말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창작자가 이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는 보지 못하고,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만 보면 어떻게 하나.”

배우 경력이 25년이다. 정치에 뛰어든 이상 배우로 되돌아가기 어려울 것 같다. 배우 인생에 아쉬움은 없나.
“회사를 다니다가 연기를 했다. 요즘 배우는 20대 초반부터 활동하기 때문에, 30대 초반이면 활짝 피게 된다. 나는 35세에 시작해서 발전하는 기간이 너무 짧았다. 그게 제일 아쉽다. 질문 자체가 배우를 그만둔 사람처럼 하는 것 같다.(웃음) 배우는 정년이 없다. 70살이 됐을 때 70살 노인 역을 해보고 싶다.”

■ 약력
1953년 문익환과 박용길의 3남으로 도쿄에서 출생
1972년 서강대학교 입학
1985년 연극 <한씨 연대기>로 데뷔
2002년 개혁국민정당 가입, 활동
2010년 백만송이 국민의 명령 공동대표
2012년 1월 민주통합당 최고위원

■ 작품
영화 : <그들도 우리처럼> <경마장 가는길>
<너에게 나를 보낸다>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꽃잎> <오 수정> <부러진 화살> 등 다수
연극 : <한씨연대기> <칠수와 만수>
<변방의 우짖는 새> 등 다수
TV :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진행자,
드라마 <신의 저울> <자명고> 등 다수

<글·최영진 기자 cyj@kyunghyang.com 사진·김석구 기자 sgkim@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