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이건희 재산 사회환원 잘 되고 있나

2조5000억여원 차명주식 실명 전환… 특검 평가액과 1조6000억원 차이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이 지난해 4월 22일 삼성 본관 지하 1층 국제회의실에서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한 뒤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남호진 기자>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이 공식적인 모든 직함을 사퇴하고 임·직원 명의로 관리해온 차명 재산을 사회환원하겠다는 약속을 한 지 만 1년이 흘렀다. 최근 삼성그룹은 삼성특검을 통해 이 전 회장의 차명계좌로 지목된 삼성생명과 삼성전자, 삼성SDI의 차명 주식에 대해 실명 전환을 완료했다고 발표했다. 삼성전자 보통주 224만5525주와 우선주 1만2398주, 삼성SDI 보통주 39만9371주, 삼성생명 주식 324만4800주 등으로 구성된 이 전 회장의 차명 주식은 삼성그룹 전·현직 임직원 486명의 1199개 계좌로 분산 관리돼왔다.

2006년에도 8000억원 사재 출연
이번에 실명 전환한 차명 주식은 비상장 주식인 삼성생명 주식의 장외거래가 기준 가격 1조2979억 원을 포함해 2조5000억 원 정도다. 이 전 회장은 2006년에도 안기부 X파일 사건을 계기로 8000억 원에 달하는 사재를 출연한 바 있다. 이번에 실명 전환한 이 전 회장의 사재 출연 액수는 경위야 어찌됐든 지금까지 대기업 회장들이 출연했던 것과 차원을 달리하는 큰 규모여서 재계뿐 아니라 일반 국민들의 관심도 높다. 아직 이 돈을 어떤 용도로 쓸지, 관리는 어떻게 할지 등 구체적인 계획은 나오지 않은 상태다. 이와 함께 삼성특검이 조사했던 차명 재산의 규모와도 평가액에서 일정 부분 차이가 있어 이 부분도 명확히 정리해야 한다.

삼성은 그동안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비리 사건이 터질 때마다 총수의 사재 출연과 사회 헌납 카드를 내놨다. 사카린 밀수 사건과 한국비료의 사회 환원, 삼성자동차 부실 채권과 이건희 회장의 사재출연, 안기부 X파일 사건과 8000억 원 사회 환원 약속 등이 그것이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삼성이 비리 사건이 터지면 투명경영 등 원천적 처방으로 대응하기보다 그룹 총수의 ‘사재 사회 환원’을 ‘전가의 보도’처럼 활용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삼성그룹은 2006년 장기 해외 체류 중이던 당시 이건희 전 회장의 귀국을 계기로 민심을 다독이기 위해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말씀’이라는, 사실상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면서 불법 대선 자금 제공, 에버랜드 전환 사채 헐값 발행, 안기부 X파일 파문 등으로 물의를 일으킨 점을 사과하면서 모두 8000억 원 상당의 사회기금 헌납, 그룹 구조조정본부 축소 및 계열사 독립경영 강화 등을 담은 대책을 내놓은 바 있다.

“누락 세금 납부 후 유익한 일에 사용”
지난해에는 이 전 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완전히 물러나면서 경영쇄신안 발표와 함께 그동안 차명 계좌를 통해 관리해오던 차명 재산을 실명 전환한 뒤 사회를 위해 쓰겠다고 발표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2006년 약속한 8000억 원 사회 환원은 현재 완료된 상태다. 이 가운데 4500억 원은 ‘삼성이건희장학재단’ 기금으로, 지난해 이 전 회장의 대국민 사과문 발표 이전에 이미 ‘사회에 환원한’ 돈이었다. 나머지 3500억 원은 이 전 회장 일가의 ‘부당 이득’ 헌납분 1300억 원, 고(故) 이윤형(이건희 전 회장 셋째딸)씨의 유산 2200억 원이다. 당시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은 “새로 출연하겠다는 3500억 원 가운데 1300억 원은 에버랜드 전환 사채 불법 증여에 따른 추정이익이기 때문에 실제로 기부하는 것은 2200억 원뿐”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8000억 원’의 사회 환원 업무는 처음엔 교육과학기술부가 맡기로 했다가 지금은 ‘삼성고른기회장학재단’으로 이관됐다. 삼성사회봉사단 관계자는 “8000억 원은 재단에 완전 이관되어 이제 삼성에서 용처에 대해 언급할 문제가 아니다”라며 “삼성고른기회장학재단의 전신인 ‘이건희장학재단’의 취지에 맞게 잘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 전 회장 차명 재산의 실명 전환은 최근에 와서야 마무리됐다. 당시 특검은 이 전 회장의 차명 재산이 삼성그룹 전·현직 임원 486명 명의의 1199개 차명 계좌로 관리되고 있으며, 삼성전자 등 계열사 주식 4조1000억 원 규모라고 밝힌 바 있다. 삼성은 3월 19일 금감원전자공시를 통해 삼성SDI 보통주 39만9371주의 실명 전환 완료를 끝으로 이 전 회장의 차명 주식 실명 전환을 마무리했다고 발표했다. 삼성은 그 하루 전인 18일 삼성전자 보통주 224만5525주와 우선주 1만2398주를 실명 전환했고, 지난 1월에도 삼성생명 주식 324만4800주를 실명 전환했다.

이번에 실명 전환한 이 전 회장의 차명 주식 규모는 삼성전자는 1조1344억 원, 삼성SDI 254억4000만 원이었다(3월 18일 종가 기준). 비상장 주식인 삼성생명은 지난 1월 장외 거래가 기준으로 약 1조2979억 원의 가치가 있는 것으로 추정, 총 2조5000억여 원의 차명 주식을 실명 전환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삼성특검이 지난해 밝힌 이 전 회장의 차명 재산은 4조1000억원 규모다. 삼성이 발표한 실명 전환 주식의 평가액 2조5000억 원과 1조 6000억 원가량 차이가 난다. 경제개혁연대는 이 같은 액수 차이에 대해 의문을 표시하면서 삼성그룹사장단협의회와 삼성전자이사회, 삼성SDI이사회 등에 ▲차명 주식의 실명 전환 내역 ▲삼성특검수사결과 발표 당시 차명 주식의 평가액과 실명 전환 주식의 평가액의 차액 내역 ▲차명 재산의 사회공헌 계획 진행 상황 등을 질의하는 공문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향후 삼성이 어떠한 답변을 내놓을지 주목된다.

삼성은 실명 전환을 완료함에 따라 탈루한 세금을 납부한 후 구체적인 용처와 관리 주체 등을 결정할 생각이다. 삼성의 한 관계자는 “이 전 회장의 이번 주식 실명 전환은 지난해 4월 경영쇄신안 발표 당시 약속했던 것을 이행한 것으로, 이번 삼성SDI를 끝으로 실명 전환 절차를 모두 마무리했다”고 말했다. 그는 “실명 전환한 이 전 회장의 주식은 약속한 것처럼 누락된 세금을 모두 납부한 뒤, 남은 금액은 사회를 위해 유익한 일에 사용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태열 기자 yolkim@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