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인경이 만난 사람]MB 핵심 측근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

“서민 힘들어지고 대기업만 잘 사는 세상처럼 된 것 아쉬워”

박근혜 정부가 출범을 앞두고 있다. 극적이었던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에 기여한 숱한 이들은 벌써 청와대를 비롯해 정부 부처 곳곳에 자신의 자리를 상상하며 기대에 부풀어 있다. 들어오는 이들이 있으면 나가는 사람도 있는 법. 차기 정부 인수위원회의 활동을 보면서 이명박 정부에서 대통령의 핵심 측근이자 화제를 모았던 주인공 곽승준 미래기획위원회 위원장의 얼굴이 떠올랐다.

곽 위원장은 요즘 신문 정치면이나 텔레비전 뉴스프로그램이 아니라 케이블채널의 ‘쿨까당’이란 프로그램의 진행자로, 또 스포츠서울닷컴의 ‘곽승준의 쿨한 만남’이란 지면의 인터뷰어로 맹활약 중이다. 이명박 정부의 탄생부터 퇴장까지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지켜본 곽 위원장은 지금 어떤 심경일까. 그리고 이명박 정권에 대한 평가는 어떻게 할까 궁금했다.

‘쿨까당’이란 프로그램으로 토론 예능인이란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
“난 교수다. 지난 5년간 교수로서 할 수 없는 엄청난 경험을 했다. 사람들에게 정말 할 이야기가 많은데 교수다운 표현을 쓰면 안 된다. 임기 끝내고 하려다가 생각한 즉시 행동으로 옮기는 나의 신조답게 지난 10월 말 대선 한가운데서 이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쿨까당’은 쿨한 보수와 까칠한 진보의 하이브리드(융합)를 뜻하는데, ‘쿨하게 까는 당’으로 알려졌다. 누군가는 꼴까당이라고도 한다. 모든 것은 섞이면 강해진다. 이념만 내세우면 불리하고 오히려 지는 세상이다. 각각 성격이 다른 로봇이 합체하면 엄청난 파워로봇이 된다. 술도 맥주와 양주, 막걸리와 맥주가 섞여 폭탄주로 강해지지 않는가.

이 프로그램이 시사나 예능으로 분류되는 것은 중요치 않다. 너무 중요하지만 무겁게만 여겨지는 정당정치, 대의 민주주의의 중요성을 재미있고 가볍게 알려주고 싶었다. 정당정치의 중요성을 알리고 싶어 프로그램 구성도 정당 당무회의 형태를 빌렸다. 오락과 정보, 리얼리티를 융합해 이 프로에서 논의한 내용들에 전병헌 의원, 진선미 의원 등이 법안 입법을 약속했다. 올해부터 한글날이 휴일인데 이것 역시 국회에서 그 법안이 통과되어 얻어진 것이다. 젊은이들에게도 이렇게 법들이 우리 일상과 밀접하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첫 방송 주제가 거대정당의 독과점폐지법이었다. 기업에서 만든 상품은 불량품이면 반품하는데, 정치는 반품이 안 되지 않는가. 그렇게 국회에서 상소리에 폭력을 휘둘러도 영남은 새누리, 호남은 민주당 후보를 뽑는다. 선거법을 개정해서 선거 자체가 즐겁고 재미있게 느껴져 젊은이들의 정치 참여와 투표를 유도해야 한다. 가장 최근 주제는 여성가족부 폐지였다. 그럼 여성이 온가족을 책임지란 뜻인가 등등 논란이 많았다.”

쿨까당은 물론 인터뷰 이름도 쿨한 인터뷰다. 왜 그리 쿨이란 말을 좋아하나.
“쿨! 이 말이 가장 하이브리드한 감성을 표현하는 단어다. 고대신문사 편집주간을 6년간 하면서 하루종일 대학생들과 대화했다. 한 제자가 여자친구와 헤어졌다면서 ‘기쁜 건 아닌데 후련하고, 슬픈 건 아닌데 뭔가 아쉽네요’라고 표현하더라. 신세대다운 쿨한 감정이다. 쿨은 사람마다 모두 다른 느낌을 뜻한다. 화끈하다. 시원하다. 멋지다, 좋다 등등. ‘쿨하게 기득권을 내려놓자’고 수시로 쿨이란 말을 쓴다. 쿨한 생각을 가진 쿨한 사람이고 싶다.”

이명박 정부에 대해 자평을 해달라.
“모든 정권은 공과 과가 있다. 해외 언론에서는 이명박 정부가 국제 경제위기를 잘 극복했다는 호평을 한다. 이승만 대통령 이후에 가장 영어를 잘하는 대통령이기도 하고, 글로벌 감각이나 해외 세일즈 능력은 탁월하다. 동맹국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지 않았나. 1970년대 말에 육성한 조선·철강·자동차산업으로 30~40년을 먹고 살았다. 원전 수출, 불모지대였던 중동 유전개발 등으로 향후 50년을 먹고살 토대를 마련했다고 본다. 물론 다음 정부에야 효과가 나올테지만….

과라고 하면 서민들이 힘들어지고 대기업만 잘 먹고 잘사는 세상처럼 된 것이다. 2008년에 고환율 정책, 대기업 감세 등을 너무 세게 주장했다가 2009년에 중도포기했다. 정부 내부에서도 성장을 부추기자는 이들과 저소득층부터 보듬자는 이들의 갈등이 있었다. 그러나 가장 큰 실수는 2008년, 촛불을 맞으면서 개혁파가 좌초했고 엄청난 우향우가 됐다. 종부세 폐지로 부자정부란 낙인이 찍혔다. 2011년 7월에 사교육법안이 통과되면서 다시 중립으로 돌아왔다. 산업생태계 공생발전. 동반성장도 강조하며 동반성장위원회도 만들었다. 얼핏 보면 MB 경제노선이 지그재그에 내부갈등으로만 보일 수 있을 게다. 중립적으로 균형을 잡아야 했다.”

이 정부에서 무엇이 가장 아쉽고 안타까운가.
“2008년의 촛불시위다. 10대 청소년들과 젊은 엄마들까지 참여한 촛불시위의 본 뜻과 힘을 너무 무시했다. 정부로서는 억울한 면이 있지만 국민과 소통했어야 했다. 그런데 이 정부에서 제대로 소통할 사람이 없었다. 작은 정부를 표방하느라 국정홍보처도 없고, 외교안보수석을 재빨리 미국에 보내 재협상도 요구했어야 했는데 기회를 놓쳤다. FTA의 경우 80%는 노무현 정권 때 진행됐고 이 정부에선 20% 정도 이룬 것이다. 결국 우리나라에 도움이 되는 결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통 부재로 국민과 마치 선과 악의 대결구도처럼 몰아간 아쉬움이 크다.”

미래기획위원장으로서 많은 일을 했지만 ‘심야 과외교습 금지’로 깊은 인상을 심어줬다.
“미래기획위원회는 중산서민층까지 포괄하는 능동적 사회안전망으로 복지체제를 강화할 것을 제안했다. ‘휴먼 뉴딜 프로젝트’다. 세 가지 주요 내용이 있는데 가계지출 줄여주기, 가계수입 늘려주기, 사회안전망 확충이다. 이 가운데 경제위기 국면에서 가중 중요한 게 가계지출 줄여주기다. 국민들을 가장 부담스럽게 하는 것 중에 하나가 사교육비다. 사교육비는 우리 경제의 가계부채와 톱니바퀴처럼 물려 있다. 심야 과외교습 금지를 비롯해 사교육비 줄이기를 위해 여러 가지 노력을 기울였다. 내년 하반기 정도면 국민들도 직접 피부로 느끼게 될 것이다. 작년에 대한민국 개국 이후 처음으로 사교육비가 3% 줄었다. 또 지난 7월에 그동안 추구하는 학원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개인적으로는 일단락됐다고 생각한다.”

안철수 전 후보도 미래기획위원회와 인연이 있지 않은가.
“안 전 후보는 2008년부터 미래위 민간위원으로 있었다. 청와대에서 국정기획 수석으로 일할 때 영입했다. 2009년부터는 같이 호흡을 맞춰서 대·중소기업 동반성장, 산업 생태계에 대해 논의를 해왔다. 생각과 이상을 얘기하다보면 이질감 같은 것은 전혀 없는 분이다. 작년에는 MT도 같이 다녀왔다. 안 전 후보가 갖고 있는 대기업-중견기업-중소기업-1인창조기업 등의 산업 생태계 얘기는 확실히 일리가 있다. 대기업을 벤처기업 착취하는 동물원으로 비유한 것도 마찬가지다. 안 전 후보도 교수이고 나도 선생이다. 정치는 DNA가 다르다. 그분이 정치에 잘못 들어가면 굉장히 힘들어질 수 있겠다고 걱정했다.”

곧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다. 박 당선인은 약속을 꼭 지킨다가 모토다. 과연 공약을 다 실현할 수 있을까.
“선거는 포퓰리즘, 아니 표퓰리즘이다. 그러니 국민들이 듣기 좋아하는 이야기를 공약으로 내걸 수밖에 없다. 인수위는 공약 중 할 수 있고 없고를 수위조절하는 기구다. 공약들에서 버릴 일, 우선과제를 정할 것이다. 그리고 실제 국정을 운영하다보면 현실적으로 조정을 할 수밖에 없다. 5년 전의 인수위는 10년간의 진보정권 교체, 여야 교체여서 어려움이 많았다. 하지만 이번엔 현직 대통령이 여당 당적을 갖는 상태에서 정권교체가 이뤄지는 것이어서 문제없이 잘 진행되리라 본다. 이명박 대통령과 박 당선인과의 관계도 아주 좋다.”

정말 사이가 좋은가.
“과거에야 경선 라이벌이어서 애증도 깊었겠지만 최근엔 매우 협조적인 것으로 안다.”

그렇다면 차기 정부에 대해 낙관적인가.
“청소년소통위원회를 만드는 등 노력하는 모습이 모인다. 다만 국민 각자의 목소리가 다 달라 통합은 어려울 것 같다. 소통방식은 자기식이 아닌 상대 스타일로 해야 한다. 2030과 소통하는 데 6070의 소통구조로는 여럽다. 말하기 싫어하는 이들에게는 글로 전달하고, 글을 읽기 싫어하는 이들에게는 마음으로 전달하면 된다. 소통은 진정성을 갖고 그 사람과 소통하려는 진심을 보이면 된다. 20~30대 청년 몇 명을 국회의원이나 정치권으로 데려온다고 그게 세대차이를 좁히는 소통은 아니다. 다 쇼라고 생각한다.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인정하고 알려달라고 하면 된다.”

곽 위원장은 50대다. 이번 선거도 50대 바람이 거셌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났을까.
“현재 50대는 민주화와 산업화의 근간을 구축한 이들이다. 학생으로 정치운동에 참여했고 상사 바람이 불 때 국내외에서 산업화에 기여하며 서바이벌 게임에서 생존한 이들이다. 학생운동의 주역들이 현재 정치권과 재계의 주인공이 됐다. 대부분 출세한 기득권들이다. 이들이 사다리를 걷어차버려 2030들이 올라갈 기반이 없어졌다. 아프니까 청춘이라면서 위로하기보다 그들에게 역할을 줘야 한다. 같이 고민하고 그들을 위한 사다리를 내려줘야 한다. 현재 50대는 사실 과거의 30대 후반이다. 과거의 패러다임으로, 숫자상의 나이로 세대를 규정해서는 안 된다. SNS도 청년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5060들이 문자와 카카오톡도 열심히 하고, 애니팡 등 게임 세계에도 입문해 마음은 청춘이다.”

평소 젊은이들과 잘 어울린다. 소통 비결은 뭔가.
“매사 호기심이 많다. 현재 휴대폰도 3개나 사용한다. 새로 나오면 무조건 사서 왜 젊은이들이 이것에 열광하며 그들의 코드가 무엇인가를 알면 대화가 통한다. 난 격투기가 취미이고 노래방에 가도 발라드가 아니라 랩을 부른다. 같이 뒹굴고 노래하면 마음을 열어준다.”

본인이 보수라고 인정하나.
“난 쿨한 보수다. 여권에선 나를 완전 좌파라고 비난하는 이들도 있다. 정체성과 이념이 뭐가 그리 중요한가. 다만 보수의 핵심 가치를 존중한다. 보수는 변화의 개혁과 진화다. 복지정책도 보수정권에서 만든 것이고, 영국의 경우 보수당 정권에서 노동자들에게 참정권을 주었다. 물론 다음 선거에서 노동당에 졌지만 그 다음 선거에선 압승을 거뒀다.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인류가 만든 최고의 체제일 뿐 완벽한 것은 아니다. 난 자본주의 5.0을 주장하는데 이젠 정부나 대통령이 할 수 없는 공익적 역할을 민간과 시장이 해야 한다. 마이크로소프츠의 빌 게이츠는 청소년들의 교육을 위해 수많은 돈을 내놓고 제3세계 빈곤 아이들을 위한 의료품을 나눠 빈부격차 해소는 물론 지식격차 줄이기에 앞장서고 있다. 미국의 경제위기 때 부자들에게 더 많은 세금을 내자고 주장한 워런 버핏의 경우 국회의원이나 정치인이 아니지만 그 조세법 이름이 버핏세이다. 우리 대기업이나 재벌들도 이런 마인드가 필요하다. 비정규직 문제도 정부가 다 해결할 수 없다. 민간의 중요성이 정말 크다. 제발 체제경쟁이나 이념논쟁을 하지 말고 정치인은 국민행복에 기여하고, 기업도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공생발전해야 한다.”

방송프로그램이긴 하지만 쿨까당도 만들었는데 진짜 정치활동을 할 것인가.
“아니다. 올 신학기부터 대학교수 본연의 자리로 돌아간다. 교수가 직접 정치하면 교수로서의 능력을 100분의 1도 발휘할 수 없다. 교수는 정책조언자의 역할이 제격이다.”

유인경이 만난 사람

곧 장관급인 미래기획위원장 자리도 내주고, 방도 빼줘야 할텐데 그의 표정은 새로운 여행을 앞둔 사람처럼 너무나 해맑았다. 아, 맞다. 그는 돌아갈 대학교수 자리가 있다. 쿨하게 떠날 수 있는 그가 마냥 부럽다.

<글·유인경 경향신문 선임기자 alice@kyunghyang.com>
<사진·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