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빚의 올가미’ 대부업법 전면 개정을

대부업법 10년이 남긴 것, “약탈적 대출행위 금지” 목소리 높아

“처음 3000만원을 빌릴 때는 이자가 그렇게 비싼 줄도 몰랐습니다. 알고 봤더니 연 80%가 넘는 것이었습니다. (중략) 모든 것을 다 뺏기고, 월세방으로 내몰려 고단한 삶을 살고 있고 그 후유증도 크지만, 그 악몽 같았던 사채업자들의 횡포를 생각하면 지금도 소름이 돋습니다.”

8월 27일 서민금융보호전국네트워크에 참여한 단체 회원들이 금융위원회 앞에서 ‘대부업법 제정 10년, 금융위원회 항의 및 입장발표’ 기자회견을 열고 대부업법 전면 개정과 대부업 관리·감독 강화를 촉구하고 있다. | 강윤중 기자

8월 27일 서울 여의도 금융위원회 앞에서 열린 ‘대부업법 제정 10년, 금융위 항의 기자회견’에서 강선영씨(59·가명)는 마이크를 들고 지우고 싶은 기억을 토해냈다. 경기도 광주시에서 남편과 함께 조그만 분식가게를 운영하던 강씨는 “복요리집을 운영하면 지금보다 나은 환경에서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꿈을 가졌다. 강씨는 복요리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 학원에 등록을 했고 매일 새벽 광주에서 서울까지 교육을 받으러 다녔다. 고생 끝에 강씨는 자격증을 취득했고 2006년 11월 꿈에 그리던 활어 복요리 전문점을 열었다.

처음 영업은 생각보다 잘 됐다. 직원 7명의 인건비, 임대료 등 모든 경비를 빼고도 흑자를 기록했다. 하지만 1년이 지나면서부터 매출은 뚝 떨어졌고 어쩔 수 없이 집을 담보로 은행에서 돈을 빌려 운영자금으로 사용했다. 문제는 시간이 흘러도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자금사정 악화로 은행 문턱을 넘을 수 없게 된 강씨는 우연히 출입문에 끼어 있던 저축은행 대출 광고지를 발견했다. ‘죽으라는 법은 없구나’라는 마음에 반갑기까지 했다. 전화를 걸어보니 ㅁ상호저축은행(사실은 대출거래를 중개한 사채업자들)이라면서 금리가 12% 정도이고 매일 조금씩 상환(하루에 12만5800원씩 300일)하면 큰 부담이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강씨는 저축은행에서 대출받는 것이라는 설명만 믿고 3000만원을 빌리기로 했다. 당시에는 이 3000만원이 강씨의 가족을 빚의 올가미에 밀어넣는 화근이 될 줄 몰랐다.

민생연대 송태경 사무처장(민주통합당 최재천 의원 보좌관)은 지난해 출간된 <대출천국의 비밀>에서 강씨의 사례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저축은행 중에는 아예 대놓고 법령 이자율을 위반하는 사례도 있었다. ㅁ상호저축은행은 피해자 강씨에게 3000만원을 일수로 대출해주면서 대출계약서에는 적용 이자율 연 31.39%, 연체이자율 연 40%라고 명시했다. 그러나 실제 거래에서는 수수료 명목으로 174만1200원, 선일수 5일분 62만9000원, 부동산 설정비 명목 54만5000원을 미리 공제하고 2708만4000원만 지급한 후 하루에 12만5800원씩 300일간 갚도록 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조건은 금융감독원 일수 대출이자율 계산기로 계산해보면, 최저 연 58%에서 연 76.8%에 해당하는 것으로 당시 법령의 이자 상한선 연 49%를 초과하는 것이었다.”

실제이자율 법령이자율보다 훨씬 높아
2007년 11월 ㅁ상호저축은행에 대출 중개를 했던 사채업자들이 강씨에게 솔깃한 제안을 했다. 은행 담보대출이 있는 집과 가게 임대계약서를 함께 넣으면 지난번보다 더 저렴한 금리 수준으로 추가 대출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이전에 빌린 돈은 직원들의 밀린 임금을 주는 데 써버린 터라 여전히 가게 운영자금이 부족했고 2000만원을 다시 빌리기로 했다. 하루에 23만6000원씩을 100일간 갚는 조건이었고, 연 163%에 달하는 이자율이었다. 사채업자들은 ㅁ상호저축은행이 좋은 조건으로 빌려주는 것이라고 했지만 실제로 사채업자 자신들이 빌려주는 것이었다.

2008년 7월쯤 되니 다시 빚을 갚기가 어려워졌고, 강씨는 전주 소재의 ㅈ저축은행으로부터 700만원을 빌렸다. 하루에 7만6020원씩 100일간 갚는 조건이었고, 이자율은 연 126%에 달했다. 영업은 계속 부진을 면치 못했고 빚을 갚지 못하는 날이 서서히 늘어났다. 이때부터 사채업자들은 전화는 기본이고 직접 찾아와 하루에도 몇 차례씩 공갈·협박을 했다.

우연히 불법사채에 대한 보도가 방송에서 나오는 걸 보고 경찰서에 찾아갔지만 “비싼 이자 왜 썼느냐”는 핀잔만 돌아왔다. 수사 결과 사채업자 최모씨는 벌금형으로 처벌을 받았지만 고소에 앙심을 품은 최씨는 대출시 담보로 잡은 집을 경매에 집어넣었고 강씨를 사기죄로 검찰에 고발하기까지 했다. 집은 경매로 넘어갔지만 민생연대의 도움으로 사기죄에 대해선 항소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을 수 있었다.

절망의 수렁에 몰아넣는 ‘합법적인 고리대’
송태경 사무처장은 “강씨가 저축은행으로부터 대출을 받을 당시 여신금융기관에 대해서는 연체이자율 상한에 대한 규정만 있었고, 대출 이자율 등에 대한 명시적인 규정이 없었다”며 “이를 근거로 법원은 부당이득금 반환청구 사건에서 강씨의 주장이 근거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고 말했다. 그는 “대부업법의 제정으로 약탈적 대출에 나선 저축은행과 대부업자들로부터 돈을 빌릴 경우 일시적인 자금조달의 편의만 있을 뿐 결국은 가족 모두를 절망의 수렁으로 몰아넣을 수 있다는 점을 강씨의 사례에서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대부업법은 1998년 1월 이자제한법이 폐지된 뒤 사채시장을 양성화한다는 이유로 2002년 10월부터 시행됐고 올해가 10년째다. 시행 초기 법정 최고이자율로는 역사상 가장 높은 연 66%까지 보장하는 등 ‘합법적인 고리대’의 길을 열어줬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최재천 의원실에 따르면 서울시의 경우 등록된 대부업체만 지난해 말 기준으로 4440개이고 무등록업체 등을 포함하면 수만개에 이른다.

이날 기자회견을 주최한 서민금융보호 전국네트워크의 이선근 공동대표는 “법정 최고이자율을 20%로 인하하고, 최고이자율의 2배를 웃도는 약탈적 대출행위에 대해서는 원금과 이자 모두 무효화해야 한다”며 대부업법 전면 개정을 요구했다. 이 대표는 또 “대부업자들의 난립을 방지할 수 있도록 최저순자산액 제도를 3억~5억원, 5억~10억원 수준에서 2단계에 걸쳐 도입하고, 제도의 성숙을 전제로 인·허가제도를 복원하라”고 촉구했다.

서민들에게 필요한 것은 ‘금융이 아니라 복지’라는 지적도 나왔다. 사회적 기업 에듀머니의 제윤경 대표는 “다중채무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환승론, 햇살론, 바꿔드림론 등과 같은 빚 돌려막기가 아니라 능동적인 채무조정, 채무탕감”이라고 말했다. 통합진보당 심상정 의원은 “서민들의 급전 수요는 좋은 일자리 만들기와 사회보장을 통해 해결해야 할 일임에도 정부가 이를 대부업자에게 맡겼다”고 꼬집었다.

<김지환 기자 baldkim@kyunghyang.com>