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인경이 만난 사람]“안철수교수 자기안위보다 국민 걱정하는 점에 호감 느꼈다”

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 8월 15일자호의 커버스토리는 ‘불황보다 무서운 불확실성’이다. 미국의 경우 1930년대 대공황에 버금간다던 2008년발 불황은 이제 끝났다. 기업 이익이 기록을 경신하며 기업들은 현금이 넘쳐나 행복한 비명을 지르지만 개인은 어떤가. 임금은 오르지 않고, 새로운 일자리는 없고 빚더미에 짓눌려 신음조차 낼 힘이 없다. 불황이 사라지자 더 커진 경제의 불확실성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어떻게 살지 막막하다”고 한숨 쉬는 미국인들의 실상을 소개했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삼성 등 대기업이 ‘올해 순이익 몇조원’이란 성과를 발표할 때 “우리 대기업의 성장발전이 대견하고 감동스럽다”고 박수를 치기엔 우리네 삶이 너무 팍팍하고 불안하다. 각 정당과 대통령 후보들이 경제민주화를 외치고 일자리 창출을 약속해도 공허하기만 하다. 글로벌시대인 요즘, 유럽의 재정위기가 장기화되면서 한국 경제에도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시작해 불안감이 증폭된다. 대기업과 노동자 등 우리 모두가 더불어 잘 살 수는 없는 것일까. 마침 8월 말에 <왜 동반성장인가>(가제)란 책을 펴낸다는 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을 만났다. 안철수 교수와의 연대설, 선진당 후보 추대설 등 각종 ‘설’도 난무해서 궁금한 점도 많다. ‘동반성장의 전도사’ ‘경제민주화의 원조학자’로 불리는 그를 역삼동 사무실에서 만났다.

[유인경이 만난 사람]“안철수교수 자기안위보다 국민 걱정하는 점에 호감 느꼈다”

동반성장연구소를 만들어 책까지 펴낸다. 왜 그토록 동반성장을 강조하나.
“경제학자로서, 또 총리와 초대 동반성장위원장을 맡으면서 동반성장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알기 때문이다. 지난 2년간 동반성장 문화의 조성과 확산을 위해 고등학교부터 국회에 이르기까지 전국을 누비며 200여회의 강연을 했다. 우리나라처럼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갑과 을의 관계로 규정되고 ‘을사조약’(을 역할인 중소기업이 죽어난다)이란 말이 생길 만큼 횡포가 심한 나라는 없다. 협력업체들이 서로 우호적인 외국에선 굳이 동반성장이 화두가 되지 않는다. 외국 경제교과서에도 없고 매스컴에도 안 나오는 게 당연하다. 총리 시절에 각계각층의 사람을 만났는데 중소기업인들이 대기업 횡포에 ‘이민가고 싶다’ ‘사업할 의욕이 나지 않는다’고 호소했다. 동반성장에 대한 의식은 어릴 때 스승인 스코필드 박사의 교훈 덕이다. 1960년대에 ‘지금 빈익빈부익부 현상이 나타나는데 30~40년 뒤엔 더 심해질테니 네가 그걸 바로잡는 데 앞장서라’고 강조하셨다. 그 뜻을 실천하는 것이다.”

솔직히 ‘동반성장’이란 용어가 너무 막연해서 머리나 가슴에 와닿지 않는다.
“아마 너무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문제로만 인식되어 그럴 것이다. 하지만 부부관계부터 통일에 이르기까지 동반성장이 해법이다. 남북관계도 개성공단을 활성화하는 등 북한을 포용해 한민족의 힘을 보여야 서로 상생한다. 또 남편이 아내 일을 돕는다는 개념이 아니라 서로 가사를 나눠하며 남은 시간을 즐겁게 보내야 부부관계가 좋아지고 가정이 평화롭다. 유치원부터 서로 돕고 발전하는 동반성장의 뜻을 가르치면 왕따, 양극화 등의 사회문제도 해결된다. 경제민주화의 핵심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람 사이의 경제활동을 모두 교환으로 생각하고 교환체계가 서로 대등해지는 것이다. 모두 똑같은 수준의 삶을 살자는 평준화가 아니다. 또 전경련이나 정부 부처에서 동반성장위원회의 일에 직·간접적으로 태클을 걸었으나 위원회 발족 후에 대기업과 하청업체의 동반성장 조인식 등이 이뤄지는 등 성과가 컸다고 자부한다.”

각 당이 대선을 앞두고 경제민주화를 내세우고 있다.
“새누리당은 경제민주화의 의지가 없고, 민주통합당은 해결 능력이 없어 보인다. 민주통합당의 경우 재벌개혁을 강조하지만 중소기업이나 소상공인을 육성하려는 내용은 빈약하다. 재벌 손본다고 경제민주화가 되는 것이 아니다. 반면 새누리당은 일단 현재 상황은 인정하고 앞으로 잘 하겠다는데, 그건 권투시합에서 같은 링에 헤비급과 플라이급 선수를 겨루게 하며 룰을 공정하게 잘 지키는지 살펴보겠다는 것이다. 또 박근혜씨는 과거엔 경제민주화에 대해 언급이 없다가 대선을 앞두고 너무 선거용으로만 말하는 것 같아 진정성이 의심스럽다.”

매우 부드럽고 온순한 성격으로 알려졌는데 유독 박근혜 위원장을 비판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비판이 아니라 ‘지적’이다. 많은 이들이 박근혜씨가 원칙주의자로 약속을 잘 지키고 애국심이 강하다고 평가한다. 그런데 그분이 국가에 기여한 일이 무언가. 박근혜씨의 업적은 새누리당이 국민들의 신망을 잃었을 때 선거에 구원투수로 나서 그 당을 승리로 이끈 것뿐이다. 물론 그것도 대단한 능력이긴 하다. 가장 실망한 것은 세종시 수정안 때의 태도다. 세계 그 어느 나라도 행정수도를 이분하는 나라는 없다. 행정 비효율이 엄청나고 통일 후에 또 이전해야 할 텐데 그 비용을 어떻게 할 것인가. ‘충청도민과 약속을 했으니 지켜야 한다’는 것은 개인의 소신일 수는 있지만, 그 약속이 문제가 많다면 수정할 수 있는 융통성과 합리적 판단이 중요하다. 난 ‘세종시 총리’란 별명을 얻기까지 했지만 세종시를 기업도시, 교육도시로 발전시킬 수정안을 제시하는 등 많은 노력을 했다. 박정희 대통령의 향수 때문에 박근혜씨를 지지하는 이들도 많다고 들었다. 박근혜씨는 박 대통령의 딸이지 박정희 대통령이 아니다. 또 박 대통령은 5·16 군사쿠데타, 1969년의 3선개헌, 1972년의 10월유신에 이르기까지 세 번의 쿠데타를 일으킨 분인데 객관적 평가 없이 효심만 강조하면 되는가.”

반면 안철수 교수에 대해서는 호의적이다. V소사이어티 멤버인 최태원 회장의 탄원서를 써준 것도 옹호했고…. 상호 교감이나 제3당 창당을 하나.
“안 교수와는 소문과 달리 직접 대면해 심도 깊은 대화를 나눈 적은 없다. 매스컴에서 보여진 이미지나 그의 행적만을 알 뿐이다. 아무리 값이 등락할 수 있는 주식 증여의 행태라고 해도 거액의 재단을 만든 것, 경제현실에도 일가견이 있고 자신의 안위만이 아니라 나라와 국민을 걱정하는 점에 호감을 느꼈다. 그의 흠결을 들추기보다 그의 능력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그가 동반성장의 의지를 갖고 실천할 사람이라면 어떤 형태로건 기꺼이 손잡을 수 있다.”

언론에선 늘 잠재적 대권후보로 분류한다. 정치평론가나 정치학자들이 입을 모아서 ‘스펙은 대권후보 가운데 가장 훌륭하나 이명박 정부에서 총리를 지낸 것이 치명적 약점’이라고 한다. 총리 청문회에서 스타일도 많이 구겼고….
“사람들은 내가 이 정부에서 총리를 한 것이 엄청난 실수나 명예훼손을 당했다고 하는데 그렇지 않다. 이명박 대통령은 상대후보에 비해 500만표나 많은 표, 즉 국민의 지지를 얻어 당선된 분이다. 다만 이 정부가 남북관계가 경직되고 국민, 특히 서민과의 소통이 안 된다기에 균형추의 역할을 위해 총리직을 수락했다. 대기업 우대정책도 풀고 국회의원들과도 자주 만나기를 요청드렸으나 여의도정치에 환멸이 심한 분이라 쉽지 않았다. 청문회의 경우, 정말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변명 같아 그만하겠다.”

총리를 하며 지켜본 우리 정부의 문제는 무엇인가.
“현 시스템에서 우리나라는 대통령의 해피엔딩이 불가능하다는 걸 느꼈다. 대통령 후보들도 무조건 선거 승리만 추구할 뿐 당선 후의 집권 플랜이 명확하지 않아 실행단계에서 실수를 할 수밖에 없다. 또 대통령의 권한이 너무 많다. 그 많은 권한을 직접 행사할 수 없으니 주변사람들이 대신 행사하다가 권력형 비리사건이 터지는 것이다. 대통령 혼자 외교부터 문화정책, 숱한 지명직 등을 다 지혜롭고 공정하게 처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헌법 86조에 명시된 내용을 명확히해서 총리에게 권한을 이양하거나 총리를 국회에서 뽑는 것도 생각해볼 만하다. ”

유시민 전 의원도 ‘누구와도 소통이 가능한 사람’이라고 평했고, 안철수 교수도 정 이사장의 다방면의 인맥이 부러워 연합을 기대한다는 소문도 있다. 해외 석학부터 가수 싸이에 이르기까지 놀라운 대인관계의 비결은 무엇인가.
“기본적으로 사람을 좋아한다. 한 번도 의식적으로 목적을 갖고 사람을 사귄 적이 없으니 상대방도 부담감을 갖거나 경계하지를 않는 것 같다. 또 성격이 모질지 못해 누가 만나자고 하면 남녀노소 관계없이 만나다보니 ‘여자를 좋아한다’란 말도 듣는다. 그 말은 맞다. 여성에게 친절하고 서울대 총장 시절에도 여교수를 보직교수로 많이 임용해 큰 도움을 받았다. 누굴 만나도 마음을 열고 솔직하게 대하면 사람들이 모인다. 다만 주변의 사람들이 구슬이라면 그걸 잘 꿰어 아름다운 목걸이를 만들어야 할 텐데 그건 못했다.”

보수논객 전원책 변호사가 ‘정 전 총리는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할 줄 아는 사람, 내공이 강한 사람’이라고 평했다.
“역시 날카로운 분이다.(웃음) 1980년대 서울대 교수 신분을 박탈당할 각오를 하고 개헌 촉구 서명을 했고, 황우석 사태 때 서울대진상위원회를 구성해 사건의 진실을 밝혔다. 또 노무현 대통령 당시에 서울대 철폐론, 3불정책에 맞섰고 세종시나 초과이익공유제를 소개하면서도 재벌들 주장에 뜻을 굽히지 않았다. 한 제자가 ‘황빠, 노빠, 이제 박빠(박근혜 의원 추종세력) 등 빠들과 투쟁하는 것이 특기’라는 우스갯말도 했다.”

하지만 리더, 특히 대통령의 경우엔 강한 집권의지나 카리스마가 필요한데 카리스마가 부족해 보인다고 한다 .
“목소리나 제스처가 큰 것이 카리스마가 아니라 뜻이 큰 것이 카리스마다. 너무 큰소리로 자기 주장을 하는 이들에 비해서 소심해 보일지 모르지만 의지는 누구보다 크고 강하다. 중요한 일은 큰 목소리나 야심이 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한 마음과 배려심이 해결해준다. 서울대 총장 시절에도 조용한 목소리로 지역균형선발제 등 많은 일을 처리했다.”

그런데 평소 애매모호한 화법으로 심중을 알 수 없다는 지적도 듣는다.
“그건 스승인 조순 선생이 ‘인생에서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데 무슨 일이건 절대 아니다, 절대 못한다란 말은 하지 말라’는 말씀을 따라서다. 대통령 출마 역시 현 상황에서 ‘절대 안 나온다는 말은 절대 못한다’는 말이 진심이다. 나중에 번복하지 않으려는 신중한 표현인데 가끔 오해를 받는다.”

유인경이 만난 사람

야구경기 해설을 할 만큼 야구광이다. 자신의 지금 상황을 야구경기에 비유한다면.
“야구는 전략과 기술, 감독과 선수의 관계, 동료와의 호흡, 관객의 응원 등 모든 게 너무 인생과 닮았다. 패자부활전이란 제도도 마음에 든다. 지금의 내 상황은… 8회말 1사 1루 정도? 8회까지 성실히 뛰었고, 전 경기에서 상대방의 기습공격에 충격도 받았지만 화끈한 홈런 한 방이면 역전도 가능하다. 홈런은 실력과 더불어 운도 따라야 한다. 운이 가득 찼다는 내 이름처럼 앞으로 운이 따라주지 않을까.”

<글·유인경 경향신문 선임기자 alice@kyunghyang.com>
<사진·김석구 선임기자 sgkim@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