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민주당에 실망한 광주 민심, 안철수에 호기심

10월 23일. 광주NGO센터에는 약 200명의 사람이 모였다. 이날 광주NGO센터에서는 광주전남시민정책포럼(이하 포럼) 창립식이 열렸다. 포럼은 안철수 후보를 지지하는 광주·전남 시민들의 정책제안 단체다. 하승창 안철수진심캠프 대외협력실장이 창립식에서 초청강연을 했다.

포럼에는 박광서 전남대 교수, 조정관 전남대 교수, 박미경 광주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 나기백 참여자치21 공동대표, 김강렬 시민생활환경회의 이사장, 서정훈 광주NGO센터장 등 광주·전남지역의 교수, 시민운동가들이 주요 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포럼의 정진욱 대변인은 “특별히 홍보하지 않았는데 창립식에 예상보다 많은 사람이 왔다”며 “광주 민심의 상당 부분은 안철수 후보에게로 기울어져 있다고 본다. 광주 민심을 7(안철수)대 3(문재인) 정도로 본다”고 말했다.

10월 4일 무소속 안철수 대선후보가 광주 충장로를 걸으며 시민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 강윤중 기자

“매번 민주당 찍었는데 실망이 크다”
정 대변인의 말처럼 광주 여론은 안철수 후보 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지난 10월 6~7일 광주MBC가 한길리서치에 의뢰해 광주·전남 유권자 800명을 상대로 조사한 야권 단일후보 조사 결과에 따르면 안철수 후보가 55.3%로 31.0%를 얻은 문 후보에 비해 24.3%포인트나 높게 나타났다.(신뢰수준 95%, 오차범위 ±3.5%p)

10월 23일 광주에서 만난 시민들의 목소리도 이러한 여론을 반영하고 있는 듯했다. 택시기사 김문수씨(가명·55)는 “솔직히 선거 때마다 민주당 찍어줬는데 지난 총선 공천도 그렇고 지난 경선도 그렇고 실망이 크다. 지금 서구 사람들 중에는 이정현(19대 총선 새누리당 광주 서구 후보) 뽑을 걸 그랬다며 후회하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누워서 침뱉기라서 그동안 말을 못했지만, 민주당이 제대로 못하고 있다”며 “안철수가 단일화 전제조건으로 정치쇄신을 말하지 않았느냐. 민주당의 지난 경선을 보면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그래서 단일 후보도 안철수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광주 민심이 안철수 후보로 기울어진 데에는 민주당에 대한 실망이 있다. 광주에서 민주당은 ‘여당’이다. 지난 30년간 광주·전남지역에서 민주당 공천만 받으면 당선은 따놓은 당상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실망감이 커지면서 지역민들 사이에는 대안을 찾는 분위기가 생겼다. 광주·전남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안철수 현상’은 민주당에 대한 질타인 셈이다.

익명을 요구한 광주의 한 시민운동가는 “지역 차별을 받던 광주시민들이 유일하게 의지해온 게 민주당이다. 광주시민들은 민주당이 한국 사회의 정치적 지형을 바꾸고 대변자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했지만 민주당은 그 기대를 충족시켜주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19대 총선에서 새누리당 이정현 후보가 광주 서구에서 40% 가까운 지지를 받은 것도 민주당이 광주시민이 기대하는 ‘정치적 가치’를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당시 새누리당 이정현 후보가 내세운 게 ‘호남 예산 지킴이’였다”며 “당시 이정현 후보를 선택한 광주시민들의 심리는 2007년 이명박을 지지했던 30~40대 수도권의 심리와 비슷하다. 어차피 민주당이 가치를 실현해내지 못할 테니 예산, 즉 실리라도 챙기자는 심리였다”고 말했다.

9월 28일 민주당 문재인 대선후보가 광주 5·18 국립묘지를 참배하고 있다. | 정지윤 기자

자영업자 김두수씨(가명·63)는 문재인 후보와 ‘친노’를 향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참여정부 때의 ‘호남 홀대론’ 논란과 모바일 경선 과정에서 불거진 잡음이 문재인 후보 측에 부정적인 이미지를 남겼다. 김씨는 “노무현 대통령을 호남에서 만들어준 거나 마찬가지인데 열린우리당 분당은 사실상 배반이었다. 그래서 2007년 대선 때는 솔직히 이명박 찍었다. 민주당에 표 안 준 건 그때가 처음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2007년 대선 이후 선거부터 민주당이 아닌 무소속 후보나 다른 정당 후보에게 투표했다. 김씨는 “문재인 후보도 당시 참여정부를 부산 정권이라고 하지 않았나. 후보 되니까 광주 내려와 홀대해서 미안하다고 사과했지만, 진심인지는 모르겠다”고 말하며 “안철수가 경험이 없어서 불안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안철수가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민주당 측으로서는 참여정부의 ‘호남 홀대론’이 다소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민주당 광주시당의 한 관계자는 “참여정부와 당시 문재인 민정수석이 호남을 차별했다는 것은 사실 근거가 없다. 지난 경선 과정에서 경쟁 후보 측에서 이를 가지고 공격했는데, 그게 바이러스처럼 확산이 된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8월 경선 당시 김두관 후보 측의 선대위원장이었던 염동연 전 의원은 “문재인 후보는 참여정부 당시 호남 인맥 청산의 주역이었다”며 “이러한 인사가 호남의 아들, 호남의 후보를 자처하는 것은 소가 웃을 일”이라고 말한 바 있다.

문재인 후보와 친노에 비판적 정서
민주당과 친노에 대한 비판적 정서 외에도, 2002년 경선 과정의 경험이 ‘새로운 인물’을 선택하는 흐름을 만든다는 분석도 있다. 택시기사 김문수씨는 “대선에 출마한 세 후보 모두 경상도 후보인데 지역에서 인물을 배출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도 있다”며 “그래도 2002년에 광주가 노무현을 지지해서 대통령을 만들지 않았느냐”고 말했다. 2002년 광주에서 정치 변화의 계기와 동력을 만들었고, 이를 수도권이 받아들였던 경험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경험들로 광주시민들이 새로운 정치 변화나 흐름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안철수 현상이 강화한다는 것이다. 이신 광주통일사회연구소 소장은 광주에서 두드러지는 안철수 현상은 광주시민들의 ‘심층심리’를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 소장은 “광주에서는 이번에 대선후보를 내지 못했는데, 이 때문에 지역민들이 느끼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빈 자리가 크다”며 “지역에서는 김대중 전 대통령을 다시 찾는 열기가 높아졌는데, 그게 안철수 후보에게 투영된 것”이라고 말했다.

빨간불 켜진 문재인 캠프 반전 노려
민주당으로 굳어졌던 광주지역 정치지형에 안철수 현상이 하나의 출구가 되면서 안철수 지지가 더 강화한다는 분석도 있다. 광주는 민주당 의원, 민주당 관계자들의 정치적 입지가 공고한 만큼 새로운 정치세력이 형성되기는 어려운 조건이었다. 시민운동진영이나 새로운 정치를 모색했던 대안세력에게 ‘안철수 현상’은 하나의 돌파구가 됐다는 것이다. 광주지역 정치권 관계자는 “광주에서 민주당은 많은 사람이 이미 자리를 잡고 있어서 새로운 세력이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다”며 “그러나 안철수 후보 쪽은 백지상태여서 시민운동진영 등 새로운 정치세력이 많이 가고 있다”고 말했다.

시민운동진영뿐만 아니라 민주당에서도 안철수 후보 측으로 이동하는 움직임이 있다. 일부는 민주당 내에서 밀려난 세력들이다. 하지만 이들 외에도 민주당에서 안철수 쪽으로 이탈하는 움직임이 있어 내부 단속을 강화하는 분위기다. 민주당 광주시당 관계자는 “광주 경선 때 문재인 후보가 1위를 했지만 모바일 덕분이었지 당심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여전히 민주당 광주시당 내 분위기는 문재인 후보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기보다는 형식적으로만 움직이고 있는 상황이다. 당원들을 대상으로 한 단일화 여론조사도 안철수 후보와 문재인 후보가 박빙으로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호남 민심에 빨간불이 켜진 문재인 캠프는 10월 28일 열릴 광주·전남 발대식을 민심을 잡는 변화의 계기로 삼겠다는 전략이다. 특히 경선 경쟁 후보였던 손학규, 김두관, 정세균 후보가 참석을 하고 지지연설을 한다면 당심에도 상당한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아직 유효한 민주당의 ‘호남 프리미엄’과 문재인 후보에 대한 지지여론이 적지 않은 만큼 반전의 가능성도 있다는 기대다. 직장인 김남일씨(가명·29)는 “안철수 후보보다 정치경험이 많기 때문에 문재인 후보를 지지한다”며 “최악보다는 차악이라는 생각에 민주당을 지지하고 있고, 아직까지도 민주당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광주 송정역 근처에서 빵집을 운영하는 양정아씨(가명·44)는 “주변 사람들 중 안철수를 지지한다는 분도 많지만 아직은 문재인 후보를 지지한다”며 “안철수 후보는 정치적 경험이 없어서 불안하다”고 말했다. 양씨는 “선거 때마다 다른 인물, 다른 정당 찍는다고 해도 막상 투표소 들어가면 민주당 후보를 찍게 되더라”며 “안철수 후보를 지지한다는 사람도 많지만 결과를 봐야 알 것”이라고 말했다.

단일 후보로 누구를 지지할지 결정하지 못한 시민들도 많은 만큼 민주당의 ‘호남 프리미엄’이 반전의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매일시장의 상인 장정수씨(가명·73)는 “아직까지는 결정을 못했다. 검증을 더 해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상인 신미순씨(가명·64)도 “전에는 문재인 후보에게 마음이 갔었는데 요즘은 또 젊은애들이 안철수 후보를 선호하니까 마음이 가기도 한다”고 말했다.

<광주/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