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안철수 강연정치는 본격 대권 행보?

보병역할 할 조직 없어 한계… 출마여부 여전히 모호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지금 이 자리에서 계속 긴장감을 줘 양당이 끊임없이 발전하는 모습을 보게 하는 것이다.”(3월 27일 서울대 강연)

“(총선 후보 판단 기준은) 미래가치에 부합하는 사람인가 아닌가가 가장 중요하다.”(4월 3일 전남대 강연)

“(대선 출마와 관련) 제가 선택한 것이 아니고 저에게 주어진 것이라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4월 4일 경북대 강연)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공중전의 방법으로 정치에 참여하고 있다. 최근 안 원장의 발언록을 보면 그가 던지는 메시지는 짧지만 정치적 함의가 포함돼 있다. 마치 최첨단 전투기가 테러 본거지만을 꼭 집어 폭격하는 것과 같다. 이는 일종의 ‘안철수식 메시지 정치’인 셈이다. 2030(20대·30대)은 ‘안철수식 강연정치’에 대해 열렬히 환호하고 있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장이 4월 3일 전남대 대강당에서 ‘광주의 미래, 청년의 미래’를 주제로 특강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그의 정치적 발언은 강연 이후 질의응답 형태로 나오고 있지만, 무슨 질문(예를 들면 대선에 출마하나)이 나올지 뻔한 상황에서 회피하지 않고 정치적 견해를 당당하게 밝히는 것을 보면 그가 오는 12월 대선에 참여할 뜻이 있는 것으로 읽힌다.

총선 ‘투표 가이드라인’ 제시
서울대 강연에서 안철수 원장은 대선 참여 가능성을 열어놨다. 그는 강연에서 “사회의 긍정적 발전을 일으킬 수 있는 도구로 쓰일 수만 있다면 설령 정치라도 감당할 수 있다”며 정계 입문 가능성을 내비쳤다. 그의 정치 관련 발언은 2월 6일 재단 설립계획 발표 기자회견 이후 50여일 만이었다.

전남대 강연에서는 총선 관련 ‘투표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한 학생이 ‘구태 정당정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첫째 국익을 생각하는 사람, 둘째 미래에 대해 얘기하는 사람, 셋째 인격이 성숙한 사람, 넷째 정당보다 개인을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아내가 전남 순천 사람으로 광주에서 초등학교를 다녔다. 광주는 민주화뿐만 아니라 산업화의 모태가 됐다”며 ‘민주화의 성지’ 광주와의 각별한 인연을 소개하기도 했다. 경북대 강연에서는 국민적 요구가 있을 때는 대선후보 출마가 가능하다는 발언을 했다. 그는 대선 출마와 관련, “제가 선택한 것이 아니고 저에게 주어진 것이라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그가 총선 선거운동 기간 중 여야의 정치적 기반인 영호남을 차례로 방문, 정치적 견해를 밝힌 것은 앞으로도 기회 있을 때마다 정치적 발언을 계속하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그는 이번 학기에 서울대에서 한 과목(‘기업가적 사고방식’)만을 강의하고 있다. 하지만 대학, 기업 등 전국 각지에서 강의 요청이 쇄도하고 있다. 이에 따라 안 원장은 정기적인 강의 이외에 특강 형식으로 전국을 돌며 강연정치를 할 가능성이 크다.

전문가들은 안철수 원장이 총선 메시지를 계기로 본격적으로 대권행보에 나설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와 관련, 여의도에서는 정치컨설턴트, 전직 의원 보좌관, 대기업 연구소와 IT업체 출신 인사들로 구성된 이른바 ‘안철수 팀’이 가동되고 있다는 소문이 펴져 있다. 안 원장은 교수 등 전문가그룹과 정치·경제·안보 등 다양한 분야의 스터디를 계속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안철수 원장 측 관계자는 “안철수 원장을 도와주는 별도팀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부인했다.

‘안철수 팀’ 가동 소문에는 부인
안철수 원장이 ‘대선 행보’에 나선다면 현재로서는 두 가지 방법을 생각해볼 수 있다. 첫째는 여야도 아닌 제3당을 창당해 제3후보로 대선에 출마하는 방법이다. 최근 그의 발언을 보면 주로 기성 정치권을 비판하고, 탈이념과 무당파를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를 추론케 한다. 하지만 이 같은 정치실험이 우리 정치역사상 성공한 전례가 없다는 점에서 성공 가능성이 희박한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탈이념과 무당파를 기본으로 권력을 잡는다는 생각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 정치사적으로 찾아보기 힘들다”며 “우리나라 정치제도가 다시 실험을 할 만큼 허술하지는 않다”고 말했다.

둘째는 안철수 원장과 민주통합당 등 야당과의 연대다. 이 경우 안 원장이 민주통합당에 입당해 민주통합당의 대선후보를 노리거나, 그가 무소속 대권후보로 나서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 등과 최종적으로 야권 단일후보 경선을 거치는 방안이다. 특히 안 원장이 민주통합당에 입당할 경우 그는 민주통합당에 일정한 지분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고 정치권에서는 보고 있다. 야권의 한 관계자는 “안철수 원장 측은 이번 총선 출마자 공천과정에서 다수인 민주통합당이 소수인 통합진보당으로부터 끌려다니는 모습에 자신감을 얻었을 것”이라며 “안 원장 측은 민주통합당에 들어와서 대선후보가 되면 좋고, 민주통합당 대선후보가 되지 않더라도 지분을 최대한 얻는 전략을 취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만약 이번에 그가 민주통합당 대선후보가 되지 못할 경우 차기 대선후보를 노릴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안철수 원장은 전투가 벌어졌을 때 보병 노릇을 할 조직이 없다는 한계가 있다. 안 원장은 야권 단일후보가 되기 위에서는 민주통합당 내에서 대선후보 경선을 거치거나 민주통합당, 통합진보당 등 후보와 야권 단일후보 경선을 해야 한다. 대선후보 경선과정은 대선 본선 못지않게 치열하다. 경선에서는 전국 각지에 손발 역할을 해야 할 조직이 튼튼한 쪽이 절대 유리하다. 또한 상대 후보와 이념적으로는 끊임없이 선명성 경쟁을 벌여야 하고, 그동안 베일에 가려져 있던 사생활도 모두 드러날 수밖에 없다. 현재는 보병 없이 공중전으로만 지지율을 유지할 수 있지만 실제 싸움이 시작되면 경선은 조직 싸움이 될 수밖에 없다.

정치적 검증을 받지 않은 안철수 원장이 과연 이 모든 과정을 감당할 수 있을지가 주목거리다. 이와 관련, 유시민 통합진보당 공동대표가 “정치를 할 거라면 과감하게 세력을 선택하는 것이 사회발전의 도구로 쓰이는 합당한 길”이라고 밝힌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권순철 기자 ikee@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